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특급 노하우] 여행은 잘 찍은 사진 한 장을 통해 기억된다

2016-04-28     트래비
 
여행은 잘 찍은 사진 한 장을 통해 기억된다
 
여행사진의 11가지 노하우 
김경우 작가가 드리는 11주년 선물. 
 

“가끔은 카메라를 두고 여행을 해보라.” 알랭 드 보통을 비롯, 몇몇 여행 기술자들은 종종 사진이 여행의 본질을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여행에서 사진찍기에만 집착하다 보면 여행지를 피상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면 맞는 말이다. 결과에 집착하는 여행은 성과를 만들어 와야 하는 출장과 다름없을 터.

하지만 과정에 주목한다면 사진은 당신의 여행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사진은 2차원적인 한 장의 이미지로 ‘기록’되지만 사진을 찍는 순간은 3차원적으로 ‘기억’된다. 사진을 찍은 공간에 흐르던 분위기와 온도, 냄새, 그리고 시시콜콜한 소음까지.

자신이 찍은 여행사진을 보며 그날이 얼마나 오래 되었든 바로 어제처럼 기억하게 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면 사진은 여행을 방해한 게 아니라 외려 여행을 더 입체적으로 만들어 준 셈이다. 그리고 그곳을 여행하지 않은 누군가가 당신의 사진을 보고 그곳이 가진 복합적인 매력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면 당신은 여행사진의 달인이다. 
 
한손으로도 거뜬히 찍을 수 있는 미러리스 카메라가 여행용으로는 더 유리하다
 
01. 작고 가볍고 오래 쓴 카메라를 가져가라

여행을 가게 되면 들뜬 마음에 새로 카메라를 구입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DSLR이면 무조건 멋진 사진을 찍게 해줄 거란 생각에 크고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많다. 과연 새로운 카메라가, 그리고 무거운 DSLR이 좋은 여행사진을 찍게 해줄까? 직업적 전문가라면 몰라도 일반 여행자들에게는 여행을 방해하는 짐이 될 뿐이다. 여행에 걸맞는 카메라는 작고 가벼워야 한다. 카메라 무게가 1kg 더 늘수록 피로도는 그 열 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요즘은 작고 가벼우면서도 성능 좋은 미러리스 카메라나 하이엔드급 콤팩트 카메라가 많다.

그리고 여행 전, 새 카메라를 사서 가는 것은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여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카메라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여행 내내 그 카메라와 친해지려 하다가 여행은 끝나 버릴 것이다. 최악은 새 카메라가 나와 궁합이 안 맞다는 것을 여행 끝 무렵에서야 깨달을 때다. 마음 맞는 친구와 여행을 가야 좋듯, 오래 쓴 친구 같은 카메라를 들고 여행을 가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첫날은 여행지의 공기와 빛을 느긋이 관찰하자. 사진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스칼치 다리에서 맞이한 아침

02. 첫날은 셔터를 누르지 말고 관찰하라

열흘 남짓 동안 6개국 18개 도시를 찍고 오는 패키지여행을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한 여행지에 최소한 이틀 이상을 머물러 보라. 그 이상 머무를 수 있다면 더 좋다. 그리고 도착한 첫날은 짐을 풀고 바로 사진을 찍기보다는 카메라 없이 나가 보자.

그리고 테이크아웃으로 좋아하는 커피 한잔 마시며(필자라면 캐러멜 마끼아또) 한가롭게 길을 걸으며 여행지의 빛과 공기, 그리고 사람들의 동선을 관찰해 보라. 그렇게 하루를 관찰에 투자하고 그 다음날부터 셔터를 누르면 훨씬 더 밀도 깊은 여행사진을 담을 수 있다. 
 
사진 속 교토의 네네노미치처럼 비가 오면 더 아름다운 곳이 있다. 날씨에 맞게 동선을 짜 보자

03. 일기예보를 주시하고 빛을 예민하게 계산하라

여행에서 ‘날씨야 어떤들’이라는 ‘주의’라도 여행사진에 날씨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빛은 사진의 8할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절대적이다. 여행지에 도착하면(이미 출발하기 전부터 주간예보는 살펴봐야겠지만) 내일 날씨가 어떨지 꼭 현지 일기예보를 체크하자.

