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쟁이 남경읍의 뜨거운 삶과 소박한 여행 이야기

2010-07-26     트래비




뮤지컬쟁이 남경읍의
뜨거운 삶과 소박한 여행 이야기

조승우, 박건형, 오만석, 소유진, 이하나, 황정민 등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국내 1세대 뮤지컬 배우 남경읍의 제자라는 점이다. 데뷔 32주년을 맞은 남경읍은 여전히 뜨겁고 에너제틱한 우리나라 대표 뮤지컬 배우이자, 27년간 수많은 뮤지컬 배우들을 양성해 온 교육자다. 그런 그가 책을 한 권 내 놓았다. 학창시절과 배우시절의 이야기와 후학을 양성하며 느낀 점을 솔직하게 담은 그의 책 속에서, 배우 남경읍의 뮤지컬에 대한 큰 열정과 여행에 대한 작은 열망을 발견했다. 

글·사진  김영미 기자

‘뮤지컬쟁이’를 이야기하다

남경읍은 ‘뮤지컬쟁이’다. 서울예대를 졸업하고 서울시립가무단 1기로 뮤지컬계에 데뷔한 그는 지난 32년간 연극, 뮤지컬, 무용공연, 영화 등 145편에 출연했고 여전히 필모그래피를 한줄한줄 채우고 있다. 또 남뮤지컬아카데미의 원장과 계원예고의 강사 등으로 활동하며 뮤지컬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남경읍이 국내 뮤지컬계에서 차지하는 무게는 지난 2008년 있었던 남경읍 뮤지컬 인생 30주년 콘서트 <I am 남 Sam>에서도 명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남경읍의 제자인 조승우, 황정민, 이하나, 소유진, 박건형, 이율, 최재웅 등 유명 배우들이 자발적으로 참가해 특별한 무대를 만든 것이다. 

국내 대표 뮤지컬쟁이 남경읍이 자서전 <쟁이>를 출간했다. 아직은 자서전을 쓸 때가 아니라 발을 뺐지만, KBS <아침마당>에서 들려준 남경읍의 이야기에 깊은 인상을 받은 출판사 대표는 그의 인생을 책으로 발간해 후배들에게 읽게 하자고 종용했다. 결국 엮이게 된 그의 책 속에는 그의 파란만장했던 학창시절과 형설지공을 몸소 체험하며 연습하던 청춘시절의 이야기, 뮤지컬 배우이자 선생님으로서 느낀 30년의 소회가 담겨 있다. 마치 선배가 아끼는 후배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진솔하게 이야기해 주는 것 같다. 남경읍은 “일생 동안에 책을 한 권이라도 쓸 사람은 아마 1%도 안 될 것 같은데 그 안에 내가 들었다는 게 굉장히 뿌듯하고 대견스럽다. 한편으로는 나의 모든 게 까발려지니까 창피스럽기도 하다”고 자서전 출간 소감을 밝혔다. 

쉼 없는 무대가 에너지의 원천

타고난 일복을 자랑이라도 하듯, 남경읍의 스케줄러에는 빈 칸이 없다. 연습, 공연, 강의 그리고 또 연습으로 하루하루가 빼곡하다. 쉬는 날에도 집 청소를 하든 무엇을 하든 몸을 움직이고야 만다니, 체력이 남아날까. “휴식으로 에너지가 재충전된다면 쉬어야 하겠지만, 나는 천성 자체가 일을 하면서 재충전하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일하면서 스트레스가 풀리는 편이니까요.” 그의 이런 성격은 어쩌면 뮤지컬 배우라는 그의 업(業)에서 기인했을지도 모른다. 뮤지컬 배우는 연기와 노래, 춤을 모두 소화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연극 분야에서 하루 평균 6시간 연습한다고 치면, 우리도 6시간을 연습하면 안 돼요. 그러면 연극인들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최소한 연기도 6시간, 노래도 6시간, 춤도 6시간을 연습해야만 각광을 받을 수 있어요.” 뮤지컬 배우는 모든 예능적인 감각을 타고난 ‘특이 종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보다 몇 곱절 열심히 실력을 갈고 닦은 노력파였던 것이다. 

사실 남경읍은 뮤지컬을 포기할 뻔했었다. 1985년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코러스라인>의 ‘I can do that’이라는 장면을 보고 기가 질려, 브로드웨이와 한국 뮤지컬의 어마어마한 격차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문제작’ 뮤지컬 <코러스라인>의 한국 공연이 한창이다. 그 무대에 남경읍은 주연으로 서게 됐다. 자신을 슬럼프에 빠뜨렸던 공연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그렇기에 뜻깊은 이번 무대는 8월22일까지 코엑스아티움에서 계속된다.

지난 5~6월 공연한 연극 <레인맨>은 남경읍의 연기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될 만한 작품이었다. “천재 자폐아를 연기하는 게 너무 힘들었지만, 연극을 마친 후 무지막지하게 어려운 고비를 넘겼으니까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어요. 항상 뜨겁게 살아 왔지만 내가 아직도 살아 있고, 더 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돼 나 자신을 믿는 계기가 됐습니다.” 남경읍은 여전히 좀더 좋은 배우가 되기를 꿈꾼다. “춤, 노래,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좋은 배우가 아니라, 작가와 작품이 원하는 것을 모두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좋은 배우”라고 설명하는 그는 배우는 인간을 표현하기 때문에 인간과 연관된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연기에 대한 책뿐 아니라, 시사, 교양, 철학, 국어 등 모든 분야를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이 쉴 틈이 없다고.

