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한의 in&人] 배우 이광기-‘완판’ 자선남의 행복

2013-06-07     트래비



언제부터인가 ‘나눔’과 ‘힐링’은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됐다. 듣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단어들임에 틀림없다. 더 가진 사람이 앞서서 더 나누고, 치유가 필요한 곳이면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고, 그런 자선을 통해 스스로가 치유되기도 한다는 인식이 보편화되기 시작하면서 우리 사회가 더욱 아름답게 발전하리라는 기대도 더 이상 머나먼 이상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배우 이광기가 말하는 나눔과 힐링은 조금 다르다. 더 가진 사람만 나누는 게 아니라고…. 힐링 붐이 일어나기보다는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몇해 전 아들을 잃은 일이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전국민을 안타깝게 했던 당사자인 그가 털어 놓는 역설적인 이야기들을 들어 보자.

Interviewee 이광기(배우)
아역배우 출신으로 2000년〈태조 왕건>으로 'KBS 연기대상'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드라마에서 보이는 강한 이미지보다는 유쾌한 이미지로 각종 버라이어티에 등장하였다. 최근 자선에 앞장서는 대표적인 연예인으로서, 월드비전 홍보대사, 희망연대실천본부 희망대장, 희망서울 홍보대사 등을 맡아 국내외로 나눔과 봉사를 전파하고 있다.

Interviewer 찰리한(아티스트)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하고 왕성한 호기심을 학문과 예술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적용하는 재미교포 아티스트다. 미국 메릴랜드미술대학 교수며 현재 대구대학교 조형예술대학 교환교수로 국내 체류 중이다.



봄볕 좋은 5월의 어느날, 이광기를 만난 곳은 서울옥션 강남점이었다. 야요이 쿠사마, 이우환, 다카시 무라카미 등 현대미술 시장을 상징하는 대가의 작품들 틈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이 작품 어때요? (쿠사마 야요이의 입체작품을 가르키며) 귀엽지 않나요? 이 작가는 지금 90세가 넘은 일본 할머니 작가랍니다. 몇년 전부터 노환에 알츠하이머 때문에 병원에서 기거하면서도 여전히 작업을 하는데, 전세계 미술시장에서 매우 ‘핫’한 작가에요. 작년에는 미국 휘트니미술관에서 대대적인 회고전을 가지기도 했고 또 루이비통과 함께 멋진 콜라보레이션을 이루어낸 작가이기도 하죠.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활짝 웃고 있는 배우 이광기다. 워낙 미술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미디어를 통해 알려져 있지만 개별 작품에 대한 그의 구체적인 감상을 직접 듣는 것은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다. 흡사 갤러리 큐레이터와 마주한 듯했다.

아이티를 품은 아버지

2009년 10월, 각종 방송에서 채널만 돌리면 대중에게 편안한 웃음을 주었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 너무나 귀여운 아들 석규를 하늘로 보낸 아버지. 온갖 보도매체에 도배되었던 당시의 슬픈 아버지의 모습이 문득 지금 갤러리에서 활짝 웃는 아버지의 모습과 오버랩 되었다.

예전부터 가족들과 자주 주말에 인사동 거리로 나들이를 가곤 했어요. 아내와 어린 두 남매도 미술작품 보는 것을 좋아하고요. 미술이 우리 가족을 기쁘게 해주었던 것 같아요. 미술작품들에게 고마운 감정을 느꼈다고 해야 하나? 그런 감정이었어요. 그때부터 미술작품으로 좋은 의미를 담아 자선으로 연결되면 참 좋겠다고 맘으로 계획했었죠.

미술이 주는 기쁨을 만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감사를 표하고 싶어 하는 남다른 생각과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하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누구나 생각으로는 뭐든 할 수 있지 않겠나. 하지만 이광기는 그 진심을 놓치지 않고 실제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동기를 부여받을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마음도 잊지 않았다.

우리 아이가 천국으로 간 이후, 예전부터 했던 생각이 구체화되기 시작했어요. 당시 지구 반대편 아이티에 큰 지진이 나서 많은 고아들이 생겨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집에 남겨 두었던 아이의 옷들을 몇 박스 챙겨서 날아갔어요. 가서 보니 상황이 생각 이상이었고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죠. 돌아와서 시작한 일이 미술품 자선경매를 통해 구호기금을 조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전부터 미술애호가였던 이광기는 평소 알고 지내던 작가들 및 갤러리대표들과 상의하여 실현 가능한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했단다. 그렇게 시작한 첫 번째 경매행사에서 출품된 모든 작품이 소위 ‘완판’되었고 그로 인해 1억2,000만원의 기금을 모을 수 있었다. 그게 2010년 봄의 일이다.

