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 traveller] 100번 넘게 파리를 여행한 남자

2014-03-27     고서령

파리를 한 번 여행한 사람들이 말했다. ‘파리는 사랑의 도시’라고. 파리를 백 번 여행한 그가 말했다. 
‘파리는 문화예술의 성지聖地’라고.
 

김신 대표는
올해 10주년을 맞이한 유로스테이션의 창업주다. 유로스테이션은 유럽 여행상품을 판매하는 여행사들에 유럽의 호텔, 기차표, 유람선 티켓 등을 공급하는 회사다. 김 대표는 출장으로 유럽을 무수히 드나들던 중 파리의 미술관에 깊숙이 빠져들게 됐다. 2012년부터는 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예술 공부를 시작했다. 지난해 홍익대 산업디자인과 학생들과 합심해 만든 파리 미술관 지도 <파리에 물들다>는 회사의 매출신장에 큰 역할을 했다. 유럽 아트투어 전문 여행사인 ‘TTDT(Think·Talk·Dance·Travel)’도 운영하고 있는데, 그가 직접 가이드로 나선다. www.ttdt.kr 
 
 
미술관은 나의 성지

“해외 로밍 전화번호로 연결됩니다.”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음성. 김신 유로스테이션 대표는 통화도, 약속을 잡기도 힘든 사람이었다. 또 출장을 간 것이다. 이번에도 파리로. 그는 지금까지 100번도 넘게 파리를 여행했다. 지금도 한 해 10번 이상 파리에 간다. 그가 그토록 파리에 빠진 이유가 뭘까?

“‘관광’은 볼 관觀 자에 빛 광光 자를 씁니다. 빛을 본다는 의미죠. 다시 말하면, 관광업은 사람들이 빛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입니다. 제가 파리를 선택한 건 그래서예요. 제가 생각하는 그 ‘빛’은 문화예술의 빛이고, 지구별에서 문화예술의 아름다움이 가장 강한 곳이 파리거든요.”

김신 대표가 처음부터 미술이나 예술에 일가견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출장으로 수도 없이 유럽을 다니던 중, 어느 순간 파리의 미술관을 순례하고 있던 자신을 발견했다고. “언제인가…. 파리의 한 미술관에서 작품을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파리의 미술관, 이곳이 나의 성지구나! 그 공간과 작품들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이곳에 놓여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작품과 공간과 내가 하나로 연결되는 느낌마저 받았어요. 제가 문화예술의 매력에 눈을 뜬 건 그 순간부터인 것 같아요.”

미술관의 공간과 작품과 자신이 하나로 연결된 듯한 느낌.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기자로선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에겐 마치 종교적인 체험과 같은 일이었음이 분명했다. 그날 이후 김 대표는 파리의 크고 작고 다양한 미술관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문화예술에 대한 그의 애정과 호기심은 눈덩이처럼 커져, 2012년엔 홍익대학교 문화예술경영대학원에까지 입학해 공부를 시작했다. “파리의 문화예술을 알면 알수록 ‘아름다움’과 ‘새로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어요. 어떻게 아름답게 살 것인가, 어떻게 새로워질 것인가를 생각하게 됐죠.”
 
파리 뤽상부르 공원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프랭클린 루즈벨트 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파리지앵들
 
파리 미술관 지도를 만들다

시계를 과거로 돌리면, 대학에서 관광경영학을 전공한 그가 여행업계로 들어온 건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졸업 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형 여행사에서도 일했었고 작은 뉴질랜드 전문 여행사에서도 일했다. 그래도 다른 데 한눈팔지 않고 쭈욱, 20년 가까이 여행업에만 있었던 걸 보면 그의 적성에 ‘딱’이었던 것 같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여행자가 아니라 여행사에 유럽의 호텔 객실, 기차표 등을 제공하는 ‘유로스테이션’을 창업했다. 야심차게 시작해 존폐의 위기도 겪었고 극적인 재기도 이뤄내며 꿋꿋이 회사를 꾸려 왔다. 

