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 일상을 예술로 만드는 fun피플-7人의 크리에이터를 만나다

2012-05-04     트래비




일상을 예술로 만드는 fun피플
7人의 크리에이터를 만나다

태초부터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다. 우리를 들뜨게 하는 ‘놀이’라는 행위 말이다. 그러나 일차원적인 놀이가 고차원의 예술로 진화한 것은 저절로 그리 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남다른 상상력을 가진 ‘크리에이터’의 솜씨다. 고단하지만 부단하게, 한 발짝씩 나아가 결국엔 무언가를 만들어내고야 마는 사람들 말이다. 그들이 움직일 때, 비로소 모든 사람들은 즐겁다.

Contents
■국제루트세터 김동현
■재즈뮤지션 코쿤 밴드
■인디밴드 9호선환승역
■발칙한 이단아, 건축가 문훈
■프라모델 만드는 치과의사 민봉기
■모자 디자이너 셜리 천
■갤러리 플레이스 막 디렉터 유기태

두 개의 바퀴로 굴리는 人生 
국제루트세터 김동현

20년 이상 클라이밍으로 단련한 튼튼한 어깨와 손으로 국내 유일의 국제루트세터, 아시아 유일의 치프루트세터 강사의 자리에 오른 남자. 하지만 그의 가장 큰 낙樂은 두 다리로 틈틈이 자전거 바퀴를 돌리며 세상을 둥글게 마름질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블로그 blog.naver.com/megadyno

천소현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박규민

그는 전세계에 단 4명밖에 없는 남자다. 계보는 좀 복잡하다. 우선 스포츠 클라이밍 대회의 루트를 세팅하는(‘문제를 출제한다’고 했다) 전문가를 루트세터Route Setter라고 한다. 연맹의 테스트를 거쳐 국제루트세터가 되면 국제대회에서 문제를 출제할 수 있는데 그 팀을 책임지고 지휘하는 역할을 치프루트세터가 맡는다. 현재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에 소속된 국제루트세터는 41명, 치프루트세터는 26명이다. 마지막으로 그 치프루트세터들을 교육할 수 있는 치프루트세터 인스트럭터가 전세계에 단 4명인데, 그중 유일한 아시아인이 바로 김동현씨다.
 
그 위치에 도달하기까지의 사연은 애잔하고, 극적이다. 16살 때 선배를 따라 산악회에 가입하면서 발을 들여놓게 된 클라이밍은 이후 22년 동안 이 남자의 현실이자 꿈이자, 좌절이자 성공이었다. 대회에 나가면 항상 2등을 면치 못해 ‘연습용’이라고 놀림을 당하던 초기 선수 시절과 낭인처럼 여기저기를 떠돌아야 했던 날들. 드디어 대회 우승과 루트 개척, 해외 등반 등으로 탄탄대로를 달리던 97년에 18m 아래로 떨어진 추락사고. 불구가 될 것이라는 의사를 진단을 뒤집어 놓은 초인적인 재활노력과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이듬해의 성공적인 컴백. 그때부터 지금까지 국내 유일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는 국제루트세터로 살아온 지난 14년. “저는 클라이밍에서 인생을 배웠습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의 문제,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모든 것을 클라이밍에서 배웠습니다. 야물고 단단해졌죠.” 여기까지가 그의 인생을 굴려 온 두 바퀴 중 앞바퀴의 이야기다.

그의 인생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두 번째 바퀴는 자전거다. 재활과 보조 운동으로 시작한 사이클링은 그를 웬만한 국내 대회의 입상권에 드는 아마추어 선수로 만들어 놓았다. 출퇴근은 물론이고 평상시 이동수단으로 항상 자전거를 이용하는 그다. “자전거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바람을 가르고 달리는 동안 스쳐가는 풍경을 보는 기분도 그만이고, 생활에 큰 활력소가 되죠. 생업과 취미가 거의 50대 50이 되어 버려 가끔 헛갈릴 때가 있지만요.” 그는 현재 서울 홍익대학교 근처의 암장에서 볼더링(보조 장비 없이 가능한 짧은 코스의 클라이밍)을 가르치며 수시로 해외 출장을 떠난다. 지난 1월에는 이란 대회에서 치프루트세터로서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4월에는 아시아선수권대회를 위해 중국으로 떠난다. 하지만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허벅지가 터질 듯 페달을 돌리며 질주한다. 

