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이천-쌀 익는 마을로의 초대

2008-09-19     트래비



쌀 익는 마을로의 초대

마른 나무에 불이 붙자 금세 뜨거운 열기가 사방에 퍼지고 타닥타닥, 불길을 맞추는 손놀림이 분주하다. 불그스레 열을 올린 화덕의 불사위에 땀이 흥건해질 무렵, 모락모락 김과 함께 퍼지는 구수한 밥 냄새. 가을은 그렇게 눈이 아닌 입으로 먼저 다가왔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이민희  
취재협조  이천쌀문화축제 추진위원회 www.ricefestival.or.kr

농부들은 5월과 6월에 일을 하느라 땀을 쏟곤 하지만 풍년이 들면 8월엔 그 누구도 부럽지 않다는 ‘5월 농부, 8월 신선’이라는 말이 있다. 비록 농부의 마음으로 씨를 뿌리지는 않았으나, 목마른 여름을 지나 가을을 노래하는 것이 농부만은 아닐 터. 생명력 가득했던 초록 땅이 보기만 해도 흐뭇한 황금들판으로 서서히 물드는 지금, 여행은 ‘비움의 미학’이 아닌 뱃속 든든한 ‘채움의 여유’로 다가온다.




괜히 진상미가 아니다?

밥맛 좋은 이 계절에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면 단연 가을걷이에 한창인 이천이다. 날카로운 선과 밋밋한 면으로 가득한 도심에서는 느낄 수 없던 풍요로운 색채로 눈을 채우고, 방금 거둔 햅쌀로 입을 채울 수 있는 곳. 수확의 기쁨은 모두의 축제가 되어 점점 흥을 더하니 일 년에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서울에서 한 시간. 숨 막히는 여름의 긴 터널을 빠져나온 이천은 축제 분위기에 한껏 들뜬 모습이다.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수확의 기쁨을 느껴 본 농부가 세상에 한둘일까마는 이천의 가을은 좀더 특별하다. 임금님 수라상에 올리던 진상미라는 자부심이 더해진 까닭이다. 

이천쌀은 조선시대 농서(農書) <행포지(杏浦志, 1825)>에 ‘이천에서 생산한 쌀이 좋다’고 기록되어 있고, 성종(成宗)이 세종(世宗)의 능에 성묘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천에 머물던 중 이천쌀로 밥을 지어 진상하였는데 그 맛이 좋다 한즉 자주 진상미로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또 이 지역의 전래민요인 ‘방아타령’과 ‘자진방아’를 들어 봐도 ‘여주 이천 자체방아 금상따래기 자채방아’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금상따래기’는 진상미를 재배하는 논을 일컫는 말로 예부터 이 지역에 벼를 많이 심었고 여기서 생산된 품질 좋은 쌀이 진상미로 올라갔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굳이 오래 전의 문서를 찾아보지 않더라도 이천쌀의 우수성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어 있다. 우선 눈으로만 봐도 밥을 지어 놓으면 유난히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이천쌀은 질 좋은 탄수화물을 함유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천쌀이 타지역의 쌀에 비해 밥맛이 좋은 것은 이천지역이 벼 생육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 다른 지방에 비해 기온이 다소 낮고 쌀알이 맺힐 때 일조량이 많으며 밤낮의 기온차가 커 벼농사를 짓기에 안성맞춤이라고. 또한 이천 땅 대부분이 찰흙과 모래가 적절히 혼합된 사양질 토양이라 땅의 양분 흡수를 돕는 건 물론 논농사에 이용되는 지하수에는 마그네슘 등의 무기질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밥맛을 좋게 해준다. 이렇게 기온, 토양, 물 3박자가 어우러져 국내 최고의 쌀이 생산되는 것이다. 


★ 맛있는 밥 짓기 

집에서도 햅쌀밥의 참맛을 느끼고 싶다면 우선 갓 찧은 쌀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도정한 지 한 달 정도 지나면 쌀의 풍미가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햅쌀은 박박 문질러 씻을 필요가 없다. 쌀에 묻은 겨와 먼지가 떨어질 정도면 된다. 단, 쌀에서 나는 비린내가 다시 쌀에 흡수될 수 있으니 쌀을 씻은 첫 번째 물은 재빨리 버리고 새 물로 바꿔 줄 것. 마지막으로 씻은 쌀은 30분 이상 불리는 것이 맛있는 밥 짓기의 키포인트다. 물이 쌀의 전분 알맹이 속으로 골고루 스며들어 찰기와 탄력이 있는 부드러운 밥이 지어진다.


