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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트레인 탑승 - 검은 대륙을 달리는 호화 열차 ①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7.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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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
 
수많은 여행자들이 ‘생에 꼭 한번은 가보리라’ 벼르는,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 여행지로 멋지게 피날레를 장식하고 싶어하는 곳 ‘아프리카.’ 그곳 검은 대륙은 여행자들을 끌어 당기는 묘한 매력을 품고 있다. 

그러고 보면 기자는 참으로 행운아가 아닐 수 없다. 아프리카 땅을 밟은 첫걸음에 ‘아프리카 여행의 진수’로 꼽히는 세계적인 호화 열차 블루 트레인(Blue Train)에 오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프레토리아까지, 미지의 세계를 내달리는 환상 특급처럼 블루 트레인에서 지낸 1박 2일은 지금 다시 떠올려 봐도 그저 꿈처럼 느껴질 뿐이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많은 여행법 중 가장 호사스럽고 화려하다고 이름난 블루 트레인. 그 차창 밖으로는 아프리카의 수많은 단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장대히 펼쳐진다. 

글·사진  정은주 기자   
취재협조  남아프리카항공 02-778-6128, 인터아프리카 02-775-7756/www.interafrica.co.kr

케이프 타운을 출발하다

오전 10시, 역사 내 전용 라운지에 도착하자마자 깔끔하게 정장 수트를 갖춰 입은 버틀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Welcome!"하며 반갑게 맞는다. 고급스럽게 꾸며진 라운지 안에는 먼저 온 승객들이 차를 마시며 한가로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여느 대합실과는 달리 편안하고 여유로운 분위기. 열차가 도착해 탑승 수속을 마칠 때까지 승객들은 이곳에서 버틀러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만끽하며 앞으로 27시간 동안 1,600km에 걸쳐 펼쳐질 호사스러운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린다.


ⓒ트래비

2. 에게해의 바다색을 품은 파란색 외관
3. 마티에스폰테인 역에서 만난 아이들
4. 흥겨운 기착지 투어

About Blue Train

블루 트레인을 처음 구상한 이는 영국의 광산업자인 세실 존 로즈. 애초 금광과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을 위해 아프리카 종단 철로를 놓겠다는 계획이 세월을 거치면서 지금의 호화 열차 블루 트레인을 탄생시켰다. 블루 트레인은 외관이 에게해의 바다색을 따온 듯 파랗다고 해서 붙게 된 이름. 원래 ‘유니온 리미티드’라는 이름으로 열차가 운행되었으나 1946년도부터 아예 ‘블루 트레인’으로 공식 명칭을 바꾼 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로보스, 팔레스 온 휠 등 세계적인 호화 열차들이 쟁쟁하지만 많은 이들이 서슴치 않고 블루 트레인을 최고로 꼽는다. 달리는 특급 호텔이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안락하면서도 고급스런 내부 시설과 초특급 서비스는 블루 트레인만의 자랑거리 이다. 이미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을 비롯해 넬슨 만델라 대통령, 마이클 잭슨, 타이거 우즈 등 세계적인 명사들이 블루 트레인의 매력에 찬사를 보낸 바 있다.

블루 트레인 여행의 시작, 전용 라운지 

열차 탑승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이 하나, 둘 이동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누구의 손에도 트렁크나 캐리어가 들려 있지 않다. 이미 짐은 각자의 객실 안에 얌전히 놓여져 있을 터. 버틀러들이 승객들의 짐을 미리 옮겨 놓았기 때문이다. 

외관이 온통 새파란 겉모습과는 달리 열차 안은 밝은 갈색톤의 원목 자재들로 꾸며져 있다. 열차 내 통로는 물론 구비된 가구들도 모두 원목으로 만들어져 고급스러운 느낌이다.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비치는 햇빛이 내부를 더욱 화사하고 따스하게 만들어 준다. 

객실 안으로 들어서면서 자신도 모르게 “아!” 하는 짧은 감탄사를 흘리고 만다. 객실 한 면이 전부 유리로 되어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넓은 차창 너머로 테이블 마운틴이 그림처럼 걸쳐 있다. 이제 막 시내를 벗어난 듯 풍광은 점점 사람 손때를 덜 탄 거친 자연의 모습으로 바뀌어 간다. 


