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백가흠 - 유쾌한 관음증으로 훔쳐본 그 남자의 여행기
소설가 백가흠 - 유쾌한 관음증으로 훔쳐본 그 남자의 여행기
  • 트래비
  • 승인 2007.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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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낚였다’고 후회한 건, 이미 백가흠의 신작 <조대리의 트렁크>를 읽은 뒤였다. 대리 직함을 단 어느 샐러리맨의 여행담 정도로 생각했던 이 소설은 보기 좋게 기자의 기대를 빗나갔다. 하지만 그의 소설이 굳이 여행을 소재로 하지 않았다 한들, 지독한 여행마니아인 백가흠을 알게 된 건 ‘낚인 뒤 시작된 인터뷰’에서였다. 일 년중 4개월은 국경을 넘어 낯선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이 숨겨진 여행 마니아에게 듣는 여행기는 어떨까.  

글 박나리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신성식

새로운 작가에게 독자들은 관대하다. 음지에서 갈고 닦은 재기발랄한 문체, 번뜩이는 소재로 무장한 신예 앞에 독서의 호흡은 느슨해진다. 그것은 소위 스타 작가들에게 갖는 기대를 품지 않는 까닭인데, 여기, 무궁한 가능성으로 독자들을 놀라게 하는 낯선 소설가가 있다. 두 권의 소설집을 통해 삶의 어두운 이면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백가흠’의 소설은 어딘지 모르게 거북스럽다. 그는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들을 마치 타인의 얘기인 양 적당한 거리를 두고 흐트러짐 없이 쏟아낸다. 그러한 소설 쓰기는 지독한 여행 마니아이기도 한 그의 여행패턴과 일정 부분 닮아 있다. 그래서 그는 매번 도시 깊숙이 스며들지만, 어쩐지 이방인 같고 슬프며 고독하다.

여행, 낭만 속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

백가흠의 소설은 고된 인내를 요한다. 쉽게 페이지를 넘길 수 없도록 불편한 문장들로 봉인된 작품 속에선 트렁크에 갇힌 노파와 투숙객의 정사를 엿보는 아이, 반지하방에서 죽어가는 사생아가 튀어나온다. 신문 사회면에서 가져온 소재에 소설의 골격과 상상력이 더해진 단편소설들은 현실에 없을 것 같은 얘기들이라 더욱 참담하고 섬뜩하다.

하지만, 평창동의 한 갤러리에서 만난 그는 짐작보다 훨씬 소탈하고 밝은 남자였다. “여행,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로 시작하는 기자의 ‘말문 틔우기’에 그는 웃으며 답한다. “작가들은 다들 여행 좋아해요. 저는 감히 말하기도 민망하죠. 즐기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의 소설에 미루어 어딘가 어둡고 그늘진 성품을 짐작했던 순간이 깨지자, 우리의 대화는 점점 여행을 통해 무르익기 시작한다.

서울이란 공간에서도 유독 평창동을 좋아한다는 그는 밖으로 잘 나서지 않는 편이다. 많이 걸어 봐야 고작 인터뷰 장소인 집 앞 ‘키미 미술관’이 전부. 날이 좋은 날에는 멀리 북한산이 한눈에 내다보이고, 굽이진 언덕으로 몰린 미술관들을 산책하노라면 그에게 서울은 또 다른 여유와 낭만의 도시가 된다. 

불편한 진실들을 토로하던 작가 백가흠의 여행은 어떨까? 즐겁고 모험으로 가득한 여행의 낭만적 이면에 가려진 어두운 풍경들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동남아 여행을 많이 가선 안 돼요. 외화들이 그들의 삶을 망가트리고 있거든요. 있는 그대로 놔두는 게 필요한데, 선진국들은 뭐든 자신들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하죠. 베트남에는 벤츠가 거리를 활보하고, 네팔에는 게스트하우스가 생기면서 그들의 인생에 ‘자본’이 자리하기 시작하는 거에요. 인생의 목표가 돈이 되면서 그들의 삶이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지 아쉬울 때가 많죠.”

Paris, TV속 마돈나와 인사하던 외로운 시간

백가흠의 트렁크에서 가장 탐나는 아이템은 ‘여행 노하우’다. 두 팔을 꼬고 의자 등받이에 느슨히 몸을 기댄 그에게서는 여행의 생경함과 두려움은 찾아 볼 수 없다. 올해만 해도 스페인, 네팔, 일본, 베트남 등을 경험한 그는 일 년 중 4개월은 ‘밖에서’ 보낼 만큼 일상에 매이지 않는 여행 마니아다.

