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Table] 동네북이 된 동네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2015-05-06     트래비
 
예전에는 ‘관광지’에서나 만났던 ‘관광객’들이 이제 대문 앞까지 몰려들고 있다. 의아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한, 복합적인 감정인데, 여행기자들은 또 그 대열에 섞여 셔터를 눌러야 한다. 그래서 이건 속풀이 토크다! 
정리 <트래비> 취재부 
 

이름은 사라지고 동네는 뜬다 
천▶동네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가 항상 멀리 멀리 떠날 생각만 하는데, 요즘은 동네가 중요한 일상의 여행지가 되고 있다. 
신▶동네라고 하니까 재밌는 동네 이름들이 떠오른다. 전라남도 구례군에는 ‘방광리’가 있고, 광주 서구에는 ‘방구마을’이 있다더라. 한국에도 ‘발리’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울산 울주군 온양읍 발리. 
ALL▶ ㅋㅋㅋ
천▶ 그런 동네이름들이 도로명으로 바뀌면서 사라져 아쉽다. <트래비>가 위치한 무교동도 이제 무교로라고 부른다. 
양▶ 도로명 주소로 바뀔 때, 토론 프로그램을 봤었다. 이제 우리는 동네가 아니라 길에서 태어난 사람이 되는 거라고.  
천▶ 어릴 적 친구랑 다투면 ‘이제 우리 동네 오지 마!’ 그랬는데, 이제 ‘우리 길 오지마!’로 바뀌는 건가. 
천▶ 서민들은 월세, 전세 등 조건에 따라 떠돌아다니게 되니까 동네에 대한 애착이나 고민을 할 계기가 없는 것 같다. 생존에 바쁜 거지. 
편▶ 옆집 사람도 모르니까. 
천▶ 동네의 개념이 없이 자란 아이들은 남의 동네에 놀러가도 벽화나 유명한 간식처럼 표피적인 것들만 보고 SNS에 올리면서 뿌듯해 한다. 그렇게는 그 동네를 안다고 할 수 없다.  
김▶ 요즘은 벽화만 그리면 다 뜨더라. 뜨는 동네치고 벽화 없는 동네 없다. 그런데 그려 놓고 관리도 안한다. 
편▶ 동네라기보다는 정확하게는 골목이 뜨는 것이다. 아파트보다는 조그만 땅이라도 땅콩집 짓고 살고 싶은 마음도 있고. 근데 결국 내가 살고 싶은 동네는 결국 뜨고 있는 동네고, 그러면 또 다른 곳과 비슷한 동네가 돼 버린다. 서촌도 초기에 관심을 가졌는데 나중에 뜨는 걸 보니 사람들 생각이 다 비슷비슷하다.  
손▶ 난 문래동이 좋다. 
김▶ 철공소 많은 곳이 왜 좋은가?
손▶ 거기서 게스트하우스 하면서 살면 좋겠다. 
편▶ 난 통인동. 경찰들이 지켜 주고 회사도 가깝고. 