새가 한쪽 날개로 날아갈 수 없는 것처럼, 이제 그는 클라이밍과 자전거 없이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서로 다른 근육을 쓰는 두 종목이지만 그가 달려가는 방향은 한 가지다. “학교선수단에서 시작되는 학원스포츠, 엘리트스포츠가 아니라 독일의 축구처럼 취미로 시작하는 사람 중에서 국가 대표도 나오는 그런 클럽 문화에 일조하고 싶습니다.” 

기술자가 아니라 예술가의 마음으로 루트를 세팅하는 그가 오래전에 정해 놓은 꿈의 루트는 영세한 암장의 수준을 뛰어넘어 일반인들이 클라이밍을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넓고 쾌적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거의 다 올라와 마지막 홀더를 향해 손을 뻗고 있는 것 같다는 그를 여기까지 올려 준 것도 인생의 마지막 골인까지 굴려 가고 싶은 두 개의 바퀴다. 

촬영협찬┃장소 애스트로맨(서울 마포구 성산동, www.astroman.co.kr),
               상·하의 rh+파워로직 바이크 저지(리투스코리아 www.lytus.co.kr)  헬멧 우벡스uvex


발톱을 감춘 곰, 빨간 세상을 짓다 
건축가 문훈

건축가 문훈이 낳은 건축물은 기발하다. 그에게 상상과 현실은 동의어니까. 옥상에 잔디밭을 만든 현대고등학교, 롤처럼 말아 올린 롤리롤리팝, 홍대를 점령한 상상사진관 등 그의 작품을 설명하다가는 밤을 새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미처 쏟아내지 못한 작품이 많단다. 그래서 문훈은 그림도 그린다. 

구명주 기자  사진 전은경 기자

1 헤이리 모아 갤러리에서 전시된 손바닥. 지문 속에는 또다른 세계가 있다 2 건축가 문훈의 명함. 커다란 문moon훈 달이 떴다 3 일본 요코하마의 한 건축전에서 그는 여행가방 속에 건축작품을 넣어 출품했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 냉장고 문을 연다, 냉장고에 코끼리를 넣는다. 냉장고 문을 닫는다. 이 유머를 처음 들었을 당시, 아르키메데스가 된 기분이었다. “유레카!” 2011년 건축가 문훈은 코끼리가 아니라 건축물을 여행가방에 넣고서 요코하마의 한 건축전으로 향했다. 집을 들고 집을 떠난 셈이다. 그의 여행가방은 전시회에 그대로 진열됐다. 근엄한 자태의 모형 건축물 사이에서 ‘문훈표’ 아우라가 마구마구 뿜어져 나왔다.   

홍대 <상상사진관>, 뿔이 있고 꼬리가 달린 펜션 <락 있수다>, 겉은 갤러리, 안은 어린이집을 연상케 하는 <파노라마 하우스> 등 그의 건축작품은 나열해도 해도 끝이 없다. 요즘 그는 그림으로 세상을 짓고 있다. 태어나지 못한 그의 건축도 그림에서만큼은 새 생명을 얻는다. 대표작은 최근 파주 헤이리에서 공개한 손바닥 그림이다. 손바닥 위 지문은 유기체처럼 얽히고설켜 뻗어 나간다. 거기 신세계가 있다. 

사무실은 빨갛다. 옷, 속옷, 신발, 가방, 벨트 중 하나는 무조건 빨개야 한다는 그는 “항상 흥분돼 있고 싶어서”라고 설명한다. 흥분은 건축주의 욕망을 읽는 촉매제가 된다. 어디 소품뿐이랴. 아이디어도 빨갛다. 정확히 말하면 뜨겁다. “하면서 하지 않고, 하지 않으면서 한다”는 얼토당토않은 말이 그의 그림과 건축에서는 말이 된다.  

