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Air 모든 영화는 여행이다] "5월엔 피노누아가 좋겠어요"

2016-04-27     차민경
 
소주도 좋고, 맥주도 좋다. 그래도 와인이 생각나는 날이 있다. 축하할 일이 있어 모두 기분 좋게 취하고 싶은 날이 딱 그렇다. 최근 이사를 한 우리 회사 선배는 몇달째 집들이 중인데, 집들이 때마다 지인들이 주택에서의 새로운 삶을 축하해 주며 와인을 축내는(?) 바람에 집에 있던 와인이 탈탈 털리고 말았다고. ‘칭’ 하고 경쾌하게 울리는 건배 소리도 그렇고, 오래 공들여 만든 와인의 특성도 그렇고 축하를 위해서는 와인이 제격이라는 데 모두가 공감하나 보다. 아무래도 선배는 빈 와인셀러를 빨리 채워 넣어야 할 것 같다. 와인이 털릴 일이 또 예고돼 있기 때문이다. 5월 <트래비> 창간 11주년 말이다. 

이왕이면 와인 중에서도 ‘피노누아’가 좋겠다. 와인 추천은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사이드웨이>에서 받았다. 불행 가운데에 놓여 있는 마일즈가 친구와 양조장 투어를 떠나 겪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줄거리만 놓고 보자면 소박하다. 그럼에도 개봉 당시 오스카, 골든글로브 등 여러 시상식에서 350여 개의 상을 수상할 정도로 수작으로 평가 받았다. 우리가 불행한 순간에 있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아주 선명하고 바른 길로 안내하기 때문이리라. 그 길을 나는 ‘피노누아의 길’이라고 칭하겠다. 

피노누아는 다른 품종과 비교해 껍질이 얇은 포도 품종을 말한다. 그만큼 생육하는 동안 많은 손길과 정성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햇빛이 너무 뜨거워서도 너무 약해서도 안 되고, 건조하거나 습해서도 안 되고, 질병에 감염되지 않도록 감시도 필요하다. 모든 조합이 완벽했을 때, 피노누아 품종으로 만든 와인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맛을 선사한다고. 

<사이드웨이> 주인공 마일즈가 피노누아 와인을 최고로 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없다. 이혼을 당하고, 본인의 저서가 출판사에게 거절당하는 수모에 허우적대고 있었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던 거다. 모두의 삶은 상처받기 쉽고 계획대로 흘러가지도 않을 테지만, 정성스런 보살핌이 있다면 결국엔 그만의 그윽한 풍미를 갖게 된다는 것을. 

각자의 삶도 그렇겠지만, 우리가 정성들이고 있는 <트래비>도 마찬가지일 테다. 매년 돌아오는 창간이건만 그럼에도 매번 감격스럽다. 가끔 햇빛이 뜨거웠고, 비가 너무 많이 내린 날도 있었지만 잘 영글어 가고 있는 것이 보람차서다. 짜릿한 여행의 맛을 더 깊이 있게 풀어낼 내일이 기대되서다. 
와인에 조예가 깊지 않으니 어떤 와인을 마신다 한들 나쁘지 않겠지만 그래도 좋은 와인을 마시고 싶은 달이다. 그러니 5월엔 피노누아가 좋지 않을까.   
 
 
 

사이드웨이Sideways
감독 알렉산더 페인Alexander Payne
코미디, 드라마 | 126분 | 청소년 관람불가  2005년 개봉
출연 폴 지아마티Paul Giamatti
        토마스 헤이든 처치Thomas Haden Church
 
 
*글을 쓴 차민경 기자는 <트래비>와 자매지인 <여행신문>의 기자다. 미각이 섬세하지 못해 맛을 모르고 먹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어쩐지 피노누아 와인만큼은 제대로 느낄 자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