기대했던 맑은 날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며, 비가 온다고 해서 꼭 실망할 필요도 없다. 비가 온다면 비에 걸맞은 장소와 동선을 짜면 된다. 일본 교토의 경우 ‘비가 와도 썩 괜찮은 도시’란 카피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는데, 실제 교토에 갔을 때 비가 온다면 비에 젖어 바닥이 반짝거리는 오래된 거리인 네네노미치나 하나미코지를 가 보라. 맑은 날 가는 것보다 훨씬 더 인상적이고 기억할 만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사진을 보는 이가 직접 현장에서 보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고 싶다면 단렌즈를 쓰자. 사진은 미얀마 바간

04. 자신의 눈을 대신할 수 있는 렌즈를 하나 만들어라

한 유명한 여행사진가가 공항에서 짐을 통째로 분실하는 바람에 카메라에 물려 둔 35mm 단렌즈 하나로 ‘울며 겨자 먹기’로 사진을 찍었더니 인생에서 가장 멋진 여행사진들을 찍었다는 일화가 있다. 다양한 화각으로 구성을 해야 하는 여행사진의 특성상 어불성설일 듯하지만 호소력 있는 여행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초점거리가 하나인 렌즈를 쓰는 게 정답이다.

다양한 초점거리의 렌즈들을 갖고 가도 현장에서 렌즈를 갈아 끼우는 게 쉽지 않다. 또한 평소 우리 시각에 가장 가까운 초점거리는 50mm인데 줌이 안 되니 처음에는 불편할지 몰라도 계속 쓰다 보면 평소 사물을 보는 느낌과 동일한 화각을 구성할 수 있게 된다. 마치 1인칭 시점으로 보듯 현실감이 느껴지는 사진을 찍고 싶다면 표준 초점거리인 50mm 혹은 이에 근접한 35mm 단렌즈를 사용해 보라.
 
인도 타지마할은 4면이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건축미의 정수를 보여 준다. 이런 건축물을 촬영할 때 평행과 대칭에 신경을 쓰자

05. 피사체와 내 렌즈의 면이 평행하도록 신경 쓰라

사실 가장 좋은 여행사진은 비싸고 성능 좋은 고급 DSLR이 아니라 휴대전화로도 찍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는 경우 대부분 전화기를 가로로 들고 양손으로 내 몸과 평행을 맞춰서 찍게 되는데 이것이 가장 현실감 있는 구도를 만드는 정석이기 때문이다. 표준 초점거리인 50mm 내외로 소위 ‘T자 구도’라고 하는 이 평행 구도로 사진을 찍어야 사물은 왜곡되지 않고 쓸데없는 아웃포커스 현상이 생기지 않는다. 화각이 무척 넓은 광각렌즈로 사물을 찍기 되면 볼록렌즈로 사물을 본 것 같은 왜곡이 생기며 화각이 좁은 망원렌즈로 사물을 찍으면 멀리 있는 배경은 압축되고 생략된다. 물론 이렇게 찍어야 할 사진들도 있지만 역시 가장 좋은 사진은 우리 눈이 본 것과 같은 구도감이 드는 사진이다.
 
이른 아침이나 저녁, 해가 없는 경우 사진은 흔들리기 십상이다. 중국 리강에서 찍은 가마우지 어부의 사진의 경우 노이즈는 생겼지만 ISO를 최대한 올려 셔터스피드를 확보했다
 