세상은 문훈을 향해 수많은 수식어를 붙였다. 건축계의 이단아, 상상 건축가, 괴짜 건축가 등… “나는 이단아가 아니라 삼단아”라고 말하며 스스로 지은 별명을 하나 공개한다. 곰양이란다. 곰과 고양이의 합성어다. 곰을 뒤집으면 ‘문’이 되니 그 별명, 참 기특하도다. 자칭  곰을 닮은 외모지만 가끔은 고양이의 가냘픈 ‘야옹’ 소리를 내기도 하고 갑자기 발톱도 드러내기도 한다. 그것이 반전이다. 

곰양씨가 좋아하는 여행지는 기괴한 곳이다. 그중에서도 한 장소를 콕 집으면 광산촌. 호주 태즈매니아로 떠나기 전 그는 강원도에서 잠시나마 자란 적이 있다. 소년은 자라 건축가가 됐고, 광산은 죽어 폐광이 됐다. 그러나 그에게 폐광은 영원한 미래도시다. 건축가 문훈은 “기능에서 벗어난 폐광이야말로 진정한 에너지를 뿜죠. 한 여인이 엄마, 아내라는 존재에서 해방됐을 때 가장 빛나는 것처럼.” 그리곤 혼잣말 섞인 질문을 던진다. “누구나 그렇게 되고 싶지 않나?” 

대표 건축물 홍대 상상사진관, 펜션 락 있수다, 파노라마 하우스,
서울 현대고등학교, 양평군 S-마할S-Mahal 등 
문훈발전소 서울 강남구 논현동 72-13
홈페이지 www.moonhoon.com

여수 밤바다를 재즈로 적시는 누에고치들
재즈뮤지션 코쿤 밴드

‘여수 밤바다’라는 노래가 유행인 요즘, 여수에서 나고 자란 또 다른 청춘들이 ‘재즈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음악의 변방지대인 여수 밤바다를 ‘라이브’로 물들이고 있는 코쿤밴드는 이제 갓 부화할 준비를 하고 있을 뿐이다.

최승표 기자  사진 전병대 기자

여수를 지역 기반으로 하는 음악인들이 모여 여수와 순천의 카페를 순회하며 재즈 공연을 펼친다. 지방을 순회하는 출장 ‘오브리 밴드’도, 오디션 프로그램에 자극받은 치기 어린 아마추어도 아니다. 자칭 ‘재즈 폐인들’이 여수 사람들과 재즈로 교감하기 위해 ‘코쿤Cocoon’이라는 이름으로 뭉친 것이다.  

코쿤밴드는 2009년 여수에서 ‘부화’했다. 실용음악학원 강사, 카페 사장 등 다채로운 직업을 가진 9마리 누에고치들이 모여 재즈라는 실타래를 풀어헤치기 시작한 것. 음악을 시작하고 보니, 재즈에 목마른 사람들이 많았고, 전직 기자, 사진가 등 코쿤밴드를 돕겠다는 사람들까지 나타났다. 번듯한 무대가 없던 초기에는 오동도 앞바다에서 거리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다가 찾은 곳이 ‘로스팅 카페’였으니, 갓 구워낸 커피의 짙은 향처럼, 날것의 리듬과 선율로 가득 찬 재즈와의 궁합은 운명적이었다. 재즈는 듣는 재미도 있지만 보는 재미가 남다른 음악. 좁다란 카페에서 관객과 호흡하는 경험은 코쿤밴드가 음악을 계속하는 힘이다. 여수 여서동에서 코쿤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기타리스트 박일환씨는 “의무감보다는 즐기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관객과 소통하는 게 아주 즐겁더라구요. 관객들은 저희를 평가하려 하지 않아요. 호기심을 갖고 다가와 주죠”라고 말했다.  

