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음식단상] 겨울이 뜨거운 이유

2013-12-03     트래비
섬진강 장군목에 가면 봄 같던 새색시가 이겨낸 스물 몇 해의 겨울이 있다.
전남 장흥에는 뚝배기 뜨끈한 한 끼를 위해 겨울바다에 몸을 담그는 사람이 있다.
 
 
 
과메기는 한겨울에 찬 바닷바람을 맞으며 말려야 제 맛이 난다. 
제대로 된 과메기는 딱딱하지 않고 말랑말랑하며 기름기가 흐르는 가운데 살은 검붉은 색을 띤다
 
겨울 바닷바람과 햇볕의 맛 | 포항 과메기
겨울이면 포항 죽도시장 건어물 거리에 과메기가 넘쳐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과메기 식당’이 없다. 포항 시내도 그렇고 과메기의 본고장이라고 알려진 구룡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과메기집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횟집에서도 팔고 대게 파는 집에서도 팔고, 고기 구워 먹는 집에서도 파는 등 과메기철만 되면 포항 인근 웬만한 식당에서는 과메기를 다 판다. 또 포항 사람들은 시장에서 과메기를 사다가 집에서 먹는다. 그래서 과메기 파는 곳에서는 과메기와 함께 먹는 미역 쌈, 쪽파, 초고추장 등을 세트로 준비해 팔고 있다. 구룡포 바닷가에는 과메기를 손질하고 말리는 공장이 있다. 손질된 과메기를 바람과 햇볕이 잘 드는 바닷가에서 3일 동안 말린다. 과메기는 효자 음식이다. 조선시대 구룡포 인근에 사는 어부가 노환으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위해 청어를 말려 겨울 내내 어머니 밥상에 올렸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젓갈통과 소금자루를 보니 절인 배추에 김장 속을 넣어
돌돌 말아 내 입에 넣어 주시던 엄마 생각이 났다.
 
젓갈정식과 김장 겉절이 | 전북 부안 곰소 젓갈정식
‘곰소’라는 이름은 곰살맞다. 부르는 사람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준다. 곰소항으로 들어갔다. 항구로 가는 길가에 젓갈과 소금을 파는 가게들이 줄을 지었다. 젓갈집 유리 진열장 안에 황석어젓, 밴댕이젓, 어리굴젓, 꼴뚜기젓, 낙지젓, 갈치속젓, 멍게젓, 창란젓, 새우젓, 명란젓, 오징어젓 등 젓갈이 수북하다. 젓갈 맛이 다 같을 거라 생각했는데 젓갈의 숙성도와 양념을 넣는 손맛 때문인지 맛이 조금씩 다르다. 곰소 바다에서 길어 올린 바닷물에서 피어난 소금을 보니 생각나는 시절이 있었다. 광 가득 연탄을 들이고 뒤꼍에 김장독 묻고 나면 북풍한설 황소바람도 두렵지 않았던 겨울. 지금도 저 먼 어느 이름 없는 마을에는 동짓달 삭풍에도 굽은 허리 펴지 못하고 자식들 나누어 줄 한 접 배추를 절이고 씻고 버무려 김장을 담는 늙은 세월이 있다. 곰소의 상징인 젓갈정식을 시켰다. 기본 반찬과 국을 비롯해 아홉 가지 젓갈이 밥상에 올랐다. 밥 두 공기를 거뜬히 먹고 배를 쓸어내리며 멍하니 창문을 보고 있는데 수증기 낀 유리창 위로 김장 겉절이 하나에 엄마가 해준 고봉밥을 다 먹고 배를 두드리고 있는 어린 내 모습이 겹쳐진다. 곰소쉼터 063-584-8007
 

늦게 들어온 밥상 새우탕에 참게 두 마리가 들어 있었다.
겨울 섬진강을 찾은 여행자에게 주는 아줌마의 선물이었다.
 
