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한여름 전라도 바다를 만나다

2008-07-25     트래비



한여름 전라도 바다를 만나다

‘오래 전 책표지 같은 군산’은 분명 아니었다. 안도현 시인이 그의 시에서 나지막이 풀어내던 군산의 모습, 마치 시간과 함께 기억이 켜켜이 쌓여 슬픔마저 바래진 쓸쓸한 풍경은 보지 못했다. 대신 군산은 과거의 기억을 곳곳에 품은 채 현재를 살고, 또한 미래로 달려가고 있었다. 아직까지 군산에는 옛 일제시대의 가옥과 절이 남아있었고, 군산 앞바다의 ‘신선들이 노닐었다는 섬’ 선유도는 여전히 아름다운 풍경으로 개발을 기다리고 있는가 하면, ‘새만금 사업’으로 부풀어오른 경제발전에 대한 기대는 도시 곳곳을 채우고 있었다. 군산은 근대와 현대가 기묘하게 섞인 모습으로 독특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그곳에서 내가 목격한 것은 정지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 ‘변화’의 흐름과 열기였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박정윤  
취재협조  전라북도관광협회 tourkorea.org



1 군산 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선유도까지는 배로 약 50분 걸린다 2 금강철새전망대 1층 전시실의 전시물 3 입에서 살살 녹는‘군산 꽃게장’4 금강철새전망대 2층 전시실 5 선유도 선착장 부근 횟집에는 싱싱한 횟거리가 지천이다 6 명사십리의 해당화 7 초분공원


군산을 맛보다

군산을 향해 길을 나선 때는, 전국 곳곳으로 폭염주의보가 확대되고, 국토대장정에 참여한 한 여대생이 폭염에 쓰러져 사망했다는 뉴스가 전해진 날이었다. 화창하다 못해 따갑기까지 한 초여름 햇빛은 차창 너머로 보이는 모든 풍광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이번 여행의 주 목적지인 선유도는 군산시에서 배로 50분 거리. 그곳으로 떠나기에 앞서 금강철새조망대를 먼저 들렀다. 초등학교 시절 사회시간에 군산 금강하구둑이 세계적인 철새도래지라는 사실을 책에서 배운 이래 이를 확인할 길이 딱히 없었는데, 십몇년 만에 뒤늦은 배움의 기회를 얻은 셈이다. 입체영상관에서 짧은 영상물을 관람한 후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조망대 내부 전시실을 둘러보았다. 

조망대 내부 시설도 기대 이상이었지만 조류공원과 철새신체탐험관, 부화 체험장은 자녀 교육에 신경 쓰는 부모님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만한 현장교육시설을 잘 갖추고 있었다. 전세계적으로 희귀종인 가창오리의 90% 이상이 이 일대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겨울쯤에 다시 방문하면 연안의 갈대숲과 함께 금강호의 가창오리떼 장관을 볼 수 있을 듯하다. 시베리아에서 출발하여 바이칼 호수를 거쳐 금강 하류로 이동해 겨울을 난다는 가창오리는 2007년 기준으로 약 85만 마리가 이 지역을 찾는다고 한다. 

선유도로 가기 위해 군산 시내로 접어들며 군산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군산(群山) 은 지명에서 그대로 드러나듯 작은 산들이 많은 동네다. 눈으로는 고만고만한 산들이 능선을 이어가는 풍광을 바라보며, 군산의 역사, 특히 남아있는 일제시대의 가옥과 학교, 절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군산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곡창지대와 맞닿아 있어 일제시대 당시 물자를 일본으로 운반하던 교역항으로 발전하다가 해방 이후 다소 발전이 정체되면서 현재에는 27개 읍·면·동에 약 26만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다시 작년부터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는데 이는 새만금 사업이 불러온 효과인 듯했다. 