참 감사하게도 모금 성과가 좋았는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출품된 작가들도 기부형식으로 해줘 마음을 나누었다는 것, 그리고 전 작품이 완판되었다는 것은 구매한 컬렉터들도 제가 나누고자 한 취지에 동참해 줬다는 것을 뜻하는 겁니다. 감동이죠.

아버지는 멈추지 않는다 

2010년을 시작으로 올해는 벌써 4회째이다. 1회 모금액 1억2,000만원, 2회 1억4,000만원, 3회 1억8,000만원의 기금이 모였고 모금액의 투명한 집행을 위해 다국적 자선단체인 월드비전과 협력하여 아이티로 보내졌단다.

매년 한 번씩 다녀옵니다. 기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확인하는 여정이기도 하지만, 그곳에서 만났던 내 자식과도 같은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가는 게 크지요. 지진으로 무너진 학교의 터를 다시 닦고, 튼튼한 기둥을 새로 세우고, 그곳에서 좋은 선생님들과 함께 공부할 아이들을 만나고 오는 거죠. 그 정도에요. 여기 한국에서의 교육환경으로 치면 최소한의 기회환경 정도입니다. 그것만이라도 그곳 아이들에겐 축복이지요. 작년에 갔을 때 한 학교에서 기공식이 열렸습니다. 임시천막 아래 모여든 아이들이 삐뚤삐뚤 줄 서서 노래를 불러 줬어요,  불어로요.(웃음) 하지만 전 다 알아들은 것 같아요. 마음으로 알 수 있었어요. 

그 이야기만으로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두 마음을. 아이들의 마음과 아버지의 마음. 그는 그런 마음을 올해 자선경매를 통해서 더욱 나누고 싶다며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기부, 자선, 나눔…. 언제부터인가 화두죠. 사람들은 어느 정도 가져야 나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나눔의 시작은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감사함으로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나눔이 자연스러워지죠. 무엇인가를 잃은 후에도 나눌 수 있더라고요.

그의 목소리가 아직도 강하게 귓가에 남아 있다.   


여행, 스치는 관계에서 경험하는 관계로
갤러리를 나와 근처 좀 편안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최근에 일어난 소소한 이슈들이 소소하게 오고갔다. 

최근에 여행을 다녀 온 적 있나요?
2주 전에 아내와 강원도 시골에 다녀왔어요. 완전 산골마을로.
거긴 전화도 없고, 전기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고. 문명과 담을 쌓은 듯한 곳이죠. 오래된 한옥에서 아궁이 불 때고, 고구마도 구워 먹고, 솜이불에서 자고….

불편하지는 않았는지?
지인 추천으로 간 곳인데, 사실 좀 불편하지 않을까 했었어요. 막상 가보니 오히려 진정한 여행을 온 것 같더라고요.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입은 기분은 아내와 저를 요즘말로 ‘힐링’ 해주는 것 같았어요. 여행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생기게 됐죠.

원래는 어떤 여행을 주로 했었나요?

아내와 전 제주도를 자주 갔었어요. 국내여행이라 가깝고 물론 아름답고요. 제주의 풍광은 매년 봐도 상쾌하죠. 이번에 강원도 여행 때 느낀 건데, 우리가 여행가서 마주하는 자연은 만나는 게 아니라 스치는 관계였던 것 같아요. 지역과 지역을 차로 이동하고, 안락한 호텔에서 숙식을 하고 말이죠. 스치는 관계에서 경험하는 관계로 발전했다고 해야 하나…. 어릴 적에 동네 흙길을 지나다가 개미집을 만났을 때, 대열에 맞춰 이동하는 개미들을 한 시간 넘도록 쳐다보며 놀았던 기억이 났어요. 이런 경험을 잃어버린 지 오래잖아요. 도시는 스펙타클로 가득차서 이런 게 눈에 들어오기나 하나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것들이 언제나 우리의 눈길을 끄니까….

상처 입은 치유자

가볍게 시작한 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거대담론으로 이어졌지만 이광기에게 최근의 여행으로부터 받은 힐링이 어떤 것이었는지 더 알고 싶어졌다. 무엇을 힐링한 것인가. 그것은 어떤 의미인가.

치유를 요구하는 대중들이 많죠. 미디어에서도 힐링이 대세인 것 같아요. 서점에 가도 힐링 관련 서적, 방송들도 힐링 프로그램들. 이런 경향을 다른 시각으로 보면 그만큼 상처가 많다는 것에 대한 방증 아니겠어요? 아쉬운 것은 이렇게 힐링이 트렌드화 되니까 대중은 그 방법을 좇아간다는 거예요. 힐링법을 찾아 나서서 눈으로 읽고, 보고…. 하지만 근원적인 상처를 치유하려면 깊이 경험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은 자연과 나 사이에 체험적 관계를 맺고, 잊고 있었던 것들로부터 위안을 받은 측면이 많아요.

