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를 꿈꾸다 1 ② 우다이푸르 + 푸쉬카르에서

2007-11-05     트래비



인도에 오기 전 인도통인 선배에게 물었다. “선배가 가장 다시 가 보고 싶은 곳이 어디죠?” “우다이푸르와 산초. 산초는 이맘때면 푸른 초원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장관을 이루고 한적한 호반의 도시, 우다이푸르는 편안하게 쉬고 싶을 때면 늘 생각나는 곳이야.” 그래서 나의 첫 여행지는 우다이푸르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아그라와 바라나시, 마날리가 아닌 새로운 곳을 선택하면서 은근히 설레였다.

상습적인 무질서에 뛰어들다

ⓒ트래비

델리 역으로 가는 길, 날이 더워서인지 10분 걷기도 싫어 코앞인데도 사이클릭샤에 올라탄다. 10루피면 웬만한 길을 걷지 않고 갈 수 있다. 

델리 역 2층 외국인 전용 창구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숭숭 불어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냄새나는 1층과는 완전 딴 세상이다. 인도의 철도 시스템은 선진화 된 유럽의 시스템을 본떴기 때문에 한국에서 열차표를 예약하는 것만큼이나 쉽다. 물론 상습적인 연착을 감안해야 하지만 그래도 이처럼 뛰어난 시스템을 갖췄다는 것은 인도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인도 철도 스케줄이 나온 책을 사고 싶다고 하니 직원이 1층 카운터로 가라고 알려 준다. 당일 표를 구입하기 위해 죽 늘어선 행렬. 외국인을 보는 특별한(?) 시선을 애써 못 본 척하며 줄에 동참한다. 그런데 웬일. 창구 앞으로 끼어드는 사람들 때문에 좀처럼 줄이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놀라운 건 여자들이 더 심하다는 거다. “아, 외국인 그리고 여자!” 나도 줄을 빠져 나와 창구 앞에서 손을 뻗어 책을 달라고 말한다. 그런데 바로 뒤, 순서를 뺏긴 인도 남자는 오히려 웃는다. 인도 남자들의 이러한 배려(?) 덕분에 서로가 유쾌한 무질서는 이번 여행 내내 계속됐다.

닫힌 마음을 열어 준 ‘열쇠’



우다이푸르행 열차는 델리 역에서 40여 분 떨어진 니자무딘 역에서 출발했다. 기차로 12시간. 

니자무딘 역에 도착. 배낭을 메고 열차 라인을 찾아 걸으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열차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열차는 한눈에 봐도 만석인 데다 지붕까지도 사람들로 꽉 들어찬 모습이다. 이때만 해도 바라나시에서 사트나로 갈 때 이들처럼 무단으로 기차를 타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인도에서 열차를 타려면 쇠사슬과 자물쇠는 기본. 장시간 타다 보면 잠을 자는 동안 누군가 짐을 들고 가 버린다고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게에 들러 흥정을 한다. 가게 주인인 인도 남자는 쇠사슬 40루피, 엄지손가락만한 자물쇠 15루피를 합해 55루피를 부른다. ‘무조건 깎고 보자’ 인도 오기 전부터 결심했던 나는 45루피로 값을 깎았다. 그가 혹시 마음을 바꿀까 서둘러 기차에 올라 탄다. 출발을 앞둔 기차에 올라타 있는데, 갑자기 쇠사슬을 팔던 가게 주인이 나타났다. 그의 손엔 새끼 손톱만한 ‘열쇠’가 쥐어져 있었다. 급하게 열차에 오르느라 미처 열쇠를 챙기지 않았구나! 

나를 찾기 위해 열량도 넘는 열차를 뒤졌을 그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밀려오면서 눈물이 맺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가 제시했던 55루피도 결코 부당한 가격이 아니었다. 인도에 오기 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인도 사람을 믿지 말라고 말했다. 인도 사람을 알기도 전에 나는 ‘사기꾼 혹은 거지’라며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것은 아닐까. 이 순간, 가게 주인이 건넨 것은 자물쇠가 아니라 인도인을 향해 닫힌 나의 마음을 열어 준 ‘열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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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와서 처음으로 비를 맞았다. 가뭄이던 우다이푸르엔 모처럼 장대비가 3~4시간 쏟아졌다. 미로처럼 이어진 시티팰리스를 맨발로 빠져나온 일행들. 비에 완전히 젖었지만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까지 ‘신난다!’는 단어를 수십 번도 더 외쳤다. 얼마 만에 비를 온몸으로 맞아 본 건지. 카메라에 물이 닿을까 몸을 사리지만 않았다면 시티팰리스 중앙에 서서 몇 시간 동안 뛰어다녔을지도 모르겠다. 성 위에 오른 사람들은 비를 피해 있는 우리를 내려다보며 힘차게 손짓을 한다. 우리는 낯선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행복한 인사를 나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 우다이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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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도시, 우다이푸르의 첫인상은 ‘아름답다’였다. 델리의 혼잡함과 달리 우다이푸르는 조용하고 아름다워 감성을 자극한다. 우다이푸르 역에 도착한 날은, 햇살도 맑고 깨끗했다. 