06. 셔터스피드를 항상 1/초점거리 이상으로 유지하고 체크하라

흔들린 사진도 때때로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들 수 있지만, 사진의 흔들림은 좋은 사진에 있어 가장 큰 적이다. 사진이 흔들리는 원인은 불안한 자세에서 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셔터스피드를 느리게 설정했기 때문이다. 촬영모드를 카메라가 노출을 알아서 해주는 자동 방식을 쓰더라도 현재 셔터스피드가 어떻게 나오는지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특히 어두운 밤이나 저녁, 그늘이 진 곳, 실내라면 사진은 십중팔구 흔들리기 마련이다. 어두운 곳에서라면 자동모드보다는 조리개와 ISO(감도)를 조절할 수 있는 조리개우선모드나 매뉴얼 모드로 촬영해야 흔들린 사진이 나오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그리고 셔터스피드를 ‘1/초점거리’ 이상이라는 기준을 잡으면 흔들린 사진이 나올 확률이 현저히 줄어든다. 예를 들어 200mm 초점거리의 렌즈를 쓴다면 1/200초 이상, 35mm 초점거리의 렌즈를 쓴다면 1/35초 이상, 이런 식으로 기준을 잡으면 된다. 그래서 여행에서 커다란 망원렌즈를 쓸 때는 사진이 흔들릴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유념하자.
 
오사카 가이유칸 수족관에서 아이의 앞으로 두 마리의 돌고래가 동시에 지나가던 순간. 이럴 때 조리개우선모드가 매뉴얼모드보다 효과적이다
 
07. 자신에게 편한 촬영모드를 선택하되 가급적 조리개우선모드를 사용하라

옛날 필름 카메라 시절부터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적당한 밝기의 사진을 찍는 것이 사진가들의 과제였다. 이것은 디지털카메라 시대에도 마찬가지로서 대부분의 입문자들이 노출을 스스로 조절하는 것을 무척 어렵게 생각한다. 그런 어려움을 도와주는 것이 바로 촬영모드의 선택이다. ‘노출의 삼총사’라고 할 수 있는 ISO, 조리개, 셔터스피드를 자유자재로 조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매뉴얼(수동) 모드를 쓸 수 있겠지만 조작이 미숙하거나 이론의 이해가 미흡할 경우 굳이 어렵게 매뉴얼 모드를 쓸 필요가 없다.

구도가 좋고 빛만 잘 볼 수 있다면 자동모드도 좋은 사진을 찍는 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조금 더 수준을 높여서 조리개우선모드(약칭은 A모드 혹은 Av모드)를 써 보자. 조리개우선모드는 셔터스피드만 카메라가 알아서 적정노출 기준으로 맞춰 주는 방식인데 ISO와 조리개를 조절하면서 사진의 흔들림도 방지하고 아웃포커싱을 하는 등 심도를 조절할 수 있다. 그리고 움직이는 대상을 촬영할 때가 많은 여행에서 외려 조리개우선모드가 매뉴얼모드보다 장점이 더 많다.
 
늦은 오후 역광 속에서 촬영한 교토 기온의 게이코와 마이코. 노출을 +2/3 정도 밝게 해서 얼굴이 드러나도록 했다
 
08. 노출보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역광촬영을 시도하라

촬영자가 해와 마주보고 사진을 찍는 역광 상태는 참 부담스럽다. 눈도 부시고 초점도 쉽게 잘 맞지 않는다. 그래서 해를 등지고 찍는 순광 상태에서 자주 사진을 찍게 되는데 역광을 두려워말고 사진을 찍어 보자. 촬영하는 대상이 빛을 받는 순광은 쉽게 초점이 맞고 본연의 색깔이 잘 나오고 노출도 맞추기 쉽다. 하지만 순광 위주로 촬영하면 정보적이고 지시적인 사진만 나오게 된다. 역광 사진은 어렵긴 하지만 보다 인상적이고 감성적인 사진을 얻을 수 있다. 특히 보는 이의 방랑심을 한껏 드높일 수 있는 힘 있는 여행사진은 역광에서 찍은 경우가 많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노출을 잡는 것인데 실루엣이 강조된 역광사진은 카메라가 지시하는 적정노출보다 조금 어둡게, 빛번짐이나 투명함이 느껴지는 반역광사진은 적정노출보다 조금 더 밝게 찍으면 좋다. 조리개우선모드로 촬영할 경우 카메라의 노출보정버튼(+/-)을 이용해 손쉽게 노출을 조절할 수 있다.
 