버스는 은파관광지를 거쳐 시내를 통과했고, 잠깐 군산 시내에 정차하여 점심으로, 그 유명한 군산 꽃게장을 맛보는 즐거움을 누렸다. 바다 냄새가 물씬 나는 꽃게장의 놀랍도록 산뜻하면서도 깊은 맛이 입 안에 퍼지는 동안 나는 내가 비로소 ‘맛의 고향’ 전라도에 왔구나 실감했다. 그리고 서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저렴한 가격을 확인하면서 ‘이게 바로 산지에서 먹는 즐거움이구나’ 다시 한번 실감했다. 게딱지에 밥을 비벼 먹으면서 ‘천천히’, ‘조금씩’ 먹겠다는 식사 방침 따위는 깨끗이 잊어버렸다.

금강철새조망대 063-453-7213~4/ www.gmbo.kr  철새탐조투어 매년 11월 하순~2월까지

고군산군도의 대장섬 ‘선유도’

군산 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선유도까지 배로 약 50분이 걸린다. 1시간 반 정도의 간격으로 하루 평균 6~8회 출항하는 여객선은 가끔 안개주의보가 발령되면 출항이 지연되기도 한다. 선유도가 있는 전북 군산 앞바다는 작은 섬들이 많아 암초에 걸리기 쉬워 안개가 짙은 날에는 더욱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유도는 16개의 유인도와 47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고군산군도라는 무더기 섬 중 대장섬으로, 야미도, 신시도, 선유도, 무녀도, 장자도, 대장도 등 고군산군도의 섬 중 크기로는 신시도가 으뜸이지만 사람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은 선유도라고 한다. 선유도를 중심으로 장자도, 무녀도, 대장도 4개의 섬이 다리로 연결되어 하나의 섬처럼 이어져 있다. 

선유도는 2.133km2의 면적에 500명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는데, 고려시대에는 송나라와의 무역의 기항지였으며 조선시대에는 ‘군산진’이라는 수군기지가 있었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에 잠시 머물기도 했다고. 

선유도에 도착해 선착장에서 내려 숙박시설로 걸어가는 동안 자전거와 카트를 대여하는 곳을 곳곳에서 발견했다. 선유도에는 자동차를 갖고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자전거나 카트라고 부르는 소형 전동차를 이용하여 섬을 돌아볼 수 있다. 이 중 카트는 골프장에서 이동시 사용되는 카트를 개조하여 선유도 주민들이 1시간에 3만(2인 기준)~5만원(4~5명 기준)을 받고 운영한다. 원칙적으로는 개조용 카트 이용은 불법이지만 바람을 맞으며 덜컹덜컹 달리던 카트의 맛은 나쁘지 않았다. 카트로 이동하면 1시간10분 정도면 선유도를 한 바퀴 대충이나마 돌아볼 수 있다.

너무 더운 날씨만 아니라면 자전거 하이킹도 즐거울 법하다. 실제로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젊은 학생들은 둘씩 셋씩 무리를 지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작은 섬 선유도는 가파른 오르막길도 거의 없어 자전거 하이킹을 즐기기에 좋은 장소로 추천할 만하다. 선유도에서는 주로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카트를, 학생들은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 같았는데 가끔 아저씨, 아주머니가 커플 자전거를 함께 타고 다니는 흐뭇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자전거 대여료는 1시간에 3,000원(커플용 5,000원, 유아용 2,000원), 1일에 1만원 정도가 든다. 대장도를 향하는 A코스(약 3.7km), 몽돌 해수욕장을 향하는 B코스(약 4.7km), 무녀도를 향하는 C코스(약 4.3km)를 자전거로 돌고 나면 선유도 완전 정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요 지점들은 대부분 다 살펴본 것이 된다.


