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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철의 하얼빈에서 온 편지 ⑥ 봄날, 그리고 731부대"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7.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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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는 지난 2월 중국 하얼빈으로 ‘조금 긴 여행’ 길에 오른 Travie writer 서동철 기자의 ‘하얼빈에서 온 편지’를 이번 호부터 약 10회에 걸쳐 격주로 연재합니다. 서기자를 통해 듣는 중국의 현지 문화와 생활 체험담, 그리고 속 깊은 여행 단상들이 독자 여러분들께 간접 체험의 즐거움을 안겨 드릴 것입니다.    





올해 하얼빈의 봄은 갑작스러우면서도 혼란스러웠다. 날씨가 풀리는가 싶더니 다시금 눈발이 휘날리던 4월이 지나자 언 땅과 마른가지 속에 웅크리고 있던 푸른 기운들이 우후죽순처럼 마구 솟아올라왔다. 그 와중에도 차가운 바람을 동반한 비와 따사로운 햇살이 번갈아 가며 뒤척였고, 6월로 넘어가면서 돌연 완연한 여름 날씨를 보였다. 다시는 흐르지 않을 것처럼 굳어 있던 쑹화강의 얼음도 어느새 풀어지고,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강변에 나와 커다란 연을 날리며 겨울을 환송했다. 

5월과 6월에 걸쳐서는 함박눈(?)도 감상할 수 있다. 공중을 가득히 메운 꽃가루들이 바람을 타고 제 삶의 터전을 찾아가는 길인데, 그 모습이 한겨울에 내리는 함박눈처럼 탐스러워 ‘5월의 크리스마스’라고 이름을 붙여 보기도 했다. 사실 이 때문에 길을 걷는 일은 괴롭기만 하다. 눈과 입과 코로 달려드는 것은 물론, 더운 날씨에 아이스크림이라도 들고 있으면 어김없이 꽃가루들이 달라붙곤 한다. 

여름을 방불케 하는 어느 봄날, 그간 미루고 미뤘던 ‘731부대 유적지’로 향했다. ‘마루타’라는 섬뜩한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731부대 유적지로의 방문을 차일피일 미루었던 것은 그 위치가 도시의 남쪽 끝자락이어서 찾아가기가 번거롭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먼저 방문한 사람들의 흉흉한 입소문의 영향이 컸다. 들려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유령마저도 떨고 간다는 유적지 내부가 하도 오싹해서 햇볕이 쨍쨍한 날에 둘러보아야 그나마 견딜 만하단다. 관람을 하고 돌아온 날에는 꼭 무서운 꿈을 꾸게 되고, 한번은 가봐야 하지만 두 번은 가기 싫다는 둥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이야기들만 들려 왔다. 

특히 일본인들의 경우 731부대를 방문하고 나면 반드시 귀신을 보게 된다고 한다. 중국 동북 3성(헤이룽장성, 랴오닝성, 지린성)의 반일감정은 그 어느 지역보다 강한 듯하다. 허수아비 정부를 두고 만주국을 세웠던 역사에 더해 끔찍한 생체 실험의 현장까지 보존돼 있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여타 도시에 비해 하얼빈에 일본인 유학생들이 적은 것도 731부대의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없다. 

하얼빈의 731부대는 일제 관동군 산하에 있던 세균전 부대로 1936년부터 1945년까지 전쟁포로 등으로 구속된 약 3,000여 명의 한국인, 중국인, 러시아인, 몽골인을 각종 생체 실험으로 잔인하게 희생시킨 곳이다. 실험의 내용은 세균실험, 생체해부실험, 생체냉동실험, 생체원심분리실험 및 진공실험 등이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생존해 있던 150여 명의 마루타들까지 모두 처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과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본관뿐이고 보존되어 있는 자료들 역시 ‘흔적’들에 불과하지만, 바로 그 역사의 현장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731부대 유적지는 전율을 느끼게 해준다. 



파릇한 잔디밭과 웃자란 수풀에 둘러싸인 어두컴컴한 본관 건물은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들은 바대로 밖의 날씨는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를 듯하건만 본관 안은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세균전 부대를 설립한 이시이 시로 중장의 사진을 비롯해서, 박테리아를 마루타에게 주입하는 장면이나 시체를 소각하는 장면 등은 디오라마로 생생하게 전시돼 있어 관람 내내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전시실의 마지막 테마는 ‘평화’였다. 여러 일본인들이 보내온 듯한 수천 마리의 학과 글귀에는 인간존중과 평화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었다. 관람을 마치고 본관 건물을 빠져나오니 눈이 부실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 다사로운 햇살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유적지 본관 건물에 들어서면 입구에서 만나게 되는 문구가 하나 있다. ‘前事不忘, 后事之師(전사부망, 후사지사)’ 지난 일을 잊지 않고 훗날의 교훈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일개 국가의 야욕이 얼마나 개개인들을 눈멀게 했던지 기억한다면 그 참혹했던 시간들도 다소나마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다. 731부대 유적지를 빠져나오면서 머릿속을 맴돌았던 단어는 ‘예의’였다. 인류가 진화라는 것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나와 주변인, 혹은 한 집단으로 한정돼 있던 인간에 대한 예의를 보다 확장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예의 없는 것들’은 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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