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AIR 모든 영화는 여행이다] 당위의 역설

2016-06-01     차민경
 
공포영화를 봤을 때, 영화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공포가 가시지 않는 경우가 있다. 무서운 감정을 떨쳐 버리기 위해 내가 자주 쓰는 방법은 프레임 바깥을 상상하는 것이다. 수많은 스태프들과 촬영을 위해 늘어선 각종 장비들 말이다. 그 장면이 ‘연출된 것’이라는 것을 상기하고 나면 온몸에 찌릿찌릿 흘렀던 공포가 점차 사그라든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린 영화는 영화의 감흥 밖으로 도망칠 곳이 없다. 연출이 아니라 ‘실제’기 때문에 그렇다. 창조의 현장이 아니라 현실의 연속선상에 있는 현장이란 거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본 뒤 감독의 문제의식이 더 뜨겁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도 감독과 함께 관객 또한 그 현실의 목격자가 되기 때문이리라. 

이번에 목격한 것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소녀들에게 행해지는 ‘할례’였다. 6~14살 소녀들이 할례를 받기 위해 시술자의 집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시술이 끝난 후 고통을 줄이기 위해 어기적어기적 걸어 비스듬히 바닥에 주저앉는 것을 보았다. 할례를 마친 소녀들을 축하하는 흥겨운 행진도 보았다. 충격적인 것은 아프리카의 인구가 늘면서 동시에 할례를 받는 여성 인구도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성이 지배하는 듯 보였던 이 세계에 아직도 야만이 행해지고 있다. 영화 속에서 할례 문화를 가진 아프리카 부족들의 이야기와, 할례를 피해 도망 나온 소녀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교차된다. 러닝타임이 흘러갈수록 할례의 이유가 너무나 비논리적이라는 것이 강조된다.  

시간은 의도를 지워 낸다. 어느 불편한 가치관이라고 할지라도 시간만 있다면 내면화되고 만다. 그저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당위로서, 관습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할례를 해야만 ‘정숙한 여자’가 될 수 있다는 선량한 표어를 달고 말이다.

그럼에도 희망적인 것은 아프리카 곳곳에서 할례 반대를 외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을 통해 할례의 부당함을 알리고, 할례 기간 동안 할례 반대 캠페인과 행진을 벌인다. ‘아직도 멀었다’는 처절한 피로감을 호소하지만. 아이들은 할례 기간인 우기 동안 외부와 격리된 할례 반대 캠프에 숨어 들어 강제로 할례를 시키려는 공동체에게서 도피하기도 한다. 물론, 다시 비가 내리는 우기가 되면 그네들의 운명이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내면화된 가치관을 재설정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그것이 공동체의 관습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동안의 역사를 부정하고 재평가하는 일이니 쉽지 않을 수밖에. 우리의 과거나 지금의 이야기가 불현듯 머리 속에 번지는 것이 섬뜩하다. 할례 문화는 먼 대륙의 이야기건만, 그만큼 불합리한 관습은 어디에나 있고 또한 무의식적으로 목을 매고 있다는 생각에 말이다.   
 
 

소녀와 여자: 나는 어디에 있나요?
Where am I ? : Beyond Girl and Woman
감독 김효정
다큐멘터리 | 100분 
출연 엘리자 구티, 아니타 쾀보카
 
*글을 쓴 차민경 기자는 트래비와 트래비의 자매지인 여행신문의 기자다. 무심코 쓰던 ‘당연하다’는 말의 무게를 <소녀와 여자> 속에서 발견했다. 의심하지 않았던 관습을 의심하는 법을 궁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