장군목 여울에 밤은 깊어 가고 | 전남 순창 섬진강 민물새우매운탕
요강바위는 장구목가든 앞 섬진강에 있었다. 어둠이 내리는 강가를 서성거리다 장구목가든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들이닥쳐 새우탕을 해달라고 하니 아줌마가 한참 걸린단다. 막걸리로 밥을 기다리려고 했는데 동동주밖에 없단다. 동동주 맛이 기가 막혔다. 창밖에는 겨울 강바람이 ‘훙훙’거리며 불고 따뜻한 방 안에서는 뚝배기 찌개가 ‘보글보글’거리며 끓는다. 이것이 시골에서 맛보는 겨울밤의 운치다. 그런데 찌개 옆 반찬접시에 꽃이 피었다. 도라지 무침에도 가지나물에도 꽃이 놓였다. 처음 보는 반찬도 있어 물어 봤더니 황새냉이란다. 아! 반찬 이름이 ‘황새냉이’라니. 어찌 이렇게 밥상을 차리냐고 물었더니 섬진강과 함께 살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대답한다. 아줌마는 도시 사람이었다. 이곳에서 시작한 신혼살림은 세탁기도 없었다. 겨울강에 나가 빨래를 해야 했다. 어머니의 세월을 젊은 새댁이 살았던 것이다. 지천에 피어난 들풀과 들꽃도 모르면 그냥 풀과 꽃인데 알면 밥상 위에 오르는 음식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자연에 묻혀 살면서 하나둘씩 배운 것이다. 밥상을 물리고 일행과 함께 어둠 속에서 혼자 흐르고 있는 섬진강 곁으로 나갔다. ‘졸졸’ ‘콸콸’ 흐르는 여울물 소리가 옛이야기로 들렸다. 우리의 얘기도 강물에 풀어 놓았다. 강은 그렇게 처음부터 사람 사는 마을 이야기를 품고 흐르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장구목가든 063-653-3917
 

매생이국을 먹는 일은 칼바람 겨울바다를 이겨내고 생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어머니의 뜨거운 눈물을 속으로 삼키는 일이다.
 
뚝배기에서 끓고 있는 바다 | 전남 장흥 매생이탕
주인아줌마 말로는 매생이탕은 꼭 뚝배기에 끓여야 제 맛이란다. 갓 끓여 나온 탕이었지만 보글거리지 않고 김만 피어난다. 뜨거운 열기를 매생이가 끌어안고 있었다. 호호 불어가며 한 숟가락 떠 입으로 가져가는데 뜨거운 맛에 혀가 놀랐다. 어느 정도 열기가 가신 뒤 입에 넣는 순간 혀에 감기는 촉감이 부드러웠다. 비단의 촉감보다 훨씬 더 부드럽게 혀를 감싸고 목구멍으로 내려가는 느낌이 맛보다 먼저 느껴졌다. 몇 숟가락 뜨고 난 뒤 그 맛을 조심스럽게 음미했다. 김의 세련된 맛도 아니고 미역의 진한 맛도 아니었다. 구수한 맛의 깊이가 바다와 같았다. 거기에 바지락, 굴, 날가지 등 해산물이 들어가는데 먹을수록 진해지는 그 맛은 아마도 뚝배기에서 함께 들끓어 하나의 맛을 내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장흥의 겨울 바다는 매생이로 뜨겁다. 바다에 대나무를 박아 시설물을 설치하고 매생이가 자라게 한다. 그 추운 겨울 바다에 직접 몸 담가 매생이를 딴다. 뼈를 얼리는 추위라야 그 뜨거운 맛이 제대로 살아나는 매생이탕. 지금 내 목구멍으로 한 숟가락의 바다가 넘어간다. 정남진음식사랑 061-864-9876
 
 
장태동의 음식단상
<맛골목 기행>, <서울문학기행>의 저자 장태동 작가의 맛깔스러운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