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男子, 그 女子] 제주로 날아간 외계인"

2011-05-11     트래비



그 男子, 그 女子  제주로 날아간 외계인

기획 연재 인터뷰 <그 男子, 그 女子>
<트래비>가 새롭게 시작하는 기획 연재 인터뷰 <그 男子, 그 女子>는 여행과 문화, 여행과 인생이 서로 통섭하는 시대에 대한 기록입니다. 여행이 영감이 되어 삶이 바뀐 사람들, 혹은 일상에서 영감을 얻어 여행문화를 바꾸려는 사람들, 혹은 여행보다 소중한 일상의 가치를 발견한 그 男女, 그 女女, 그 男男들의 찡하고, 유쾌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글·사진  천소현 기자 

제주는 섬이다. 아니다. 행성이다. 반도의 끄트머리에서 새하얀 부표처럼 출렁거리는 섬은 얼마나 완전하고 아름다운가. 보름달이 뜬 밤마다 늑대인간이 구슬픈 애가(愛歌)를 바치듯 육지라는 외계의 사람들은 제주를 향해 구애의 모르스 부호를 보내고 있다. 제주는 가도 가도 질리지 않아서, 결국은 ‘살아보기’를 꿈꾸게 되는, 미래 정착지 후보 1순위다. 물론, 제주에 먼저 가 닻을 내린 외계인들이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처녀 아일링(웡 오일랑), 미확인 행성에서 날아온 것이 분명한 만화가 메가쑈킹(고필헌), 두 사람이 그러했다. 제주에서 각자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그들은 반짝이는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곁에는 ‘아름다운 불시착’을 꿈꾸며 자전하고 공전하는 또 다른 외계인들이 있었다. 유유상종이라 했나, 함께 써 가는 제주 정착기, 매일밤 동네 마트의 제주 막걸리를 품절시켜 가며 그들이 기록하고 있는 이야기는 이러하다.  


그 男子

게스트하우스를 그리는 남자 메가쑈킹 고필헌
쫄깃한 지분을 나눠 드립니다

제주 쫄깃쎈타
주소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1689-1
트위터 메가쑈킹 @animaiko

"다양한 사상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면서 거대한 가족을 이루고 싶어요. 새로운 의미의 ‘가족’이죠. 쫄깃쎈타가 그런 사람들에게 제주의 허브가 되면 좋겠어요. 캐릭터 티셔츠를 사주신 분들, 간식을 들고 방문해주신 분들은 물론, 관심을 가져주시는 모든 분들이 정신적 지분을 갖는 장소로 만들고 싶어요. "

메가쑈킹(만화가 고필헌, 38세)은 몰라볼 만큼 야위어 있었다.  2007년 자전거로 두달간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스위스 걷기 여행, 일본 걷기 여행 등으로 ‘늦게 배운 여행’의 재미에 흠뻑 빠져 있던 그는 <트래비>의 지난 인터뷰를 통해서 구면이었다. 안구에 습기가 맺힌다는, 이른바 ‘안습’이라는 유행어를 만든 그가 요즘 ‘프로트위터리언’으로서 트위터에서 밀고 있는 용어는 ‘쫄깃’이다. 뭐라 꼭 집어 말할 수 없지만 ‘쫄깃’을 외치면 근심이 사라지고, 유쾌해지는 듯한 느낌. 그가 지금 제주도에서 손수 벽돌을 쌓으며 올리고 있는 ‘쫄깃쎈타’도 그런 곳이다. 게스트하우스라기보다는 문화터라는 이름으로, 그는 의뭉스러운 아지트 하나를 마련하고 있었다. 