코쿤밴드가 굳이 서울행을 택하지 않은 이유는 ‘애향심’ 때문만은 아니라고 코쿤밴드 리더 백현공씨(드럼)는 말한다. “서울은 메인스트림이지만 전쟁터 같은 곳이라면, 저희에게 여수는 일터이자 놀이터입니다. 사람들이 지방에서 음악하기가 척박하다고들 생각하지만, 만들어서 놀면 되잖아요. 서울의 프로 뮤지션들을 가끔 여수로 초대하는데 모두들 부러워 한답니다.” 남국의 정취가 가득한 여수라는 공간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도 ‘변방의 음악가’들이 누리는 혜택이다. “서울에서는 실력 좋은 뮤지션도 지하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요. 반면 여수는 서울 방값의 4분의 1도 안 되고 게다가 바다를 벗삼아 살 수 있다는 것도 큰 행복입니다.” 

변방에서 음악을 하지만 누에고치들의 꿈은 결코 궁벽하거나 시시하지 않다. 앨범 발매, 지역의 후배 뮤지션 양성, 뮤직 페스티벌 개최 등 많은 꿈을 꾸고 있다. 백현공씨는 “여수에서 유일한 재즈 밴드를 자처하고 있는 이상, 음악의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더 많은 여수 사람들을 ‘재즈 폐인’으로 만들어야죠”라며 순진한 미소로 말한다.
공연장소 카페 코쿤(여수 여서동), 카페 오후(여수 신기동), 카페 아띠(순천 조례동) 등   관람료 무료 혹은 1만원(커피 혹은 차 1잔 포함)
공연예약 blog.naver.com/cocoonband

신춘문예에서 인디밴드 뮤지션까지
인디밴드 9호선환승역

앳된 모습만큼이나 발랄한 음악을 하는 뮤지션. 9호선 환승역 앞에서 즉흥적으로 팀이름을 정했을 정도로 자유로움이 넘친다. 청춘, 젊음, 열정이란 단어는 고스란히 이들을 위한 것인 양 낮에는 알바, 밤에는 연습에 매진하며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그들. 엉뚱하지만 진지한 9호선환승역은 현재 진행형이다.

김명상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강수경 


학교에서 단짝 동기였던 최리보(보컬)와 김기타(기타리스트)는 음악을 좋아하고 노래방에 월 9회 이상 출입하던 학생이었다.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신춘문예에 탈락한 최리보의 시를 맘에 들어한 김기타가 멜로디를 입혀서 첫 작품이 완성됐고 이후 최리보의 다른 습작까지 동원돼 어느덧 노래는 10곡이 넘어서게 됐다. 

2009년 8월, 공연을 하고 싶어진 두 사람은 팀 이름을 정하기로 하고 김포공항 부근에서 만났다. 주변에는 9호선 지하철 역 공사가 한창이었고, 환승에 대한 안내표지가 눈에 띄었던 것이 그대로 ‘9호선환승역’이라는 팀 이름으로 탄생됐다. 새로운 음악의 세계로 갈아타라는 깊은 뜻도 담겨 있었다. 

그렇게 출범 후 첫 공연은 여의도공원에서 지인들을 상대로 벌였는데 앰프도 없고 여름이라 매미가 많았던 탓에 노래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는 김샌 평가를 받았다. 처음 방문한 녹음실은 열악한 나머지 바람소리를 차단하는 윈드스크린이 없어 배드민턴 라켓에 스타킹을 씌운 막을 앞에 두고 노래를 불러야 했다. 무대에 서고자 클럽 오디션을 봤지만 보는 족족 탈락하는 아픔을 맛보기도 여러 번. 이런 어려움을 딛고 2010년 8월 첫 번째 EP <짠>, 지난 3월에는 두 번째 EP <흥>을 내고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쿠키, 빗방울과 초롱이(강아지 이름), 사랑니, 추석’이라는 제목처럼 일상적 소재를 다루지만 20대의 신선한 시선으로 바라본 노랫말이 유쾌하기 이를 데 없고 편안한 멜로디는 그들의 표현대로 ‘세 번만 들으면’ 빠져들게 만든다. 

