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paign 여행으로 희망을 나눕니다] 느림의 도시 리지앙“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세요”

2013-08-05     트래비

“고맙다”, “사랑한다”는 흔한 한마디를 정작 소중한 내 가족에겐 잘 전하지 못한다. 느리게 걷는 중국 리지앙에선 천천히 다가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특별한 여행’에 동행한 <트래비> 독자기자는 그들을 응원하는 제3의 가족이었다. 


1 장이머우 감독이 총연출한 ‘인시앙리지앙쇼’는 출연진만 500명이다. 설산을 배경으로 지역 소수민족이 직접 출연하는 거대한 공연 2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리지앙. 양떼들도 이곳에선 여유롭다 3 후타오샤를 배경으로 참가자들이 모였다


■day 1
장미꽃 한 송이, 리지앙에 오신 걸 환영해요!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5시간. 좁은 좌석에서 뒤틀린 몸이 뻣뻣하게 굳어 갈 즈음, 리지앙麗江·여강에 도착했다. “그래, 여행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거야”라고 다짐하며 창밖으로 보이는 중국의 휘황찬란한 야경을 잠시 즐겼다. 우리가 탄 비행기가 자그마한 공항 활주로에 서서히 착륙했다. 동행한 가족들은 서서히 잠에서 깨어났고, 조금씩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리지앙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도착하니 밤 12시. 현지 가이드가 장미꽃 한 송이씩을 우리에게 일일이 건네주었다. 뜻밖의 선물이었다. 장미꽃에다 얼굴을 가까이 대 보았다. 장미꽃 향기보다 진한 리지앙 특유의 향내가 났다. 가족들도, 나도 리지앙에 도착한 걸 실감했다.


하나투어 희망여행을 취재한 <트래비> 독자기자 김은민씨는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사회적기업 ‘미디토리’의 일원이다. 미디토리는 ‘영상’이 세상을 진일보시킬 수 있다고 믿는 따뜻한 회사로 쉽게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들에게 ‘미디어’라는 버팀목을 세워 준다. 김은민 독자기자와 희망여행은 너무나 잘 어울렸다. 그녀는 동행한 가족들의 눈높이에 맞춰 더 낮은 자세로 귀를 귀울이고 이야기를 풀어냈다. 


1 리지앙에선 티베트의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소수민족인 나시족과 함께 춤을 췄다 2 저녁이 되자 마을은 한껏 등불을 밝히고 아름답게 빛났다 3 손 재주가 남달랐던 다빈이. 여행 내내 자원봉사자와 하나투어 스태프들에게 그림을 선물했다 4 위룽쉐산으로 향하는 입구에 소원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day 2
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 온다

둘째 날 아침, 호텔의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아이를 들쳐 업은 어머니가 차가 다니는 도로 한복판으로 대담하게 걸어가고 있었고, 택시와 수레는 사람을 피해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해발 2,000m가 넘는 고산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느리게 움직였다. 고도가 높아 빠르게 걸으면 숨이 가쁘고 심장에 무리가 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느리게 걷는 것이란다. 한국에서처럼 숨 가쁘게 걸을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고불고불한 산을 넘어 후타오샤虎跳峽·호도협에 도착했다. ‘호랑이가 앉았다 간 협곡’이라 불리는 계곡이다. 계곡을 따라 가족들과 나는 되도록이면 느리게 걸었다. 그럼에도 현지 사람들에 비해 몇 발자국은 앞서가고 있었다.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는데도 말이다.
‘애증가족’의 어머니는 장성한 아들과 함께 이번 여행길에 동행했다. 연신 “어머나, 이것 보세요. 참 좋죠” 하며 소녀처럼 감동받던 어머니가 나에게 “어디서 오셨어요?”라고 물었다. “부산에서 왔어요”라 대답하자 “나도 부산인데, 부산 어디?”라며 친구라도 만난 듯 폴짝 뛰었다. 여행지에서 고향 사람을 만났다며 오랜만에 사투리를 연발했다. “우리 큰 딸은 일 한다꼬 못 왔다 아이가. 같이 왔으면 좋았을 낀데.” 이번 여행에 동행하지 못한 큰 딸 생각이 간절하다고 했다. 

같은 지역의 유대감이란 이런 것일까! 같은 말을 사용하고, 같은 음식을 먹고, 비슷한 행동을 하고…. 같은 고향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손쉽게 가까워지거늘, 수십년을 같이 살아온 가족이란 존재는 오죽할까. 가족들은 후타오샤를 천천히 걸으며 깊이 호흡을 맞춰 가고 있었다. 

갑자기 ‘전가네가족’의 막내가 코피를 쏟았다. 지켜보는 나는 당황했지만 아이는 의외로 침착했다. 기압차 때문에 간혹 코피가 터지는 경우가 있다는 가이드의 말을 새겨들은 모양이다. 나에게도 구토와 어지러움 증상이 미세하게 찾아왔다. 아이도 나도 고산병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경미한 몸의 이상 반응은 이내 호전되므로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여기 리지앙 사람들 역시 그렇게 적응하면서 살아 왔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관광객들은 고산증세가 나타날 때, 고산병 치료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비타민’만 먹고도 고산병을 떨친다고 했다. 아이의 코피도 멎고, 나의 두통도 차츰 익숙해져 갔다. 결국 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 오는 것이로구나. 가족들은 천천히 움직이는 느림의 도시에서 조금씩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day3
서로 마주 본다는 것 

중국내에서도 사람과 환경이 좋기로 소문난 동네가 바로 리지앙이다. 셋째 날은 365일 눈으로 덮여 있다는 신비의 위룽쉐산玉龍雪山·옥룡설산으로 이동했다. 산 아래 기온은 일 년 내내 19~22도 내외를 오가는데 산 정상은 눈이 녹지 않은 신비한 산이었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 케이블카에 올랐다. 

