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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후통 - 서동철의 베이징 뒷골목 스케치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7.09.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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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

“카메라를 들고 후통을 걷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은 여행자들을 압도한다. 세계에서 가장 넓다는 천안문 광장, 거대한 규모의 자금성, 달에서도 볼 수 있다는 만리장성, 드넓고 화려한 이화원까지 ‘최고, 최대, 최다’의 수식어를 동반하는 볼거리들이 수두룩하다. 이뿐인가. 2008년 올림픽을 앞둔 베이징은 ‘최신’까지 덧붙이며 도시 미관에 일대 성형수술을 가하고 있다. 초대형 백화점은 값비싼 명품들로 가득하고, 우람하고 잘생긴 빌딩들이 스카이라인을 그리며 하늘을 찌른다. 하지만 베이징의 뒷골목 ‘후통’은 다르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며 서민들의 잔잔한 일상이 펼쳐지는 곳, 후통 여행을 따라나선 카메라는 녹슨 문고리, 지붕 위의 고양이, 벽돌 하나 등 작디작은 것들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후통이 어딘데?

ⓒ트래비

1. 골목을 건너다 만난 담장 위의 고양이. 낯선 방문객을 경계하는 눈빛이었지만 곧 무관심한 표정으로 시선을 거두었다.
2. 한 쪽 손잡이는 떨어져 나가고, 엉성한 페인트칠로 지저분한 데다, 한 귀퉁이가 깨어졌지만 사람의 무수한 드나듦에 손길을 타 금빛을 드러내는 문고리. 후통의 700년 역사를 말해 주는 듯하다.
3. 후통의 전통적인 가옥 구조인 사합원 (四合院)의 대문 좌우에는 종종 눈길을 끄는 돌 조각을 볼 수 있다. 문돈(門敦)이라고 하는데 그 가문의 내력을 말해주는 것이라 한다.
4. 몇 번의 페인트칠이 더해졌던 것일까. 살갗이 벗겨지듯 오래된 나무에서 일어난 페인트가 후통의 정겨움을 더한다.
5. 자전거들이 금방이라도 골목의 소실점을 향해 달려갈 것처럼 멈춰서 있다.


“후통 갑시다!” 광활한 자금성을 빠져나와 지나가는 삼륜차를 붙들고 무조건 했던 말이다. 기사 아저씨는 자신이 직접 진행하는 한두 시간짜리 관광 상품을 이용하라고 권유했지만 두 발로 직접 걸어 보고 싶은 마음에 그저 후통까지 데려다 달라고만 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가 내려 준 곳은 자금성에서 엎어지면 코가 닿을 만한 거리의 어느 골목 입구였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후통은 베이징의 좁다란 골목을 뜻하는 동시에 작은 행정구역 단위이다. 베이징 곳곳에 산재해 있는 것이 바로 후통이었으니 무턱대고 후통에 가자고 한 내가 얼마나 사전지식이 없었던 것인지 부끄럽기만 했다. 4박 5일간 베이징에 머무르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도시의 이곳저곳을 걸어 본 바, 자금성 인근의 큰 길을 벗어나 내키는 골목길로 접어들면 손쉽게 ‘후통’을 만날 수 있었다. 

밝은 회색빛 벽에 빨간색으로 ‘OO후통(胡同)’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한다면 그곳이 바로 애타게 찾던 후통이다. 중국인 반, 외국인 반인 유명한 왕푸징거리 뒤편 골목 조그만 호텔에 짐을 풀었는데 후통을 찾아 헤매고 숙소로 돌아오던 날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바이수후통’이라 쓰여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지만 후통에서 후통을 찾아 나서다니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북경자전거’를 찾아서


ⓒ트래비

1. 자전거는 후통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회색빛 벽돌의 단층집들이 다닥다닥 이어지는 가운데 집집마다 놓여있는 자전거들은 있는 듯 없는 듯 자연스럽게 하나의 풍경을 이뤄낸다. 
2. 후통의 골목에 세워진 자전거는 버려진 것인지 주인이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드럼통 같은 곳에서 자라 오르는 등나무 줄기를 따라 녹슨 자전거도 지붕 위로 올라갈 듯한 모습이다.
3. 자전거 두 대가 형제처럼 묶여 있다. 마치 어딜 가든 함께 움직이겠다고 다짐하는 것 같다. 
4. 삼륜 자전거는 이동수단이라기 보다는 생계수단이다. 거리를 걷다 보면 자전거의 다섯 배는 됨 직한 부피의 짐을 싣고 다니는 광경을 종종 만나게 된다.


돈을 벌기 위해 베이징에 올라온 17세 소년 구웨이는 한 자전거 택배회사에서 일을 시작한다. 한 달 동안 성실하게 일하면 은빛으로 반짝이는 자전거가 제 것이 된다는 이야기에 열심히 일하지만 자전거를 도둑맞고 만다. 자전거를 되찾기 위해 도시 전체를 뒤지던 어느 날, 자신과 또래인 고등학생 지안이 제 자전거를 타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하지만 지안 역시 아버지의 돈을 훔쳐 산 것이긴 하지만 장물인 줄 몰랐던 것. 자전거를 둘러싼 두 소년의 치열한 쟁탈전이 이어지는데….

