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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김강우 - 무표정한 청춘을 웃게 하는 힘, 여행"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7.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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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

오는 11월 1일 영화 <식객>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김강우. 여행기자들 사이에 공공연히 ‘여행광’으로 회자되는 그를 만났다. 중국 소수민족의 삶을 동경하고 해외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 돌아다닌다는, 진정 여행을 즐길 줄 아는 그에게서 듣는 요리와 영화, 그리고 여행 이야기.

글 박나리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오진민

고백하건데, 기자는 꽤 오랜 시간 배우 ‘김강우’를 편애해 왔다. 인터뷰이에게 사사로운 감정을 개입해서는 안 되지만, 오래 전부터 머릿속을 맴돌던 잔상은 쉬이 가실 줄 몰랐다. 그건 숨이 턱에까지 찰 정도로 내달리던 <나는 달린다>의 ‘무철’도, <태풍태양>의 방황하던 청춘 ‘모기’ 탓도 아니었다. 자전거로 캠퍼스 교정의 완만한 능선을 내달리던, 그 20대 초반의 연극학도 김강우를 기억하는 까닭이다.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낯선 타인 앞에 잘 웃지 않았다. 그보다는 침묵이, 두런거림보단 응시가 많은 과묵한 남자와 마주하자니 말은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일견, 어색한 감이 없지 않자 기자는 마지막 히든카드를 꺼내는 심정으로 구깃구깃해진 팸플릿 한 장을 슬쩍 내밀어 본다. 공허한 공터 가운데 앙상한 나무 한 그루, 그 앞에 어눌한 시선으로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에스트라공, 2002년도의 김강우가 보인다. “아, 이 공연. 봤어요? 참 재밌게 했던 작품인데. 그때 연출가랑 내년에 다시 올려 볼 생각이에요.” 

그런데 웬걸. 족히 5년 전의 학창시절의 추억을 펼쳐 보이는데도 이 남자, 쉽게 웃을 줄을 모른다. 여행이야기를 꺼내야 조금 대화를 나눌 수 있으려나. 문득, 쉽지 않은 인터뷰가 될 듯한 예감이 든다.  


ⓒ트래비

청춘, 배낭을 메다

“여행이 아니었다면 진즉 우울증에 걸렸을지도 몰라요.” 

그 같은 말을 담담히 뱉어낼 정도로 김강우는 지독히 고요했다. 가벼운 농담에도 쉽게 받아칠 줄을 모르는 그는 매사가 진지한 듯 보였다. 그런 그에게 어렸을 때부터 여행은 일종의 해방이자 탈출구인 셈이었는데, 독백하듯 자근자근 읊어내는 여정의 기록은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방대하다. 티베트, 시드니, 멜버른, 세비야, 프로방스, 니스, 홍콩 등 그의 두 발이 머물다 온 곳들은 작은 퍼즐이 되어 이십대를 응집하는 커다란 지도처럼 완성된다. 

“대학 때는 여행 자금 모으려고 돈을 벌 정도였으니까. 한 번 일하고, 그 다음엔 여행 떠나고. 되도록 젊을 때 많은 것들을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고 믿어요. 그 나이 때 느낄 수 있는 감흥의 깊이가 다르잖아요.” 15살 때부터 부모님과 유럽 등지를 다닌 덕분에 김강우에게 여행은 생활 깊숙이 자리한 삶의 일부다. 그리 특별할 것도 부산스러울 것도 없는, 그저 발길 닿는 대로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떠나는 ‘즐거운 놀이’ 같은 것. 

보수적이고 고요한 그의 성품은 가방을 꾸릴 때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설렘으로 꿈틀댔는데, 짐을 쌀 때의 희열은 그의 얼굴에 생기를 불어넣었고, 웹서핑으로 이름 모를 블로거들의 기록을 들춰보는 것을 비록해 즐거운 것은 정작 떠남 자체보다도 그 준비 과정이었다. “출발일 한 달 전부터 5일 정도까지가 딱 좋은 것 같아요. 원래 준비하는 게 더 설레잖아요, 여행이란 게. 막상 떠나면 그보다는 감흥이 덜하고, 또 끝난 뒤 돌아올 때는 참 죽을 맛이고.”  

기호가 분명한 여행

김강우는 또래 청춘들과는 조금 다른 지점에 서 있다. <태풍태양> <나는 달린다> <경의선> 등 매번 그의 선택은 대중성과는 거리를 둔 작가주의 작품과 닿았다(영화 <야수와 미녀>는 제외). 잘생기고 연기 잘하는 젊은 배우에게 자신의 필모그라피를 흥행작으로 채우고 싶은 욕망쯤이야 당연한 일일 진데, 쉽게 타협하지 않는 이유는 무얼까. 그의 여행수칙은 비교적 그 답을 현실적으로 들려준다. 

