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Norway 피오르드를 향한 문화 항해

2009-06-23     트래비


바이킹 뮤지엄에서 바라본 오슬로시 해안 풍경

Norway
피오르드를 향한  문화 항해

오슬로와 베르겐을 기점으로 하는 노르웨이 여행은 대부분 피오르드에 초점을 맞춘다. 풍경 여행은 자칫 대상과의 거리두기에 그치고 마는 반면 도시에서는 가까운 거리에서 사람과 문화를 만날 수 있다. 피오르드 해안선만큼이나 깊고 광활한 그들만의 문화적 풍경이 존재하는 것이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천소현  
취재협조  스칸디나비아관광청 www.stb-asia.com
                Innovation Norway 02-767-2650


노르웨이, 북으로 가는 길이다. 유럽의 북쪽, 되돌아보니 지금까지 내 여행의 최북단이다. 처음 만나는 북쪽 도시의 풍경은 오슬로(Oslo)에서 시작되었고, 그것은 여행자에게 자신의 위도와 경도를 끊임없이 자각하게 만드는 경험이기도 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밤 열시, 아직도 밝다. 새벽 5시, 이미 밝다. 5월의 노르웨이 남부는 밤 11시가 넘어야 어둠이 내려오고 새벽 4시가 되면 다시 해가 뜨기 시작한다. 막상 닥친 밤의 부재라는 상황은 예상보다 당황스러운 것이었고, 일주일 정도 이어진 여행의 후반에는 자못 심각하게 어둠이 그립기도 했다. ‘밤만 계속된다면?’, 혹은 ‘낮만 계속된다면?’ 이라는 ‘탐구생활형 질문’에 대해 아주 긴 답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노르웨이에서의 첫 밤을 채웠다.


Oslo
뜻밖의 만남들 오슬로
 

낮이 질릴 만큼 길었다고 해도 오슬로에서는 시간이 부족했다. 건축 사무소 스뇌헤타(Snøhetta), 조각가 구스타브 비겔란(Gustav Vigeland, 1869~1943),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1863~1944) 그리고 극작가 헨릭 입센(Henrik Ibsen, 1828~1906)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건축사무소 스뇌헤타 쪽에 마음이 가장 먼저 기울었던 것은 케틸 T 토르센(Kjetil Trædal Thorsen)이 설립자 겸 대표 건축가로 있는 이 노르웨이 건축회사가 230개의 경쟁사를 물리치고 설계한 ‘노르웨이 국립 오페라 & 발레 하우스’가 지난 5월 오슬로 항구에 오픈했기 때문이다. 건물 외벽을 통해 지상에서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열린 공간이 탄생하는 과정은 지난 5년 동안 비상한 관심을 모아 왔다. 실제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천장과 외벽은 외부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옥상까지 걸어 올라갈 수 있는 백색의 양탄자가 되어 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있었다. 하얀 대리석과 유리로 이루어진 건물은 마치 바다에서 솟아오른 듯했다. 

시민들은 지상에서 자전거를 타고 옥상까지 올라가기도 하고 건물 주변(엄밀히 말하면 위 아래를)을 산책하며 오슬로 항구의 경치를 감상했다. 건물 내부는 노르웨이 전통 선박 기술을 응용해 판자 형태의 나무를 불규칙하게 배열하는 방법으로 물결이 치는 듯 부드럽게 연출했다. 120년 만에 이뤄진 오슬로시의 오랜 숙원에는 5억 유로가 넘는 천문학적인 공사비가 들었지만 ‘마법의 양탄자’라는 별명을 지닌 노르웨이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손색이 없음을 증명하고 있다. 노르웨이 국립 오페라 & 발레 하우스는 올 초 브릿 인슈어런스 디자인 어워드 건축 부문 수상에 이어 5월 말에는 2009 미스 반데 로에 어워드에서 ‘EU 현대건축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1 오슬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5월 오픈한‘노르웨이 국립 오페라& 발레 하우스’ 2 바이킹 전통 복장은 입은 아기 3 바다에서 솟아오른 듯한 오페라하우스는 시민들의 산책 명소가 되었다