ⓒ트래비

6. 케이프타운 역사 내 블루 트레인 전용 로비 라운지
7. 유려한 곡선미를 뽐내는 블루 트레인

달리는 열차 안에서 샤워를

객실은 그리 넓지는 않지만 하룻밤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다. 구석구석 공간을 활용한 노하우는 물론 승객들이 묵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세심히 배려한 흔적들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나란히 놓여진 쇼파는 편안히 앉아 창밖을 감상하거나 휴식을 취하기에 그만이며, 마주보이게 설치된 TV에서는 현재 열차가 달리고 있는 위치나 속도가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풍경 감상에 지치면 채널을 돌려 영화나 드라마를 감상하면 된다. 재밌게도 TV가 삼성전자 제품이라는 것이 더욱 눈길을 끈다. 

작은 옷장 안에는 샤워 가운이 가지런히 걸려 있다. 그리고 그 아래 미니 금고도 놓여 있다. 물론 블루 트레인 내에 도난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고 만약을 대비해 설치해 놓은 것이다. 

객실 내에는 샤워 시설이 갖춰진 화장실이 딸려 있어 웬만한 특급 호텔 못지않은 시설을 뽐낸다. 세면대나 샤워룸이 다소 비좁긴 하지만 이용에 큰 문제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아프리카 경치를 감상하면서 샤워를 하는 독특한 체험을 해볼 수 있다. 한번 생각해 보라. 달리는 열차 안에서 샤워라니! 여느 기차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하지만 블루 트레인에서 이 같은 호사는 당연히 누려야 할 특권 중 하나에 불과하다. 때문에 만약 블루 트레인에 탑승한다면 귀찮더라도 꼭 한번은 샤워룸 밖으로 난 블라인드를 활짝 제쳐 올린 채 샤워를 할 것을 강력히 권장한다.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샤워를 하다 아프리카 평원 위에 펼쳐진 ‘동물의 왕국’과 갑자기 만나게 될지도.


ⓒ트래비

1. 트랙터를 올라타고 즐거워하는 사람들. 뒤로 블루 트레인이 보인다
2. 19세기 말 영국 식민지 시대 모습을 간직한 마을
3. 바에서 위스키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승객들
4. 고급스런 분위기의 클럽 카
5. 창밖 풍경을 찍는 승객

블루 트레인의 또 다른 묘미, 기착지 투어

점심 식사 후 잠깐 낮잠을 즐겼을까. 갑자기 경적 소리와 함께 열차가 마티에스폰테인(Matjiesfontein) 역에 멈춰 선다. 27시간 동안 이어지는 짧고도 긴 여정에 잠시 쉼표를 찍고 가는 기착지 투어 프로그램.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여행에 포인트를 찍어 주는 시간이다. 

이곳에 내려서는 19세기 말 영국 식민지 시절 건설된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며 과거로의 회귀를 체험한다. 옛 귀족이 살던 저택에는 아직도 그 시절 사용했던 가구, 소품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옆 건물로 들어서자 예전 시절 바(Bar)였던 곳이 나타난다. 한가롭기 짝이 없어 보이는 바이지만 오랜만에 찾아든 관광객들로 북적북적해지며 잠깐이나마 전성기 시절 모습을  찾는다. 테이블에는 관광객들을 위해 미리 준비된 위스키가 담긴 작은 잔들이 늘어서 있다. 위스키를 다 마시면 잔은 선물로 가져갈 수 있다. 위스키를 들이키며 블루 트레인 탑승객들은 어느새 여행지에서 만난 새로운 인연으로 삼삼오오 모여 웃음꽃을 피운다. 

‘Post Office’라고 적힌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남아공 산지 와인들과 각종 토속품들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다. 예전에는 우체국이었던 그곳은 지금은 관광객들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 관광 기념품점이 되어 있다. 이 밖에도 역 주변에는 당시 모습들을 고스란히 재현해 놓은 작은 박물관과 전시관, 호텔 등 볼거리들이 산재해 있다. 

기차는 길게 경적을 울리며 다시 떠날 채비를 갖추고 투어를 마친 승객들도 하나 둘 돌아와 열차에 오른다. 호기심 많은 승객들이라면 1시간 남짓한 시간이 짧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아쉬움을 두고 돌아섰을 때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했던가. 블루 트레인 여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 중 하나인 걸 보면.