경북 문경군 문경읍의 남경읍

경상북도 문경군 문경읍에서 태어난 남경읍의 학창시절은 여느 사람들보다 이채롭다. 그는 문경에서 소문난 악동이었다. 청산가리와 탄광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해 위험한 물고기 잡이를 하기도 하고, 초등학교 시절 당구 150을 자랑하기도 했으며, 급우를 꼬드겨 시험지를 빼돌렸다가 혼쭐이 나기도 했다. 동네 아이들과 연극놀이를 하고, 녹음기를 이용해 성우놀이를 하는 등 뮤지컬 배우로서의 끼를 드러내기도 했다. ‘문경의 압구정’에서 돈 걱정 없이 부유하게 살던 그였지만,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빚쟁이에 쫓기다시피 서울 단칸방으로 이사했다. 때문에 레슨비가 드는 성악과 대신 맨몸으로 부딪힐 수 있는 연극과를 지원하게 됐고, 그는 ‘연습벌레’라는 별명을 얻는 각고의 노력 끝에 오늘에 이르렀다. 마치 청춘의 어려웠던 환경과 그로 인한 선택 역시 정해진 운명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완벽한 모습으로 관객 앞에 서기 위해 숨 돌릴 틈 없이 질주하던 그는 약 25년 간 고향에 가지 못했다. 그러다 10여 년 전 초등학교 사은회를 계기로 고향을 찾게 됐고, 이후로는 고향 문경에 적어도 1년에 한 번씩은 다녀온다. “문경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입니다. 문경 북쪽에 있는 주흘산은 철광석으로 이뤄졌는데 동쪽에서 해가 뜨면 빛이 반사돼 문경 읍내로 비춰져요. 저는 힘들 때면 문경을 찾아 산을 바라보며 정기를 얻습니다. 고향은 마음의 휴식처죠.” 스스로를 ‘주흘산의 정기를 받은 사람’이라고 칭하는 그의 어투에 고향에 대한 자부심과 애틋함이 적잖이 묻어났다.

남경읍만의 느릿느릿 국도 여행법

남경읍은 자연과 여행을 좋아하지만 아쉽게도 그것들을 여유롭게 즐길 시간이 없다. 때문에 그의 여행법은 다소 독특하다. 지방에 갈 때 고속도로 대신 국도를 이용하는 것이다. 가까운 길을 놔두고 휘휘 에둘러 가는 것이다. 지난번엔 서울서 김해까지 가는 데 꼬박 1박2일이 걸렸다.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5시간이면 충분히 가는 김해에, 영동과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문경에 갔다가 주흘산의 에너지를 흡수하고 친구들과 소주 한잔 하고 하룻밤 묵고는이튿날 영주에 들렀다가 아버지의 고향인 봉화를 찍고 울진에 가서 동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포항과 부산을 거쳐 도착했다. “자주 그래요. 지방으로 공연이나 특강을 나갈 일이 있으면 오히려 반갑죠. 코스를 미리 정해 놓고 국도로 떠나는 겁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혼자 운전하죠. 김해까지 1박2일에 걸쳐서 가는 내 습성을 좋아할 매니저가 아무도 없기 때문에 매니저를 구할 수가 없어요. 하하”

섭씨 1,000만도의 뜨거움을 간직한 배우

남경읍의 꿈은 참 그답다. 그는 ‘뮤지컬촌’의 촌장이 되길 꿈꾼다. “거창한 꿈이 절대 아니고요, 서울 근교에 땅을 구해 놓고 가꾸는 거죠. 내가 살아오면서 만났던 사람들과 함께 소주 한잔 하면서 옛날이야기를 나누는 쉴 곳을 만드는 거죠. 그러다가 가끔 야외 공연장에서 공연도 하고, 무대를 빌려주기도 하고요.” 생각만 해도 근사한 꿈이다. 그는 요즘 뮤지컬촌을 조성하는 데 참고하면 좋을 것들을 사진으로 찍으며 꿈을 차곡차곡 담아 두는 중이다. 

청년들에게 인생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을 물으니 뜬금없이 우주 이야기를 한다. “태양은 태양계에서 유일하게 스스로 빛을 발하는 별이에요. 목성 역시 태양과 똑같이 수소로 이뤄졌는데 왜 스스로 빛을 발하지 못할까요? 태양의 중심 온도는 섭씨 1,000만도를 넘지만, 목성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분야나 어려운 건 마찬가지예요. 똑같이 힘들죠. 가장 중요한 건 뜨거워야 한다는 것. 내 마음의 에너지가 1,000만도 이상이 돼야 스스로 빛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물론 더 중요한 건 그 뜨거움이 변치 않는 것이고요.” 그의 마음에 끊임없이 불을 당겨 주는 80세 할아버지 피아니스트 이야기처럼, 그의 이야기 역시 누군가의 마음에 뜨거움을 불어넣어 주기를 기대해 본다.


" 외국의 80세 할아버지 피아니스트의 공연장에 어떤 기자가 휴식시간에 인터뷰를 하기 위해 대기실에 들렀는데, 그 짧은 시간을 이용해서 연습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 피아니스트를 발견했다. 기자가 그 할아버지에게 “75년 동안 피아노를 연주하셨는데 또 연습을 하시냐?”고 물었더니 할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수줍은 듯이 “지금도 조금씩 느는 것 같애!”라고 말했다는 기사를 읽고 난 후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예술가의 자세이며, 이것은 조금은 교만해 있던 나에게 신이 계시로 인도하신 것이라 생각했다.
                                 - 남경읍 <쟁이> 중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