오페라 하우스를 벗어나 오슬로에서 가장 많은 인간 군상을 본 것은 조각가 비겔란의 조각 공원에서였다. 32만3,700㎡ 넓이의 공원 입구부터 양쪽으로 도열한 청동 조각상과 조각 분수를 감상하다 보면 공원의 가장 높은 곳에 시선을 멈추게 된다. 오벨리스크를 연상시키는 17.3m의 화강암 기둥에 121명의 나신이 등을 드러낸 채 엉켜 있는 작품은 비겔란의 최고 역작에 속한다. 그의 작품은 인생의 모든 욕망과 희로애락을 주제로 하고 있다. 해석을 감상자의 몫으로 돌리기 위해 어떤 작품 설명도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굳이 묻지 않아도 관람객들은 공원을 산책하며 650여 명의 나신들을 보는 동안 과거, 현재, 혹은 미래의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된다. 비겔란이 ‘일생’이라는 하나의 주제 아래 순간으로 지나가 버릴 생의 표면과 이면을 영원히 붙잡아두는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작품을 모두 구입해 공원을 조성키로 한 오슬로시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과 사 그리고 사랑이라는 인간의 굴레에 천착했던 것은 뭉크도 마찬가지였다. 뭉크 미술관(Munch Museum)에 소장되어 있는 1,100여 점의 유화와 판화본, 스케치들은 우울한 예술가의 내면을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다. 그 유명한 작품 <절규>에 대해 뭉크는 ‘딥 블루 피오르드(Deep blue fjord)’에서 들려오는 절규를 들었다고 했지만 비명은 언제나 내면의 메아리 같은 것이다. 자화상에 다름없는 <절규>에서는 잠들지 못하는 병약한 젊은 예술가의 고통이 보였다. 물론 그것은 어둠이 오래 머물지 않았던 5월의 노르웨이에서 겪은 나의 ‘불면’과도 관계가 있었을지 모른다.  

<인형의 집>과 <페르귄트>로 유명한 극작가 입센과의 만남은 예기지 않은 장소에서 이뤄졌다. 입센 뮤지엄까지 방문할 시간이 없어 호텔에서 멀지 않은 카를 요한 거리로 향했다. 오슬로에서 가장 번화한 이 거리의 랜드마크는 그랜드 호텔이다. 고풍스럽게 장식된 호텔을 둘러보고 카페로 내려오자 입센이 거기에 있었다. 그랜드 호텔 카페의 한 벽면을 가득 메운 벽화에는 뭉크를 포함한 유명인사들이 그려져 있고 단골이었던 입센도 당연히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의 지정석처럼 되어 버린 좌석을 안내하는 표지판에는 입센이 하루 두 차례 정확한 시간(낮 12시30분과 오후 6시)에 카페를 방문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시계를 맞출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커피 한잔의 여유도 없이 카페를 나오며 단순하고 규칙적인 삶에 대해서 아주 잠깐 생각했다.


4 바이킹의 항해 역사를 알 수 있는 콘-티키 박물관 5 뭉크 뮤지엄 6, 7 비겔란 공원은 오슬로 최고의 명소다 8 인생을 주제로 한비겔란의 조각 작품들 9 나무조각을 이어붙여 파도를 형상화한 오페라 하우스 내부 10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장소로 유명한 오슬로 시청 11 유려한 곡선이 매혹적인 바이킹 선박


 Oslo tour info

바이킹 박물관 Viking Ship Museum  원형 그대로 전시된 3척의 바이킹 보트는 왕실 무덤에서 함께 발굴된 것으로 1,1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 보존 상태가 우수하다. 30번 버스 이용. 입장료는 성인 50NOK. www.khm.uio.no.  