ⓒ트래비

1. 차창 밖 풍경을 감상하며 식사를 즐긴다
2. 클럽 카에 비치된 도서들
3. 와인, 맥주 등이 무제한 제공된다. 
4. 코스별로 나오는 정찬 메뉴

식사는 ‘정찬’, 드레스 코드는 ‘정장’ 

열차는 이제 드넓은 평원을 달려가기 시작한다. ‘달려’간다고 하지만 그리 속도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블루 트레인 여행에 있어 ‘이동’은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기 때문. 블루 트레인 그 자체가 ‘여행’이 되는 특별한 1박 2일간, 열차는 창밖으로 흘러가는 아프리카의 모습들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속도를 유지하며 끝없이 아프리카 평원 위를 달린다.  

블루 트레인 이용법 중 가장 특기할 만한 사항은 저녁 시간 드레스 코드가 ‘정장’이라는 것. 고품격 열차를 탑승했으니, 한번쯤은 그에 맞춰 품위 있는 모습으로 식사를 즐겨 보는 것도 좋지 않은가. 남자는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 여자는 이브닝 드레스나 정장 차림이 원칙이다. 

블루 트레인에서 즐기는 식사는 매끼 정찬 메뉴로 준비된다. 수프와 샐러드, 메인 메뉴에 디저트까지, 여기에 와인까지 곁들여진 풀 코스 식사는 여느 특급 호텔 정찬 요리 못지않다. 대부분 음식들은 열차 내에서 즉석으로 조리되어 늘 신선하고 따끈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식사를 하는 동안 담당 버틀러가 하나부터 열까지 책임지고 서비스하기 때문에 승객들은 그저 앉아서 담소를 나누거나 웃음꽃을 피우며 그 시간을 즐기면 된다. 단, 차례대로 요리들을 내오는 코스 식사이기 때문에 음식들을 너무 빨리 비우면 다음 코스를 기다리는 게 다소 지루해진다. 대화가 함께 무르익는 식탁, 블루 트레인을 진정으로 즐기는 법이다.

쿠바산 시가, 아프리카 산 와인 

열차는 어느새 어둠 속을 가로지르며 달려 나가고 있다. 객차마다 밝혀진 은은한 불빛에 열차 안은 한층 더 분위기 있게 느껴진다. 객실은 어느새 아늑한 침실로 변신해 있다.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버틀러들이 미리 침실로 꾸며 놓은 덕이다. 

객차 맨 뒷칸에 있는 ‘클럽 카(Club Car)’에서 일행들과 와인과 위스키 한잔씩 나누며 한참을 이야기꽃을 피운다. 클럽 카에는 질 좋은 쿠바산 시가와 아프리카산 와인, 맥주가 늘 준비되어 있다. 시가도 와인도 위스키도 맥주도 밤낮을 불문하고 이곳에서는 모두 무제한 무료이다. 오늘 하루에만도 몇 번째 클럽 카를 오간 건지. 언뜻 생각하기에 ‘그렇다면 클럽 카에는 늘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을까?’하는 물음이 들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블루 트레인 승객 대부분이 노부부들이거나 중년층 여행자들인 이유도 있겠지만, 객실에서도 언제든 버틀러만 부르면 이른바 ‘룸 서비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맛좋은 와인 한잔에 오늘 하루 담아 놓은 아프리카에서의 추억들이 마음속 깊이 새겨져 간다. 기분 좋은 취기를 안고 들어선 침실. 집보다도 더 편안한 마음에 언제인지도 모르게 깊이 잠들어 버린다. 



블루 트레인을 타고 가면서 사파리 투어와 같은 풍광들을 기대한다면 그것부터가 어불성설이다. 진짜 운이 좋은 경우 사자나 표범 같은 맹수들을 볼 수도 있지만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단 이튿날 아침 나절 카루 국립공원을 지나갈 때, 호숫가에 모여 있는 수천 마리의 플라밍고 무리들은 놓치면 두고두고 아쉽다. 블루 트레인을 타고 갈 때 늦잠을 자서는 안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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