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타이완 기록자의 일기①그 여자의 일기,남쪽의 이야기를 들려줘-타이베이

2016-01-12     차민경
두 사람이 나섰다. 
타이완 방방곡곡을 훑으며 각개전투를 펼치고 나니 
크고 작은 것 모두 버릴 게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기록한다. 
두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은 타이완의 얼굴을.
 
옛 군사주둔지였던 쓰쓰난춘은 매일 베이글 냄새가 솔솔 풍기고, 매주 플리마켓이 열리는 문화 장터로 변모했다. 색바랜 대문의 조화만큼 정겨운 풍경이다
 
타이완은 어떤 곳일까

공식명칭은 ‘중화민국’이다. 우리나라 3분의 1 정도 크기의 섬나라다. 인구는 약 2,300만명, 수도 타이베이와 함께 가오슝, 타이중, 타이난이 4대 도시로 불린다. 16세기까지는 말레이계 원주민들이 타이완 전역에 분포해 살았으나, 1624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지금의 타이난에 거점을 두고 중국의 한족들을 모집해 토지개간을 시작하면서부터 한족들이 유입됐다.

네덜란드가 타이완을 관할하던 1644년, 만주족이 명나라를 침입하자 한족들이 전쟁을 피해 타이완으로 대거 들어왔다. 1661년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수세에 밀린 명나라가 2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타이완에 상륙해 네덜란드인을 몰아냈다. 이때부터 타이완은 중국인의 섬이 되었다. 1683년 타이완은 다시 청나라에 정복되어, 청나라의 22번째 성으로 편입되었다.

1895년부터 50년 동안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타이완을 식민지배했다. 1945년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전하자 다시 중국국민당이 타이완을 관할하기 시작했다. 1949년 중국 공산당과의 내전에 패한 국민당의 장제스 총통이 그해 12월7일 타이완으로 ‘중화민국’의 정부를 이전함으로써 지금의 타이완이 됐다. 국민당이 타이완으로 넘어올 당시 중국 자금성 뒤편의 고궁박물원에 안치되어 있던 수많은 국보급 유물들을 가져 왔는데, 중국의 역사를 아우르는 그 진귀한 유물들이 현재 중국이 아닌 타이완의 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타이완 인구의 84%는 일제강점기 이전에 유입된 한족 ‘본성인’, 14%는 일제강점기 이후에 유입된 한족 ‘외성인’, 나머지 2%는 한족이 유입되기 이전인 16세기까지 섬에 살고 있었던 ‘말레이계 원주민’으로 구성되어 있다. 말레이계 원주민은 아직도 타이완의 고산지역에서 고유의 언어와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중국 본토의 중화요리는 모두 타이완에 있다’는 말이 있는데, 중국 전역의 요리사들이 다양한 경로로 타이완에 유입된 까닭이다. 그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덕에 타이완에 가면 다양한 중국 전통요리들을 맛볼 수 있다.
 
 
●그 여자의 일기
남쪽의 이야기를 들려줘

오롯한 자유의 시간이 주어졌다. 욕심을 내서 타이베이는 물론 남부 도시 가오슝까지 들렀다. 친구와 이야기를 하듯 구석구석 관심을 가져보고 꼼꼼히 소식을 경청했다. 타이완은 여전히 다정하고 속이 깊은 친구였다. 역시, 내가 눈썰미가 있다니까.  
 
타이베이의 골목은 새롭다. 번잡함도, 거슬리는 소음이 없는 호젓한 산책만으로도 타이베이를 완전히 느낄 수 있다. 중산공원 주변의 풍경
디화지에는 오래된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임대료가 낮은 곳을 찾아 온 젊은 청춘들은 디화지에 곳곳에서 꿈을 펼치고 있다
 
●타이베이

켜켜이 쌓인 시간의 결을 어루만지다 보면 지금까지 알아 왔던 타이베이 말고, 또 다른 타이베이가 보인다. 언제든지 이야기를 쏟아낼 준비가 돼 있다. 콕, 찌르기만 한다면. 
 
