유럽기차여행 ⑤ Part Ⅱ - 아폴론의 도시 Delphi
유럽기차여행 ⑤ Part Ⅱ - 아폴론의 도시 Delphi
  • 트래비
  • 승인 2007.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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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피는 여러모로 아테네와 대조되는 면모를 갖추고 있다. 자연보다는 도시와 뒤섞여 북적이는 아테네와는 달리 험준한 산 중턱에서 자연과 어우러진 델피의 모습은 평화롭고 조용하다. 여러 차례의 심각한 훼손으로 ‘대놓고’ 보수와 복구가 진행 중인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비하면 델피의 아크로폴리스는 허물어진 대로, 혹은 허물어졌더라도 ‘조용한’ 개보수 작업이 진행 중이다. 또 아테네가 아테나 여신의 도시라면 이곳 델피는 태양신 아폴론이 신탁을 내렸던 도시라는 차이도 있다.

산 넘고 물 건너 아폴론의 신탁을 향해! 



델피는 아테네에서 서북쪽을 향해 버스로 3시간 정도를 달리면 도착한다. 지금이야 편안하게 구불구불 산길의 아름다운 경치와 산토리니 못지않게 아기자기한 아라호바 마을을 구경하며 가지만, 멋 옛날 신탁을 받기 위해 해발 500m의 험준한 파르나소스 산을 오르던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려 본다. 용하디 용한 ‘무릎 팍 도사’를 찾아 산 넘고 물 건너의 수고를 마다 않는 요즘 사람들과 별다르지 않다. 

델피는 기원전 16세기부터 약 2,000년 동안 정확한 예언으로 명성을 날렸다. 그리스 일대의 왕, 재상, 종교인은 물론 인근 유럽 지역에서도 신의 예언을 듣기 위해 델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국가의 중대사뿐 아니라 개인사에 있어서도 가장 먼저 델피에서 예언을 들은 뒤 행동에 옮겼다. 

실제 신탁의 절차는 다음과 같았다. 델피에 도착한 방문자들은 예언을 듣기 전
아폴론 신전에 제사를 올리고 카스탈리아 샘에서 죄를 씻는 의미로 몸을 씻는다. 준비가 되면 자신이 원하는 질문은 제사장에게 전달된다. 이것이 다시 아폴론의 여제사장인 ‘피티아’에게 넘겨져 방문자는 답을 기다린다. 피티아는 청동제단에 앉아서 한 손에 성수가 담긴 그릇, 다른 한 손에는 계수나무 잎을 들고 계수나무 잎을 씹으며 예언을 했다고 한다. 청동제단은 땅이 갈라지면서 연기가 올라오던 곳에 세워졌는데, 연기를 마신 여제사장은 일종의 ‘환각 상태’에서 예언을 했고 그것을 제사장이 번역해서 방문자에게 전달했다. 

‘유한성’을 가진 나약한 인류는 억겁의 시간 동안 신들의 이야기에 기대어 살아왔다. 그것은 무한한 생명을 가진 신의 세계에 대한 동경의 표현임은 물론이고, 개인의 삶과 죽음, 국가의 흥망성쇠를 점치는 신탁에 의지해 온 인류의 발자취이기도 하다. 빛나는 고대 그리스의 영광이 지금은 아스라이 그 흔적만 남았지만 모든 인류공통 욕망을 다양한 신화를 통해 찬란한 문화로 표출한 그리스 신화는 알면 알수록, 보면 볼수록 빠져들 수밖에 없다.