‘전가네가족’ 아이들은 참새마냥 조잘거리며 웃음꽃을 피웠다.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신비한 기운 때문일까! 들어가는 입구부터 소원나무가 줄줄이 달려 있었다. ‘아름다운 가족’의 큰딸은 매듭을 짓느라 분주했다. 소원나무에 “하늘나라에 있는 아빠께 감사. 우리 가족 건강하고 좋은 일만 있기. 모든 일 잘되고 취직하기”라고 적어 매달았다. 소원나무를 매단 세 모녀가 서로를 마주보았다. 가족의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
위룽쉐산과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한 ‘인시앙리지앙印象麗江·인상여강’ 쇼를 관람하고 리지앙의 대표적인 소수민족인 나시족의 성지인 동파만신원을 둘러본 뒤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여행을 오기 전, 저마다 그동안 가슴에 담아두고 하지 못했던 말들을 담은 편지를 읽으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냈다. ‘행복한가족’은 가족 모두가 함께 올 수 없었지만 손자, 할머니, 어머니가 이번 여행에 동행했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떨어져 지내야 했던 어머니의 편지는 아들을 향한 애틋함으로 흘러 내렸다.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손자의 손을 잡으며 눈물을 훔쳤다.


1 호텔에서 먹을 과일을 사기 위해 시장에 들렀다. 리지앙은 사철마다 싱싱한 과일과 채소가 넘쳐난다 2 리지앙에는 관광을 할 수 있는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많다 3 팔에 앉은 독수리와 함께 기념사진


▶To 아들
아들! 크면서 말썽 안 부리고 커서 그런지 든든한 동생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하고 그랬는데…. 아들이었네! 우리 아들하고도 처음 놀러 와 보는구나. 어릴 때부터 놀러 가면 좋아했던 아들과 중국을 오니 참 좋다. 둘째도 함께했으면 좋았을 텐데 참 아쉽네. 또 먹먹하다. 널 생각만 해도 그래. 어느새 이렇게 자랐나 싶기도 하고. 외롭고 힘든 상황에서도 잘 커 줘서 고맙다. 아무 생각 없이 많이 보고, 많이 웃고, 많이 행복해하자. 앞으로도 울 아들이 해왔던 것처럼 잘 견디고 노력해서 멋진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사랑한다.
FROM 엄마

가족이라면 모든 순간을 함께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순간이 올 때도 있다. 3년 만에 처음으로 아버지와 단둘이 여행을 오게 된 ‘금상첨화가족’의 아들은 “아버지”라고 말하는 순간, 울음을 쏟아냈다. 여행하는 내내 뭐든 앞장서서 움직이던 씩씩한 아들이었다. 관찰자인 나는 이들 가족이 그동안 왜 함께할 수 없었는지보다 서로가 한자리에 모여 그동안 꺼낼 수 없었던 마음을 전하는 모습을 포착하고 싶었다.
가족들은 저마다의 소원을 담은 편지를 작성하여 타임캡슐에 넣었다. 내년이면 편지를 열어 보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겠지! 어떤 가족은 실행하지 못한 약속을 살펴보고 다시 마음을 잡을 것이며, 또 어떤 가족은 그동안 서로에게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확인할 것이다.

에디터 트래비   글  김은민   사진  하나투어 photographer 최은진   취재협조  하나투어 www.hanatour.com


epilogue
짧은 여행의 끝, 가족애를 남기다 리지앙에서 돌아온 새벽, 한 어머니에게서 문자가 한 통 왔다. 입국 당일에도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야 했던 그녀였다. “오늘 일찍부터 다시 생활로 돌아와 열심히 근무 중입니다. 감사했습니다. 카카오 스토리 친구들 183명에게도 홍보 중입니다. 다시 생각해도 또 가고 싶은 곳이에요.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여행이 모든 것을 한순간에 바꿔 놓을 순 없다. 그러나 이번 리지앙 가족 여행은 서로의 등을 다독여 주고 손을 맞잡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미약한 과거가 쌓여 현재가 되는 것. 내 나이 ‘서른 하나’라는 숫자도 30살을 온전히 살아냈다는 증거다. 리지앙에서 느림의 여유와 자연을 느끼고 하나가 되어 돌아왔을 가족들에게도 현실이 닥쳐왔을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을 가족들과 나에게 여전히 남아있는 숙제들이 당장은 답답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리지앙에서 ‘우리 가족’은 서로를 마주보는 능력을 실험했을 것이고 완벽하진 않을 테지만 ‘가족애’를 경험했을 것이다. 나 역시 세상에는 우리 가족뿐만이 아니라 각양각색의 무수한 가족이 존재함을, 그들도 서로 사랑하는 가족임을, 그리고 나 스스로도 가족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음을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