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를 꿈꾸다 2 ② 카라주호 - 에로틱 No, 알고 보면 너무도 순수한"

2007-12-10     트래비


카라주호 : 에로틱 No, 알고 보면 너무도 순수한


ⓒ트래비

‘눈 뜨고 보기 부끄러울 정도로 에로틱하다고?’ 에로틱한 미투나상(남녀 교합상)으로 유명한 카주라호로 향한다. 예전에 본 카마수트라 영화의 배경지에 대한 호기심도 발동했지만 인도에서 만난 사람들이 여행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카주라호를 꼽아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바라나시에서 사트나역까지 야간 열차로 7시간, 다시 사트나역에서 지프를 타고 세 시간을 넘게 달려야 카주라호에 도착한다. 긴 열차에서 흩어져 나온 많은 사람들 중 카주라호로 향하는 외국인은 달랑 6명. 지프 운전수들은 기차 역 안까지 들어와 가격 흥정을 벌인다. 6명은 어느새 일행이 돼, 가격 낮추기에 들어간다. 900루피. 혼자 가도 지프는 1,000루피를 내야 할 셈이지만, 1인당 150루피(약 3,800원)면 꽤 괜찮은 가격이었다. 

문제는 운전수 옆 두 자리를 영국인 두 여자들이 꿰어찬 후 뒷자리에 세 명, 나머지 한 사람은 몸을 옆으로 뒤틀어 앉아야 하는 불편한 짐칸이 남아 있었던 것. 남자들은 키가 커서 들어가지 못하니 여자 둘이서 번갈아 가며 앉아야 한다. 40대로 보이는 독일 여자가 흔쾌히 짐칸에 앉는다. 미안한 마음에 30분쯤 지나 자리를 바꾸자고 하니 이번에도 흔쾌히(?) 자리를 바꿔 준다. 그렇게 두 시간이 넘도록 짐칸에 앉아 가니, 산을 뱅뱅 돌아 들어가는 길은 기대보다 ‘인내’가 절실했다. 

카주라호는 생각보다 작고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지프에서 내리자 어김없이 호텔 삐끼들이 벌떼처럼 몰려들기 시작한다. 멀미가 심해 가방조차 들 힘이 없는 여행자에게 그들은 잔인하게  쉴 틈도 주지 않는다. 

능숙한 한국말을 구사하는 한 인도인은 “한국에서 왔어?” “…” “이름이 뭐야?” “…” 남의 속도 모르고 10여 분을 따라오던 그는 “왜 인도인하고 말하기 싫어? 그러면 인도에 왜 왔어?”하며 면박을 주고서야 돌아선다. 낯선 여행지에서 한국말로 면박을 받는 기분이란! ‘이곳, 있을 곳이 못 되는구나!’ 홧김에 버스정류장을 향한다. 

그런데 우연히 자이살메르에서 만났던 단체 배낭팀과 정류장에서 재회를 했다. 자이살메르의 한 게스트하우스 옥상에서 술자리를 함께했던 그들, 우연찮은 인연에 친구를 만난 듯 반갑다. 인도인에게 상처 받고 떠나려 한다는 사연을 듣자, 그들은 카주라호가 어느 도시보다 편안하고 아름다웠다며 만류한다. 하루라도 꼭 있어 보라고. 그들의 권유에 하루만 더 참아 보기로 한다.

영화를 보다, 영화를 찍다


ⓒ트래비

한적한 동네 카주라호는 한국 식당이 8개나 있을 정도로 인도에서, 한국인의 대표적인 관광지. 사람들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한국말에 능숙한 젊은이들도 꽤 많다. 스위스, 프랑스처럼 유럽에서 온 여행객이 인도인과 결혼을 해서 차린 식당과 일본과 한국인이 결혼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골 마을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말을 거는 사람들을 조심해!”다. 이른 아침, 만두처럼 돌돌 말아 튀긴 사모사 요리를 만드는 뽀리 아저씨는 손짓과 얼굴 표정으로 조심해야 할 가게 주인이 오면 신호를 준다. 그의 옆에서 짜이를 만드는 레옹을 닮은 아저씨도 여행자를 위한 특별한 민트티를 만들어 준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사모사와 민트티, 그 완벽한 아침식사를 맛보고 싶어 버스표도 연기했다. 사람이 좋아서 하는 여행, 급할 거 없지 않은가!
카주라호는 마을 바로 앞에 위치한 서부 사원군 외에도 동부 사원군과 남부 사원군을 여유롭게 돌아보려면 자전거가 유용하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날, 자전거를 타고 사원들을 찾아 달려간다. 서부 사원군은 250루피로 입장료가 비싸지만 동부 사원군은 5루피, 남부 사원군은 무료로 볼 수 있다. 미투나상도 동부, 남부에서 충분히 볼 수 있으니 가난한 여행자에겐 더 고민할 필요도 없다. 

사원에 들르면 관리인이 나와 손전등을 들고 조각 하나하나의 의미를 설명해 준다. 한 관리인은 ‘sex’라는 표현을, 또 다른 관리인은 ‘relation’이라는 표현을 써 가며 미투나상을 설명하는데, 듣고 있자니 응큼한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빨개진다. 사원 앞에는 초등학생 정도 돼 보이는 아이들이 교합상 장난감을 들고 ‘에로틱, 지기지기’ 하며 여행객들을 놀린다. 맹모삼천지교라더니….

비도 오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영화나 보며 느긋하게 쉬었으면 하는 찰나, 총각식당의 총각주인은 200루피(약 5,000원)면 DVD를 빌릴 수 있다고 제안한다. 비디오 가게에서 비틀즈를 연상시키는 헤어스타일의 가게 주인 ‘야신’을 만났다. 그는 직접 방에 설치를 해주겠다며 따라나섰지만 게스트하우스 지배인은 ‘외부인은 절대 출입이 안 된다’며 직접 설치해 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DVD를 설치한 지배인은 방에서 나갈 기미가 없다. 그는 응큼하게 웃으며 “나는 외부 사람이 아니잖아. 같이 보면 안 될까” 한다. 어디 택도 없는 소리! 어찌 됐든 이날 오후 <아버지 간디>, <카마수트라> 그리고 <캐쉬스> 등 영화관에서 유행하는 영화들까지 3~4편을 보며 모처럼 일상에 돌아온 듯 쉴 수 있었다. 

이 게스트하우스 지배인은 다음날 시벽 6시에도 방문을 노크한다. “당장 꺼져, 안 그러면 경찰을 부를 거야!” 소리를 지르니 “오케이” 하면서 바로 물러간다. 숙소 지배인조차 이렇게 못 미덥다 보니 카주라호는 대단히 매력적인 마을이지만, 여자 혼자 여행하기에 여러모로 위험한 곳으로 느껴진다. 

전날 저녁, 함께 피자를 먹으면서 야신은 카주라호 영상이 담긴 CD를 선물하겠다고 약속한다. 정말 스물 두 살의 그 청년은 친구들과 형 개똥이까지 대동하고 이른 아침 버스 정류장에 나타났다. “정말 나왔구나, 고마워…” 배웅을 나와 준 야신에게 형식적인 인사만 남기도 돌아서는데 아쉬움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2박3일의 짧은 순간이었지만, 말보다 더 큰 언어를 가르친 벙어리 뽀리 아저씨와 순수 청년 야신은 오랫동안 인도를 추억하게 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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