▶옛 거리에 움트는 새싹들
디화지에DihuaStreet
 
아마도 사람들은 조금 덜 꾸미고, 덜 복잡했던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있나 보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흥행은 바로 그런 감성을 자극했던 것이 아닐까. 희한하게도 타이완에 발을 디디면 멀지 않은 과거를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우리의 과거 모습들이 타이완 곳곳에서 엿보이기 때문일 테다. 세련되지 않아도 소박한 옷차림, 숨기는 것이 없는 날것의 표정. 

타이완을 여행하며 보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래서 번잡한 관광지 대신 도시의 외진 곳으로 숨어들었다. 유리로 마감한 신식 건물들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한눈에 보기에도 낡은 2~3층의 건물이 골목을 이루기 시작했다. 디화지에다. 1850년경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디화지에는 과거 타이완의 경제 중심지였다고. 각종 허브, 직물, 차 등을 파는 골목이었단다. 당시의 건물들이 고스란히 남은 덕에 시간 여행을 하는 듯 황홀한 기분에 젖어들게 된다. 과거의 영화를 재현하듯 아직도 디화지에 골목 곳곳에는 타이완의 각종 전통 먹거리, 직물을 파는 곳들이 남아 있다. 사람을 모으는 호객꾼의 소리는 낡은 건물 사이를 넘나들며 생기를 북돋는다. 

가장 번성했던 19세기를 지나면서 디화지에의 화양연화는 지나갔다. 그러나 주름이 패었을지언정 여전히 생기로운 빛을 띠는 것은 왜일까? 정답은 낡은 땅에 찾아와 깃든 젊은이들에게 있다. 디화지에에는 빛 바랜 건물에 어울리지 않을 법한 멋진 카페와 갤러리, 편집숍들이 꽁꽁 숨어 있다. 바쁜 걸음으로 재촉한다면 절대 볼 수 없을지 모른다. 화려한 간판을 내건 것도 아니요, 나만 잘났다고 뽐내는 모양도 아니다. 옛 거리에 살갑게 녹아들어 그저 ‘디화지에’ 같기 때문이다. 

이곳에 새로 생긴 숍들만 모은 지도가 빽빽하다. 겨우 2년 남짓한 시간에 만들어진 것이다. 젊은 예술가들이 디화지에에 모이게 된 것은 다름 아니다. 옛 건물이 가득한데다 개발이 늦어지면서 임대료가 저렴했기 때문. 프로젝트처럼 하나의 업체가 주도해 여러 건물에 숍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고, 개별적으로 카페나 갤러리를 운영하기도 한단다. 건물 중앙을 비워둔 ‘ㅁ’자 형 전통 가옥에는 그래서 각 모서리별로 각양각색의 숍이 자리하고 있다. 마치 함정에 갇힌 것처럼 하나의 건물을 다 돌고 나오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만다. 물론 지갑이 홀쭉해지는 정도도 머문 시간에 정비례한다.
 
 
아트야드Art Yard
세다이그룹Sedai Group이 디화지에가 속한 다다오청 지역의 활성화를 위해 만든 복합공간. 지난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아트야드가 꾸며지기 시작해 지금 막 기반을 잡았다. 디화지에 거리 곳곳에 아트야드에 속한 총 5개 건물이 운영되고 있다. 소소한 잡화를 파는 숍과 강연장이 운영되는 시아오이청小藝埕 · Xiăo yì chéng, 타이완 전통 예술을 재해석하는 숍이 모인 민이청民藝埕 · Mín yì chéng, 아티스트의 개별 숍이 모여 있는 종이청眾藝埕 · Zhòng yì chéng, 전시회와 강의가 열리는 시에이청學藝埕 · Xué yì chéng, 예술가의 안뜰을 표방한 리안이청聯藝埕 · Lián yì chéng 등이 그것이다. 각각 서점, 갤러리, 카페 등 여러 개의 숍이 입주해 있다.
www.artyard.tw
 