그러던 중 지난해, 그의 노하우를 담은 파리 미술관 지도 <파리에 물들다>를 펴내면서 매출이 전년 대비 40%나 성장했다. “대학원에서 함께 수업을 듣던 분이 ‘런던 여행을 갈 건데 미술관 지도를 구할 수 없냐’고 물어 왔어요. 그런 지도는 없다고 하니 ‘당신이 한번 만들어 보는 건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역시나, 그때 김 대표가 떠올린 곳은 런던이 아닌 파리였다. “문화예술적인 매력이 가장 큰 도시는 파리이기 때문에 파리 미술관 지도를 만들기로 했어요. 기존에도 파리 지도는 많았지만 문화예술을 집중 조명한 지도는 없었거든요. 한국 여행자들이 쉽게 파리의 미술관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아주 자세한 지도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운 좋게도 지도 제작을 제안한 이가 홍익대 산업디자인과 출신이었다. 그에게 소개받은 산업디자인과 학생들과 두 달간 작업해 지도를 완성했다. 파리에 있는 미술관과 박물관은 총 300여 곳. 그 많은 걸 전부 다 표시한 지도는 매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김 대표가 직접 가 본 미술관과 박물관 중에서도 그의 마음에 쏙 든 곳만을 추리고 추려 넣었다. 지도에 나온 추천 로컬 레스토랑과 한국 음식점 역시 그가 직접 먹어 보고 맛있다고 생각한 곳만 기록한 것이다. 
 
 
단 한 번, 특별한 파리 여행

지금껏 수많은 여행을 한 그에게 가장 특별했던 여행은 어떤 여행이었는지 물었다. 역시 장소는 파리, 그러나 이번에는 동행자가 있었다. 아버지였다. 어머니와 딸의 여행은 흔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여행은 보기 드문데, 어떤 연유로 아버지와의 여행을 감행하게 된 걸까.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엄하고 무섭기만 했던 아버지에게 반항도 많이 했었고 증오하는 감정까지 있었죠. 그런데 이만큼 나이를 먹고 나니 문득 ‘내가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화를 해 본 적이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거였죠. 이제라도 아버지를 알아가고 싶어 함께 여행을 해 보기로 마음먹었어요.”

‘아버지, 저랑 일주일 파리 여행 가시죠.’ 이 한마디 말이 그에겐 너무나도 어려웠다. 마음은 먹었지만 말을 꺼낼 용기가 나질 않아 두 달이나 망설였다고. 그동안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얼마나 높은 벽이 있었는가를 실감한 때였다.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가까스로 전화를 걸어 “아버지, 저랑 같이 일주일 파리 여행 가시죠!”라고 건넸고,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너무 놀라 “생각해 볼 테니 일단 끊어라”라고 하셨단다.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와 둘이서 파리 여행을 떠났다. 센Seine강을 따라 한참을 걷기도 하고, 몽마르트르Montmartre 뒤편 작은 카페에서 맥주도 한잔 하고, 에펠탑 앞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와인잔도 부딪혔다. 그리고 여태껏 아버지에 대해 궁금했던 것들을 한꺼번에 물어보았다. ‘아버지는 어릴 적 꿈이 뭐였어요?’ ‘어떤 스타일의 여자를 좋아하셨어요?’ ‘어머니랑은 어떻게 결혼하셨어요?’ ‘그동안 어떻게 사셨어요?’ 등등…. 그는 또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그동안 세계를 다니며 어떤 것들을 보았는지, 어떤 꿈을 갖고 살고 있는지를 아버지께 말씀 드렸다. 난생 처음 아버지를 알게 된 시간들, 난생 처음 아버지께 자신을 알린 시간들이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아버지가 펑펑 우셨어요. ‘미안하다. 그동안 너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었구나’라고 하시면서요.”

그 여행 이후 김 대표와 아버지의 사이는 한층 편안해지고 살가워졌다. 또 여행업에 대한 애정도 더욱 두터워졌다. “제가 하고 있는 일이 가족간의 오랜 상처도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걸 그 여행을 통해 알게 됐어요. 그 마음을 담아, 파리 미술관 지도에도 아버지와 함께 걸었던 거리, 함께 갔던 카페, 돗자리를 펴고 앉았던 장소를 표시해 두었죠.” 실제로 <파리에 물들다> 지도에는 ‘파리의 숨겨진 산책로’ ‘돗자리 펴고 와인 마시기 좋은 곳’ 등 그의 이야기가 깨알같이 기록돼 있다. 
 
