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비 10주년] 격세지감 - 트래비 10년 여행,세상을 향했고 사람을 보듬었다

2015-05-06     트래비
●격세지감Ⅰ 트래비 10년 여행
세상을 향했고 사람을 보듬었다
 
 
 
10th Annivesary 
변화무쌍했던 지난 10년 <트래비> 연대기
 
10년 동안 1,000번이 넘는 여행을 다녀왔다. 2005년 5월 트래비 창간호를 시작으로 2015년 5월 279호를 맞기까지 우리나라 전국을 쏘다녔고 세계 곳곳을 누볐다. 여행은 늘 설레었고 새로웠다. 여행Travel과 인생Life(vie)이라는 트래비Travie의 이름풀이답게 모든 여행은 세상을 향했고 사람을 보듬었다. 국가 수로만 따져도 70개가 넘으니 도시 수로는 감히 헤아려 볼 엄두조차 낼 수 없다. 음식과 음악, 디자인, 역사, 건축 등 무수한 여행의 테마까지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창공을 갈랐고 대륙을 관통했으며 바다를 항해했다. 동행자는 늘 사람이었다. 유명 연예인에서부터 아마추어 예술가, 전문 여행자에 이르기까지 여행을 사랑하고 여행으로 사랑받는 650명이 트래비에 여행앓이를 고백했다. 독자도 트래비 기자로 변신해 취재의욕을 과시했고 종종 독자모델로 숨은 끼를 발산했다. 트래비 라이터Travie Writer로 활동하다 아예 여행작가의 길로 들어선 이도 있다. 전문적인 여행기록 스킬과 노하우를 전수하는 ‘트래비 아카데미’도 탄생했다. 10년 여정이 늘 평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모든 여행이 그러하듯 돌발변수와 싸웠고 갈림길에서 고민했다. 여행은 멈추지 않는다는 신념만이 힘이었다. 그렇게 또 새로운 여정에 오른다. 
 
●격세지감Ⅱ 2005년, 그땐 그랬다!
지금의 일상은 과거의 빅이슈
 
오전 근무만 했던 토요일을 ‘반굉일’이라 부르며 오매불망 기다렸다. 항공권을 깜빡하고 공항에 갔다가 황망했던 적도 있다. 미국 비자를 받기 위해 은행잔고증명 같은 서류들을 챙겨 대사관 앞 기다란 줄에 합류했다. 불과 10년 전이다. 지금은 당연한 일상이 됐지만 당시에는 ‘빅이슈’였던 2005년의 풍경들, 그땐 그랬다. 
 
해외 첫 메시지
해외 여행지에 도착해 휴대폰을 켜기 무섭게 문자 메시지가 날아오지 않았는가? 외교부 영사콜센터의 해외여행 안전정보 말이다. 위급 상황 때의 연락번호도 안내하고 위험 지역일 경우에는 신속히 출국할 것을 권고한다. 영사콜센터는 해외 체류 중인 국민의 안전도모를 위해 2005년 4월 탄생했다. 연중무휴 24시간 상담서비스를 제공한다. 긴요한 서비스가 많다. 도난사고를 당해 현금이 전혀 없을 때 신속해외송금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며, 긴급할 경우 통역서비스로 의사소통을 돕는다. 도움 받을 일이 없는 게 최상이겠지만 홈페이지www.0404.go.kr에서 미리 정보를 파악하거나 문자로 안내 받은 전화번호를 기억해 두는 게 유비무환의 길이다. 스마트폰에 해외안전여행 어플을 깔아두는 게 시대상에 맞을지도…. 
 

LCC 대세론
현재 우리나라의 저비용항공사LCC는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에어부산, 이스타항공, 진에어 5개사다. 국제선 100개 중 14개는 이들 국적 LCC들의 몫이다. 초기에는 일본과 중국 노선에 편중됐지만 이제는 동남아 같은 중거리 여행지로도 영역을 넓혔다. 국내선에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앞질렀다. 2005년 LCC가 태동할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영향력이 커질 줄은 몰랐다. 우리나라 1호 LCC인 한성항공(티웨이항공의 전신)이 2005년 청주-제주 노선에 첫 취항했고, 제주에어도 설립됐다. 이후 후발주자들도 잇따라 가세했다. ‘싸구려 항공’이라는 초기의 부정적 이미지가 ‘실속 항공’으로 바뀐 것도 순항을 도왔다. 올해도 아시아나항공이 만드는 서울에어가 6번째 LCC로 이름을 올릴 예정이다.   
 
