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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철의 하얼빈에서 온 편지 ⑨ 제 친구를 소개합니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7.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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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는 지난 2월 중국 하얼빈으로 ‘조금 긴 여행’ 길에 오른 Travie writer 서동철 기자의 ‘하얼빈에서 온 편지’를 이번 호부터 약 10회에 걸쳐 격주로 연재합니다. 서기자를 통해 듣는 중국의 현지 문화와 생활 체험담, 그리고 속 깊은 여행 단상들이 독자 여러분들께 간접 체험의 즐거움을 안겨 드릴 것입니다.    




 ⓒ트래비

1. 한국 유학생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훈남’ 하이포
2. '강타 오빠'를 너무나 좋아하는 희연
3. 익살스러운 일본 친구 다케다
4. 한국인과 똑 닮은 러시아인 류켄
 

제 친구를 소개합니다

기말고사를 마치고 나자 세계 각국에서 온 친구들이 하나둘씩 하얼빈을 떠나기 시작했다. 밤늦게까지 환하게 불이 켜져 있던 학교 기숙사의 창문들도 어둡게 침묵을 지키고, 커다란 이민 가방과 캐리어를 끌고 제 나라로 돌아가거나 다른 도시로 떠나는 모습들을 매일같이 볼 수 있었다. 이제는 또 어느 곳에서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인연들이 이별을 고하는 장면은 국적을 막론하고 짠할 수밖에 없다. 

곧 다롄(대련)으로 향할 내게도 잊을 수 없는 외국 친구들이 있다. 먼저 하이포, 그는 한국 유학생들 사이에서 일명 ‘훈남’으로 통하는 중국 친구다. 학교 근처 분식집 배달원으로 하루 12시간이 넘는 고된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언제나 친근한 웃음을 선사했던 24살의 건실한 청년이었다. 나를 ‘따거(형님)’라고 부르며 따랐고, 그가 일을 마치는 늦은 저녁에 우리는 만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서로에게 중국어와 한국어를 가르쳐 주곤 했다. 

그는 돈을 벌어 장사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내년 초에는 일을 그만두고 베이징이나 다롄으로 가서 새로운 일을 시작해 볼 것이라며 내게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6개월, 혹은 1년마다 수백 명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을 그였지만 나와의 이별을 가장 아쉬워했던 것은 바로 하이포였다. 나 역시 그가 내 생일에 선물했던 우리의 탕수육과 비슷한 음식인 ‘꿔바로우’ 한 접시를 평생토록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지면을 통해 소개했던 희연이가 있다.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온 한국 학생들의 중국어보다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했던 그녀는 우리를 부끄럽게 했다. 언제나 화려하고 세련된 옷차림에 새침한 태도를 보여 내게 공주병 환자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함께 중국어 공부를 할 때면 엄한 선생님으로 돌변해서 꼼꼼하게 잘못된 부분을 짚어 주었다.
그녀는 한국에 관련된 것이면 다 좋아했다. 특히 가수 강타에 대한 그녀의 애정은 각별해서 사진을 찍을 때에도 “강타 오빠 보겠네요?”라며, 예쁜 옷에 직접 ‘강타 오빠 하얼빈 와요’라는 글까지 써 가지고 나타났다. 지난 글에서 그녀에게 멋진 중국 남자 친구가 생기길 바란다고 쓴 바 있지만, 그녀의 미모와 정성이면 강타의 사랑도 얻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다케다, 중국 이름으로는 우티앤으로 불리는 일본 친구다. 처음 대면했을 때는 일본인 특유의 무뚝뚝함으로 쉽게 가까워지지 않을 듯했지만, 곧 익살스러운 표정과 너스레로 수업 분위기를 주도해 나갔다. 본래 축구선수를 하려고 했다는데 통통한 몸집의 현재로서는 그라운드를 누비는 날렵한 그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축구에 대한 열의는 여전해서 일본 축구가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날이면 그토록 좋아하는 맥주도 마다하고 기숙사에서 도무지 나올 생각을 않는다. 

몇 년 전 교환학생으로 하얼빈에서 한 학기 동안 중국어를 공부한 적이 있다는 그는 비교적 유창한 중국어를 뽐냈다. 허나 중국 동북지방의 드센 반일감정으로 그의 유학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중국인들이 왜 중국에 왔냐며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시비를 걸어 오는 일이 잦아 종종 말싸움을 하고 씩씩거리며 기숙사로 돌아오곤 했다. 다케다의 측근에 따르면 이 때문에 그의 중국어 욕 실력은 거의 현지인 수준이란다. 앞으로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옷 장사를 한다는데 친하게 지내면 옷 한 벌 얻어 입을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류켄, 러시아 사람인 그의 본래 이름은 알로샤다. 하지만 알로샤라는 이름을 가진 러시아 학생들이 워낙에 많아 스스로 이름을 붙였다는데 그 발상이 재밌다. 지금은 추억의 전자오락이랄 수 있는 ‘스트리트 파이터’의 등장인물인 ‘류’와 ‘켄’을 이어 만들었다니 웃을 수밖에. 

한국인과 다를 것 없는 얼굴 생김새지만 류켄은 러시아 토박이다. 러시아의 무슨 민족이라고 하는데 내게 러시아어는 받아 적을 수도 없을 만큼 발음이 어려웠다. 이제 본국으로 돌아가면 대학을 마치고 장교로 2년간 군복무를 한 후 일자리를 찾아야 한단다. 졸업을 앞두고 취직 걱정을 하는 우리네 대학생들과 꼭 같은 고민을 그도 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외국 친구 사귀길 좋아한다며 초면에 술을 사 주던 공안 아저씨, 사진을 현상해 주자 지폐를 학으로 접어 건네 주던 분식집 종업원들, 숙제를 안 하거나 결석을 하면 곱게 눈을 흘겨 주던 담임선생님 등 잊을 수 없는 이들은 많다. 지금 노트북만을 남겨두고 산더미 같은 짐을 싸 놓았지만 하얼빈에 두고 가는 것이 너무 많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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