플라이시fleisch
타이완에서 난 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커피를 내리는 레스토랑. 공정한 방식으로 재료를 공수해 농민에게는 알찬 수익을, 소비자에게는 신선한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주방을 개방해 어떻게 음식이 만들어지는지 공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방식에 공감하는 방문객들이 3층 건물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톤다운 된 내부 인테리어가 주는 편안함이 일품. 각종 미디어에 소개된 유명 레스토랑이기도 하다. 
 No. 76, Section 1, Dihua St, Datong District, Taipei City
 www.fleisch.com.tw  +886 2 2556 2526
 
프로그카페Frog Cafe
나무로 만들어진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프로그숍Frog Shop이 카페의 형식을 빌렸다. 엽서나 달력, 작은 사무용품을 전시하는 공간과 카페로 이뤄져 있는데, 디화지에 메인 거리의 입구에 자리하고 있어 항상 붐비는 편. 간단한 식사도 즐길 수 있어 다음 여행을 위한 기력을 보충할 수 있다. 
 No. 13, Section 1, Dihua St, Datong District, Taipei City   shop.frogfree.com  +886 2 2555 2125
 
홀로 지켜 온 시간이 그대로 드러나는 보피리아오

▶그들이 사는 세상
다다오청DaDaoCheng

디화지에의 정겨움은 바로 인접한 다다오청 항구로 이어진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 여행자들이 한강공원에 오면 이런 기분일까. 타이베이의 메인 선착장인 다다오청에는 여가를 즐기기 위해 나온 가족과 연인들이 한 가득이다. 앳된 얼굴을 한 연인들부터, 노모와 아이까지 나선 대가족도 있다. 타이베이 어딘가에서 밥을 짓고 사는 사람들, 진짜 그들의 생활 안에 녹아들 수 있을 것만 같다. ‘땡땡’ 작은 종을 울리며 아이스크림을 파는 사람,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키는 사람도 있다. 

쉴 새 없이 휙휙 지나가는 것은 자전거다. 어디서나 자전거를 즐긴다는 타이완 사람들의 생활이 그대로 느껴지는 전경이다. 다다오청 한쪽에는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는 자전거 대여소가 마련돼 있다. 교통카드만 있으면 자전거 빌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강 너머를 천천히 바라보며 즐기기에는 자전거만한 것도 없겠다.
 
낡은 2층 건물이 모여 있는 쓰쓰난춘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을 나온 주민들을 볼 수 있다
쓰쓰난춘 건물 위로 올려다보이는 타이베이101

▶홀로 남은 외딴 섬의 변신
보피리아오BoPiLiao

MRT 룽산쓰역을 나서자 사방에서 울리는 번잡한 소음이 귓속으로 파고 든다. 타이베이 시내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다 보니 언제 와도 사람이 많다. 기도를 올리러 찾아온 주민들부터 사진을 찍기 바쁜 관광객까지, 어디에 시선을 둬도 위엄 있는 룽산쓰의 자태보다 사람이 먼저 들어온다. 

룽산쓰를 한 바퀴 빙 돌고 발길을 틀었다. 진짜 목적은 보피리아오다. 룽산쓰 오른편으로 딱 한 블록만 걸으면 금세 보피리아오를 발견할 수 있다. 붉은 벽돌로 쌓은 2층 건물이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 간판도 없고 표지판도 찾기 어렵지만 주변 상가 지역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마치 보피리아오만 동떨어진 시간에 놓여 있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보피리아오의 역사는 200년 전 후기 청나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보피리아오 일대는 망카Mangka지구와 구팅Guting지구를 잇는 교통 중심지로 번성했었다고. 일제 식민지 시절을 거치며 인근의 옛 건물들은 모두 새로 개발되어 서양식으로 변모했지만, 어쩐 이유에서인지 보피리아오만은 그대로 남게 됐단다. 

우여곡절 끝에 홀로 남아서인지 외딴 섬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희끗희끗한 벽돌색마저도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겨우 한 블록 차이인데 사람이 바글바글하던 룽산쓰와는 달리 보피리아오는 한적하기 그지없다.  