“카메라? 절대 안 챙겨요. 여행지에서 사진 찍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 여행은 닫힌 내 안의 오감이 열리는 체험인데,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면 그 순간을 놓치곤 하니까. 타지에서 접하는 언어와 문화, 매캐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냄새까지도 그냥 보내고 싶진 않거든요.” 

이처럼 기본적인 약속들은 여행지에서 더욱 견고해지는데, 그 같은 분명한 기호는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동남아 휴양지는 나이 들면 실컷 갈 수 있지만, 아직은 젊으니까. 젊을 때 갈 수 있는 활동적인 곳이 좋죠. 최근 찾은 운남성이나 쓰촨성 같은 곳이 기억에 남아요. 그곳 소수민족의 삶도 인상적이었고, 유네스코 문화유산들이 많이 보존된 것도 좋았고…. 스페인에서는 자동차를 렌트해서 다녔는데, 그게 또 다른 방식, 색다른 루트라 기억에 남고. 일본이나 홍콩 같은 대도시들은 기존 이미지들이 워낙 강해 별다른 재미를 주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유행에 편승해 떠나는 건 의미가 없죠.”


ⓒ트래비

남자, 맛있는 인생을 앞두다

그간 탄탄한 마니아층을 확보해 온 김강우가 영화 <식객>에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허영만의 만화를 스크린에 옮긴 이번 작품에서 그는 음식에 혼을 담아내는 ‘성찬’역으로 서른 살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새로운 쉼표를 찍고 싶은 바람이다. 연기는 잘하지만, 널리 대중적이지는 않았던 청춘배우에서 이제는 보다 넓게 사랑받는 배우로 그 영역을 확대하려는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인다. 

제작 당시부터 쏟아지던 언론의 관심도 그러했지만, 그 결과물 앞에 기꺼이 ‘수작’이라는 찬사를 쏟아내는 평론가들의 믿음직한 이야기들이 벌써부터 흥미를 유발한다. 오래 전, 시나리오를 읽어 본 기자의 입장에서도 영화는 기꺼이 음식에 장인의 혼을 담아낸 따뜻한 내러티브를 담보로 하고 있었다. 그것에 힘을 불어넣은 것은 다름아닌 배우 김강우의 힘, 다시 말해 그의 곧고 깐깐한 열정 탓이 아니었을까. 음식의 재료 앞에 본능적으로 손을 놀릴 줄 아는 ‘성찬’이  되기 위해 그는 칼과 도마를 만지고, 채를 썰며 조리하는 일련의 과정을 혹독한 훈련 속에 견디어냈다. 그런 ‘성찬’에게 듣는 여행지에서의 음식 철학은 어떨까.

“영화를 통해 여행지에서 먹는 재미를 새롭게 찾을 수 있었죠. <식객>에서 말하듯 오랜 장인의 맛에는 일관성이 있거든요. 외국의 전통 어린 음식점들이 그래요. 쉽게 변질되거나 실망시키는 법이 없으니까. 오래된 식당을 찾는 일 말고도 신선한 제철 과일들이 있는 거리의 상점이나 맛있는 커피, 에그 타르트를 찾아 돌아다니기도 하죠.”

그 가운데서도 김강우가 좋아하는 해외 음식은 최근 중국에서 맛본 ‘광동 요리’이다. 항저우와 쑤저우, 상하이 등을 누비며 즐긴 매콤하면서도 얼큰한 해산물 요리들은 두고두고 중국 여행을 충동질 할 정도로 별미였다고. 

일 다음에는 짬짬이 세계 여행을 즐기는 그에게 바람처럼 늘 떠나고 싶은 ‘여행 증후군’을 달래는 방법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유독 <걸어서 세계 속으로> <요리보고 세계보고>와 같은 여행다큐에 남다른 애정을 쏟는 그는, 홀로 집 안에 앉아 카메라의 시선을 빌어 미리 여행을 떠나기도 한단다. 

단순히 발도장만 찍고 돌아오는 여정이 아쉬운 것처럼 한 시간 남짓한 찰나 속에 배우 김강우의 전부를 알았다 할 수 있을까. 유독 말수가 적은 성품 탓에 그의 말 한마디는 묵직한 진실의 언어로 다가온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의 삶이 여행을 간절히 필요로 했다는 것. 그 새로운 세상을 통해서만이 온전한 스스로와 만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진부하고 또한 대단히 통속적인 얘기지만, 배우 김강우에게 여행은 가장 솔직한 치유의 수단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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