여행하다 보면, 취재하다 보면 
천▶ 동네를 일 삼아 취재해야 할 때도 있는데 당혹스러운 경우가 종종 있다. 방콕 가이드북 취재할 때 차오프라야강 너머의 왓 아룬 풍경을 좀 더 아름답게 찍어 보고 싶었다. 그 강변에는 집이나 가게들 사이에 작은 선착장이 여럿인데, 그중에 한 곳에 갔더니 어느 아줌마가 와서 돈을 요구하더라. 그 집도 아니고 강 건너 야경을 찍는 건데 말이다. 취재하면서 겪은 씁쓸한 경험이다. 
편▶ 얼마 전에 제주 3대 국수집 중 하나라는 ㅇㅇ국수집에 갔다. 테이블이 7개뿐이라 비오는 월요일 점심인데도 대기하는 팀이 10팀이었다. 가게가 작아서 앞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으니까 지나가던 주민이 소리를 질렀다. “가게를 좀 넓히라고! 다 막고 있지 말고.” 
이해는 되더라. 돈 많이 벌면 지역에 환원도 해야 한다. 길도 좀 넓히고. 암튼 국수는 맛있더라. 
고▶ 주민들은 달갑지 않을 수도 있지만 외지인 입장에서는 가보고 싶은 게 당연하지 않나.
김▶ 반가워하는 사람도 있다. 건물 소유주! 
편▶ 사실 주민들은 잘 모른다. 나도 벚꽃이랑 불꽃축제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여행자 입장에서 안타까운 건 어디 뜬다고 하면 전부 다 비슷해진다는 것. 원래 성수동은 패션, 문래동은 공연, 이런 식의 특색이 있었는데 점점 똑같은 분위기가 됐다. 
천▶ 그렇긴 하지. 뉴욕 소호도 그렇고. 젊은 예술가들이 버려진 지역을 찾아냈더니 동네가 뜨면서 카페 들어오고 쇼핑점 들어오고. 
차▶ 몇년 전만 해도 연희동 골목길엔 별게 없었고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외지인들이 모바일로 길을 찾아서 오더라. 덩달아 가게들이 늘어났다. 주민들은 연희동의 원래 조용했던 분위기가 사라져서 싫다더라. 
김▶ 농촌 소설 쓰시던 故 이문구 선생님이 <우리동네>라는 연작 소설을 냈었다. 우리 동네 박씨, 최씨 등등 9명 정도가 나온다. 내용이 지금 우리가 하는 이야기랑 비슷하다. 자본이 들어오고 신문화가 들어오면서, 현대화라는 게 농촌을 파고들면서 일어난 해프닝이다. 그래서 농촌다움을 잃어가는 것을 풍자한 내용. 지금도 비슷하다. 
편▶ 광주 양림동 취재 때 광주 출신 젊은이들이 안내를 했는데 ‘동네에 스타벅스 들어오면 끝이다. 안 오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런데 현실적으로 동네가 뜨면 집값이 오르고 살던 사람들이 밀려난다. 대조적으로 다음날 갔던 담양 무월마을에는 일단 사는 가구 수도 적고 카페나 마트도 없더라. 주민 중 절반이 민박을 하는데 다 이웃이니까 컨트롤이 되고 이장이 설득해서 지켜 낸 경우다. 도시는 그러기가 힘드니 어쩔 수 없다는 거다. 
천▶ 이번 호에 취재했던 창신동은 이화동처럼 될까 봐 걱정이더라.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외지인들이 줄을 서서 날개벽화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요즘은 한국인보다 중국여행객들이 더 많다. 주민들은 아무래도 불편하지. 그래서 창신동에는 주거지역에 아무것도 설치하지 않기로 방향을 정했다더라. 사람들 오지 말라고. 
편▶ 불꽃축제 때가 되면 외지인들이 주차 아무데나 하고 폭주족 애들이 폭주하고. 차를 가지고 나갈 수도 없다. 그래서 주민들은 적대감이 있다. 옆 단지는 주차장에 이렇게 씌어 있다. ‘주차하면 빨간 페인트칠한다!’ 너무 삭막하지 않은가. 같이 사는 건데.
차▶ 그럼 결국 매너의 문제인 건가. 
김▶ 문래동에서 작년에 할리우드 영화 <어벤저스> 촬영을 했다. 종종 가던 국수집에 대기하는 차들이 밀려 있고 난리가 아니더라. 반갑지 않았다. 밥 먹다가 사진도 찍혔다. 좀 뜬다고 우르르 달려가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천▶ 근데 우리도 외국 나가면 그런 곳에 가보고 싶지 않나. 굳이 뒷골목 들어가서 현지 사람들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어 하고. 
김▶ 그래도 문래동엔 오지마라! 
편▶ 실제로 ‘우리 동네 왜 왔니?’ 할 수야 있겠나. 나는 여의도에 사는데 퇴근 때 지하철에서 내리면 한강변 노점에서 오징어를 엄청 굽는다. 냄새가 진동.
김▶ 여의도가 동네인가? 토박이가 있나?
편▶ 동네다. 우리 아파트 40년이 넘었다. 
김▶ 아파트가 집인가? 
ALLA▶ ㅠㅠ