수년 전 올레길을 걷고 난 뒤 제주 정착을 꿈꾸기 시작했던 그는 친동생 GS워너니(고원헌), 후배 만화가(강민석) 등과 함께 쫄깃쎈타를 구상하며 지난해 10월부터 제주생활을 시작했다. 슬렁슬렁 겨울을 보내고 나서 메가쏘킹은 트위터를 통해 이른바 ‘쫄깃 패밀리(줄여서 쫄패)’들을 모집했다. 한 달 동안 함께 숙식하며 쫄깃쎈타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그들에게 돌아가는 유형의 댓가는 쫄깃쎈타 평생 무료이용권뿐이지만 하루 만에 수백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면접도 없이 오로지 전화 목소리만으로 선발된 박준석, 이윤석, 이효준, 오민기, 윤영현씨가 합류한 것이 2월 말의 일이다. 

쫄깃 패밀리의 여덟 남자 외에도 이들의 움직임을 애정 어린 눈길로 봐라보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메가쑈킹의 트위터(@animaiko)와 이효준씨의 블로그를 통해 그 모든 과정과 소소한 일상을 생중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가쏘킹 만화의 팬들도 있지만 그냥 지나가던 여행자, 혹은 제주 사람들이 생면부지의 그들을 위해 ‘양손 무겁게’ 간식을 들고 공사 현장을 찾아온다. 낯선 사람들이 금세 친구가 되고, 가진 것을 나눈다. 너무나 이상적이어서 비현실적인 일들이 이곳에서는 흔한 풍경이 된 것이다. 협제 앞바다에서 보이는 비양도의 풍경도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 5월 오픈이 예정되어 있는 쫄깃쎈타 오픈까지, 혹은 그 이후에도 작은 기적들이 계속될 것이 분명했다. 26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쫄깃쎈타는 영화를 상영하거나 작은 이벤트를 열 수 있는 지하다목적실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 자신의 미래를 만화가로만 한정하지 않는 메가쑈킹은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해보고 싶은 일이 무궁무진하다. 수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다.  

마지막까지 그는 별종이었다. 서울로 돌아온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밤 그는 스마트폰 메신저에서 무려 169명에게 그룹채팅으로 말을 걸었다. “제주에 놀러 오세요.” 테러 수준의 채팅이었지만 메가쑈킹이기에 가능한 그 익살에 그날밤 169명이 10초간 웃었다. 그리고 그 순간 12명의 사람들이 제주 방문을 결심했다. 적어도 28명은 제주에 가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나를 포함하는 숫자다. 나에게도 쫄깃쎈타의 정신적인 지분이 생겼다.  



1 한번은 창틀을 거꾸로 다는 바람에 다시 뒤집어야 했다. 직접 시멘트를 발라가며 쫄깃쎈타를 만드는 재미가 여덟 남자를 단단하게 뭉치게 한다 2 제주에 내려오기 전 종자돈을 마련하기 위해 판매했던 메가쑈킹 캐릭터 티셔츠 3 이름마저 착한‘이웃사람 실천하면 돼지’. 메가쑈킹은 삶의 마지막에는 가방 하나만큼의 소유물만 남기고 싶다고 했다 4 공사가 진행됐던 늦겨울과 초봄, 제주의 바람이 쌀쌀했지만 트위터와 블로그를 통해 쫄패들의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날마다 양손 가득 간식을 들고 찾아와 훈훈함을 나눴다 5 쫄깃쎈타의 옥상층에 올라서니 푸른 협재 바다 앞 비양도의 풍경이 철골 프레임 안으로 들어왔다.

 


그  女子

게스트하우스 키우는 여자 아일링 Ailing
탐라국에서 탐라랑, 탐나는 인생!