여행지에서 가장 좋은 것은 투명인간이 되는 것이다. 나를 편안하고 익숙하게 느끼도록 단골이 되어 보자. 호주 브라이튼 비치
 
09. 단골이 되어 보라

“단골이 되어 보라”니 맛집 탐방 기사도 아니고, 팁 같지도 않은 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좋은 여행사진을 위해 단골이 되는 것은 생각 외로 중요하다. 한 지역을 여러 번 갈수록 그 지역이 익숙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요. 범위를 좁혀 특정한 시장, 공원, 사원, 성당, 골목 등 특정 지역의 문화와 삶을 촬영할 수 있는 장소를 반복해서 가다 보면 지역 사람이 당신을 정말 단골로 환대해 줄 것이다. 특히 지역적 터부나 규범이 강한 곳은 처음에 카메라를 든 여행자를 경계하기 마련이다. 같은 곳을 여러 번 찾고 그 곳 사람들의 경계심을 풀기 위한 노력을 하다 보면 어느새 그곳 사람들도 당신을 단골손님, 혹은 투명인간처럼 여기게 될 것이다. 이렇듯, 처음에는 낯설었던 공간이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느껴질 때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멋진 여행사진이 탄생한다.
 
인도 조드푸르의 한 마을에서 더위를 식히는 아이. 동네 아저씨마냥 함께 놀며 신나게 물놀이를 했더랬다
 
10. 아이들의 이름을 묻고 놀아 주라

여행지에서 만날 수 있는 피사체 중에서 어린이나 아기는 보석 같은 대상이다. 낯선 여행자에 대한 호기심, 때묻지 않은 순수는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눌러 보라 옆구리를 쿡 찌른다. 그러나 여행지에서 아이를 촬영할 때 사진결과물에만 집착하지 말자.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리고 당신과 함께 노는 아이가 정말 즐겁다면 그때 최고의 여행사진을 담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아이가 자라서 당신과 함께한 시간을 어렴풋이라도 기억하게 하고 싶다면 꼭 이름을 물어 보자. 당신은 그 아이에게 최초로 이름을 물어 본 외국인이 될 수도 있고, 당신과 함께한 시간은 그의 인생에 소중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참! 아이를 촬영할 때 주위에 부모가 있다면 먼저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꼭 허락을 받아야 한다. 낯선 사람이 자신의 아이의 사진을 찍고 있고 또 말을 거는 것에 대해 경계심을 안 가질 부모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미얀마의 사원에서 촬영한 노스님의 모습. 담배 연기 한 번 뿜어 주십사 하는 무례한 부탁도 흔쾌히 들어주셨다
 
11. 노인들에게 공손하게 인사하고 사진을 청하라

여행에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면 그 사회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관용’이다. 관용이 없는 각박한 지역은 여행하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 들게 한다. 관용은 그 사회의 어른들로부터 출발한다. 또한 가장 인상적인 인물 사진은 삶의 연륜을 간직하고 있는 노인들을 찍을 때 많이 탄생한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정말 인상적인 인물 사진을 찍고 싶다면 노인들에게 다가서라.

당연한 것이지만 최대한 공손하게 예를 갖춰서 인사하고 조심스럽게 사진을 요청해 보자. 대부분의 노인들은 기꺼이, 혹은 아무 말 없이 카메라를 응시해 준다. 그리고 살가운 어른이라면 어디서 왔는지 호기심을 보이고, 또 여행 건강히 잘 하라는 덕담을 해준다. 그렇게 담은 사진 한 장은 결과물도 좋겠지만 마음에 잔잔한 평온을 선사해 준다. 무엇보다 여행에서 사진 찍는 행동이 교감이요, 또 다른 배움이란 것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여행사진가 김경우 | 10년간의 잡지 기자 생활을 마치고 틈만 나면 사진기 한 대 들고 여행을 떠난다. 여행이 좋아 발 닿는 대로 다녔으나 늦둥이 아들이 태어난 뒤, 아이에게 보여 줄 오래된 가치가 남아 있는 곳을 집중적으로 찾아다니고 있다. 윗세대로부터 물려받아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할 소중한 것들이 아직 무한히 많이 남아 있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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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경우 에디터 트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