아치형 터널을 지나다 보니 한쪽에서 피아노 연주가 들려온다. 보피리아오의 한 구역에서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 연주에 맞춰 성악가의 목소리도 울려퍼졌다. 보피리아오의 희끗희끗한 벽돌이 돋보이는 조용한 거리에는 근대 타이완의 역사를 체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교육관, 공연 및 전시가 이뤄지는 공간 등이 다양하게 자리하고 있다. 여행자에겐 훌륭한 포토존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쓰쓰난춘 골목 사이사이를 걷다 보면 오래전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삶이 펼쳐진다
 

▶군사 주거지, 따뜻한 남쪽이 되다
쓰쓰난춘SiSi Nan Cun

우연히 발견한 샘터는 그것이 크건 작건 반갑고 사랑스럽기 마련이다. 쓰쓰난춘이 그랬다. 기대보다 작은 규모에 과연 잘 찾아온 것이 맞나 싶을 정도였지만, 고층 빌딩 옆에서도 기죽지 않는 존재감을 뽐낸다. 

우선 외형 때문이다. 타이베이101이 한 발짝 거리에서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서 있고, 그 주변에도 고층 건물들이 즐비하다. 쓰쓰난춘은 1층 높이의 2층 건물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낮고 작았다. 하지만 외형만으로 존재를 파악하는 것은 경솔하다. 건물 곳곳에 숨은 보석 같은 가게들, 매주 주말마다 열리는 플리마켓은 쓰쓰난춘이 진짜 ‘따뜻’하다는 것을 직감하게 한다. 한가한 평소의 모습과 달리 주말만 되면 북적이는 진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매주 주말 오후 1시부터 작은 액세서리부터 옷, 먹거리, 문구까지 다양한 숍이 쓰쓰난춘 중앙 광장에 빼곡하게 들어선다. 

이곳은 지난 1949~1960년대 중국에서 넘어온 중화민국의 군인들과 그 가족들이 모여 살던 지역이었다. 100만명이 거주할 정도로 규모가 컸지만, 시간이 가면서 거주하던 군인들이 은퇴하고 사회로 돌아가면서 점점 영향력이 축소되기 시작했다고. 그리고 지금은 단 몇동의 건물만 남아 이색 관광지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회색 시멘트 벽 그대로 남은 건물은 빨강, 노랑, 초록 등 원색으로 문과 창틀에 포인트를 줬다. 낡고 바랜 느낌이지만 그런대로 사랑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좁은 벽과 벽 사이를 지나다 보면 자연스레 과거 이곳에서의 삶이 그려진다. 옛 흔적을 모아 둔 전시관에서는 그 상상이 좀 더 구체화될지도 모르겠다. 
 
 
굿초스Good Cho’s
타이완 ‘로컬 푸드’가 총집합했다. 장류, 조미료, 커피, 화장품까지 모두 모인 이곳은 쓰쓰난춘에 입점한 가장 큰 숍이다. 특히 주방에서 바로 만들어 내는 베이글의 인기가 뜨겁다고. 그 명성을 못 들어본 자라도 굿초스에 들어서자마자 풍겨 오는 고소한 빵냄새 때문에 베이글을 사게 될지 모른다. 종류도 수십가지에 달해서 고르는 재미도 쏠쏠한데, 다만 중국어를 하지 못한다면 직감으로 고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함정. 
 No. 54, Songqin St, Xinyi District, Taipei City
+886 2 2758 2609
 
미도리Midori
역시나 로컬 푸드를 이용하는 아이스크림 숍이다. 방부제 등 인체에 유해한 화학 제품을 사용하지 않은 것도 미도리의 특징. 그래서인지 아이스크림의 색이 연하고 부드럽다. 관찰 결과 굿초스에서 베이글을 먹고 미도리에서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이 쓰쓰난춘의 메인 코스가 분명하다. 콘이나 컵 중 선택할 수 있다. 
 No. 50, Songqin St, Xinyi District, Taipei City
 
에디터 고서령 기자 글·사진 차민경 기자, Travie writer 김봉수
취재협조 내일투어 02-6262-5000
타이완관광청 www.taiwan.net.tw, 브이에어 www.flyvai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