☆ 델피, 더 깊이 들여다보기 

델피는 세계의 배꼽이라는 수식어로도 유명하다. 이 말의 유래는 어느날 제우스가 두 마리의 독수리를 각각 동쪽과 서쪽으로 날려 보냈고 얼마 후 그 두 마리는 만난 지점이 델피로 고대 사람들은 이곳을 세계의 중심으로 여겼다. 그리하여 제우스는 델피에 ‘옴파로스(Omphalos)’라는 성석을 세웠고 옴파로스는 지금 델피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델피 여행에 있어서 단순히 성지 둘러보기에 그쳐서는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다. 박물관으로 들어가 델피를 더 깊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델피 박물관에서는 아폴론 동상을 비롯해 델피에서 발견된 가지각색의 유물들을 통해 신화와 문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나시안의 스핑크스, 안티노우스 동상, 아리아스 동상, 코린트인이 제작한 대리석 스핑크스 등 선사시대부터 그리스, 로마, 비잔틴시대와 이집트까지 다양한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의 하이라이트는 ‘델피의 전차수’ 청동입상으로 고대 그리스인의 장엄하고 진지한 표정과 옷 주름, 몸의 세밀한 근육까지 마치 실제처럼 생생하게 만들어져 걸작다운 면모를 과시한다. 

※ 델피 박물관 입장료 9유로 30-226-508-2312




유난스럽게도 ‘탈 것’을 좋아하는 기자에게 있어 기차 여행만도 설레는데 ‘야간열차 여행’을 맞이함에 있어 그 들뜸은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21시간 배도 탔고, 거의 30시간의 비행기도 타 봤는데 그깟 예닐곱 시간의 밤 기차는 식은 죽 먹기가 아니겠는가. 거기에 거의 10여 일의 유럽 여행으로 소진된 체력, 밤이 깊을수록 무거워지는 눈꺼풀, 매일같이 끌고 다니는 트렁크는 쇳덩이를 넣은 듯 짐스러웠다. 이윽고 컬러풀한 그래피티로 치장한 테살로니키행 야간열차가 거뭇한 밤을 뚫고 등장했다. 마치 구원병 같았다. 

배정받은 객실에 짐을 풀기도 전에 생각보다 훨씬 잘 정비된 침대칸의 시설에 ‘피곤함’에 앞섰던 것은 ‘호기심’. 여기저기를 들춰 보니 간이침대와 세면대, 담요와 베개, 세면 수납공간에는 양치용 컵과 수건까지 준비돼 있었다. 취침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몸을 파묻는다.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도 잠시. 저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어 버렸다. 

도착하기 30분 전임을 알리는 안내방송에 눈을 부비고 일어나 기지개를 활짝 켠다. “똑, 똑, 똑” 문을 두드리던 승무원 아저씨의 “굿 모닝” 인사와 함께 배달된 소박한 아침식사. 유레일패스와 야간열차로 하룻밤을 아낀 기분이다. 그것도 생각보다 편하게. 



 

★ 시간과 공간을 달렸던 기차여행

여행길에 만난 유레일 그룹의 마케팅 매니저 애나는 그녀가 한국 시장에서 진행했던 포커스 그룹 인터뷰에서 느낀 바를 “한국인들은 매우 로맨틱하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기차여행을 하는 이유와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 대해 다른 탈 것들에 비해 더 경제적이고 더 편안하기 때문이라는 현실적인 반응보다 기차 여행에 대한 낭만과 함께 여행을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발전, 자기 자신의 발견이라는 좀더 감정적이고 추상적인 결과가 나와 흥미롭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뒤로 기차 여행을 즐기는 다른 외국인들을 가만히 관찰해 보니 기차 안에서 그들의 활동영역은 책, 신문, 선잠 청하기 등 조금은 단순한 편이었다. 그에 비해 한국 여행자의 경우는 어떤가. 다양한 개인 미디어 총동원, 여행 내내 수다 떨 준비 완료, 기차 여행과 어울리는 간식거리 즐기기 등. 기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단순히 ‘이동’으로서만이 아닌 ‘여행’의 일부로 여기기에 가능한 다양한 활동을 하며 그 시간을 즐기는 듯 보였다. 또 이번 여행은 배낭여행=고생여행이라는 공식은 편견임을 여실히 느꼈던 계기이기도 하다. 최대한 많은 나라를 돌아보기가 지상과제가 아닌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와 신화라는 테마를 정해 유레일패스를 충분히 활용하며 지역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할 수 있던 값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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