지난 2001년 국내에서 개봉한 왕샤오슈아이 감독의 영화 <북경자전거>는 후통을 주 배경으로 삼아 이야기가 펼쳐진다. 좁은 골목길을 질주하는 자전거는 조그만 구멍가게를 스쳐가고,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의 무표정한 얼굴을 지나, 머리를 바짝 스포츠 머리로 깎고 뛰어 노는 어린아이를 뒤로하고 또 다른 골목으로 달려간다. 후통을 걷다 보면 어느 곳에선가 교복을 입은 지안이 자전거를 타고 튀어나올 것만 같고, 택배 가방을 둘러멘 구웨이가 망가진 자전거를 붙들고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올 것 같다. 

후통에서는 사람보다도 자전거를 더 자주 만나게 된다. 빠끔히 열려진 문틈을 들여다보면 어김없이 자전거가 세워져 있고, 골목 어귀에는 어딜 가나 저마다의 이야기를 간직한 자전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담벼락에 기대어 쉬고 있는 녀석과 다시는 굴러 갈 것 같지 않은 모습으로 널브러져 있는 놈, 그리고 주인과 함께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삼륜자전거까지 가지각색 천태만상이다. 


ⓒ트래비

5. 햇살이 기울기 시작하는 오후. 삼륜 자전거 가득히 폐품을 수집한 아저씨. 집으로 돌아오는 길일까
6. 할머니의 인자한 웃음을 배경으로 머리를 박박 민 아이들의 노는 소리가 골목 안을 울린다.
7. 주인의 엉덩이를 푹신하게 해주던 자전거 안장은 이렇게 누워 쉴 땐 베개의 역할도 마다 않는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잠이 든 아저씨가 더없이 편안해 보인다.

빠져 나오기 아쉬운 미로


ⓒ트래비

1. 베이징의 골동품 거리 주변의 후통으로 들어섰다가 어렵사리 빠져 나와 만난 리우리칭의 골동품 상점. 마오쩌둥 초상화부터 고풍스런 도자기까지 중국 냄새를 물씬 풍기는 물건들이 즐비하다.
2. 말 없는 아름드리 나무들은 후통의 오랜 역사를 증언하며 오늘도 굳건히 제 자리를 지킨다
3. 후통은 언뜻 보면 평범하다. 그러나 그 평범함은 중국이라는 나라를 이야기해 주고, 베이징이라는 도시를 설명한다. 

후통에 들어서면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기 일쑤다. 원(元)대에서부터 시작된 베이징 서민들의 거주 지역은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이어져 있어 도통 어딜 향해 걷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들은 미로와도 같은 후통의 지리 때문에 시가전에서 꽤 애를 먹기도 했다지만 여행자들에게 후통을 헤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고색창연할 것도, 웅장할 것도 없지만 700여 년의 전통을 간직한 그네들의 삶의 터전에는 오랜 시간이 켜켜이 내려 쌓인 흔적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학의 날개처럼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내려앉은 기와지붕 위로 파릇하게 돋아난 풀들이며, 비바람에 풍화돼 깎여져 나간 양각 문양과 대문 양쪽에 세워 둔 돌조각에서도 오래 묵은 것 특유의 구수한 냄새가 풍겨져 나온다. 

허나 후통 산책의 하이라이트는 그 무엇보다도 ‘일상 엿보기’다. 자전거를 타고 반찬거리를 사들고 오는 아저씨와 마당을 비질하는 할머니, 폐품을 싣고 힘겹게 페달을 밟는 일꾼, 빨랫줄에 내걸린 누런 속옷, 맨바닥에 나뭇잎으로 장기를 두는 사람들 등 후통은 베이징의 가슴팍에 귀를 갖다 대고 심장박동 소리를 듣는 것처럼 생생함을 전해 준다. 골목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자동차가 쌩쌩 내달리는 대로로 나오게 되면 왜 그리도 아쉬운지, 후통의 미로는 중독성이 강하니 조심할 일이다.


ⓒ트래비

4. 후통을 막 빠져 나와 큰 길로 나섰는데 맨 바닥에 나뭇잎과 나뭇가지로 장기를 두고 있는 남자 두 명을 만날 수 있었다. 마치 훈수라도 둘 듯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는 세 명의 아이들이 더 재미있다.
5. 좌우로 후통을 거느리고 잇는 베이징의 골동품 거리인 리우리창에서 만난 폐품수집 할머니. 마시던 생수를 한입에 털어넣고 빈 페트병을 드리며 사진 한 장 찍으려 했지만 미안한 마음에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었다. 결국 흥정 끝에 5위안 (한화 약 600원)을 손에 쥐어 드리고 급히 셔터를 눌렀다.
6. 삼륜 자전거 위로 주인이 빨아 널은 듯한 속옷이 걸려 있다.

점점 사라져 가는 '후통'

‘이름을 가진 후통이 3,600개, 이름 없는 후통은 소털처럼 많다(有名胡同三千六, 無名胡同似牛毛)’는 말처럼 베이징에는 수많은 후통이 형성돼 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고 하니 방문을 서두르는 것이 좋다. 영화 <북경자전거>가 베이징의 구석진 모습들을 보여 준다고 하여 중국 내 상영이 금지됐던 것처럼 후통은 널찍한 도로와 고층빌딩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1980년 이후로 베이징 후통의 40% 가량이 사라져 버렸고, 이에 더해 내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도시 미관 차원에서 보기 좋게(?) 꾸며지고 있다고 하니 본래 후통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어서 짐을 꾸려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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