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22탄 호치민 ② Mission 2 베트남의 역사를 대면하라!

2008-01-23     트래비

베트남의 영웅 호치민을 만나다
호치민 박물관 Hu Luu Niem Bac Ho 


 ⓒ트래비

1. 호치민 동상이 서 있는 인민위원회 청사 앞
2,3. 호치민 박물관 내부와 외관

사이공강과 벤 응에(Ben Nghe)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호치민 박물관은 원래 1862년 프랑스 선박회사(Messageries Maritimes)의 사무실로 지어졌다. 초기 용도는 회사 지배인의 주거지이자 승선 매표소. 지붕에 두 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있어 드래곤 하우스(Dragon House), 베트남어로는 나 롱(Nha Long)이라고도 불린다. 

1911년 6월5일, 21세의 호치민이 조국의 독립을 위한 큰 뜻을 품고 이곳에서 프랑스행 상선을 타고 조국을 떠났다. 그후 1979년 9월3일, 호치민시의 결정으로 이 건물은 호치민 주석을 기념하는 ‘호치민 박물관’으로 거듭난 것이다. 박물관에서 4구역으로 뻗어 있는 거리 이름도 호치민의 어린 시절의 이름을 따서 응우엔 땃 탄(Nguyen Tat Thanh) 거리로 명명했다. 총 2층짜리 박물관은 호치민 주석의 전 생애를 다양한 사진과 유품들을 통해 소박하면서도 장엄하게 보여 준다. 모든 베트남 사람들의 아버지이자 영웅으로 추앙받는 호치민을 느낄 수 있는 곳. 

※ 찾아가기 1 Nguyen Tat Thanh Street, Dist 4 
※ 개관시간 07:30~11:30, 13:30~17:30 
※ 입장료 1만VND(약 600원) 

호치민, 그는 누구인가? 

베트남의 민족 영웅 호치민은 중부 베트남에서 학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1년 프랑스에 건너가 식민지 해방운동을 시작하고 제1차 세계대전 후 베르사유회의에 베트남 대표로 출석하여 ‘베트남 인민의 8항목의 요구’를 제출하면서 유명해졌다. 1924년 모스크바의 코민테른 제5차 대회에 출석하며 동방부(東方部)의 상임위원이 되었고 이어서 중국 남부 및 태국에 파견되어 조국의 혁명운동을 계속했다. 

1942∼1943년 중국국민당에 체포·투옥당한 무렵부터 호치민(Ho Chi Minh)이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1945년 8월 태평양전쟁의 종전과 동시에 총봉기를 지도하여, 응우엔 왕조의 바오 다이(Bao Dai) 왕으로부터 정권을 탈취해 베트남민주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정부 주석으로 취임하였다. 1946년 퐁텐블로회의가 결렬되자 프랑스에 대한 항전(抗戰)을 직접 지휘, 1954년 디엔비엔푸의 승리로 독립을 지켰다. 

호치민은 공산주의 이념을 베트남의 특수한 상황과 결합시켰다. 베트남인들을 일종의 민족주의적인 사상으로 무장시킴으로써, 독립운동을 효과적으로 전개했다. 일생을 독신으로 검소하게 살았으며 베트남 민족에 대한 애정을 갖고 정치활동을 했던 호치민이 다른 공산주의 진영의 지도자와 차별되는 이유, 모든 도시마다 호치민을 기억하는 박물관을 만들고 그를 기리는 이유에 대한 답을 호치민 박물관에서 찾을 수 있다.

전쟁을 잊지 않기 위해 
전쟁 기념 박물관 Bao Tang Chung Tich Chien Tranh 


 ⓒ트래비
(왼쪽 상단) 실제 전쟁에서 사용됐던 무기들이 전쟁 박물관 광장에 전시돼 있다.
(왼쪽 하단과 오른쪽) 각종 사진 자료들이 전쟁의 참혹함을 가장 극명하게 증명한다.

역사의 숨겨진 진실이 어떠하였건간에 남의 나라 역사를(그것도 우리와의 관련성이 있는 나라의 전쟁에 대한 역사를) 함부로 평가하는 것은 삼간다.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이 베트남 전쟁에 대해 느끼는 바는 간단했다. “베트남 전쟁이라는 표현은 옳지 않아. 미군들이 베트남에서 벌인 전쟁이지(Not Vietnamese War, But American War in Vietnam).”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인간은 ‘잊어버리기 때문에’ 기념비를 세우고 박물관을 만든다. 기억이 흐릿해지기 전에 이런 것들을 세워서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박물관에는 실제로 전쟁에서 사용됐던 탱크, 대포, 비행기 등의 무기들이 박물관 광장에 전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전쟁 중 무차별적으로 살포된 고엽제 때문에 기형아로 태어난 태아의 사체가 포르말린에 담겨 전시되고 있으며, 미라이 학살현장이 생생하게 포착된 사진들과 각종 고문기구, 정치범 고문으로 악명이 높았던 꼰 섬(Con Dao)의 ‘호랑이 우리’의 복제 감방도 만들어져 있다. 이렇듯 전쟁 박물관은 ‘미국이 전쟁 중 저지른 잔학행위’를 피해자의 입장에서 기록하고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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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시청각 자료들을 동원해 가장 극명한 슬픔과 아픔으로 관람객들을 선동하는 베트남의 전쟁 박물관은 우리나라의 전쟁 박물관을 떠오르게 한다. 피해자가 기억하고 기록하려고 하는 역사에 묘한 동질감과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이 끔찍한 역사의 기록을 고개를 돌려 피하지 않고 똑바로 보는 까닭은 바로 ‘잊지 않기 위해서’라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도 세계의 한 켠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에 대해 그 책임을 훗날 누가 지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시간이 될 것이다.

※ 찾아가기 28 Vo Van Tan Street 
※ 개관시간 07:30~11:45, 13:30~17:00 
※ 입장료 1만5,000VND(약 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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