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ch Point] 올드 상하이에 남긴 악플

2016-06-01     트래비
 
 
올드 상하이에 남긴 악플

상하이 여행 마지막 날, 예원豫園으로 쇼핑을 하러 갔다. 반나절 돌아다니자 완전히 녹초가 돼서 차 한잔 마실 곳을 찾아 들어갔다. 그곳은 1930년대 상하이를 테마로 한 전통 차관으로 옛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2층에 위치해 있었다. 창가 쪽엔 티 테이블이 몇 개 놓였고, 맞은편 벽은 박물관처럼 꾸며 오래된 광고 포스터와 물건들을 전시 중이었다. 

쇼핑 보따리를 내려놓기 무섭게 점원 아저씨가 달려와 메뉴판을 내밀며 주문을 독촉했다. 약간 쫓기듯이 장미 홍차를 택했다. 차는 곧 까이완에 담겨 나왔다. 까이완은 덮개가 있는 찻잔이라 손으로 덮개를 붙잡고 마셔야 한다. 불편하니 작은 잔을 하나 더 달라고 했더니 그는 원래 이렇게 마시는 건데 무슨 소리냐며 웃고 가 버렸다. 이번엔 기분이 몹시 언짢아졌지만 다행히 차맛은 만족스러웠다. 

꽉 찼던 테이블이 듬성듬성해지자 그가 다시 다가와 방명록을 써 달라고 했다. 나는 이 은밀한 복수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한참 후 떠나기 전 벽에 걸린 물건들 사진을 찍고 있는데 그가 내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했다. 손님이 적어져 여유를 찾은 모양이었다. 그가 제안한 대로 옛날 손거울을 들고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나자 아까 적은 방명록 문구가 생각나 멋쩍어졌다. 나는 어색한 마음에 뭔가 질문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장아이링張愛玲, 1920~1995년의 작품을 좋아하세요?”

사실 아까부터 한쪽 벽에 장아이링의 친필 원고와 사진을 전시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영화 <색, 계>의 원작 소설가이기도 한 그녀는 상하이에 체류하며 이 도시를 배경으로 많은 작품을 썼다. 전시된 것 중에는 <붉은 장미, 흰 장미>를 연재할 당시 그녀가 직접 그린 삽화도 있었다. 상하이에 체류하는 한 달 동안 잠깐 향수병에 시달렸는데, 무기력하게 누워서 읽은 소설이 그녀가 쓴 <붉은 장미, 흰 장미>였다. 이 작품을 포함해 소설집 <경성지련>에 수록된 도발적이고 농염한 사랑 이야기는 나를 매혹적이고 생생한 올드 상하이로 데려가 주었다. 장담하건대 그녀의 작품 속 상하이와 사람들은 이 도시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경험이다.

아저씨의 답은 놀라웠다. 그가 이곳에 전시한 것은 <타이타이 만세>라는 영화 시나리오 원고로 그녀가 중국을 떠나기 전 쓴 작품 원고들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었다. 아저씨는 이 원고를 문묘의 고서적 시장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실제 가 본 고서적 시장을 떠올렸을 때 그의 발견은 사막에서 바늘을 찾은 격이었다. 오래 전 상하이에서 장아이링이 쓴 소설을 내가 읽고, 누군가는 그녀의 원고를 거대한 책더미 속에서 찾아내고, 나는 골동품 화장대 앞에 앉아 사진을 찍다가 우연히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다니. 여행의 매력은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우연의 일치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아저씨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지만 차마 방명록에 대해선 말할 수 없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누군가 그곳에 간다면 2016년 4월30일 쓰인 악플을 대신 좀 찢어 주길 부탁한다. 참고로 이 차관의 이름은 ‘올드 상하이 티하우스Old Shanghai Tea House’다. 
 

에디터 천소현 기자

*MATCH POINT 특별한 여행을 만드는 결정적 한 수-글을 쓴 도선미 작가는 한 달 동안 상하이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장아이링을 좋아한다면 그녀의 책을 테마로 한 북카페 천채서점千彩书房을 방문해볼 것도 추천한다. 장아이링이 6년간 살았던 아파트 1층에 위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