선유도 해수욕장


명사십리 선유도 해수욕장을 거닐다

선유 8경 중의 하나라는 선유도 해수욕장 부근에 짐을 푼 후 카트를 타고 선유도를 본격적으로 돌아보았다. 출발하여 가장 먼저 찾은 장소는 장자도로, 장자대교 입구에 다다러 카트에서 내려 다리를 건넜다. 장자도로 걸어 들어가는 동안 다리 위에서 보이는 하늘은 푸르렀고 그 아래로 보이는 바다는 더욱 파랬다. 바다 가운데 서로 닮은 작은 섬들이 이어지고 또 이어져서 눈을 채우고 마음을 채웠다. 햇볕은 여전히 따가웠지만 또한 눈부실 만큼 아름다워서 정말로 여름의 한가운데에 서 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장자도에서 다시 선유도로 내려와서 초분에 시신을 안치하는 장례 풍습을 재현한 ‘초분공원’을 거쳐 무녀도로 향했다. 무녀도에서는 새만금방조제와 신시도를 육안으로 볼 수 있었다. 날은 더웠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바다와 섬의 모습만큼은 최고였다. 이날 보았던 풍경을 눈으로 담고, 마음으로 담고 또 담았다.   

다음날 이른 아침 선유도 해수욕장을 찾았을 때는, 바다는 자욱하게 안개가 끼어 있어 수평선의 경계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해당화가 피어 있는 명사십리 선유도 해수욕장 도로를 걸어가는 동안 어제의 청명함이 무색할 만큼 안개가 짙었다. 하지만 망주봉이 가까워지면서 안개가 조금씩 걷히더니 망주봉에 다다라서는 거의 말끔해졌다. 망주봉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암벽으로 된 곳이 많아 적당한 난이도의 산악등반코스로서 손색이 없었다. 적당한 장비를 미리 준비해 가지 못한 터라 끝까지 오르지는 못하고 내려왔지만 망주봉 기슭에 산나리가 지천이어서 잠깐이나마 여름산을 만끽할 수 있었다. 

망주봉에서 다시 선유도 해수욕장으로 내려와 걷는 동안 이름 모를 새 하나가 모래사장에 내려앉았다 날아오른다. 작은 게들도 갯벌에서 도로 위까지 기어올라온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망주봉에서 좀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갯벌 체험장이 있어 새조개나 게를 직접 잡을 수 있나 보다. 일행 중 부지런한 이 한 명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낚시 도구를 빌려 고기를 잡았고 1시간 만에 4마리나 낚는 쾌거를 거둔 끝에 시원한 매운탕을 끓여 주었다. 


1 신시도에 공사 중인 새만금전시관 2 부안 새만금전시관 입구 3 채석강 앞 격포 해수욕장 4 장자대교 초입


새만금방조제 건설 현장을 지나 부안으로

안개주의보가 발령된 탓에 선유도에 오후까지 머물러 있다가 오후 2시나 되어서야 군산으로 가는 배를 탔다. 덕분에 일정은 대폭 축소되어 일단 새만금방조제를 통과하여 바로 부안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33km에 이르는 세계 최장의 새만금방조제는 군산에서 부안까지 이어지는데, 군산의 비응도, 신시도, 부안의 변산면 대항리까지의 바다를 메워 서울의 2/3 크기에 해당하는 매립지를 확보한다고 했다. 새만금방조제에 들어서기 전, 군산산업단지를 통과했는데 눈앞에 펼쳐지는 광활한 부지 면적이 입주할 업체 수에 비해서는 많이 모자라 정부에서 추가 부지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에 기가 질렸다. 능선을 따라 풍력발전소 발전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한편 새만금방조제 위로 왕복 4차선, 4구간으로 이루어진 대규모의 관광도로 공사도 한창 진행 중이었다. 아직까지 정부의 허가가 없는 한 일반인들이 공사 중인 도로를 지나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새만금방조제를 통과하여 군산에서 부안으로 향하는 길에 새만금전시관에 들렀다. 새만금 사업의 추진 과정과 역사에 대해 소개하는 새만금전시관은 군산 신시도와 부안에 있는데, 신시도 새만금전시관은 아직 공사 중이지만 부안에 위치한 새만금전시관은 1995년에 개관했다. 일평균 2,100명의 관람객이 꾸준히 찾는다는 부안 새만금전시관. 어느새 부안으로 넘어와 있었다.