그렇다. 힐링이 구호가 된다면 문자만 남을 수 있다. 진짜 치유는 상처를 담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처의 근원을 예방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속한 사회의 삶은, 어느새 소비를 부추기는 탐욕이 보편화되고 경쟁만을 부추기는 소리 없는 전쟁터가 된 것 같다. 층간소음으로 이웃간 증오관계가 심화되고, ‘갑’으로 대변되는 세력은 권력구조 속에 순응하기만을 요구한다. 결국 상처만 남을 수밖에 없는 사회로 치닫는 건가. 힐링이 상품화 되어서 또 다른 전쟁을 앞둔 병사에게 일시적인 응급처지로만 작용하는 악순환이 고착화된다면 참으로 슬픈 일이다.

한국의 대중은 대체로 이광기를 응원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연예인이기 때문에 남모르는 상처도 있을 텐데….

기본적으로 대중들에게 감사해요. 식당이나 카페에서 우연히 팬들을 만나면 각각의 모양으로 잘 대해 주시죠. 물론 간혹 무례하신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그것도 그분들 방식이기 때문에 이해할 만하다고 생각해요. (잠시 생각하다) 언젠가 어느 언론사의 기사 때문에 좀 힘들었던 적이 있긴 해요.

이 이야기를 듣고 경악했다. 내용은 이렇다. 인터넷 기사들을 검색하다가 눈에 띄는 제목. ‘이광기 아들에 이어서 탤런트 모씨 아들 사망’ 깜짝 놀라 클릭했더니, 한 방송사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속의 내용이었단다.

매우 놀랍지만 한편으로는 놀랍지가 않네요. 낚시성 기사들로 도배된 기사들을 하도 많이 봐서. 언론과 대중연예인은 공생적인 관계고 그로 인해 대중을 주도하고 인기가 형성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부정할 수 없죠. 언론과 대중도 공생관계고요. 언론은 대중이 원할 만한 이야기를 기사화하고 대중은 그런 기사를 소비하는 입장인데, 사실 좀 과한 면은 있어요. 상호간에요. 대중이 관심을 표출하고 여론이 형성되어 언론은 그것을 객관적이고 공익적으로 취재해서 보도하는 것인데, 언론이 너무 앞서가서 대중의 이목을 끌고 많이 소비될 만한 것을 찾아 보도하다 보니까 매우 탁한 환경이 생긴 게 아닌가 싶어요. 대중도 마찬가지로 좀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것을 원하지 않나요? 그런 측면에서 ‘쌍방과실’ 같아요. 수치화하자면 6대4 정도? 언론 6, 대중 4. 왜냐하면 대중이 환자라면 언론은 의사역할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환자의 면역력만 높이는 것 같아서 말이죠. (미소)

미안했다. 요즘은 대중도 곧 언론인 셈인 시대니까. 각종 SNS환경에서 일인미디어가 쏟아져 나오고 그것들이 모여 곧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감사했다. 지금까지 미디어라는 창을 통해서만 알게 된 이광기. 시련을 딛고 우뚝 일어선 나눔의 기수로만 보았던 착한 연예인 이광기를 다른 매체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경험’한 것에 대하여.
 ‘많은 것을 가진 사람만이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광기는 소중한 것을 잃었던 사람이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치유의 손길을 서슴없이 내밀고 있는 이광기는 스스로도 상처 입은 사람이다. 나눔과 치유를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시에 행동해 내는 그가 우리에게 ‘경험’을 전염시킨다. 

인터뷰 며칠 후,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번 자선경매의 취지와 방식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찰리한 작가님의 소중한 작품을 함께 나눌 수 있을까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응했다.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힐링’이 되는 듯했다.

오붓한 청담동 아지트 ‘청담이상’ 1호점

술을 마시지 않지만 폭넓은 계층의 사람들을 두루 만나는 이광기에게 어울리는 일식 주점. 붐비는 집에는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단골만으로도 벅차서 더 이상 소문낼 필요도 없는 맛과 분위기라고 말하면 족한 설명이 되겠지만 그래도 마음에 쏙 드는 점을 하나 꼽으라면 대나무와 빈 사케병을 이용한 차분한 인테리어다. 적절하게 공간을 분리해 주기 때문에 오붓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요리를 즐기기에 좋다. 외식사업으로 잔뼈가 굵은 이정욱 대표의 경영 노하우가 빛을 발해서 청담 2호점, 양재, 서래마을 등의 직영점도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주소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122-9  문의 02-515-3002

글  아티스트 찰리한   사진  Travie photographer  지성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