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지금 이 시간이 빛나는 이유① 노동, 공유"

2009-05-26     트래비



The Way They Were
체코, 지금 이 시간이 빛나는 이유



1988년 벨벳혁명을 거쳐 공산주의 국가에서 자유 민주주의로 정치 형태를 바꾼 체코. 이제 그들이 지난 시절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지나온 시절들을 되돌아보기까지 20년의 세월이란 어찌 보면 짧은 시간일 수도 있다. 아름다운 추억에 대한 떨리는 기억이든 고통스러운 일들에 대한 아픈 기억이든 어느 정도 빛 바랜 거리의 세월이 지나야만 그 모든 것들을 드러낼 수 있을 만큼 담담해지는 것인지.

글·사진  한윤경 기자   취재협조  체코관광청 www.czechtourism.com


그들은 체코가 중앙유럽에 속해 있다고 굳이 이야기하지만 내가 아는 한 체코는 동유럽 국가 중 하나이다. 이때 동유럽란 지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서유럽에 대립되는 지역군으로 자본주의 국가와 대비되는 공산 사회주의 국가들의 어둡고 무거운 이미지를 전파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랬던 동유럽이 1980년대 말, 구 소련에서 촉발된 자유와 개혁의 물결을 타고 하나둘 새로운 정치 체제로 탈바꿈하기 시작했으며 1988년 벨벳혁명을 통해 자유를 드높이 외쳤던 체코 또한 이러한 흐름을 타고 무력 충돌 없이 자유 민주주의로의 정치 변혁에 무사히 안착하게 된다.

그로부터 20년여의 세월이 흐른 지금, 유럽의 중세, 근세 및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어 온 체코가 지난 시간의 빛과 그림자를 넘어 공산주의 시절 지나온 발자취들을 오히려 관광거리로 소개하기에 이른다. 이런 작업이란 어쩌면 자신의 상채기를 잘 아물리고 그 시절들을 잘 극복한 자들에게만 가능한 수순이 아닐까.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혼돈 속에 정작 끝까지 빛나며 인류의 진보를 이끄는 것은 인간성의 존귀함과 자유로움에 대한 끝없는 갈망임을 알아 차리게 된다.


노동

●● 클라드노 Kladno

1561년부터 보헤미아 지방에서 중요한 산업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한 클라드노는 1842년부터 탄광 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1852년 철광맥이 발견됨에 따라 제철소 등 각종 공업이 활발하게 자리잡기 시작하고 1950년에는 신시가지도 건설된다. 이 지역은 노동 계층이 집중해 있기 때문인지 프롤레타리아 운동이 매우 활발했던 곳으로 1942년 나치가 친위대장 암살에 대한 보복의 일환으로 인근 리디체 마을 사람들을 몰살한 것도 이런 일련의 활동을 탄압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공산주의 붕괴 후 중공업 쇠퇴가 급속이 진행되었으나 프라하와의 근접성 덕분에 지역 경제는 비교적 안정적인 편이다. 프라하 북서쪽 20km 지점에 위치.

클라드노 Kladno
 
막장에 핀 들꽃만 아름답더냐 
마이라우 탄광 박물관


유난히 쾌청한 봄날의 햇빛이 가꾸지 않은 탄광의 마당 위로 아낌 없이 쏟아지고 그 위에 피어난 이름 모를 노란 들꽃들이 저절로 아지랑이를 피워 올린다. 어쩌면 이런 날은 그늘과 양지의 대비가 미친 듯이 더욱 선명한 법. 햇빛 쏟아지는 마당의 사랑스러움과 대비되어 한 켠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작업장의 녹슨 문짝과 작업대에서  쇠 냄새가 진동한다.  

탄광 박물관 입구 구조물의 망치 심볼은 광산의 심볼이기도 하지만 공산주의에서 망치 심볼이란 혁명의 주체인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상징하며 노동의 신성함을 의미하는 동시에 프롤레타리아 혁명시에는 혁명 과정을 수행하는 무기로서의 의미를 상징한다. 하지만 그 심볼과 거의 동시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신이여, 우리에게 은총을!’이라는 단순선명한 고딕체의 문구이다. 