우다이푸르는 정말 사람 냄새가 났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낸 3일 동안 우연처럼 인연을 만났다. 호주 여행에 대한 기억을 새록새록 떠올리게 한 호주에서 온 마이크와 비오는 시티팰리스를 뛰어다녔다. 스페인의 멋진 커플 다이애나와 알버트, 일본인 화가 기요, 그리고 게스트하우스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하는 모함과 가필드, 한국인 소영, 소미와는 옥상을 전세라도 낸 듯 우리만의 세상을 만들었다. 

내가 머물던 시바 게스트하우스의 옥상은 여행자들을 위한 완벽한 ‘아지트’였다. 바라다보이는 우다이푸르의 전경은 가히 판타스틱하다. 저 아래로 피촐라 호수가 시원스레 펼쳐지고 하얀색 집들은 호수와 신비롭게 어우러져 깨끗하고 아름답다. 1일 150루피인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끽하기에는 미안할 정도로 그림 같은 풍경이다. 

작년에 이곳에서 9개월을 보낸 뒤 우다이푸르에 반해 올해 한 달간 다시 온 일본인 화가 기요. 그는 베니스와 닮은 우다이푸르를 화폭에 담고 내년 1월에 오사카에서 전시회를 한다며 초청했다. 스페인에서 온 다이애나는 나와 같은 기자 일을 하는 친구였다. 스페인어와 영어가 섞인 그녀의 언어와 나의 무차별적인 한국식 영어도 같은 일을 해서인지 척하면 알아듣는 게 신기했다. 빈라덴과 예수를 닮은 다이애나의 애인 알버트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인데 스페인 노래를 인도에서 들으니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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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사람이 주는 감동은 때로 눈물이 나게 했다. 혼자여도 전혀 외롭지 않다. 언제 어디에서나 반갑게 웃어 주는 친절한 인도 사람들이 있으니. 오늘은 선셋포인트에서 3명의 소녀가 말을 걸어 왔다. “어디서 왔어요?” “한국.” 인도에서 매일 10번 이상 듣는 질문이다. “나는 한국에서 왔어요. 이름은 민트예요.” “민트티(Mint tea)?” “아니, 민트라구!” 남자들은 꼭 묻는 질문이 또 있다. “남자 친구는 있구?” 하하.

그녀들은 부모와 함께 산책을 나왔다고 했다. 자전거를 타고 놀러온 외국인이 신기한지 팔짱을 꼭 끼고 이것저것을 물어 본다. 소녀들답게 최근 유행하는 영화와 연예인의 이름을 불러대지만 내가 알 리가 없지 않은가. 그저 웃으며 그녀들의 해맑은 미소에 동화된다. 

이들에게 바나나 라씨와 난생 처음 본 인도 과일도 얻어 먹었다. 고등학교 농업교사인 S.H. Sing은 지갑을 꺼내려는 나에게 손님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저녁을 함께 먹자고 했지만 실례가 될 것 같아 거절하고 돌아서는데 S.H. Sing, 여행을 잘 하라며 인도식으로 머리 위에 축복 인사를 해주었다. 순간 눈물이 날 뻔했다. 

자전거로 오르막길을 오르며 힘들어하는 나를 뒤에서 달려와 밀어 주던 10살짜리 소년의 모습도, 길을 헤맬 때 자전거로 인도해 주던 영어를 전혀 못하던 아저씨도, 우다이푸르 인포메이션 센터의 친절한 직원도 모두가 여행을, 마음을 넘치도록 행복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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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다이푸르를 떠나며

인도에 온 지 5일째. 오늘은 자전거로 조금 멀리 나가 보았다. 30km도 넘게 다녔는지 나중에는 완전 지쳐 버렸지만. 자전거를 타고 지도에도 없는 작은 길을 따라가니 시내가 나온다. 가이드북에도 없는 인도인들의 삶 그 안에 들어간다.

자전거 바퀴가 돌아가는 속도에 맞춰 사람들은 천천히 움직인다. 이방인을 발견한 아이들, 살며시 다가와 사진을 찍어 달라며 조른다. 순수한 아이들의 눈빛을 카메라에 담다 보면 카메라를 줘 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받을 수 없는 사진을 찍으면서도 이렇게 행복해 하는데…. ‘보내 줄 수 없는 미안한 마음을 너희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속으로 전한다. 

