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나미비아

2016-04-05     트래비
떠나기 전만 해도 나미비아는 ‘듣보잡’ 국가였다. 
하지만 지금 나미비아는 
청춘의 로망 여행지로 등극한 상태다. 
다녀오길 잘 했다. 조금 더 먼저.
 
데드블레이Dead Vlei는 강렬한 태양빛에 말라 버린 나무 시체가 기묘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죽음의 습지’라는 뜻으로 약 900년 전에 사막화 됐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아무래도 요즘 이슈가 되는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쌍문동 4인방이 다녀왔다는 ‘꽃 청춘 여행지’ 나미비아Namibia. 그전까지 여행 좀 다녔다는 여행자들에게도 생소했던 나미비아가 지금은 파리나 로마만큼이나 입에 자주 오르내르는 관광지가 되었으니 방송의 힘은 참 대단하다. 

나미비아에 다녀온 사이 지인들의 관심사도 바뀌어 있었다. 출발 전에 지인들에게 나미비아에 간다고 하면 위치부터 설명해야 했지만, 지금은 그들이 먼저 구체적인 여행지를 언급하며 물어본다. “너도 듄45에 올라갔어?” “스와쿱문드는 어때?”
 
불편해도 좋아 청춘이니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서 육로로 시작된 나미비아 입국기는 처음부터 만만치 않았다. 사전에 비자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국경 통과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정말 궁금한 게 많은 것인지, 아니면 절차상 과정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This is Africa!’를 느끼기에 충분한 경험이었다. 여기에 콧대 높은 나미비아의 자존심까지 더해지니 질문은 끝이 없었다.
 
나미비아 여행은 로드 여행에 가깝다. 가도가도 끝이 안 보이는 지평선을 따라 수백 킬로미터를 내달리게 된다. 이국적인 풍경도 잠시, 똑 같은 장면이 연속되다 보니 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도 이내 지루해 졌다. 비포장도로로 접어들자 이윽고 흙먼지 가득한 사막이 나타났다. 어떤 곳인지 상상이 안 간다면 영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의 도로를 생각하면 빠를 듯싶다. 실제로 나미비아에서 촬영된 영화다. 그리고 가끔씩 도로에서 경찰을 만나면 면허증부터 차량렌트 허가증까지 온갖 증명서를 요구하고, 교통신호 위반 여부나 과속까지 체크하고 여간 깐깐한 게 아니었다. 영화 속의 악당처럼 뒷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과연 분노의 도로였다. 그렇게 하루 하고도 반나절을 더 달려 도착한 곳이 세스림 국립공원Sesriem National park이었다. 도착했다는 기쁨보다는 무사히 왔다는 감사함이 먼저 드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나미브사막 전체를 조우할 수 있는 듄 45. 특히 일출과 일몰 때 자연만이 보여 줄 수 있는 강렬한 색의 대비를 연출한다
 
세스림 국립공원은 나미비아의 종합 선물세트다.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듄45Dune 45*, 소서스블레이Sossus Vlei, 데드블레이Dead Vlei 그리고 세스림 캐년Sesriem Caynon이 있는 곳이다. 편하고 쾌적한 롯지도 좋지만 캠핑장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제대로 나미비아를 느낄 것 같았다. 살이 탈 정도로 뜨거운 태양과 저 멀리서 불어오는 사막의 모래바람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다. 뜨거운 온수가 펑펑 나오는 샤워장은 물론 수영장까지 갖춰진 캠핑장은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저녁식사로 스테이크가 나왔다. 게임 드라이브Game drive*에서 만날 수 있는 동물 중 하나인 오릭스Oryx스테이크로 조금 질긴 것 말고는 쇠고기랑 별 차이는 없었다.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시고 다음날 듄 45 일출을 보기 위해 서둘러 침낭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해 봤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정체불명의 동물 울음소리와 수상한 발자국 소리에 조심스럽게 텐트 지퍼를 내려 텐트 밖 상황을 살펴봤지만 낯선 동물의 모습은커녕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 빛만이 가득했다. 칠흑 같은 어둠과 매서운 모래 바람 사이로 빛나는 별이 있는 아름다운 밤이었다. 
 
*듄 45 | 거대한 모래언덕이라는 뜻으로 숫자 45는 세스림 캐년에서 거리가 45km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임 드라이브 | 자동차를 타고 야생동물을 찾으러 떠나는 여행
 
아직은 깜깜한 새벽, 동이 트기 전에 듄 45로 향했다. 씻지도 않은 채 비몽사몽 듄 45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처음 맞이하는 사막에서의 일출. 모든 게 새롭고 신기했다. 모래라면 지금껏 바닷가 모래가 전부였는데 붉은 모래산의 풍경은 전혀 다른 그림이었다. 차가운 모래의 첫 촉감. 하지만 이내 모래 사이로 발이 빠지면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새벽이라 썰렁했던 느낌도 태양이 조금씩 떠오르면서 붉은 사막의 따스함이 전해져 왔다. 태양의 고도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사막의 빛깔. 있는 그대로의 자연색이 보여 주는 선명한 대비는 포토샵으로 보정한 것보다 더 강렬하고 인상적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붉은 사막이 내뿜는 매력에 도취되어 한참이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자연스럽게 다음 여행은 사막을 테마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 좋은 영감이다. 
 
사파리에 나서면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얼룩말이지만 이날은 유일하게 볼 수 있었던 야생동물이었다. 이렇게 게임 드라이브에선 타이밍이 중요하다
 
게임 드라이브는 타이밍이 중요했다. 세스림 국립공원을 지날 무렵 심상치 않은 비가 내렸다. 아프리카에 웬 비? 더군다나 지금은 건기시즌인데 말이다. 처음에는 뜨거운 태양을 잠시 식혀 줄 거라는 기대에 비가 시원하고 반가웠다. 하지만 비는 한두 번으로 물러가지 않았다. 에토샤 국립공원Etosha National Park에 도착했을 때는 퍼붓듯이 쏟아 붓고 있었다. 탄자니아 세렝게티Serengeti에서의 사파리 투어가 너무나 좋았기에 에토샤 국립공원에 대해서도 내심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던 참이다.
 
셀프 드라이빙까지 가능하다고 해서 동물 구경뿐 아니라 직접 찾는 재미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었는데 결국 비 때문에 게임 드라이브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평소라면 워터 홀Water hole*로 모여야 할 야생동물들이 비가 오면서 곳곳에 생긴 웅덩이로 흩어져 버렸다. 그 흔하다는 얼룩말조차 보기가 힘들었다. 오후가 되자 비가 그치고 해가 쨍쨍났다. 이번엔 다를 거라는 기대를 해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냥  돌아가려니 아쉬움에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멀리서 사자가 보였다. 이런 행운이! 두 마리의 수사자였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니 갈기를 휘날리며 위풍당당하게 가까이 다가왔다. 다양한 동물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한 방에 해소할 수 있었다. 
 
*워터 홀 | 야생동물이 물을 마시기 위해 모여드는 물웅덩이로 여러 종류의 야생동물을 관찰하기 좋은 장소다
 
나미비아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요즘 나는 매주 방송을 통해 다시 나미비아로 돌아가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꽃 청춘 4인방이 주인공이 아니라 내가 다시금 주인공이 되는 시간이다. <꽃보다 청춘>의 나미비아가 아니라 ‘내 청춘’의 나미비아여서 참 다행이다.  

글·사진 트래비스트 전상우  에디터 천소현  

*트래비스트 전상우씨는 2015년 크리스마스 다음날 출발해 50일 동안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발렌타인데이 전날에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