프람 박물관 The Polar Ship Fram  중앙 홀을 가득 메우고 있는 보트 프람은 세계에서 가장 길이가 긴 목재 보트로 난센, 아문센 등의 탐험가를 태우고 지구의 남단과 북단으로 떠났던 바로 그 배의 실물이다. 30번 버스와 91번 페리 이용. 입장료는 성인 50NOK. www.fram.museum.no  

콘-티키 박물관 Kon-Tiki Museum  세계적인 모험가 하이에르달의 뗏목 콘티키 호의 실물 외에도 여러 가지 항해 관련 전시물을 볼 수 있다. 30번 버스와 91번 페리 이용. 입장료는 성인 60NOK. www.kon-tiki.no 

뭉크 박물관 Munch Museum  표현주의 화가 뭉크가 오슬로시에 남긴 작품들은 <절규>를 포함한 중요 그림과 판화, 드로잉 등 다양하다. 20번 버스 이용. 입장료는 성인 75NOK. www.munch.museum.no 

입센 박물관 Ibsen Museum   입센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 그가 10년 가까이 거주했던 아파트를 개조해 박물관을 오픈했다. 뮤지엄 앞 거리에는 그의 작품에 나오는 구절들이 아스팔트 위에 새겨져 있다. 오슬로역에서 도보로 20분. 입장료는 성인 70NOK. www.ibsenmuseet.no 

오슬로 패스 Oslo Pass   33개 박물관과 어트랙션에서 사용할 수 있으며 무료 주차권, 교통 승차권 등으로 사용할 수 있다. 24시간 95NOK, 48시간 115NOK, 72시간 150NOK.


Norway in  a Nutsell

‘딥 블루 피오르드’를 향해
  노르웨이 인 어 넛셸

다음날 오전 8시쯤 오슬로를 떠나 ‘딥 블루 피오르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노르웨이 알짜배기 여행쯤 되는 ‘노르웨이 인 어 넛셸 Norway in a Nutshell’이라는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것인데 이 여행의 매력은 해발 1,222m까지 상승하는 유럽에서 가장 가파른 철길과 가장 좁은 피오르드 협곡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기차 멀미로 오전의 풍경을 놓쳐 버렸지만 다행히 하이라이트는 뮈르달(Myrdal)역에 도착해 산악열차 플롬스바나(Flamsbana)로 갈아탄 이후 플롬(Flam)에 도착하기까지 한 시간 동안에 집중되어 있다. 롤러코스터만큼은 아니지만 가파른 철길을 달리는 열차는 코너를 돌 때마다 새로운 장면들을 펼쳐놓아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게 만든다.

좌우의 풍경을 따라잡기 위해 여행작가들은 좌충우돌의 순발력을 발휘해야 했다. 최고의 감상 포인트인 쇼스폭포(Kjosfossen) 앞에서 기차가 잠시 섰을 때 가장 먼저 밖으로 달려 나간 자들도 그들이다. 그것은 전문가용 카메라를 지닌 자들의 비애일지도 모른다. 기차가 20개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풍경이 암전될 때마다 나는 한 청년을 훔쳐보곤 했다. 결국은 스쳐갈 경치에 연연하지 않고 오후의 햇살과 졸음에 순응하는 그의 고요한 시간에 편승하는 방법이 돋보였다.

플롬에 내려 구드방겐(Gudvangen)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는 동안만큼은 모두들 긴장을 내려놓는다. 역사를 중심으로 박물관,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 몇 개가 전부인 이 작은 마을은 호수를 향해 편안하게 자리를 틀었다. 여행자들이 벤치를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신발을 벗어 넣고 책을 읽거나 윗옷을 벗고 일광욕을 즐기는 느긋한 오후의 한때가 서행하고 있었다. 그런 평화를 시기하듯 보트는 순식간에 사람들을 쓸어 모아 세계에서 가장 좁은 피오르드 구간에 속하는 ‘내뢰이 피오르드(Nærøyfjorden)’ 사이를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빙하가 훑고 간 바닥의 깊이를 짐작하는 방법은 산의 높이를 보는 것이다.