현재 두 사람은 음악 보강을 위해 영입한 객원 멤버 최훈(퍼커션), 이은수(베이스)와 함께 일주일에 세 번 모여 합주를 하고, 주말에는 공연을 한다. 지금도 모두가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차가 없어 무거운 악기를 들고 지방까지 공연을 가다 파김치가 되기도 하지만 음악은 이들에게 있어 버릴 수 없는 최고의 가치다.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 이들의 표정에서는 열정과 만족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9호선환승역 멤버는?

퍼커션 담당. 고등학교 때 밴드가 있는 학교가 하필 명문이라 미친 듯 공부해 입학. 묵직한 인상과 달리 장난스런 표정의 소유자 (최훈)

첫 번째 EP앨범이 나왔을 때만 해도 뮤지션이라는 자각이 없었음. 이제는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본업하러 가자며 퇴근 (최리보)

회사에 기타를 멘 채 출근하거나 공연이 있을 때면 근무 도중에 나갔다 들어오기도 하는 열혈 기타리스트 (김기타)

베이시스트. IT회사에서 멀쩡히 근무하다 10년 후에 과연 행복할까?를 생각하고 뛰쳐나옴. 하고 싶은 일을 찾은 지금은 만족도가 90% 이상 (이은수)


9호선환승역 공식 홈페이지
www.linenine.co.kr
타이틀곡 쿠키, 봄 등
앨범듣기 온라인 음악서비스 사이트 멜론, 벅스 등에서 다운 및 청취 가능

프라모델? 오타쿠 아니에요 
치과의사 민봉기

수집은 물론이거니와 직접 제작까지 하는 프라모델 마니아. 세계대회까지 진출하며 10년째 주경야독 프라모델만 연구하더니 이제는 본인의 이름을 건 온라인 카페를 통해 대회 및 전시회를 연다. 치과의사라는 본업을 백분 활용해 의학재료를 접목한 프라모델을 선보이기도.
민봉기의 건프라월드 cafe.daum.net/gunplaworld  

글·사진 전은경 기자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 오래된 미국 속담이 말하듯, 우리는 놀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어떻게… 육하원칙을 따지다 보면 정작 실행은 미루고 미적지근, 시간만 보내기가 일쑤다. 여기 어린 시절 취미로부터 일찌감치 노는 법을 발견한 민봉기씨가 있다. 자기만의 방에서 시작된 그의 확고한 취미는 옆집으로, 또 건넛집으로 전파됐고 어느새 놀이터를 만들고 시나브로 광장이 됐다. 지금, 프라모델 놀이터 ‘민봉기의 건프라월드(Daum 카페)’에는 4만7,000여 명의 사람들이 다 같이 놀 궁리를 하고 있다.

민봉기씨는 괴짜다. 낮에는 치과에서 진료를, 밤에는 조립식 장난감 ‘프라모델’을 만든다. 그가 항간에 괴짜라 불리는 이유는 단지 그의 직업군에서 프라모델이라는 취미가 낯설기 때문만은 아니다. 혼자서 뚝딱 만든 작품으로 세계대회에서 4위에 오른 것, 그도 모자라 이제는 아예 국내 프라모델 대회를 개최하기 이르렀다는 것 등에서 유추할 수 있는 집요한 ‘한 우물 파기’ 때문이다. 프라모델 불모지라고 불리는 한국에서 최초의 프라모델 전문 온라인 카페를 10년째 우직하게 끌고 온 것도 마찬가지. 그가 마니아 사이에서는 괴짜가 아닌 창시자인 이유다.

시작은 단순하다. 군의관으로 근무할 당시, 손 감각을 유지할 겸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프라모델을 만들어 보기로 한 것이다. 사실 삼척 하장의 고요한 보건소에서 “심심했다”는 게 더 솔직한 이유다. 당시는 전문가도 아니고 정보도 없던 터라 문구용품과 생활용품을 사용해 되는 대로 만들었고 그 제작기를 인터넷에 올렸다. 물론 시행착오 투성이었다. 근데 웬걸, 그게 통한 것이다. 일일이 토를 단 세세한 제작기는 프라모델 제작에 궁금증을 갖고 있던 이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같은 취미에 대한 ‘공감’과 ‘소통’이 커뮤니티를 지금에 이르게 한 가장 큰 원동력이 됐다.