누구라 막장의 노동 현장에서 생과 사를 오가는 매순간의 시간들을 오로지 망치와 인간의 의지에만 의존할 수 있었으랴. 더불어 한 켠에 자리한 2기의 소박한 매몰자 추모비가 이곳에서 울고 웃으며 땀 흘렸을 사람들을 생생하게 상기시킨다.

이곳 마이라우 탄광 박물관은(Miner’s Museum Mayrau) 1874년 채굴을 시작한 클라드노 지역의 전형적인 석탄광으로 클라드노 인근 비나리체(Vinarice)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채굴작업 전반과 광부들의 생활 등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역사적 희귀 전시품들을 고스란히 보관 전시하고 있으며 더불어 각종 설치 미술 등이 전시되고 각종 영화나 뮤직비디오 촬영, 음악회가 열리는 등, 대외적으로도 예술가들의 메시지 전달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장이 되고 있기도 하다.  

투어를 마친 사람들을 제복 입은 늙은 퇴임 광부가 자랑스러운 몸짓으로 맞이한다. 그의 몸짓은 노동 주체로서의 자부심 때문일까, 아니면 빛나던 젊은 시절에 대한 향기로운 기억 때문일까.
위치 273 07 Vinarice u Kladna  개관시간 월~일요일 오전 9시~오후 3시 매시 정각, 연중무휴  입장료 어른 40Kc, 어린이·학생·노인 20Kc  전화번호 312 273 067  홈페이지 mayrau.wz.cz


1 캄캄한 갱도를 들어갈 때 착용했던 개인용 조명기. 작업이 끝나고 선반에 조명기가 안 걸려 있다는 것은 곧바로 갱에서 일어났음직한 불길한 사고를 예감케 한다 2 박물관 뜰에는 흥미로운 설치 미술작품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3 광부들이 작업복을 건조시키기 위해 이용했던 장치로 천장에 가득 매달린 작업복과 소품들을 마주하는 순간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이 장소에서는 각종 영상물들이 촬영되기도 하고 유명 오케스트라의 연주회도 열린다고 4 자텍 맥주의 힘으로 가는 사이클 카‘슬라포힙’5 자텍의 호프는 자텍뿐 아니라 전세계로 수출되어 질 좋은 맥주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하고 있다 6, 7 자텍 시청 뒤편에 다리한 성모승천성당. 1340년대부터 건축된 이 성당은 그 모든 의미와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제단을 마주보고 좌편 발코니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초상이 그려져 있어 더욱 유명하다 8 자텍 호프 박물관은 19세기 말 지어진 건물로 실제 호프 창고로 쓰였던 곳이다. 햇살 드는 오래 된 전시실 내부와 전시물 9 시청 전망대에 서면 자텍의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자텍 Zatec
 
노동의 수고를 잊게 하는 맥주의 힘 
호프 박물관
 

아침의 쾌청한 공기를 가르고 자텍의 거리를 걷다 만난 광장은 시원하고 여유롭다. 광장과 알록달록 아름다운 색깔을 자랑하는 중세 건축 양식의 집들이 서로 스미듯 조화를 이루며 늘어서 있고 광장 초입의 기념탑과 마주한 듯 자리한 오래된 시청 건물이 전체적으로 시원한 풍경에 중심을 잡아 준다.

옹기종기 시청 앞에 서 있는 사람들 앞에 다가온 사이클 카는 동네를 한 바퀴 돌아 호프 박물관까지 데려다 주는 동네 투어 카 ‘슬라포힙(slapohyb)’. 단지 승객들이 직접 페달을 밟아 동력을 만들어야 움직인다. 즐겁고 색다른 발상에 냉큼 올라탄 승객들에게 힘 내라고 응원하며 쥐어 주는 건 자텍에서 생산되는 자텍 맥주다. 동시에 사이클 카 안은 환호성이 솟구치고 한잔 걸친 그 들썩이는 힘으로 차가 구르기 시작한다. 