산이 높으면 바닥이 깊다고 했는데 구드방겐 주변의 가파른 산은 높이가 1,800m나 되는 곳도 있다. 정상의 호수에서 떨어지는 폭포 줄기들은 하나하나 명명하기가 불가능해서 무명의 설움을 겪고 있다. 가파른 해안선의 발치에 가만히 들어앉은 작은 마을들의 풍광은 한없이 고즈넉하다. 그 경치에 취해 있는 것은 잠시, 배 여행에는 순서가 있다. 바다의 경치에 흠뻑 시선을 빼앗기다 조금 지겨워지면 갈매기에게 과자를 먹이려 애쓰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그 다음엔 찬바람을 피해 실내로 내려와 간식을 챙겨 먹는다. 노르웨이의 보트 안에서는 달콤한 와플과 팬케이크 모양의 스낵인 쇨레(Svele), 그리고 컵라면 ‘미스터 리’를 먹었다.

‘미스터 리’는 노르웨이에서 라면을 대중화시킨 한국인 김철호씨의 애칭이자 노르웨이에서는 라면의 대명사로도 통용된다. 한국전 때 부상을 입은 그는 노르웨이로 건너가 수술로 목숨을 구했고 갖가지 고생 끝에 지금은 ‘라면 킹’으로 추앙받을 정도로 성공한 스타 기업가가 되었다. ‘미스터 리’의 훈훈한 이야기와 따뜻한 국물로 속을 채우고 다시 상판으로 올라가 피오르드 유람의 마지막 부분을 감상하다 보니 드디어 구드방겐에 도착했다. 

하룻밤을 묵게 될 보스(Voss)까지는 다시 버스를 타야 했다. 꼬불꼬불, 아슬아슬한 협곡을 달려 버스가 승객들을 토해 놓은 작은 마을은 호텔이 단 3개인 피오르드 해안 마을이다. 송네피요르드와 하당게르 피요르드 중간의 교통의 중심지로, 오슬로와 베르겐 구간에서 하룻밤 묵어 가기 가장 좋은 마을이 이곳 보스다. 3개의 호텔 중에서 가장 유서 깊은 호텔 ‘플레이셔 호텔(Fleischers’ hotel)’에서 노르웨이 전통주 아케비트(Akevitt)를 곁들여 저녁식사를 하고 다음날 아침에 피오르드 해안을 따라 천천히 산책을 한다.

5월이지만 산 정상부에는 아직도 눈이 쌓여 있다. 보스는 노르웨이 최대 규모의 알파인 스키 슬로프와 케이블카가 있는 곳이다. 마을 인근에 위치한 3개의 스키장에서는 일 년 내내, 한여름에도 스키를 탈 수 있다. 세계적인 스키어들이 탄생할 만한 조건이다. 미모의 스포츠 스타 50명에 선정되기도 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카리 트라(Kari Traas)가 오픈한 의류 매장도 보스에 있다.

1991년 모글 스키 월드컵에서 2위를, 1988년 올림픽 예선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던 한스 엔젤센 에이데(Hans Engelsen Eide)가 파트너로 매장 운영에 관여하고 있었다. 이 세계적인 스키 선수를 몰라주자 답답했는지 한스는 지금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 스타가 누구냐고 물어보더니, 카리는 노르웨이의 ‘김연아’라고 비유했다. 카리 선수는 대회 참가를 위해 전세계를 여행하면서 이동 중에 손뜨개로 털모자를 짜는 취미를 가졌었는데 그것이 의류사업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고. 지금도 그녀가 직접 제작한 털모자의 판매 수입은 자선기금으로 사용된다.