종이항공권 퇴출작전
항공권을 챙기지 않아 공항에서 낭패를 보는 일이 흔했다. 누구는 오토바이 퀵서비스를 동원했고 어떤 이는 가족을 귀찮게 했다. 자칫하면 비행기를 놓치니 애간장이 탔다. ‘항공권 자켓’이라 불렸던 종이봉투 속에는 출발과 귀국 비행편 정보를 담은 여러 장의 종이와 법적 안내문이 담겨 있었다. 항공사는 탑승 때마다 해당 종이를 한 장씩 뜯었다. 여행 중 항공권을 잃어버려 귀국 때 애를 먹는 일도 다반사였다. 이런 일들은 전자항공권e-Ticket으로 바뀌면서 사라졌다. 2005년 국제선 항공권에 e-티켓이 시범 도입됐고 그 이후부터 점진적인 종이항공권 퇴출작전이 벌어졌다. e-티켓은 분실 우려가 없어 여권만 잘 챙기면 된다. 단, 일부 항공사나 국가의 경우 e-티켓 사본을 요구하니 주의 필요!
 

개성 안내원의 발그레한 볼 
2005년은 북한관광의 전성기였다. 금강산 관광객 수가 그해 6월 100만명을 돌파했고, 8월에는 3회에 걸쳐 개성관광도 시범 실시됐다. 개성관광은 그 뒤 준비과정을 거쳐 2007년 12월부터 정식으로 진행됐다. 누구나 남과 북의 경계를 넘어 금강산을 오를 수 있었고, 개성에서 송도삼절 중 하나인 박연폭포 아래 서고 정몽주의 충절이 깃들여진 선죽교를 볼 수 있었다. 비록 긴장감 흐르는 통제된 여행이었지만 금강산과 개성을 모두 여행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큰 행운이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이 북한군의 피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잘 나가던 금강산 관광과 개성 관광은 모두 중단됐다. 아직까지 재개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개성에서 만났던 북측 안내원의 발그레한 볼이 아련하다.   

유류할증료의 탄생
항공권이 19만9,000원이라 옳거니 했더니 유류할증료가 30만원이란다. 공항이용료와 전쟁보험료 등까지 더하니 50만원이 훌쩍 넘는다. 처음부터 알았다면 눈길조차 두지 않았을 텐데, 그저 낚였다는 생각에 분한 마음이 솟구친다. 이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항공권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기저기서 소비자를 현혹했다. 죄다 유류할증료Fuel Surcharge 탓이었다. 국제유가 급등으로 인한 항공사의 부담을 덜어 준다는 취지로 2005년 4월 도입됐는데 소비자 불만과 혼란이 끊이지 않았다. 마일리지 항공권에 왜 유류할증료를 부과하는지도 논란거리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유류할증료를 포함한 총액 기준으로 항공권 요금을 표시하도록 한 데 이어 조만간 유류할증료 제도에 대해서도 개선책을 내놓기로 해 다행스럽다. 
 

신여권 대 전자여권
전자여권 소지자만 미국 무비자 전자여행허가ESTA를 신청할 수 있는데 간혹 그 이전의 ‘신여권’으로 신청하려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지금도 발생한다고 한다. ‘사진전사식 신여권’을 전자여권으로 착각해 벌어진 일이다. 신여권은 2005년 9월말부터 발급되기 시작했다. 기존의 사진부착식 여권과 달리 위·변조가 불가능하다며 당시 대대적인 홍보가 이뤄졌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전자여권 구현을 위한 이전 단계에 불과했다. 개인정보를 전자칩에 담은 전자여권은 2008년 9월부터 발급됐다. 지금도 유효기간이 남아 있는 ‘신여권’이 있지만 전자여권은 아니다. 신여권인지 전자여권인지 헛갈린다면 당장 여권번호를 확인해 보라! 알파벳 M에 여덟 자리 숫자가 뒤따르지 않으면 전자여권이 아니다.      
 