 


아일랜드 게스트하우스
주소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리 1612-4
홈페이지 http://islandguest house.kr
전화 070-7096-3899,   
010-2509-8662

"우리 집에는 ‘호스트’의 탈을 쓴 ‘게스트’들이 많아요. 제 일을 도와주면서 제주 여행을 하는 스태프들이 있고, 제주의 다른 곳에 게스트하우스 오픈을 준비하며 장기 투숙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저도 그런 방법으로 여행을 했고, 게스트하우스의 꿈을 키웠죠. 고되고 외로울 때도 있지만 탐라와 매일 산책하고, 제가 좋아하는 물건들을 만들고, 가끔 여행을 떠나는 삶에 만족해요. "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에서 태어난 아일링은 제주의 남서쪽,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리에서 ‘아일랜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화교 아가씨다. 특별히 언급하지 않으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그래서 전생이 의심될 만큼, 아일링은 한국어를 기막히게 잘하고, 한국적인 정서까지 지니고 있다. 그녀와는 로마의 어느 게스트하우스에서 여행자의 신분으로 처음 만났었다. 2년간의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녀를 서울에서 운명처럼 조우했을 때 아일링은 ‘제주에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반년 후 그녀는 제주로 내려간다고 했다. 일년 반 전의 일이었다.  

모슬포항에서 멀지 않은 보성리는 낮은 돌담들이 이어지는 조용한 곳이었다. ‘아일랜드 게스트하우스’ 표지판을 보고 들어서자 텃밭을 가꾸던 넓은 마당 안쪽에 하얀 집이 보였다. 아일링의 꿈이 거기 서 있었다. “섬사람들의 텃세도 겪어 봤고, 게스트하우스가 어떤 곳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아서 처음엔 많이 힘들었어요. 제주는 물건들이 귀하고 비싸서 배송비도 많이 들었죠. 지금은 좋은 친구들이 많이 생겼고, 가족 같은 ‘탐라(아일링에게만 충성하는 그녀의 애완견)’가 너무 보고 싶어서 긴 여행도 못 가겠어요.” 행복에 겨운 소감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마음고생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여행자로 오래 살았던 그녀는 한국형이 아닌 국제 표준의 게스트하우스 운영 규칙을 도입했다. 도미토리를 남녀가 함께 사용하도록 했고, 주방시설도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했으며, 아침 식사로 직접 구운 빵을 제공한다. 외국에서라면 특별할 것 없는 일이지만 제주에서는 파격으로 여겨졌다. 당시만 해도 제주에 게스트하우스의 개념이 생소했고 낡은 모텔들도 ‘게스트하우스’로 간판을 달고 영업하고 있었다. 주변의 오해와 시샘이 없지 않았다. 올레 코스에서도 살짝 벗어나 있으면서도 요금이 조금 높고, 인원에 비해 샤워시설이 부족한 점 등의 단점도 분명하다. 

그러나 14명 정도를 수용하는 아일랜드 게스트하우스는 항상 사람이 북적거린다. 한번 묵어 간 여행자들이 친구가 되어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또 제주에 게스트하우스를 준비하며 아일링에게 여러 조언을 구하는 장기체류자들도 있다. 그들도 반(半) 주인 행세를 하며 궂은일들을 자발적으로 도와준다. 아일링은 그 모든 사람들에게 유쾌한 친구이자, 도움을 아끼지 않는 사업의 선배이면서도, 11시가 되면 엄격하게 막걸리 파티를 종결시키는 사장님이기도 했다.  노년이 아닌 ‘청년의 삶’을 제주에 뿌리 내린 아일링은 사랑하는 탐라와 함께 매일 마을 앞 단산을 산책하고, 매년 한달씩 참가해 온 사막 마라톤 대회의 자원봉사자를 포함해 가끔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삶, 그것이면 족하다고 했다. 

무조건 탐나는 삶은 아니었다. 매일 집을 쓸고 닦고, 낯선 사람들을 맞아들이는 삶이 쉬워 보이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외로운 나날들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대한민국 평균치 이상의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은퇴한 것이 맞았다. 돈과 사회적 지위, 명품에 대한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웠다. 그리고 아름다운 제주에서의 소박한 삶을 얻었다.