‘지극히 주관적인’ 동네 여행법
 
편▶ 신기자는 여행스타일이 ‘비 어 로컬Be a Local’이란다. 현지인처럼 여행하기! 가능한가?
숙소를 기준으로 주위를 계속 걸어 다닌다. 아무것도 없어도!
손▶ 처음 홍콩에 갔을 때 아무 정보 없이 갔다가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밥을 먹었는데 너무 맛이 없었다. 미식도시라고 하던데 내내 맛없는 식사만 했다. 그 이후로 여행갈 때는 꼭 평이 좋은 곳을 찾아다니게 되더라. 
관광객들이 잘 안 가는 곳이니 거기 음식이 어떤지 모를 수밖에. 하지만 현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을 먹어 보는 데 의의를 두는 거다.  
이야기하다 보니 동네를 가든 먼 해외를 가든 예상치 않았던 일, 기대치 않았던 일에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하는데, 요즘의 동네 탐방은 ‘남들이 좋다고 한 곳은 다 봐야 해!’라는 분위기다.  마치 위시리스트를 하나씩 지워내는 것처럼. 그래서 서로가 불편해지는 것 아닐까. 
어딜 꼭 가겠다고 정하면 동네사람들한테 피해를 주게 되는 경우도 생길 것 같다. 자연스럽게 다니면서 이 동네는 이런 게 있구나 하고 발견하면 좋겠다. 
동네를 여행하는 방법! 예를 들어 옥인동은 세 번 이상 방문하세요! 첫날은 카메라를 들고 오지 마세요! 동네 어른을 만나면 꼭 인사하세요! 이런 가이드라인이 필요할지도. 
검색해서 얻은 정보 때문에 선입견이 생기고 그 때문에 막상 동네의 진면목을 놓치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 할렘 여행법으로 추천해 준 것이 기억난다. 뉴욕에 가거든 주일에 할렘 지역의 교회에 가서 흑인 성가대의 연주를 들어 보라는 거다. 어떤 공연보다 실력도 뛰어나고 심지어 공짜라는 이야기였다. 인터넷을 뒤지면 위험하다는 정보만 수두룩한데 말이다. 

망한 동네, 망한 취재 
 
 유행 타다가 실패한 동네도 많다. 내가 경험한, 가장 크게 실패한 동네는 네덜란드의 히딩크마을이었다. 돈을 많이 투자해서 마을을 싹 정비하고 한글 간판도 달았는데, 몇 명이나 갔을라나. 
동네 욕심냈다가 망한 케이스. 뉴욕에 있을 때 센트럴 파크 바로 옆에 있는 럭셔리하고 조용한 주택가에서 한 달을 살았다. 그런데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너무 심심했다. 
취재를 하면서 동네 사람들과 처음으로 대화를 해봤다. 그냥 유명한 와플집이 있구나, 했는데 알고 보니 1980년대부터 2대째 이어오면서 규모를 키워 온 곳이었다. 집 근처 떡볶이집 아줌마와도 그전엔 한번도 대화한 적이 없었는데, 신선한 경험이었다.
창신동에 처음 혼자 갔을 때 어디가 어딘지 도통 모르겠던데, 두 번째로 지역재생지원센터 센터장님과 같이 투어를 하니까 전혀 다른 동네에 온 느낌이었다. 그게 동네 취재의 묘미인 듯. 
 나름 연희동을 구석구석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취재를 해 보니까 1년을 살았지만 철저히 외지인으로 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블로거라는 오해를 많이 받았다. 워낙 사진만 찍어 가는 블로거들을 많이 겪어서인지 상점이나 레스토랑 주인들도 불편해 하고 나도 불쾌한 느낌을 받았고. 쉽지 않았다. 
내가 가본 곳 중에 취재 제대로 못한 곳은 북한의 개성. 사진 찍는 방향까지 다 지정해 준다. 딱 그만큼만 찍을 수 있다. 칠하고 꾸몄거나 역사유적 같은 곳만 찍을 수 있는데 지정된 곳 빼고 아무것도 못 찍게 해. 
그건 마을이 아니라 취재가 망한 곳이네. 알제리도 그랬다. 관공서 쪽으로는 카메라 렌즈 방향도 못 돌리게 하더라. 
나한테는 안 그러던데. 
ㅠㅠ
취재할 때 앵글 속에 사람이 있으면 좋겠는데, 대상이 싫어한다고 느껴지면 갈등이 생긴다. 일이니까 찍고 싶은데 침해하기는 싫고. 
손▶ 그런데 말고, 인테리어 소품이라든지 아이디어 상품 모아 놓은 편집숍 같은 곳에 가면 사진을 못 찍게 한다. 그럴 때 어떻게 하나?
못 찍게 하며 안 찍어야지. 대웅전 안에 불상 찍으면 안 되는데 몰래 찍어서 자랑처럼 올린다. 그게 자랑은 아니잖나. 못 찍게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동네 얘기로 돌아가자. 
그 동네에서 원하면 되도록 지켜 줘야 한다는 거다. 성당에서 모자를 벗으라 하면 모자를 벗고, 짧은 반바지를 입지 말라 하면 지켜 주고.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거 아니냐!! 
끼워 맞추기는 정말! 
금강산에서 몰래 군인 찍다가 신분증 뺏겼었다. 30분 정도 격리당하고. 
무슨 생각이 들었나? 
하지 말라면 하지 말아야겠다고. 
ALL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