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음식단상] 가을 하늘은 이런 맛일 거야!

2014-10-02     트래비
휘발할 것 같은 파란 가을 하늘은 아마 이런 맛일 거야!
입 안에 가득 퍼지는 전통주의 향기가 가을을 닮았다.
지금 내 입으로 한 모금의 전통주가 넘어가서
온몸을 가을로 물들인다.
 
 
이강주
이강주를 제대로 알려면 한 잔 마시기 전에 향기부터 느껴야 한다. 도자기에서 흘러나오는 미황색 맑은 술이 도자기잔 바닥에 부딪치며 향을 먼저 퍼뜨린다. 향기에서 그윽한 휘발성이 느껴진다. 그리고 한 모금 마신다. 혀가 맛을 느끼기 전에 이미 입 안에 술 향이 퍼진다. 혀에 닿은 술이 부드럽다. 이어 입 안 곳곳에서 ‘톡’ 쏘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잠들어 있는 세포가 깨어나는 느낌이다. 술을 넘기고 나서 숨을 쉬면 술의 맛과 향이 코와 입 안에서 순환한다. 코 끝에 남아 있는 마지막 향은 잔잔한 호수에 은파금파 빛나는 햇볕의 산란을 닮았다. 이강주는 이렇게 느끼고 마셔야 한다. 이강주는 누룩을 빚어 전통소주를 내려 받는 증류방식으로 소주를 만들고 거기에 배와 생강, 계피, 울금 등 약재를 첨가해 맛을 완성한다. 마지막 단계에서 꿀이 첨가된다. 이강주는 소주지만 국물요리나 맛이 강한 양념이 들어간 음식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추천안주 중에서도 국물이 자글자글하게 우러나는 쇠고기 불고기와 잘 어울릴 것 같다. 맛과 향이 강한 양념이나 조미료를 넣지 않고 주재료인 불고기용 쇠고기와 양파, 당근, 파 등을 약간씩 썰어 넣고 심심하고 담백하게 맛을 내야 한다.
063-212-5765  추천안주 이강주와 어울리는 안주로 보통 고기류, 견과류, 육포 등을 추천한다. 이와 함께 한과류나 떡 등으로 입맛을 다시는 것도 좋겠다.    
 
소곡주
소곡주의 맛은 세 단계로 느껴야 한다. 처음에는 아카시아 꿀의 단맛, 그 다음에는 들국화의 쓴맛, 그리고 약간의 청량감과 함께 들꽃의 은은한 향이 느껴진다. 알코올 함량 18%의 소곡주를 한 모금 넘기면 부드러운 비단이 살갗에서 미끄러지는 것 같은 느낌을 목에서 느낄 수 있다. 입 안에 남는 향은 말린 들국화를 뜨거운 물에 우려낸 차의 맛 같다. 쌉쌀한 맛이 단맛 뒤에 이어지기 때문에 입 안이 개운해지면서 침샘에서 침이 솟는다. 그와 함께 청량감이 입 안에 퍼지기 때문에, 그 순간은 입 안의 모든 잡냄새가 사라지고 오직 술 그 자체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알코올 함량 43%의 소곡주를 ‘불소곡주’라 한다. 불소곡주를 한 모금 마시면 처음에는 향과 맛이 없다. 술이 입 안에서 잠시 머무르는 동안 혀와 입 전체를 자극하는 짜릿한 맛과 함께 입 안에 청량감이 퍼진다. 정제되지 않은, 거칠고 강한 맛과 향에 입과 코가 뻥 뚫리는 기분이다. 입을 다물고 코로 숨을 내쉬면 들국화의 향이 퍼진다. 
041-951-0290  추천안주 알코올 함량 18%의 소곡주 안주로는 미나리전, 호박전 등이 잘 어울린다. 북어조림이나 두부조림 등 약간 매콤한 양념을 곁들인 담백한 안주 또한 괜찮으며 나물류를 함께 놓으면 구색이 맞는다. 알코올 함량 43%의 소곡주는 고기류를 안주로 곁들인다.    
 