1 새끼 때부터 키운 탐라는 이제 아일링을 끌고 다닐 만큼 힘이 세졌지만 손님들이 아무리 귀여워해 주어도 아일링의 말만 잘 듣는다 2 사막에 갈 때마다 유리병에 담아온 모래들은 색깔이 다 다르다. 수년째 자원봉사자로 참가하고 있는 사막마라톤 대회에서 한 움큼씩 떠 왔다 3, 5 게스트하우스에 장식되어 있는 벽걸이 소품들은 대부분 아일링이 직접 제작한 것들이다 4 화초도 아기 다루듯 애지중지 가꾸며 산다

epilogue

제주에 침공한 또 다른 외계인들

영국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했던 M (29세)
“저도 나중에 쫄깃쎈타 같은 복합문화공간을 만드는 것이 꿈이에요. 근데 그건 나중의 일이고, 지금은 새로운 사람들과 경험을 쌓는 거죠. 건축 전공인데다가 한옥 건축 학교를 다닌 적도 있어서 집을 짓는 일이 처음은 아니에요. 전에 영국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했던 적도 있고요. 가장 나이가 어려서 다른 형들에 비해 내려놓거나 포기해야 할 일도 많지 않았어요. 망설임이 없었죠.”

올레길에서 만난 사업가 K (48세)
“처음엔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제주가 정말 싫더라고요. 미용실에 가서 멋지게 머리를 해도 금세 망가져 버리고요. 그런데 자꾸 여행을 하게 되면서, 나중에는 좀 길게 머물러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송악산 근처 게스트하우스에 6개월간 방을 빌렸죠. 매일 산책하면서 여러 가지 구상을 하고 있어요. 남동생도 서울에서 사업을 하는데 설득해서 제주도에 감귤농장을 열어 볼까 해요. 어려움이 많겠지만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고 봐요. 제주도는 정말 선물 같은 곳이죠. 살면 살수록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요.” 

카피라이터 출신의 Y (35세)
“10년 동안 광고 회사에 다니면서 삶이 항상 복작복작, 바쁘기만 했어요. 회의가 느껴지던 차에 쫄깃쎈타 패밀리 모집 공고를 알게 되었죠. 제주는 참 틈이 많은 곳이에요. 스스로에게 많은 것을 돌려주는 삶이 가능하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저도 제주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싶어요. 우선은 메가쑈킹 형이 세를 낸 이 집부터 넘겨받아야죠. 연세(월세가 아닌 1년 단위의 세)가 300만원도 안 되는데 너무 좋지 않아요?” 

The Guest House를 준비하는 N (30세)
“레저쪽에서 계속 일했는데 제주에 게스트하우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근데 평소에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형이 저랑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순식간에 일이 진행됐어요. 여러 장소를 알아보다가 올레 5코스가 지나가는 위미리에 두 사람이 쏙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어요. 제주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하려면 보통 땅 구입에 1억~1억5,000만원, 집을 올리는 데 1억 정도, 기타 비용까지 3억 정도 예산을 잡아야 해요. 지금은 아일링의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면서 여러 가지 필요한 절차를 밟고 있죠. 이르면 여름에 문을 열 예정인데 이름도 이미 정했어요. ‘더 게스트하우스’ 멋지죠? 제가 1급 수상레저 자격증도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이벤트와 프로그램을 진행할 겁니다.” 

취집대신 취주를 선택한 J (28세)
“오늘 중에 제주시에 집을 얻어야 해요. 취직을 했거든요. 작년에 친구들과 여행을 왔었는데, 서울로 돌아가서도 계속 제주도 생각이 나는 거예요. 제주가 제 체질이었나 봐요. 남들은 취집(취직+시집)을 간다지만 저는 취주(취직+이주)를 선택한 거죠. 때마침 적당한 자리가 생겨서 지원을 했는데 다행이 합격했어요. 엄마가 멀리 간다고 무척 서운해 하셨지만 아직 젊을 때 제주도에서 꼭 한번 살아보고 싶어요. 제가 야구 광팬인데 이제 야구장에 못 가는 것이 너무 아쉽지만 그 대신 ‘물질’을 배울까 봐요. 해녀 경험도 너무 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