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비스트 유호상의 여행만상] 기장의 분노

2016-03-31     트래비
 
이집트 여행을 마치고 런던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리스 비행기를 탄 덕분(?)에 중간 기착지로 내린 아테네 공항에서의 환승 대기 시간은 3시간 정도. 그런데 사전 정보에 의하면 아테네 공항은 여행객들이 뽑은 최악의 환승공항 1위였다는 거 아닌가. 과연, 항공기 접안시설이 부족해  활주로에 내려 버스로 이동해야 했고, 시골 버스 대합실을 연상케 하는 낡은 시설과 분위기는 물론, 무엇보다 앉을 공간이 몹시 부족해 보였다. 자연스럽게 다음 비행기의 탑승 게이트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찾아 헤맬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기내에서 알게 된 재미있는 호주인 G양과 함께여서 지루하지 않은 게 다행일 뿐이었다.
 
대기한 지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G양이 고개를 번쩍 들더니 뭔가 이상하다고 말했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그래도 일단 종종걸음으로 따라 나서며 왜 그러냐고 묻자 방송에서 뭔가를 들은 것 같다는 것이다. 영어 원어민이라 다르긴 달랐다. 둘이 한참을 달려 탑승 게이트가 가까워지자 무전기를 든 항공사 직원들이 짜증스런 표정으로 빨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허둥지둥 보딩패스를 내미니 지금까지 어디서 뭐하고 있었냐며 성질을 냈다. 아직 두 시간 가까이 남았건만 왜들 이러시는지…. 하지만 그걸 따질 겨를도 없었다. 비행기를 놓치지 않은 게 어디냐고 서로를 위로하며 탑승하려는데, 탈 비행기가 안 보였다. 아래층으로 가라고 해서 내려가 보니 텅 빈 버스 한 대가 대기 중. 알고 보니 접안을 못한 비행기는 활주로에서 대기 중이었던 것이다. 둘이 타자마자 버스는 황급히 출발했다. 그날 따라 유난히 넓게 느껴지던 활주로….
 
마침내 트랩에 올라 기내에 들어서려는 찰나, 객실승무원이 앞서 가던 G양을 막아섰다. 조종실에서 기장이 부른다는 것이다. 통로가 좁아 G양이 앞에 서고, 내가 뒤에서 조종실 쪽을 기웃거리니 기장이 G양에게 호통을 친다. “너희들 때문에 늦어지고 있잖아!” 내참 이렇게 황당할 수가!! 기장이 승객에게 성질내는 것은 정말이지 처음 봤다. 어쨌든 기장의 욕을 G양이 앞에서 막아 줬다고 내심 좋아했더니만, 자리로 가기 위해 뒤돌아 객실로 들어서는 순간, 
 
이번에는 수많은 승객들의 따가운 시선들이 
앞장서고 있는 내 얼굴로….  
 
1999년, Athens, Greece

*글을 쓴 유호상은 낯선 곳, 낯선 문화에 던져지는 것을 즐기는 타고난 여행가다. 현재 여행 커뮤니티 ‘클럽 테라노바’를 운영 중이다.

▶tip
이 사건은 아직도 미스터리하다. 한 가지 새삼스러운 교훈은 비행기를 기다릴 때는 가급적이면 탑승게이트에서 가까운 곳에 있을 것과 공항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든 한쪽 귀는 항상 방송에 열어 두는 습관을 들이자는 것이다. 
참고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아테네의 엘레니콘Hellenikon 공항은 2001년 문을 닫고, 아테네의 북동쪽에 24시간 운영되는 신공항이 개항했다. 참으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