 
계룡백일주
계룡백일주는 가을 하늘과 땅의 향기를 품은 술이다. 계룡산 자락을 끼고 있는 공주에서 100일 동안 술을 빚는다고 해서 이름이 ‘계룡백일주’다. 계룡백일주의 봉인을 따고 병마개를 여는 순간 은은한 술 향이 방 안 가득 퍼진다. 작은 잔에 술을 따라 놓고 향기부터 느껴 본다. 그 향이 대한민국의 휘발성 짙은 파란 가을 하늘을 닮았다. 첫 모금에 입 안에서 퍼지는 향이 봄 햇살 퍼진 언덕에 피어난 진달래 꽃잎처럼 부드럽다. 한 모금을 넘기고 난 뒤 코로 날숨을 내쉬면 코끝이 약간 ‘찡’ 하면서 솔잎 향기가 여운처럼 남는다. 2~3초가 지난 뒤 입 안에서는 서리를 맞고도 생명의 빛을 발산하는 국화의 강단진 향과 맛이 진하게 우러난다. 그 뒤를 따르는 맛은 국화의 쓴맛, 진달래의 풋풋한 맛, 솔잎의 알싸한 맛이 어우러져 조화로운 한 가지 맛. 계룡백일주의 향과 맛을 처음부터 끝까지 음미하려면 한 모금의 술을 입에 넣을 때부터 목으로 넘긴 뒤 향과 맛이 입 안 곳곳에 골고루 퍼질 때까지 입을 열면 안 된다. 또한 첫 잔은 세 번에 나누어 마시면서 그 깊은 맛을 진정으로 음미해 보아야 한다. 
041-853-8511  추천안주 육류가 어울린다. 생밤과 대추를 곁들이면 더 좋다.  
 
문배주
문배주에서는 양지바른 산자락 들풀과 들꽃의 풋풋한 향이 난다. 들판에서 아무렇게나 자라나 질기게 살아가는 생명력이 술에서 느껴진다. 문배주의 첫 맛은 강하다. 강한 첫 맛이 코와 입 속까지 동시에 퍼진다. 청량감이 강해 혀가 아리다. 코에서 퍼지는 향 또한 자극적이다.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데 불기둥이 내려가는 느낌이다. 이 모든 현상이 동시에 일어난다. 문배주의 진정한 맛은 그 다음 순간에 나온다. 한여름 폭포수같이 입 안을 시원하게 만드는 첫 맛 뒤에 들풀의 향이 입 안을 맴돈다. 술의 재료인 수수와 조의 향이 은근하게 퍼진다. 문배주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 향을 문배의 향이라고 말한다. ‘문배’란 산에서 자라는 돌배의 일종으로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고 산에서 스스로 자라 열매를 맺는지라 야생의 향기를 머금고 있다. 그런 이유로 문배주 또한 길들일 수 없는 야생의 성질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들풀의 향, 문배의 향을 확인한 뒤에 문배주의 마지막 맛을 느낄 수 있다. 들풀과 들꽃의 향과 맛에 이어지는 마지막 맛은 ‘무無’다. 입 안에 아무 맛도 남지 않는다. 술의 향은 몸속에서 은은하게 올라오는데 입 안에는 아무런 맛도 남지 않는다. 입 안의 잡맛을 다 쓸어버린 뒤, 맑은 샘물 샘솟듯 침샘에서 맑은 침이 솟아난다. 모든 불순물이 제거된 정화의 상태에서 어린아이의 입맛을 갖게 된다. 이 순간은 어떠한 맛이라도 민감하게 느낄 것 같다.  
031-989-9333  추천안주 고기류 또는 나물, 특히 더덕양념구이를 곁들어 먹으면 좋겠다.
 
장태동의 음식단상
<맛골목 기행>, <서울문학기행>의 저자 장태동의 맛깔스러운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