금요일 ‘반굉일’이 올까
토요일은 ‘반굉일’로 불렸다. 오전 근무만 하는 반공휴일의 충청도식 표현. 지금 생각하면 반공휴일이 아니라 반근무일이겠지만 당시에는 반쪽짜리 휴일도 감지덕지였다. 그래서 토요일 오후는 일주일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러다가 대변혁이 일어났다. 2005년 7월부터 주 5일 근무제가 기존 1,000명 이상 사업장에서 300인 이상 사업장으로 대폭 확대 실시됐다. 이듬해에는 100인 이상, 그 이듬해에는 5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한다는 점진적 계획이 서 있었지만 웬만한 회사들은 2005년 하반기부터 주5일제에 동참했다. 여행과 여가 활용 패턴에도 일대 변혁이 일었고 여행산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여행인구가 늘어나면서 이제는 금요일에 당시의 ‘반굉일’ 분위기가 물씬하다. 대변혁은 과연 또 올 것인가?   
 

비자 받던 기억 
일본이 우리나라 국민에 대해 사증 면제Visa Waiver 조치를 취한 계기는 2005년 3월부터 9월까지 나고야에서 열린 아이치세계박람회였다. 박람회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 비자면제 조치를 취했고 별다른 문제가 없자 한 차례 연기한 끝에 이듬해 3월부터 무기한 면제했다. 관광 목적일 경우 90일 무비자 입국이 가능해지면서 일본 여행길이 한결 편리해졌다. 미국 비자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당시 일본도 젊은 미혼 여성에 대해서는 비자 발급심사 때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댔었다. 까다롭기는 미국이 최고였다. 미 대사관 앞은 언제나 인터뷰를 기다리는 기다란 줄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도 55세 이상에 대해 인터뷰를 간소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는데 실제 무비자 조치는 2008년 11월에야 이뤄졌다. 
 

독도여행의 힘       
기상악화로 독도에 상륙하지 못하고 주변만 맴돌다 돌아온 기억은 지금도 못내 아쉽다. 독도 관광객은 2013년 25만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하루 700명꼴이다. 기상악화로 배가 뜨지 못하는 날이 많은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기록이다. 게다가 10년 전에는 날씨가 허락해도 하루 70명밖에 허가가 나지 않았다. 2005년 4월부터 문화재위원회가 독도의 동도를 공개제한 구역에서 해제하고 1일 방문객 허용량도 꾸준히 확대하면서 독도여행이 본격화됐다. 공교롭게도 일본의 독도 영유권에 대한 도발이 발단이 됐다. 일본 시마네현이 제멋대로 2월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하고 도발의 극치를 보였다. 지금도 변함이 없다. 독도관광 본격화 10주년을 맞아 자주 또 많이 독도를 여행할 일이다. 

ED카드가 뭡니까?
우리 국민이 해외 어느 곳으로 얼마나 여행했는지 우리 정부도 파악할 수 없다. 해외 각 국가들이 집계한 외국인 입국통계를 통해 우리 국민이 그 나라에 몇 명 방문했는지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출입국신고서ED Card, Embarkation/Disembarkation Card 제출 제도가 폐지돼서다. 정부는 2005년 내국인의 출입국신고서 제도를 폐지하기로 결정하고 시범적용을 거쳐 2006년 8월 본격 폐지했다. 출입국 소요시간 단축 등을 위해서였다. 당시에는 이래도 될까 싶을 정도의 파격적인 조치였는데, 자동출입국심사가 일반화된 지금 돌이키면 그저 옛날얘기일 뿐이다. 그렇다고 외국 입국 때에도 모두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가 외국인의 입국신고서를 받듯이 국가에 따라서는 입국신고서를 요구한다.
 
●격세지감Ⅲ  10년 전 vs 10년 후 
여행자도 여행지도 상전벽해
 
10년 사이 여행은 
상전벽해의 변화를 겪었다. 
여행자가 훨씬 더 늘었고
여행지는 한껏 더 멋있어졌다.
여행자와 여행지를 연결하는 항공사는 
한결 더 분주하다.
일본인 천지였던 
서울 명동거리는 어느새 중국인 관광객 차지가 됐다.
틀에 박힌 여행은 저리 가라.
종이지도 대신 스마트폰으로 무장하고
너도 나도 자유여행에 빠진다.
과연 10년 후 여행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