끝까지 그가 숨기려던 여행 팁은 바로 ‘저렴하게 방을 구입하는 법’. 단돈 400유로에 한 달간 바스티유 근처 한 스튜디오를 빌려 ‘머무는 여행’을 즐겼다는데, 기자는 부러움에 절로 엉덩이가 들썩였다. “이거 정말 공개 안 하는 건데…” 하며 머리를 긁적이던 그가 토해낸 단어는 ‘한인회 사이트’. 각 나라별로 한인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에는 단기에서부터 장기까지 매일 수십 건의 임대 물량이 쏟아진다고 한다. 외국어 사이트가 주는 이질감과 언어의 불편함 대신 한국인과 가격을 흥정하고 쉽게 문의할 수 있어 무엇보다 유용한 정보라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그처럼 파리 깊숙이 잠입한 그는, 꼬박 한 달간 고독한 외로움과 씨름해야만 했다. 낮이면 집 뒷길 마레지구에서부터 개선문과 콩코르드 광장까지 산책하거나 세느 강변을 걸았다. 그러다 몸에 한기를 느끼면 미술관 실내에 스며드는 햇살 아래 하루 종일 그림 한 점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림은 소설과 달라요. 소설은 작가의 의도가 명확한데, 미술은 화가의 의도가 막연하거든요.” 그는 파리의 겨울을 맞아 한산해진 미술관에서 그림과 사람을 구경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어둠이 깔리면, 종이봉투에 와인 한 병을 쑤셔 넣고는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일찍부터 해가 지는 파리의 겨울은 지독히 외롭고 스산해서, 그는 이른 저녁부터 TV를 켜놓고는 와인 몇 모금을 홀짝이며 지리한 외로움과 싸워야만 했다. 그럴 때면 스스로 왜 이런 상황에 빠져 있는지를 생각하다 잠이 들곤 했는데, 한번은 TV 속에 등장하는 ‘마돈나’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 적도 있다고. 그처럼 절대 고독의 여행을 맛본 뒤로, 백가흠은 다시는 대도시에 홀로 남겨지는 여행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넘치는 고독은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작가에게도 치명적인  듯하다.


    
Vietnam, 다음 작품을 위한 미지의 세계

소설가 백가흠에게 있어 여행은 또 다른 ‘일의 연장’이다.  새로운 일을 앞두거나 교정지 마무리를 남기고 떠나기도 했다. 그에게 여행은 휴식의 개념이 아니라 일의 또 다른 연장선이며, 떠난다 한들 주변에 자랑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 자체가 과시가 되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드러내는 순간, 쉼이 아니라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하니까…. 여행은 열심히 일한 나 자신에게 주는 상인데. 가급적 카메라도 버리고 간단한 메모 도구로 떠나곤 해요.”

여행 마니아인 그의 다음 작품은 드디어 ‘여행’에 관한 이야기가 될 듯싶다. 외국을 겉도는 부랑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계획으로, 특유의 그로테스크하고 암울한 문체에서 벗어나 조금은 가볍고 재미있는 장편소설을 구상 중이라고.

 IMF 이후 사회에서 밀려난 실업자들이 꾸역꾸역 베트남에 정착하는 이야기를 담을 신작 구상을 위해 그는 최근까지 총 4차례 현지를 방문했을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그동안 계속 쌓아뒀어요. 여행 다니면서 떠오른 소재들, 하고 싶은 얘기들…. 이제 그것들을 모아 잘 만들어 봐야죠.” 

그와 인터뷰를 끝내고 나오는 길, 변덕스런 날씨는 난데없는 소낙비를 퍼부었다. 덥수룩한 머리를 훌훌 털며 빗길 속을 내달릴 그에게서 거친 보헤미안의 모습이 겹쳐졌다. 어쩐지 우울한 파리, 낙후된 베트남, 고된 네팔 등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그의 다음 소설은 또 얼마나 불편한 진실들로 우리를 괴롭힐까. 그래도 자꾸만 엿보게 되는 묘한 관음증, 그게 바로 백가흠 소설이 지닌 솔직한 매력일 테다.  

★ 소설가 백가흠에게 듣는 여행 Tip

캄보디아 반드시 해 지기 전에 앙코르와트 사원에 올라 일몰을 감상하도록 한다. 도시를 조망할 수 있는 나만의 포인트를 찾는 일이 중요한데, 캄보디아에서는 밀림에서 지는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하는 남다름이 있다. 김영하의 소설 <당신의 나무>에는 그 풍경이 세세히 기록되어 있어 미리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다.

베트남 오토바이를 타고 호치민을 벗어나 근교를 달려 보도록 하자. 바람의 공기와 여행의 질서가 무너지면서, 또 다른 나만의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맛있는 밥집, 독특한 골목, 분위기 있는 카페, 전망 좋은 호텔 등을 찾아 경비를 아끼지 않는 것이 여행을 즐기는 현명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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