자텍의 호프 박물관은 19세기 말에 지어진 건물로 실제로 호프 창고 및 공장으로 쓰였던 곳이다. 일견 낡고 초라해 보이는 건물은 전시물들을 따라 발걸음을 옮겨 놓을수록 호프 생산에 매진했던 그 시절의 향기를 절로 풍기고 낡고 두터운 벽, 창문을 통해 전시실 마루로 떨어지는 햇살은 들통 가득 들어 있는 호프의 풍요로운 맛을 가늠케 한다. 구석구석 낡은 냄새와 종종 보이는 마룻바닥의 구멍을 따라 호프 농사의 고됨을 좇아가는 관객의 상상력은 빠른 속도로 날개를 단다. 이곳 자텍 호프 박물관은 유럽 최대 규모의 호프 박물관으로 중세 초부터 발달했던 자텍 호프 산업 관련 전시물들을 낱낱이 살펴 볼 수 있다.  

박물관 관람이 끝나면 상영되는 영상은 청춘들의 호프 농장에서의 집단 노동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로맨스 등을 다루고 있다. 일목요연하게 예측 가능한 노동 예찬과 애정 예측도가 신파영화를 보듯 오히려 신선하고 즐겁다.
다시 슬라포힙을 타고 시청 앞에 모였다면 시청 전망대에 올라 자텍을 한눈에 내려다본다. 전망대에 서서 내려다보는 자텍의 풍경은 시원화통하게 머릿속을 비워 준다.

위치 438 01 Zatec  개관시간 5~10월/ 월~토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  입장료 50Kc  홈페이지 www.muz
eum.chmelarstvi.cz


●● 자텍 Zatec

자텍은 11세기에서 13세기 사이 중요한 종교 및 행정의 중심지로 부각된다. 거기에 더해 1004년 최초로 호프를 재배한 이래 그 풍요로운 토양과 기후 덕분에 16세기 자텍의 들과 정원은 온통 호프로 넘실거렸고 유명한 호프 생산지로 그 이름을 떨치게 된다. 자텍의 양조산업은 200년 공산정권 아래 투자 감소로 인해 한동안 어려운 시절을 보내지만 2001년 새로운 자본이 들어오면서 체코는 물론 전세계적 호프의 명산지로 이름을 드높이게 된다.
자텍은 호프 박물관 외에도 로마네스크 양식에서부터 아르누보 양식까지 다양한 건축 양식의 다채로운 건축물들이 눈길을 끄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공유

카를로비 바리 Karlovy Vary  

부조화를 치유하는 에너지 
카를로비 바리의 온천들

마을 초입에서 카를로비 바리 전용 셔틀버스를 타고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녹음 우거진 숲으로 둘러싸인 ‘치유의 마을’이 그 특유의 안온한 기운으로 성큼 다가든다. 테플라강이 도심 가운데를 흐르고 그 좌우로 온천 호텔과 다양한 레스토랑 및 기념품점, 성당과 박물관 등이 자리해 특유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향기로운 수목의 내음과 졸졸 흐르는 물 소리, 이리저리 거닐며 재미있는 모양의 온천수 시음 컵을 들고 여유롭게 온천수를 음미하는 사람들, 한가한 공원 벤치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해바라기를 하는 사람들. 모두 이곳이 내뿜는 치유와 휴식의 기운을 온전히 받고 있는 풍경이다. 

질 높은 휴식과 자연의 혜택도 작금에는 자본의 영향에 휘둘리기 마련이다. 체코가 자유 민주주의로 방향을 튼 이후, 이미 이 천혜의 온천지는 돈 많은 러시아 자본이 투자되고 있으며 방문객의 80% 이상이 체코 사람들보다는 외국 관광객들로 채워지고 있다고. 이곳의 아름다움과 그것에서 비롯된 부(富) 또한 이미 체코의 대중들을 떠나고 있는 듯 보인다.