글 고서령 기자 사진제공 김신
 
Travie info
파리 미술관 지도 <파리에 물들다> 

유로스테이션은 인터파크투어, 신발끈여행사, 세계로여행사, 이오스여행사 등 유럽 상품을 판매하는 전국 여행사를 통해 <파리에 물들다> 지도를 무료 배포하고 있다. 지도는 수시로 바뀌는 파리 미술관 정보를 반영해 6개월에 한 번씩 업데이트된다. 지난 2월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으로도 출시됐다. 안드로이드 플레이스토어 또는 애플 앱스토어에서 ‘파리에 물들다’를 검색하면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김신이 꼽은 ‘파리 미술관’
“파리에는 이 시대 최고 수준의 미술관이 정말 많습니다. 미술관의 외관뿐 아니라 그 안의 공간, 공간 속의 색채, 유리창으로 쏟아지는 빛의 양과 각도, 천장의 높이, 그 안에 놓인 세계 최고 수준의 예술 작품들까지. 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제겐 성지와 같은 파리 미술관 다섯 곳을 추천해 봅니다.”
 

수련이 넘실거리는 ‘오랑쥬리Orangerie 미술관’
원래는 루브르궁전에 심을 오렌지나무를 기르기 위한 온실이 있던 곳으로 1층 두 개의 타원형 전시실에 모네의 대작인 ‘수련’ 연작 두 점이 하나씩 놓여 있다. 인공조명 없이 자연 채광만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에 해가 뜰 때 문을 열고 해가 지기 전에 닫는다. 지붕에서 떨어지는 햇빛의 양과 각도에 따라 모네의 수련이 넘실거리며 달라진다. 그 아래층에는 폴 기욤, 장 발터의 콜렉션과 피카소, 르누아르, 몬드리안, 마티스, 세잔, 드렝 등의 작품이 있다. 특히 마리 로랑생과 샤임 수틴의 작품이 파리에 갈 때마다 이곳으로 발걸음을 인도한다. 지금까지 50번 이상 이 미술관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www.musee-orangerie.fr
 
아늑한 보물관 ‘오르세Orsay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엔 언제 봐도 편안하고 친숙한 그림들이 있다. 과거 오르세 기차역이었던 건물을 프랑스 정부가 1986년 12월 미술관으로 재탄생시킨 것으로 기차역 구조를 최대한 살린 미술관의 내부는 넓지만 아늑한 느낌이다. 이 멋진 공간에서 좋아하는 그림 앞에 털썩 앉아 한나절을 보내고 나면, 몸과 마음이 즐거워진다. 1층에는 앵그르의 ‘샘’, 밀레의 ‘이삭줍기’와 ‘만종’,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과 ‘피리부는 소년’ 등의 작품이 있다. 2층에서는 로댕의 ‘지옥의 문’, 부르델의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 등의 작품을 볼 수 있다. 3층에는 고흐, 세잔, 고갱 등 인상파 거장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교과서나 엽서 속에서 보던 스타 화가들의 그림들이 잔뜩 전시된 보물관 같은 곳이다. 
www.musee-orsay.fr
 
로댕이 살던 저택 ‘로댕Rodin 미술관’
멋진 정원을 산책하며 위대한 조각가 로댕의 살아 숨쉬는 듯한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미술관 건물인 비롱Biron 저택은 로댕이 1908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로댕은 이곳에 자신의 미술관을 만드는 것을 조건으로 프랑스 정부에 자신의 모든 작품과 저택을 기증했고, 1919년 로댕 미술관이 개관했다. 로코코 양식의 우아한 건축물과 아름다운 정원 속에서 로댕의 대표작들을 감상할 수 있다. 미술관 건물은 2층으로 이뤄졌는데, 총 16개 전시실에 로댕의 조각 작품들과 소묘, 사진, 로댕이 수집한 회화와 고대 유물 등이 전시돼 있다. 작품을 감상하다가 정원 중간의 분위기 있는 야외 카페테리아에 들러 점심을 먹어도 좋다. 
www.musee-rodin.fr
 
현대미술의 보물창고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 
파리 최대의 현대미술관으로 현대미술의 보물창고라 할 만하다. 피카소, 달리, 마티스, 앤디 워홀, 이브 클랭, 아르망, 세자르, 안젤름 키퍼, 뒤샹 등 수많은 근현대 작가들의 유명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퐁피두 센터의 건물은 지하 1층에서 지상 6층으로 이뤄졌는데 2·3층은 도서관, 4·5층은 미술관, 7층은 전람회장이다. 이 건물을 설계한 렌조 피아노는 “퐁피두는 완벽하게 건축된 빌딩이 아니라 용도에 따라 혹은 필요에 따라 언제든 변형 가능한 거대한 기계”라고 했다. 옥상에 위치한 레스토랑은 파리지앵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파리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분위기와 맛이 일품이다. www.cnac-gp.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