흥으로 한번, 맛으로 또 한번 

이러한 타고난 복(福)과 지역민의 노력은 이천쌀을 전국 제일의 상표로 만들어냈다. 이천쌀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전국 최초로 이천에서 생산되는 쌀에 ‘임금님표’라는 상표를 붙여 차별화했으며, 해마다 ‘이천쌀문화축제’를 열고 있는 것. 이는 올해에도 어김없이 열린다. ‘풍요의 땅, 생명의 씨앗’이라는 주제로 제10회 이천쌀문화축제가 오는 10월23일부터 26일까지 4일에 걸쳐 이천시에 위치한 설봉공원에서 진행된다. 알차게 여문 햅쌀을 직접 구입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벼가 나무에서 자라는지 땅에서 나는지 모르는 아이들과 쌀밥카페, 문화마당, 주막거리 등 전통 농경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자, 이제 이천쌀 좋은 것은 알았으니 직접 맛을 볼 차례. 이천에는 이미 이천쌀밥집이 이곳저곳 자리하고 있어 가끔 입맛이 없는 날 가족끼리 나들이 겸 찾기에 좋다. 특히 추수와 맞물린 이맘때 밥맛이 가장 좋은데 그 이유는 당연히 햅쌀 때문이다. 차지고 윤기가 흐르는 햅쌀밥에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끓어 오르는 구수한 된장찌개, 여기에 잘 익은 열무김치 한 사발만 있으면 비록 반찬 가짓수에서 초라한 밥상일지라도 입에는 벌써 군침이 돌기 마련. 하물며 이천의 어느 쌀밥집을 들어가든 인삼, 밤, 대추, 은행 등 대여섯 가지의 잡곡을 넣은 영양밥에 생선조림, 계란찜, 불고기, 계절나물 등이 곁들여 나오니 조선시대 임금님이 부럽지 않을 지경이다.
 www.ricefestival.or.kr 031-644-4121


달콤하고 알싸한 맛,
부발 쌀막걸리 & 단드레 한과

‘밥’ 먹으러 왔다고 해서, 이천까지 내려와 정말 밥만 먹고 가면 곤란하다. 한잔의 술로 오랜 시간 우리 정서를 보듬어 주던 막걸리와 입 안에서 살살 녹아드는 감칠맛이 일품인 한과까지. 쌀로 만든 먹거리가 이처럼 무궁무진할진대 어찌 밥 한 그릇에 만족할까.

그러고 보니, 어렸을 적엔 시골에 가면 딱히 먹을 게 없어 할머니 간식인 한과를 부지런히 먹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야 꿀처럼 달콤한 맛이 전부였지만 요즘엔 웰빙트렌드와 슬로푸드의 열풍에 맞춰 각종 특산물과 농산물을 접목한 한과들이 속속들이 눈에 띈다. 이천 ‘단드레 한과’ 역시 참깨, 흑임자, 찹쌀 등 직접 생산한 농산물과 이천의 특산물인 황기를 첨가한 것이 특징. 이천쌀의 차진 식감과 입에서 살살 녹는 맛에 자꾸만 손이 간다.

이천의 막걸리로는 ‘부발 쌀막걸리’를 단연 으뜸으로 친다. 전국 유통에 있어 필수인 장기 보존을 위한 화학처리와 열처리를 하지 않아 이곳 이천에서만 구입할 수 있으니 막걸리 애호가라면 꼭 챙겨 올 만하다. 단, 오래 두고 먹을 수 없으니 욕심부리지 말고 적당량만 구입할 것.

부발 쌀막걸리는 이무영, 이정근 부자가 운영하는 ‘부발양조장’에서 생산된다. 이무영 대표가 어린 나이에 이곳 양조장 종업원으로 들어간 것이 1962년이니 벌써 40여 년 전의 이야기. 어둑한 실내에 빛이 들자 양조장의 오랜 더께가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한 세월만큼이나 양조장은 낡은 모습이다. 하지만 햇볕이 들지 않아 서늘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실내는 후끈한 열기로 가득하다. 마침 양조장 한편에서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른 탓이다. 막걸리를 담그기 위한 술밥이 고슬고슬 지어지자 이내 술밥을 퍼내고 또 이를 뭉치지 않게 펼치는 이무영 사장의 손길이 분주해졌다.

“막걸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쌀 아니겠어? 우리는 이천에서 나는 쌀로만 만드니까 당연히 맛이 좋지. 입에 착착 감기는 것이, 맥주나 소주하고는 차원이 달라.”

혀에 닿기도 전에 시큼한 누룩내가 코끝을 자극하고 이어서 느껴지는 경쾌한 맛이라니. 누룩내 가득한 양조장인 탓일까. 분위기 좋은 주점에 앉아 푸짐한 안주 한 상 차려놓고 먹는 술자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맛과 운치가 느껴진다. 마른 멸치와 고추장, 그리고 낡은 외벽 사이로 스며든 청명한 바람을 안주 삼아 한잔 또 한잔을 기울이니, 시간도 시름도 한잔 술에 잊히는 오후다.
단드레한과 031-633-5898 www.2000ddl.com  부발양조장 031-632-5006




강추
휴식을 위한 공간, 이천 설봉공원

이천의 랜드마크, 설봉공원엔 볼거리가 많다. 특히 공원 한가운데 물길을 트고 앉은 설봉호가 인상적인데 끝이 보이지 않는 너른 수면과 잔잔함에 걷고 걸어도 지루하지가 않다. 이와 함께 공원 곳곳엔 38개국의 유명작가들의 조각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공원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무엇보다 설봉공원은 봄과 가을에 열리는 ‘이천도자기축제’와 ‘이천쌀문화축제’의 개최지로 유명하다. 그에 걸맞게 이천시립박물관과 이천세계도자센터 등을 상시 운영하고 있으니 꼭 축제 기간이 아니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찾아 놀이와 체험을 동시에 즐겨 보는 건 어떨까. 창경궁의 외관을 본따 지어진 이천시립박물관엔 향토유물실, 농업역사실, 기획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어 아이들의 학습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이천세계도자센터에는 전통 가마와 곰방대 가마, 도자기로 만들어진 미니공원 토야랜드와 다양한 놀이공간을 갖추고 있는 흙놀이공원 등 즐길 거리가 풍부하다. 이천시립박물관 031-644-2946~7 이천세계도자센터 031-631-6507 www.wocef.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