1 20개 터널을 뚫고 달리는 플롬 열차는 수많은 폭포와 외진 마을들을 보여 준다 2 고풍스러운 멋을 풍기는 보스의 플레이셔 호텔 3 내뢰이 피오르드를 지나는 유람선 위 4 플롬은 기차역과 선착장이 마주보고 있는 평화스러운 마을이다 5 잠깐식 멈추는 기차역에는 만남과 헤어짐이 공존한다 6 기차역 앞에서 보트를 기다리는 한가로운 시절 7 세계에서 가장 좁은 피오르드 구간을 지나 도착하는 구드방겐 8 피오르드 절벽이 높으면 그만큼 바닷속이 깊다는 뜻이다. 수심이 1,000m가 넘는 구간도 있다


 Nutsell tour info

노르웨이 인 어 넛쉘 Norway in a Nutsell  노르웨이를 여행하는 가장 대중적인 라운드 여행 방법이다. 오슬로와 베르겐 사이의 철도 여행, 플롬 기차 여행, 피오르드 크루즈 등을 포함하는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플롬 열차는 여름에는 하루 10회, 겨울에는 4회 운행한다. 베르겐에서 보스, 구드방겐까지 라운드 여행을 할 경우 가격은 성인 935NOK. 

내뢰위 피오르드 Nærøy fjord  구드방겐에서부터 시작하는 피오르드 구간은 세계에서 가장 좁은 피오르드 구간으로 유네스코에서 세계유산으로 지정했다. 길게 이어진 위압적인 절벽 사이를 통과하며 가까이에서 감상하는 느낌이 색다르다. 




Bergen
옛 수도의 영광 베르겐 



유네스코세계유산 도시인 베르겐(Bergen)은 스스로 자랑을 멈추지 않는 도시다. 12~13세기에 유효했던 노르웨이 수도의 지위는 사라진 지 오래됐지만 한자(Hansa)동맹시대부터 내려온 도시의 부와 유산들은 아직도 생생하다. 잘 단장된 항구부터 뒷골목까지, 도시의 구석구석을 거니는 동안 부러움 섞인 감탄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부둣가라는 뜻의 브뤼겐(Bryggen)은 베르겐을 유명하게 만든 유네스코문화유산이다. 독일에서 온 한자동맹 상인들의 거주했던 이 지역은 베르겐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 구획을 이루고 있다. 중세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에 한자동맹이 확대되면서 베르겐은 1360년 북유럽 무역에서 거점이 될 한자동맹 도시가 되었다. 사무 공간과 거주 공간이 혼재하고 여러 채의 집이 뒤쪽으로 계속 연결되어 커다란 유니트를 이루는 특이한 가옥 구조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 준다. 1702년 대화재로 많은 건물이 소실되었지만 세심한 재건 정책으로 도시의 아름다움은 전혀 훼손되지 않았다. 브뤼겐은 역사 속에 머물지 않고 상점이나 예술가들의 작업실로 사용되어 활기를 이어가고 있다. 

베르겐이 특히 사랑스러운 점은 도시에서 간단하게 접근할 수 있는 산이 7개나 있다는 것이다. 쉬운 등산로와 정상으로 이어지는 케이블카 그리고 그 정상의 송신탑이나 레스토랑, 야외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기막힌 풍경까지 대도시의 산이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320m에 불과한 플뢰이엔(Fløien) 산 정상까지는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는 케이블 열차로 올라가고 이보다 높은 해발 643m의 울르리켄(Ulriken) 산 정상까지는 하늘을 나는 케이블카가 연결되어 있다. 마천루(Sky Skraperen)라는 이름으로 5월1일 새로 오픈한 레스토랑에서 기포 하나하나가 푸른 하늘을 담아내는 샴페인을 마시는 기분은 그야말로 ‘정상급’이다. 낮에는 간단한 요리를 판매하고 저녁에는 예약제로 3~4코스 정찬을 제공한다.