채석강으로 가는 길, 또 다른 부안 바다

부안 격포의 채석강으로 향하는 해안도로 아래로 고사포 바다가 보인다. 서해안답지 않은 풍경이다 싶었다. 바다는 동해 바다처럼 시푸르게 빛나고 그 위로 화창한 햇빛이 반짝인다. 선유도에서 아침 나절 보았던 안개가 이곳에서는 흔적도 없다. 부안 바다에는 서해안 특유의 아기자기한 매력 대신 동해안 같은 시원한 매력이 강하게 발산되는 듯했다. 해안도로를 한창 달리다가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작은 전망대에 잠시 멈추어 섰다. 그곳에서 바라본 하늘과 바다는 그 존재 자체로 순수한 경탄과 기쁨을 안겨주었다. 

해안도로를 계속하여 달려 채석강에 이르렀다. 변산반도 서쪽 끝 격포항에 위치하고 있는 채석강은 마치 중국 채석강과 흡사하다 하여 그리 이름붙여졌다고 한다. 중국의 채석강은 당나라 이태백이 배를 타고 강에 나가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뜬 달을 보고 이를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그 강이다. 중국 채석강이 실제로 어떠한지는 직접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전라북도 부안의 채석강은 선캄브리아대 화강암, 편마암을 기저층으로 하여 중생대 백악기의 퇴적암이 그 위에 겹겹이 쌓여 있어 여느 해안과는 확연히 다른 독특한 풍광을 제공한다. 간조 때에는 퇴적암 층에 붙어 있는 바다 생물과 해식동굴의 모습도 볼 수 있다고. 혼자 깡총깡총 채석강 지층을 걸어다니고 있는데 지나가던 사람 하나가 바닥을 가리키며, 이 자국이 예전의 공룡 발자국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움푹 패인 자국들이 공룡 발자국과 비슷하게는 보인다. 정보의 신뢰성을 딱히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떠한 이야기든 그럴 법하게 들리는 기기묘묘함과 신비감이 채석강에는 있었다. 

옆의 일행 한 명이 ‘언제 와도 채석강은 좋다’며 감탄사를 발한다. 기이하면서도 신비한 매력의 채석강. 그 기이한 지층은 제쳐두고라도 격포 해수욕장의 고운 모래와 맑은 바닷물, 너무 쓸쓸하지 않으면서 고즈넉한 저녁의 풍광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때마침 바다에 살며시 햇빛이 낮게 깔린다.



 5, 6, 7, 8 채석강 9 부안 해안도로 전망대


연안여객선 운항 정보

선유도까지 여객선은 하루 6~8회 운항하나 출항 시간은 매달 조금씩 다르니 사전에 전화로 문의 예약하는 것이 좋다.  
가격  선유도행 여객선 출항 가격은 1만1,700원, 입항 가격은 1만700원으로 7, 8월에는 성수기 할증요금이 적용된다.
문의  군산 연안여객선터미널 063-4762-2727  

연안여객선터미널 찾는 길

① 서해안고속도로→동군산IC→21번 군산ㆍ전주자동차전용도로 →옥녀교차로→군산연안여객선터미널
② 호남고속도로→전주IC→21번 군산ㆍ전주자동차전용도로→옥녀교차로→군산연안여객선터미널
★ 고군산 유람선 운항을 따로 원하는 사람은 A코스(약 1시간30분 소요, 어른 1만5,000원), B코스(약 4시간 소요, 2만원), C코스(약 8시간 소요, 3만원, B코스에서 선유도 5시간 자유관광시간 제공된다) 중 택일
문의  군산유람선 063-442-8845, 2788|월명유람선 063-445-2240, 5635

유람선 선착장 찾는 길

★ 자가용 이용시 ①서해안고속도로→군산IC→27번 국도→유람선 선착장,
②호남고속도로→전주IC→군산ㆍ전주자동차전용도로(군산 방향)→군산대교차로→유람선 선착장
★ 고속버스 이용시 터미널 인근에서 시내버스 이용, 도선장(유람선 선착장) 앞 하차
★ 기차 이용시 군산역 앞 버스승강장에서 시내버스 이용, 도선장 앞 하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