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을 파는 사람들] 춘천 낭만시장-“잃어버린 낭만을 찾습니다”

2012-01-09     트래비



“잃어버린 낭만을 찾습니다”

재래시장에 갤러리, 카페, 공연장이 웬 말이더냐. 춘천 중앙시장은 이제 ‘낭만시장’으로 불린다. 시장의 낡은 점포 사이로 눈길을 끄는 벽화가 피어났고, 파스타와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공간도 생겼다. 낭만의 바람이 분 탓일까, 쇠락해 가는 상권을 넋 놓고 보고 있던 상인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젊은 친구들이 시장을 바꾸겠다고 했을 때 반신반의했던 그들이 이제는 스스로 낭만일꾼이 되고자 손을 들고 있다. 상인들은 악기를 연주했고 사진기 앞에서 홍보 모델을 자처했다. 춘천 낭만시장에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변화의 주범은 문화기획자인 김도희, 정연석씨였다. 

  구명주 기자   사진 전은경 기자   그림제공  춘천 낭만시장, ACTION SEOUL
   


1 오후 4시경 낭만 지휘자가 나타나면 시장 곳곳에 음악이 흐른다. 아쉽게도 낭만 지휘자는 2010년 활동을 마쳤고 지금은 만날 수 없다 2 문화 갤러리인 공간 오동에는 골목 예술가들의 그림이 전시돼 있다

춘천 낭만시장을 처음 만난 건 2010년 성탄절이었다.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춘천 가는 기차~’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5일째 되던 날이기도 했다. 복선전철의 개통으로 서울에서 춘천까지 1시간 만에 도착했지만 낭만을 뺏긴 것 같았다. 상실의 슬픔을 춘천 낭만시장이 어루만져 주었다. 그러나 젊은 친구들이 재미로 시작한 일회성 기획이겠거니 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춘천 낭만시장은 거뜬했다.  

김도희, 정연석씨에게 시장은 일종의 일터다. 그들의 계보를 타고 올라가면 ‘감자꽃 스튜디오’의 대표인 이선철씨가 나온다. 이선철 대표는 김덕수패 사물놀이를 만들고 가수 자우림을 발굴하는 등 서울에서 불철주야 일했던 이름난 문화기획자다. 어느 날 갑자기 이 대표는 평창의 어느 한 폐교를 문화공장으로 만들고 평창을 기반으로 지역민과 문화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그의 새로운 도전이 어쩌면 두 사람의 삶에도 불을 지폈는지 모른다. 도희씨와 연석씨도 사실은 감자꽃 스튜디오 소속이다. 프린지페스티벌 등에서 일했던 도희씨는 기획 전반을 맡고, 건축학을 전공한 연석씨는  ‘궁금한 이층집’을 설계하며 주로 공간구성을 담당하고 있다. 

평창이 아닌 춘천에 터를 잡은 두 사람은 ‘낭만 꽃’을 피우고자 비료를 뿌리고 물을 주었다. 2010년 그들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시장 상인들에게 다짜고짜 다가갔다. 그리고는 ‘문화’라는 낯선 단어를 내뱉었다. 김도희, 정연석씨는 2010년 초, 춘천 낭만시장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를 회상했다. 김도희씨는 “200여 개의 점포 상인들을 설득하는 게 가장 어려웠죠. 일일이 상인분들을 찾아뵙고 친해지고자 무던히 애썼던 기억이 나요”라고 말했다. 그동안 춘천 낭만시장은 중소기업청의 문화관광형시장육성사업, 문화체육관광부의 문전성시(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를 통해 지원을 받았다. 일종의 공식 프로젝트인 셈이다. 

그러나 어디 예산을 투자해 변화를 시도한 곳이 춘천 중앙시장뿐이랴. 전국의 재래시장들이 너도나도 성형을 시작했다. 아케이드를 설치하고 간판을 바꾸고…. 하드웨어만 바꾼다고 소프트웨어까지 업그레이드되는 것은 아닐 터. 대형마트가 천편일률적으로 같은 모양이듯 재래시장마저도 아케이드 모자만 덩그러니 뒤집어쓴 채, 제 빛깔을 잃어 갔다. 마트에 대항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했던 작업 탓에 마트의 기계적인 정체성만 볼썽사납게 닮아 버렸다. 시장 상인들은 변화를 두려워했다. 

그들 역시 조심스러웠다. 정연석씨는 “시장들이 점점 아케이드를 다시 벗겨 내고 있어요. 단순한 겉치레가 다는 아니니까요” 라면서도 “외형의 변화도 중요합니다. 가시적인 변화가 내부의 움직임을 자극하기 때문예요. 그래서 시장 내부에 문화공간인 ‘낭만살롱’, 미술관 ‘공간 오동’ 등 특별한 공간을 일단 먼저 만들었죠”라고 말한다. 최근 매니저를 선발한 궁금한 이층집에서는 홍대 요리사의 파스타를 맛볼 수 있다. 이들의 기획력, 범상치 않다. 

새로운 공간의 탄생은 상인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2010년 11월 처음으로 상인번영회가 생겼다. 서로 단절돼 있었던 상인들이 하나둘 점포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상인들은 밴드를 결성했고 올해는 풍물놀이를 펼쳤다. 도희씨는 “올해 10월부터는 상인들을 위한 글쓰기, 컴퓨터, 중국어 교실을 열고 있어요. 중국인 손님을 응대하기 위해 생활 중국어를 배우죠. 어렵게 마우스를 다루면서도 카페·블로그를 운영하려는 어머님들도 있어요”라고 말한다.
가장 최근에는 야간개장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춘천의 명물인 닭갈비를 컵에 담아 팔았고, ‘대박’을 터트렸다. 도희씨와 정연씨는 야간개장을 통해 상인들 내부의 힘을 발견했다. 연석씨는 “사실 저희가 아이디어를 낼 수는 있지만 한계가 있어요. 판매 노하우와 음식 만들기 등은 상인들에게서 나오는 것이죠. 상인들을 낭만일꾼이라는 이름의 문화기획자로 양성하는 것도 그들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랍니다.” 

춘천 낭만시장은 재래시장의 한계를 인정한것인지도 모른다. 도희씨와 연석씨는 낭만시장은 생활형 시장이 아닌 관광형 시장이라 규정했다. 사람들은 굳이 재래시장에서 생활필수품을 구하려 하지 않지만, 마트에서 살 수 없는 추억만은 시장에서 사야 하기 때문이다. 춘천 낭만시장에 가면 돈을 주고 못 사는 ‘낭만’을 구매할 수 있다. 


1 사연이 있는 물품이 판매되는 궁금한 이층집. 시장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중요 지점이다 2 춘천 하면 닭갈비, 닭갈비하면 춘천이다. 지난 10월 야간개장 당시 낭만시장은 낭만 컵닭을 판매했다 3 시장 구석구석에는 재미난 그림이 숨어 있다 4 레이저를 쏘자 춘천 낭만시장 글귀가 바닥에 나타났다


정연석
“어떤 지역을 알고 싶을 때 사람들은 시장을 가잖아요. 시장에는 그들의 문화가 배여 있기 때문이죠.  내부인처럼 문화를 속속들이 알 수는 없겠지만, 간접적으로 누릴 수는 있습니다.  춘천 낭만시장으로 놀러 오세요!”

김도희 
“낭만시장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여행객들은 낭만시장에 가면 거창한 이벤트를 즐길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요. 잘 차려진
밥상을 상상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숨은 재미를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직접 벽화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낭만살롱의 문도 주저하지 말고 열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