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전시기획자 정해종 - 그 남자의 세 번째 뇌우 아프리카
미술전시기획자 정해종 - 그 남자의 세 번째 뇌우 아프리카
  • 트래비
  • 승인 2007.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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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말, 그의 인생은 이미 음악과 사진이라는 두 차례의 ‘벼락’을 맞은 뒤였다. 드럼 채와 카메라를 통해 온몸을 관통하던 열선을 분출한 그가 또 다시 아프리카라는 ‘거대한 뇌우’를 맞은 것은 단 한 장의 그림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십여 년, 검은 대륙의 예술성을 설파하는 중심에는 아프리카 미술기획자 정해종이 있었다. 낯선 질감의 제 3세계 미술과 소통하는 그의 아프리카 예찬은 어떨까?  

글  박나리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곽은정


ⓒ트래비

일산 깊숙이 위치한 그의 작업실 ‘터치 아프리카’로 향하는 길, 폭염은 아침부터 기승을 부렸다. 거친 숨을 고르라며 그가 건네주는 건 ‘루이보스티 (Rooibos Tea)’. 검게 그을린 손이 열흘 전 아프리카에서 돌아왔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이게 남아공에서 재배된 잎찬데, 만병통치약이나 다름없대요. 전 물보다 자주 마시죠.”

구수한 향이 입 안에 감도는가 싶더니 미세한 흙냄새가 여운처럼 남는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자 뭉툭한 선과 투박한 표정의 쇼나(Shona) 조각들이 한 가득이다. 남아공의 향을 마시며 미술품을 감상하는 시간, 어쩐지 이곳에서는 작은 일탈을 꿈꿔 볼 수도 있겠다. 

번쩍했던 생의 황홀한 순간


ⓒ트래비

첫번째와 두번째 사진은 스프링스톤으로 만들어진 쇼나조각. 단조로운 터치 속에 모정의 따스함이 들어 있다.
세번째는 아프리카 밀림의 동물을 형상화한 카펫.

정해종은 뒷덜미가 뻐근할 정도로 위협적인 감정이 소용돌이칠 때면 ‘일을 지르고는’ 했다. 그의 첫 번째 낙뢰는 고등학교 1학년 무렵. 등록금으로 드럼을 장만한 남자는 그 전류가 가실 때까지 한동안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두  번째 전환은 사진을 통해서였는데, 당시 최민식의 사진집에 매료된 나머지 고생 끝에 캐논 A-1을 손에 넣었다. 그것을 어깨에 두르고는 오이도, 남대문 시장으로 돌아다니며 자연보다는 사람을 담아내는 데 열을 올렸다. 

청춘의 열병이 컸던지, 시인으로 등단한 그는 출판사의 능력 있는 편집장과 주간으로 일하며 비교적 평온하고 안정된 수순을 걸었다. 더 이상 삶 전체를 흔드는 갈등 없이,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행복한 인생’의 한 가도를 달렸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 낙뢰는 떨어지지 않았고, 평온해진 심장은 그에게 안정적인 마흔의 인생을 선물할 듯 보였다. 

그러던 세기말, 선배가 보여준 한 장의 사진은 여태껏 맛보지 못한 가장 강렬한 낙뢰를 그에게 던져 주었다. 검은 돌에 새겨진 아프리카 여인의 조각상은 엄청난 흡입력으로 다가왔다. 아무 망설임 없이 예술가들을 찾아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로 떠난 정해종은 그 뒤로 줄곧 쇼나 조각들을 수집, 국내에 알리는 데 힘써 왔다. 

“사실 그전까지 내 인생의 좌표는 없었어요. 늘 엄청난 힘으로 누군가 나를 끌고 가는 느낌이었다고 해야 하나. 유명 출판사를 거치며 이례적인 승진을 얻기도 했지만, 그것들은 정작 스스로 선택했던 삶은 아니었죠.”

검은 대륙이 들려주는 이야기

아프리카를 방문한 횟수만도 스무 차례. 매년 두 번 정도는 작품을 수집하기 위해 길을 나서야만 한다. 도착하는 즉시 20시간씩 쉬지 않고 고속도로를 내달릴 때면, 그는 먼지 자욱한 비포장도로와 만나서야 아프리카에 왔다는 것을 실감하곤 했다. “아프리카에 있으면 기본적으로 건강해진 느낌이에요. 아이큐도 높아지는 것 같고…(웃음). 제일 먼저 시계를 풀어 버려요. 그래야 여행이든 일이든 시작할 수 있죠.”

