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철의 하얼빈에서 온 편지 ⑧ 한국이 그렇게 좋아요?
서동철의 하얼빈에서 온 편지 ⑧ 한국이 그렇게 좋아요?
  • 트래비
  • 승인 2007.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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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는 지난 2월 중국 하얼빈으로 ‘조금 긴 여행’ 길에 오른 Travie writer 서동철 기자의 ‘하얼빈에서 온 편지’를 이번 호부터 약 10회에 걸쳐 격주로 연재합니다. 서기자를 통해 듣는 중국의 현지 문화와 생활 체험담, 그리고 속 깊은 여행 단상들이 독자 여러분들께 간접 체험의 즐거움을 안겨 드릴 것입니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내게 중국어를 가르쳐 주면서 한국어도 배우는 중국 친구가 하나 있다. 올해 봄 학기를 마지막으로 하얼빈공업대학을 졸업한 그녀의 이름은 ‘희연’. 중국 이름이 있지만 굳이 자신이 지은 한국 이름으로 불러 달란다. 어느 날 함께 공부를 하다가 연애에 관해 이야기하게 됐는데, 희연이가 남자 친구라면서 지갑 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여 주었다. 사진 속의 인물은 다름 아닌 ‘강타’였다.  

강타로 대변되는 그녀의 ‘한국 사랑’은 대단했다. 한국 음식을 좋아하고,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고, 한국 노래를 듣고, 한국 친구들을 사귄다. 얼마나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한국인들과 시간을 보냈는지 기본적인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을 만큼 한국어를 구사하고, 결혼도 반드시 한국 남자와 할 계획이라니 그녀에게 한국은 인생을 관통하는 주요 테마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희연이가 전해 준 말에 따르면 한류 이전의 중국인들은 한국인들을 조선족과 크게 구별 짓지 않고 함께 묶어 생각하는 경향이 많았으며, 남성 중심의 봉건적인 민족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한국은 깨끗하고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것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드라마의 영향으로 한국 남성들은 따뜻하고 친절하며 자상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로 변신(?)했다.

여행 중에 중국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흔히 한국의 빠른 경제 성장을 칭찬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드라마 이야기가 끝나면 열이면 아홉 빼놓지 않고 하는 질문이 하나 있는데 바로 보통 직장인의 월급이 얼마냐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 큰 격차를 보이긴 하지만 대학을 갓 졸업한 일반적인 중국인들의 월급이 2,000위엔(한화 약 25만원) 정도 된다고 하니 한국의 샐러리맨들은 선망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희연이의 경우가 다소 유별나긴 하지만 한국이란 브랜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중국 대륙 깊숙이 침투해 있다. 거리를 걸으면 심심치 않게 한국 가요가 들려오고, 펩시콜라의 비를 위시해 보아, 이영애, 전지현, 장동건, 현빈 등 연예인들의 얼굴을 손쉽게 만나 볼 수 있다. 대형 백화점을 방문하면 한국 상품 전문 매장이 눈에 들어오고, 맛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지만 푸드코트엔 어딜 가나 한국 음식 전문점이 자리하고 있다. 랑콤, 샤넬 등의 유명 화장품 브랜드 옆에 마몽드, 라네즈 등이 당당하게 서 있는 것을 보면 한국은 중국에서 특별 대접을 받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보행금지’ ‘정지’ 등의 한글이 큼지막하게 적힌 옷을 입고 다니는 중국인들을 보면 괜스레 내 낯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한 액세서리 매장에서 ‘열라 조아’라는 한글이 적힌 지갑을 발견했을 때도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다. 그 문구의 의미를 알 리 없는 중국 젊은이들의 뒷주머니에 들어갈 이 지갑이 뜻 모를 영어를 매달고 거리를 활보하는 우리의 자화상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머, 몰랐어요? 나, 한국 사람이에요.” 언젠가 희연이가 또박또박한 한국어 발음으로 했던 말이다. 농담이었지만 마치 “난 중국인이 아니야”라는 부정의 의미로 들려왔던 까닭에 그저 웃을 수만은 없었다. 



옌변 여행에서 만난 한 조선족 아주머니의 이야기가 생각난 것은 희연과의 대화 때문이었을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서 5년간 일하셨다는 아주머니의 사연은 기구했다. 함께 일을 하던 남편은 식도암에 걸려 한국에서 치료하다가 포기하고 중국으로 돌아왔는데 5개월 만에 세상을 뜨셨고, 아주머니도 식당에서 궂은일을 하다가 허리디스크를 얻어 지금도 고생이시란다. 이러한 경험 탓인지 그녀는 청결함을 제외한다면 그 이외의 것은 중국이 더 낫다고 했다. 특히 남녀노소를 불문한 한국인들의 숨 가쁜 일상을 이야기하면서 아주머니는 고개를 내저었다. 

희연이의 꿈은 한국 남자와 결혼해서 해외에 나가 자유롭게 사는 것이다. 물론 행복의 척도나 취향은 개개인마다 다를 터이고, 때문에 희연이와 그 조선족 아주머니의 생각이 일반화될 수 있는 것도 서로 비교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었지만, 난 똑똑하고 아름다운 그녀의 꿈이 이 중국 땅에서 중국 사람과 함께여도 충분히 이뤄지길 바란다. 그녀의 지갑 속에 강타가 아닌 잘 생기고 능력 있는 중국 남자의 사진이 간직되길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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