등산객들을 위한 샤워시설을 무료로 제공하기도 한다. 노르웨이만의 특이한 이벤트라면 야간 아닌 야간에 벌어지는 등반대회다. 초여름, 자정을 전후한 몇 시간을 제외하고 밤이 대낮처럼 밝은 시절이 되면 사람들은 저녁상을 느긋하게 물리고 울르리켄에서 시작해 플뢰이엔으로 내려가는 5시간 야간 산행을 즐기곤 한다. 

그리고 그리그(1843~1907). 베르겐에는 <페르귄트 조곡(Peer Gynt Suite)>의 그리그가 있다. 열여섯 살의 어느 봄날, 라디오에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이라는 말을 듣고 ‘솔베이그의 노래’가 있는 앨범을 구했다. 그리고 그 해가 다갈 때까지 수백 번 거듭해서 들었던 것 같다. 베르겐에서 시간이 부족해 일행이 그리그의 작업실은 먼발치에서 지나치고 빅토리아 건축양식의 하얀 생가만 어슬렁거리다 급히 버스로 돌아가기 시작하자 나는 뛰기 시작했다. 마치 100m 달리기를 하듯 바닷가 가파른 언덕 아래 고독하게 서 있는 그리그의 작업실로 돌진했고 발뒤꿈치를 바짝 들고 유리창에 코를 뭉개며 내부를 조금이라도 더 봐두려 애를 썼다. 바다를 향해 난 창문 앞에는 그가 작곡을 하던 테이블이 있었고 잉크로 눌러 쓴 음표들이 색 바랜 악보 위에 흩어져 있었다. 나는 그것이 슬픈 음악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리그가 작곡을 위해 사람들이 찾기 어려운 외딴 바닷가에 작업실을 마련한 것처럼 어른이 되면 슬픔과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인생의 많은 순간은 저절로 슬픔으로 채워지지 않던가.

하지만 노르웨이의 기나긴 낮 시간을 항해하는 동안에도 밤이 다가올 것임을 예측할 수 있는 것처럼, 인생에는 영원한 양지나 음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노르웨이의 예술가들은 알았던 것 같다. 그들은 복잡하게 구부러진 피오르드에서 인생을 보았다.


1 베르겐은 7개의 산으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도시다 2 울르리텐산 정상에서 마시는 샴페인 한잔 3, 4 화재에도 불구하고 잘 보존된 브뤼겐의 오래된 목조 가옥들은 한자동맹 상인들이 거주하던 곳이다 5 그리그의 동상과 바닷가의 작업실 6 노르웨이 주택의 지붕은 겨울에 눈을 흘려 보내기 위해 뽀족하다


 Bergen tour info

성 마리아 교회 St. Mary’s Church  850년 전 세워진 로마네스크 스타일의 건물은 1408~1766까지 한자동맹 상인들을 위한 교회로 사용되었으며 베르겐시에서 현재 사용 중인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다. +47 55 31 59 60   

에드바르트 그리그 뮤지엄 Edvard Grieg Museum   노르웨이의 가장 유명한 작곡가 그리그가 22년간 살았던 집과 인근의 바닷가 작업실이 베르겐 도심에서 남쪽으로 8km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그의 동상과 무덤이 있으며 여름에는 음악회가 개최된다.
www.troldhaugen.com 

올드 베르겐 Old Bergen  18~19세기에 만들어진 목재 가옥을 가꾸고 밝은 페인트로 단장해 항상 새 집처럼 유지하는 일은 베르겐 구시가지 주민들의 자존심을 건 책무다. 시각적인 쾌감을 만끽하며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새 40여 채의 가옥이 밀집되어 있는 올드 베르겐 뮤지엄에 들어서게 된다. 건물 내부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가이드 투어(50NOK)에 참가해야 한다.
www.bymuseet.no 

베르겐 카드 Bergen Card  도심 지역에서의 버스 탑승과 주요 박물관, 어트랙션에서 입장권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쇼핑이나 주차 할인을 받을 수 있다. 24시간 190NOK, 48시간 250N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