가쁜 호흡으로 아프리카에 적응하기란 불가능한 일. ‘저녁 6시 시청 앞에서 보자’라는 식의 약속은 ‘집에 있는 소가 우리에서 도망가 묶어 놓느라 늦었어’와 같은 생존 직결형 언어들로 순화되고 다듬어진다. 처음에는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 약속 장소에서 발을 동동 구르곤 했지만, 돌아와 그 소소한 에피소드들은 스스로의 인생에 자극이 되곤 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그가 한 아프리카 청년과 대화를 나누던 때, 한 쌍의 젊은 연인이 다정히 걸어가는 게 아닌가. 청년은 말한다. “이봐, 저 커플 보여? 옆에 있는 여자가 며칠 전까진 내 약혼녀였어.” “뭐? 너 지금 제정신이야? 남자라면 가서 데려 오던가 복수를 해야지!” 그런데 청년은 하늘을 한번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하더란다. “That’s Life. 그게 인생이야.” 순간, 정해종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이 청년의 볼기짝을 걷어차야 할지 넙죽 절이라도 해야 하는 건지 고민에 휩싸였다. 순리에 따르는 아프리카인들의 삶을 짐작하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뒤였다.

아프리카인들의 마음속에는 기본적으로 화를 다스리는 정서가 숨어 있다. 오로지 전진밖에 모르는 현대인들과 달리 부시맨들은 자연이라는 커다란 순환 구조 속에 자신을 맡긴다. 그 속에는 나와 부족이 있고 또한 세계가 있다. 봄과 겨울이 자연스레 맞물리듯 완벽한 자연의 일부로 살다 끝내는 한줌 흙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한 사이클이 끝나면 무덤 위에는 몇 덩이 돌이 얹혀지고 그들은 죽음을 슬퍼하는 대신 또 다른 인생을 축복한다. 그래서 그 대륙의 부산물로 만들어진 쇼나 조각은 그 어떤 작품보다 숭고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품을 수 있다.

현재 진행형의 예술, 쇼나 조각


ⓒ트래비

정해종은 스스로 다양한 타이틀을 부여하길 주저치 않는다. 출판기획자와 편집장은 물론, 1991년 <문학사상>에 시 '을지로 순환선'이 당선된 이래 깊고 영롱한 시인의 눈망울을 잃지 않았다. 좌표를 찾아 방황하던 어느 날, 아프리카에 깊은 영감을 받아 그들의 미술 세계를 국내에 알리는 데 열정을 쏟기 시작했다. 현재 공기 좋은 일산에 '터치 아프리카 Touch Africa'를 운영하며 자신만의 열대우림을 즐기고 있다.

두 발이 아프리카를 밟고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정해종은 지난 10여 년간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했다. 형이상학적인 미의 추구만이 예술이라 믿는 다수에게 아프리카 미술은 단순히 ‘부시맨들이 그림을 그렸다’는 식의 차가운 반문을 낳았다. 서구문명의 문화만이 고매한 양식이라 믿는 우리에게 아프리카 미술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실 고미술 같은 거 참 좋죠. 하지만 제 기준에 그것들은 사장된 미술이라 그 시간성을 뚫고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은 없거든요. 하지만 아프리카 미술은 열려 있어요. 현재진형형 속에 내가 들어갈 수 있는 창조성이 매력인 거죠.”

모든 사람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는 감동을 줄 수 있으리란 그의 바람은 실현되었다. 2001년 5월 ‘아프리카 쇼나 현재 조각전’이라는 타이틀로 진행된 전시 이후, 매년 크고 작은 행사를 겪으며 이제 많은 사람들은 아프리카 미술을 하나의 사조로 받아들이고 인정했다. 일시적인 뇌우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길고 강렬했던 섬광, 그의 세 번째 운명은 이제야 비로소 ‘아프리카’에 안착한 듯 보인다.

그의 주기율표에 미루어 볼 때, 곧 네 번째 ‘뇌우 현상’이 임박했음을 짐작케 한다. 크고 작은 벼락을 맞고 사는 그에게 감성체계를 자극하는 예술적 영감들이 멈출 리 만무하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 수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한 남자에게 굳이 다음 행보를 묻지 않아도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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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 여행시 참고할 만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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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적인 아프리카의 모습을 담은 미노의 <컬러풀 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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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몇 가지 팁

와인 열풍에 맞춰 남아프리카 와인이 인기이다. 일반적으로 아프리카 와인은 땅의 향이 느껴지면서 뒷맛이 텁텁한 편. 남아공에서는 그곳에서만 생산되는 ‘피노타주’라는 품종이 있는데, 여행자들이 마시기 부담 없다.

오래된 타운은 슬럼화된 곳이 많으니 주의하는 것이 좋다. 실업률이 70~80%, 노동력을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 구조 탓. 하지만 도시를 벗어나면 현지인들은 순박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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