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ist essay] 베를린에 ‘멈춤’

2014-11-05     트래비
그때 나는 베를린에 머물러 있는 중이었다. 
머무름. 도중에 멈추거나 일시적으로 어떤 곳에 묵는 행위. 여행자에게 ‘머무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많은 도시 중 그곳이 베를린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우리는 모두 머무른다’라는 문구가 들어 있는 엽서
 
베딩, 일상의 회복 

자전거 탄 신사가 바람에 흘린 모자를 주워 주고 맥주를 홀짝이던 남자가 보내 온 훈훈한 미소에 답을 해 줄 수 있을 만큼 여백이 있는 일상이 가능한 곳. 베를린은 화려하진 않지만 일상적인 모습이 매력적이고 분위기에 껌뻑 죽지만 요란하지 않은 취향의 여행자들이 머무르기 좋은 도시임이 확실하다.

3주간 눌러 앉은 곳은 베를린의 중심인 A구역에서도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 집값이 싼 데 비해 있을 건 다 있는 베딩Wedding의 작은 호스텔이었다. 숙박료가 저렴한 것은 물론 매일 저녁 6시부터 이름마저도 행복한 ‘Happy Hour(모든 맥주가 1.5유로)’가 나를 기다렸던 곳(베를린은 대부분의 상점이 나름의 ‘Happy Hour’를 내걸고 있기 때문에 시간만 잘 맞추면 저렴한 비용으로 행복한 식사를 할 수 있다). 특히 베딩은 관광지라기보단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곳으로 그곳에서의 일상은 정말 자연스러웠다. 되돌아보면 마치 한 폭의 풍경화처럼 느껴진다. 
 
무료 와이파이 덕분에 ‘PC방’이라 불리는 로젠탈러 플라츠Rosenthaler Platz의 카페 세인트 오버홀츠St.Oberholz
마우어파크 플리마켓 구경 후 마시는 맥주는 말 그대로 꿀맛이다. 하리보 젤리는 옵션! 
 
자전거를 탄 풍경

‘베를린’이라 말하면 길가에 놓인 자전거를 상상하는 것. 이것이 내가 베를린을 추억하는 방식이다. 아침마다 1.2유로짜리 커피를 마시며(우유 추가는 공짜다!) 산책을 나가곤 했었는데, 정말 다양한 자전거를 볼 수 있었다. 엄마, 아빠가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차도를 달리는 모습은 생소하면서도 경이롭기까지 했다. 며칠간은 자전거에 마음을 뺏겨 벼룩시장에서 눈에 불을 켜고 저렴한 자전거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길가에 세워진 자전거도 많았다. 자전거가 있는 풍경은 자전거 하나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었다. 바퀴가 딛고 있는 도로와 몸을 지지하고 있는 거치대 그리고 나무의 푸름의 정도(햇살에 비친 나뭇잎 그림자까지)에 따라 그 분위기가 달랐다. 

자전거 문화는 다른 유럽의 국가들에서도 흔한 것이지만 베를린은 유독 그 느낌이 달랐다. 만만치 않은 교통비보단 자전거가 경제적이라는 이유가 아니더라도 걸음마용 자전거로 겨우 한 발짝 걸음을 내딛는 아기를 바라보는 부부의 모습을 보면 베를린의 자전거는 단순히 ‘탈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자전거를 향해 경적을 울리는 자동차를 보지 못했고 보행자를 앞질러 가는 자전거도 본 적이 없었다. 베를린의 자전거 풍경을 보고 있으면 그 누구라도 자전거에 오르고 싶어질 것이다.  
 
베를린에서는 어렵지 않게 자전거 렌트숍을 만날 수 있다. 비용은 하루에 10~12유로 정도
 ‘참새파티’가 열리고 있는 현장
베를린의 공원에는 어디든 사람이 많다
 
참새와 벌을 위한 브런치

3주 동안의 베를린 생활은 마치 무뚝뚝한 남자친구와의 연애 같았다. 그러나 이 도시의 매력은 그 딱딱함의 이면에서 발견되는 자연스러움과 따뜻함에 있었다. 전쟁의 피해를 그대로 간직한 성당과 구조물, 허문 장벽 사이로 보이는 코스모스, 굳이 팔려고 하는 사람도 흥정하는 사람도 없는 벼룩시장, 무뚝뚝한 인상과는 다르게 ‘May I help you?’ 하고 물어 주는 부드러움은 금세 경계를 풀게 했다.

베를린 생활에서 가장 걱정되었던 건 날씨였다. 그러나 9월의 베를린은 생각보다 따사로웠고 볕 좋은 벤치는 쉽게 만석이 되었다. 테라스에서 여유로운 브런치를 즐길 때 조심할 것은 참새도둑이었다. 주문한 커피를 가지러 자리를 비운 사이 쫑쫑쫑 뛰어와(그렇다. 날아오지 않는다) 배를 채운다. 달달한 냄새에 날아든 벌까지 가세하면! 나와 친구는 이걸 참새파티라 부르곤 했었다. 

베를린에서 일상을 채운 것은 이 모든 소소한 그러나 특별한 순간들이었다. 무미건조한 시간일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 사이에서 행복을 발견했다. 휘황찬란한 관광지가 아니라 일상으로 만났던 베를린. 내게는 그 도시로 돌아가 다시 ‘멈춤’을 선택할 이유가 분명하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트래비스트 이미화 
 
트래비스트 이미화
글을 쓴 이미화씨는 지난 8월부터 두 달간 유럽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그중 베를린에 머물렀던 한 달을 잊지 못해 내년 1년간 베를린으로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