오늘밤 야간버스를 타고 푸쉬카르로 떠난다. 3일간 우다이푸르에서의 행복한 기억을 안고 여행이 느슨해질 때쯤 다음 목적지를 결정했다. 한 달간의 짧은 시간은 아무리 마음을 여유롭게 가지려 해도 조급한 것이 사실이다. 체크아웃을 하고 게스트하우스 옥상 아지트에 앉아 사람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벌써부터 다이애나와 알버트, 모함, 가필드는 더 있으라며 마음을 흔들지만, 우리는 모두 안다. 여행은 우연을 가장한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임을…. 

내 마음을 자유롭게 춤추게 해준 황당 청년 모함을 보기 위해서라도 우다이푸르에 다시 오게 되지 않을까 싶다. 시바 게스트하우스 옥상의 작은 주방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그는 매번 재치 넘치는 유머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 좁은 공간에서도 그의 상상력은 무한하다. “상상은 공짜잖아. 그걸로 모두가 즐거울 수 있으니 좋잖아” 모함이 해준 마지막 요리를 먹을 때쯤 세상은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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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쉬카르에는 어스름하게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다. 버스 정류장에서 다른 곳으로 가려는 한국인 여행객들을 만났다. “어디로 가시나요?” “우다이푸르요.” “금방 거기서 왔는데 정말 좋아요.” “푸쉬카르도 작지만 조용하고 한적해요. 꼭 해질녘엔 가트에 가 보세요.” 여행자들은 서로의 정보를 교환한다. 가끔은 자기가 있었던 곳이 더 좋다고 우기기도 하고.
겨울에 낙타 사파리와 낙타 축제로 유명한 푸쉬카르는 여름에는 여행객이 적어 조용했다. 내가 머문 프리야 게스트하우스에도 한 달간 머문 독일 건축가를 빼면 손님은 나 뿐이었다. 프리야 게스트하우스 주인 아저씨와 오토바이를 타고 인근 도시 아즈메르에 가서 시장을 구경한 것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푸쉬카르는 가트를 중심으로 한 작은 도시였는데도 자주 길을 잃어 오히려 가게 주인들이 “너 프리야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무는 여행자 아니야?”라고 물어 올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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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쉬카르에서 자이살메르로 가는 버스는 그야말로 끔찍했다. 너무 급하게 결정한 탓에 좋은 자리가 없었다. 내 자리는 맨 뒷자리 바로 앞. 왜 여행자들이 앞자리를 고수하는지 알 것만 같다. 앞, 옆, 뒷자리 그리고 위층 침대칸까지 꽉 들어찬 인도 남자들 사이에 여자는 나 혼자였다. 물론 외국인도 나 뿐이었다. 온 밤을 달려야 자이살메르에 도착하는데 막연한 두려움이 몰려온다. 그들이 딱히 무슨 짓을 해서가 아니라 바라보는 시선만으로도 부담스러운 그런 밤이다. 

우다이푸르에서 푸쉬카르로 가는 첫 야간버스도 그랬다. 앞자리에 앉았는데도 바로 뒷자리에 앉은 젊은 남자가 치근대는 바람에 한숨도 잠을 자지 못했다. 나중에는 자신이 내리는 곳에 닿자 같이 내리자며 한참을 옆에 서 있었다. 야간버스는 공포스러웠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는 매번 같은 선택을 해야 했다. 

이번 상황은 더욱 나빴다. 버스 통로엔 짐들이 많아 쉽게 다니지도 못했고 사람들의 시선에 갇힌 나는 두 둔이 더 똘망똘망해져만 갔다. 침대칸에서 나를 응시하며 누워 있는 인도 남자의 레이저가 뿜어져 나올 것 같은 그 눈빛은 눈을 감아도 피할 길이 없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생각할 때쯤 다행히 휴게소에 버스가 멈춘다. 인도에서는 장시간 달리는 동안 식사를 하거나 화장실에 가기 위해 가끔 차가 선다. 운전수에게 “도저히 뒷자리에 앉아 갈 수가 없다. 앞자리에 빈 곳이 있으면 바꿔 달라. 돈은 얼마든지 내겠다”고 하니 맨 뒤 침대칸이 비었다고 한다. 나를 두렵게 하던 그 남자는 무단으로 침대칸을 쓰고 있던 거다. 

그를 쫓아내고 100루피를 더 내고 2층 침대칸에 올랐다. 유리문을 꼭 닫았지만 여전히 심장이 떨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바닥은 끈적거렸고 버스는 밤새 쉬지 않고 경적을 울려댔다. 피곤한 얼굴로 사막의 도시, 자이살메르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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