사실 하나의 프라모델을 만드는 데 드는 시간이 적어도 한 달, 만들기까지 필요한 구상단계는 그 몇 배나 걸린다는 걸 알고 나면 도대체 어느 틈에 작품을 완성하는지 의아하다. 돈깨나 들 것 같은 취미라 주머니 사정도 슬쩍 걱정스럽다. 대답은 간단했다. “일하는 시간 외에는 전부, 일상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 전부(가만 보면 작품 속에는 치과에서 흔히 쓰는 재료인 ‘레진’이 교묘히 숨어 있다).” 하루 평균 5시간밖에 자지 못하면서도 그는 프라모델 제작뿐만 아니라 카페 운영, 대회 주최까지 도맡고 있다. 이토록 열성적일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프라모델 제작이 점점 대중적인 취미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취미를 즐기는 건 일본식이에요. 우리는 한국식 놀이문화로 인정받고 싶어요. 자 다 같이 한판 놀아봅시다!”
대회일정 제9회 GPW 컨테스트 9월 개최 예정
촬영장소 수원 민플러스치과

‘재봉틀도 모자다’
패션을 완성하는 발랄함
모자 디자이너 셜리 천

1989년 불문학을 전공하러 파리에 갔다가 우연히 모자를 만났고, 지금까지 모자에 푹 빠져 살고 있는 모자 디자이너. 독특한 감성과 발랄한 상상력으로 크고 작은 브랜드 대상, 디자인 대상을 수상하며 국내 패션모자의 프런티어로 자리 잡았다. 그래도 여전히 모자가 제일 어렵다고. 

김선주 기자   사진 전은경 기자

기껏해야 야구모자나 가끔 쓰는 문외한의 눈에는 도무지 팔리거나 씌워지는 모자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기이한 모자들이 패션모자 전문 숍의 어엿한 주인공일 수 있는 이유는 “모자가 꼭 씌워지기 위해서만 존재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하는 디자이너의 남다른 시선 때문이다. 만들면서 기쁘고 바라보아 뿌듯하면 족하다는 얘기였다. 디자이너가 불문학 전공을 위해 파리 유학을 떠났다가 첫사랑처럼 한눈에 반하면서 모자와의 열애가 시작됐다. 

셜리 천은 국내 패션모자 디자이너 1호로 불린다. 아시아인 최초로 프랑스 모자전문학교를 졸업했고, 지금은 패션모자 전문브랜드 ‘루이엘Luielle’에 자신만의 모자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쉽지는 않다. 99%의 대중적 취향보다는 1%의 예술적 취향에 더 가까워서고 수작업에 의한 소량생산을 고집하고 있어서다. 모자 크라운의 틀인 목형에 원단을 씌우고 못질을 하고 찜통에 삶아서 만들어내니 기계가 찍어낸 모자는 절대 흉내낼 수 없는 수제 모자만의 맛과 멋이 배는 것이다. 그래서 셜리 천의 고객은 1%의 패션모자 마니아이거나 ‘Hat is Attitude’라는 셜리 천의 철학을 이해하는 이들이다. 셜리 천에게 모자는 새로운 자신으로 이끄는 매개체다. 모자를 쓰면 말투가 달라지고 행동의 격이 달라지면서 사람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항상 모자를 쓸 사람을 상상하며 영감을 불어넣고 디자인하는 이유다. 모자마다 아이 이름 짓듯 꼭 어울리는 이름을 붙여 주고, 미래의 모자 주인에게 바치는 메시지도 곁들인다. 