16세기부터 의학적 효능이 인정된 카를로비 바리의 온천수는 42~72도에 이르는 온도에 탄산, 유황, 염분 등의 성분이 포함되어 있으며 특히 소화기 계통의 질환과 당뇨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질병 치료 목적으로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최근 방문객들의 선호에 맞춰 미용 스파 프로그램들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Lazne I     버스에서 내리면 처음 만나는 Spa I(Lazne I)은 1895년 건축된 것으로 황제의 소유였지만 오랜 세월 동안 쇠락의 길을 거듭해 그 섬세한 아름다운에 애잔함을 더한다. 카를로비 바리 국제영화제 기간 동안 댄스 파티 장소로도 이용되었다고.

Vridelni Kolonada      성 마리아 막달레나 성당과 함께 눈에 들어오는 브리델니 콜로나다(Vridelni Kolonada)는 뒤로 잡히는 성당의 건축 형태나 화사함과 대비되어 그 부조화가 극대화되어 보인다. 화사한 색조에, 아기자기한 아르누보 형식의 건축물들 사이로 떡 하니 자리잡은 회색빛 거대한 현대식 콘크리트 구조물은 1971년 지어진 공산정권 하의 건축물로 효용성을 떠나 그 시절의 대표 아이콘으로 부각된다. 건물 안에 지하 2,000~3,000m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천수가 지상 10~15m 위까지 치솟아 구경거리가 되어 주며, 1층에는 온천수를 받아 마실 수 있는 수도꼭지가 5군데 있어 돌아가며 마셔 볼 수도 있다.

Lazne V      요셉 1세 황제비의 이름을 따라 ‘엘리자베스 스파(Alzbetiny Lazne)’라고도 불리는 Spa V(Lazne V)는 1906년 오픈한 스파로 체코 전역을 통틀어 최대 규모의 스파 시설을 자랑한다. 이 지역 특유의 자연치유력을 극대화시킨 각종 트리트먼트 등, 치료에서 미용까지 다양한 스파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www.spa5.cz 




1, 4 카를로비 바리의 온천 중 일부에는 모양도 다채로운‘콜로나다’를 만들어놓아 눈요기도 겸한다 2, 3, 12 카를로비 바리의 청정 자연은 질 좋은 온천수와 더불어 몸과 마음의 치유를 유도한다 5, 10, 11 브리델니 콜로나다는 주변과 부조화스러워 보이지만 지상으로 치솟는 온천수와 음용할 수 있는 수도꼭지 등을 내부에 설치해 놓고 있어 흥미롭다 6, 7 대롱이 달린 온천수 전용 컵을 들고 다니며 온천수를 시음하는 재미가 있다 8 라즈네 I 9 체코 최대 규모의 라즈네 V‘ 엘리자베스 스파’

●● 카를로비 바리 Karlovy Vary

1349년 카를 4세가 발견했다. 하여 도시 이름도 ‘카를 왕의 온천’이라는 뜻의 카를로비 바리이다. 프라하에서 서쪽으로 130km 떨어진 체코 최고의 온천도시로 지역을 통털어 12개의 간헐천이 있다. 이곳을 자주 방문하여 온천을 즐겼던 유명인사들로는 베토벤, 브람스, 괴테 등이 있으며 러시아의 황제나 합스부르크 공국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관심도 지대했다고. 현재 연간 관광객만 900만명에 이른다.  

카를로비 바리는 올해로 44회 전통을 자랑하는 동유럽 최고의 영화제 ‘카를로비 바리 국제영화제(Karlovy Vary Film Festival)’ 개최지로도 유명한데 <박하사탕>이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고 41회 영화제 개막작으로 김기덕 감독의 <시간>이 선정된 바 있어 우리에겐 낯설지 않은 영화제이다. 올 영화제는 7월3일부터 11일까지 카를로비 바리 더멀 스파 호텔(Thermal Spa Hotel)에서 개최된다. 우리나라는 국제경쟁부문에 최민식 주연, 전수일 감독의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이 초청되어 참가할 예정이다.
카를로비 바리의 특산품으로는 150년 역사의  유리공예품 ‘모제(Moser)’와 체코인들이 애용하는 약용 술 ‘베체로브카(Becherovka)’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