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철의 하얼빈에서 온 편지 ⑦ 창바이산, 아니 백두산"
"서동철의 하얼빈에서 온 편지 ⑦ 창바이산, 아니 백두산"
  • 트래비
  • 승인 2007.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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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는 지난 2월 중국 하얼빈으로 ‘조금 긴 여행’ 길에 오른 Travie writer 서동철 기자의 ‘하얼빈에서 온 편지’를 이번 호부터 약 10회에 걸쳐 격주로 연재합니다. 서기자를 통해 듣는 중국의 현지 문화와 생활 체험담, 그리고 속 깊은 여행 단상들이 독자 여러분들께 간접 체험의 즐거움을 안겨 드릴 것입니다.   






하얼빈에서 백두산까지의 여정은 만만치 않았다. 첫날부터 기차를 놓쳐 부랴부랴 승차표를 환불하고 하얼빈 역의 인파 속에서 한바탕 사우나를 하고 나서야 그날 출발하는 다음 열차표를 구할 수 있었다. 11시간의 기차 여행으로 지린(길림)성의 안투(안도)까지 이동하고, 여기에서 다시 택시를 대절해 3시간 남짓 달려 겨우 백두산 입구에 도착했다. 멀리서부터 택시기사가 손으로 가리키며 백두산이 바로 저기에 있다고 알려주었지만 구름과 안개에 가려진 산은 제 모습을 완강하게 감추고 있었다. 

허나 산 입구에서 천지에 이르는 길은 의외로 너무나 수월했다. 입구에서 전용버스를 타고 중턱에서 내리면, 지프를 이용해 천지까지 발품 한번 들이지 않고 오르게 된다. 운동화에 청바지 차림의 동행자들을 걱정하며 고어텍스 등산화를 고집했던 내 자신이 머쓱해질 만큼 2,750m의 한반도 최고봉은 쉽게 정상을 내주었다. 

백두산이라는 이름이 전해 주는 억센 느낌 때문에 산세 역시 험하리라고 여겼지만, 제주의 한라산처럼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산체답게 길은 부드럽고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우리를 천지까지 인도했다. 이름 모를 연노란 들꽃이 사람들을 반기듯 길가에 몰려 피어 있었고, 산 아래쪽을 바라보면 조금씩 고도를 높여 가는 봉긋봉긋한 수많은 언덕들이 몽골의 초원처럼 펼쳐지며 지평선으로 멀어져 간다. 



사실 난 지프를 타고 있으면서도 이 차가 천지까지 나를 데려다 줄 것이라고는 믿지 못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몰랐다. 중국 땅을 거쳐야만 창바이산(장백산)이라 불리는 반쪽의 백두산을 오를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을까. 주저앉고 싶은 몇 번의 고비를 넘기고 나서야만 천지를 내려다볼 면목이 있을 것 같았다. 어느덧 지프는 희뿌연 안개에 둘러싸였다. 천지를 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데 지프가 멈추었고, 차 문을 열어 젖히니 7월인데도 서늘한 공기가 덮쳐와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황무지 같은 길을 따라 오르막 끝에 서면 천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를 것이 바람을 타고 산 정상을 오가는데 천지의 반대쪽 끝이 지워졌다가는 나타나고 다시 사라져 갔다. 한반도에서 기후변화가 가장 심하다는 백두산은 연중 안개가 끼는 날이 260일이 넘을 만큼 청명한 날씨를 만나기 어렵다고 하더니 과연 사실이었다. 

16개의 봉우리에 둘러싸인 천지는 정말 웅장하다. 까마득한 낭떠러지 끝에서부터 천지는 시작되고 있었고, 반대편 끝이 안개에 가려지면 시퍼런 물빛과 광활함 때문에 마치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카메라를 들고 천지를 파인더 안에 모두 담아 넣으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광각렌즈가 이처럼 아쉽게 생각됐던 적이 없을 만큼 천지는 넓고 또 넓었다. 천지를 보고 있으면서도 이상하게도 그것이 천지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고, 찬  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환영인 것만 같았다.  



천지를 뒤로하고 지프를 탔던 곳으로 돌아오면 제법 등산다운 장백폭포로의 길이 이어진다. 다리를 건너 우거진 숲속을 힘겹게 오르다 보면 아련하게 폭포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고, 숲이 끝나면서 멀리 천지로부터 67m의 높이로 떨어져 내리는 장백폭포가 눈에 들어온다. 그 물줄기가 어찌나 세차고 차가운지 멀찌감치 서 있는데도 찬바람과 물방울들이 얼굴로 달려들어 한기를 느끼게 했다. 천지에서 넘쳐흐른 이 물줄기는 동으로는 두만강, 서편으로는 압록강의 시원을 이루며 흘러 북한과 중국 사이의 경계를 선명하게 긋는다. 

폭포 오른쪽으로는 악명(?) 높은 ‘천 개의 계단’이 마치 만리장성처럼 절벽을 기어올라 천지로 넘어간다. 별도의 입장료를 내고 905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폭포를 바로 옆에서 바라보는 것은 물론, 천지의 물을 직접 만져 볼 수 있는 코스여서 인기가 높지만 감히 범접하지 못할 경사와 높이는 선뜻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게 한다. 

올라왔던 길을 되밟아 하산하면서 언젠가 다시 한번 백두산을 찾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광각렌즈를 챙겨 들고, 중국 땅이 아닌 한반도를 거쳐서, 내 두 발로 꼼꼼히 산길을 밟아 가며, 창바이산이 아닌 백두산을 오를 수 있다면 참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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