이렇다 보니 완성하기까지 6개월이나 걸린 ‘작품’들도 부지기수다. 그중 셜리 천이 가장 아끼는 모자는 ‘My Sewing Machine(나의 재봉틀)’. 모자를 만들 수 있도록 해준 자신의 재봉틀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 것이다. ‘갈채’라는 이름의 모자는 월별 탄생석을 테마로 한 12개의 시리즈인데 2,000만원에 달하는 고가에도 불구하고 주인을 만났다. 셜리 천 스스로도 이 모자의 감성을 이해하고 구매할 고객이 과연 있을까 싶었다는데, 기우였다. 

그렇다고 셜리 천의 모자가 문외한들과 멀기만 한 것은 아니다. ‘팔리는’ 디자인도 줄곧 하고 ‘모자 만들기’ 실용서적을 출간하는 등 대중과의 접점을 늘려 가고 있다. ‘모자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서울예술종합학교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주에 모자문화박물관도 만들었으며, 매년 모자 워킹 콘테스트도 연다. 디자이너와 재봉틀과 모자는 그렇게 갈채를 받는다.
루이엘 주소 서울시 종로구 팔판동 35-1 백월빌딩 3층
홈페이지 www.luielle.com


당신을 막장으로 초대합니다 
갤러리 플레이스 막 Place Mak 디렉터 유기태

삶을 예술처럼, 예술을 삶처럼 만들고 싶은 휴머니스트. 그리고 아티스트. 중앙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행위예술가로서 홍대 문화 예술인의 아지트 ‘바닥’을 운영해 오다 2년 전 플레이스 막을 오픈하며 동네 미술관 아저씨 혹은 아트 디렉터로 살고 있다.

양보라 기자  사진 전은경 기자

‘참을 수 없는 예술의 무거움’에 뿔이 난 이 남자, 아예 동네에 갤러리를 떡 하니 차려버렸다. 연남동 주택가 골목에 위치한 갤러리 ‘플레이스 막Place Mak’은 세탁소 아저씨도, 학원이 가기 싫은 꼬마도 찾아오는 동네 갤러리다. 

평범한 사람들의 사랑을 잃어버린 콧대 높은 예술이 삼청동과 청담동 즈음에서 시름시름 앓아 갈 즈음 유기태 디렉터directer(자칭 유디렉)는 예술의 ‘막장’을 만들고 싶었다. “갤러리 벽에 못도 못 박게 하더라고요. 작가들이 무한한 상상력을 쏟아내고 그것을 동력 삼아 생동하는 갤러리를 만들고 싶었죠.” 작품과 관객보다 갤러리가 먼저 고려되는 지독한 주객전도. 조소과를 나오고 행위예술을 하던 그였기에 누구보다 작가의 창작욕을 분출할 공간의 부재를 안타까워했다. 

유디렉은 홍대 앞 문화예술인의 살롱 같았던 전시 카페 ‘바닥’을 6년간 꾸려 오다 아예 전시에만 집중할 수 있는 갤러리, ‘플레이스 막’을 2010년 6월 오픈했다. 물을 가득 채워도 되고, 불을 질러도 상관없으며, 뱀을 한가득 풀어놔도 아무런 불만이 없는 막장 갤러리를 탄생시켰다. 그는 하필이면 문화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동네 한구석을 비집고 들어왔다. 이질적인 ‘갤러리’는 동네에서 튀어도 좀 튄 게 아니었다. 다들 슬금슬금 갤러리를 피해 다니기 일쑤였다. 하지만 진심은 통했다.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어떤 것을 전달하고 싶은지 명백하지 않으면 막은 관객 앞에서 절대 걷히지 않죠.” 아무리 이름난 작가라고 해도 플레이스 막에서 관객을 만나려면 유디렉과의 치열한 인터뷰를 거치며 철저히 작품 세계를 해부해야 한다.

가짜 예술은 하기 싫다는 그의 고집이 플레이스 막의 예술을 ‘그들만의 것’으로 만들지 않았다. 쉽지만 가볍지 않고, 문턱은 낮되 감동은 깊은 이 공간으로 동네 사람들은 물론 독립아티스트가 모여드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227-9
운영시간 화~일요일 낮 12시~오후 6시
홈페이지 www. placema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