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PAIGN 여행으로 희망을 나눕니다] 새로운 도약을 위한 충전여행

2016-06-28     트래비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면 여행을 떠나라’는 말이 있다. 여행에는 모든 게 낯선 공간으로 던져지는 극단적인 면이 있기 때문이다. 생경한 경험을 통해 자연스레 자신을 돌아보면, 흐릿한 미래가 조금은 뚜렷해진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여행을 떠난다. 더 나은 한 걸음을 위해.
 
독자기자 김진완
인생을 진하게 사는 게 목표다. 사람은 보다 다양하고 짙은 경험을 통해 빚어진다고 믿는다. 열심히 듣고 몸으로 느낀 후에야 글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나의 쓸모에 대해 고민하던 중 이번 여행을 만났다.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조금 더 명확히 가려낼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하나투어 지구별여행학교 희망여행
‘지구별 여행학교’는 하나투어의 대표적인 사회공헌 프로그램 ‘희망여행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아동청소년들이 국내외 여행을 통해 다채로운 문화를 경험하면서 자신의 꿈을 새롭게 그려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법무부, (재)한국소년보호협회, 월드쉐어 협력으로 진행된 이번 희망여행은 위기청소년 20여 명과 함께 2016년 5월25일부터 5월29일까지 라오스 비엔티엔·방비엥에서 진행됐다. 
 
요정이 나올 것 같은 방비엥의 블루라군. 자연이 만든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하늘에 매달린 기분이 드는 블루라군의 짚라인

●DAY1
 
낯선 사람, 낯선 나라

출발하는 날 저녁, 공항에서 동행할 스태프들과 아이들을 처음 만났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의 여행은 오랜만이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 맴돌았다. 이번 희망여행에 함께할 아이들은 소년원에서 출원했거나 사회적응이 필요한 위기청소년으로, 청소년자립생활관에서 생활한다. 갖가지 이유로 전국에서 한둘씩 모인 17명의 아이들은 아직 서로가 낯설다. 살갑게 다가가는 이 없이 어색한 미소를 주고받으며 공항을 가로질러 걸었다. 이번 여행에 합류하기로 정해졌을 때 내가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걱정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오래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너무 많은 생각이 때론 독으로 다가오는 법이니까.

다섯 시간여의 비행 끝에 왓따이 공항에 도착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지만 라오스의 밤은 후덥지근했고 그제야 타국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공항 근처 호텔에서 간단히 서로를 소개하고 방을 배정 받아 바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조식을 먹으며 같은 테이블에 앉은 아이와 드디어 인사를 했다. 졸린 눈을 보니 밤잠을 설친 모양이다. 해외여행이 처음인 데다가 낯선 무리와의 동행이 썩 편치 않았을 거다. 일상적인 대화가 이어졌고 얼굴이 눈에 익어 갔다. 어색함이 누그러진 느낌이 들었다. 다음 일정을 위해 짐을 챙겨 호텔 로비에 모였다. 본격적인 하루가 시작되려 한다.
 
에메랄드를 품은 블루라군

이 여행은 하나투어의 사회공헌 프로젝트로, 체험의 기회가 부족한 소외 이웃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사회적 배려가 결여된 상황에서 자란다는 건 단순히 상상만으로 채울 수 없는 수많은 결핍의 연속이었으리라. 무엇이 좋은 경험이었는지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다. 이번 여행이 지금쯤 아이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관광 마을 방비엥의 블루라군에 도착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블루라군은 물놀이, 짚라인, 카약 등의 레포츠를 즐기기 좋은 곳이다. 우리는 어제 처음 만난 사이임을 잊은 듯 놀랍도록 빠르게 가까워졌다. 좋은 사람이 모이기도 했지만, 라오스의 날씨와 여유로운 분위기도 한몫했다. 한없이 맑은 블루라군의 풍경은 서먹함을 잊을 정도로 예뻤고 푸르렀다.

짚라인을 타러 계단에 올랐다. 무리에 이끌려 어느새 정상에 도착했다. 보기엔 쉬워 보였는데 난간에서 내려다보니 아찔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발이 떨려 주저했지만 이윽고 내 차례가 왔다. 걱정도 잠시, 출발 신호에 맞춰 도약하자 극에 달한 몸의 긴장이 단번에 흩어졌다. 숲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람을 가르는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다. A와 B코스를 합쳐 총 12개의 코스를 돌고 마지막 자유낙하까지 마치자 긴장이 풀려 웃음이 터졌다. 일행 사이에 위험을 함께했다는 묘한 동질감이 생겼다. 이 분위기를 이어 계곡에서 물놀이와 다이빙을 하고 강을 따라 카약까지 즐긴 뒤 숙소로 돌아왔다. 순식간에 꿈같은 하루가 지났다.
 
 
1 직접 만든 선캡과 바람개비를 갖고 노는 라오스 아이들 2 페인트칠과 장난감 만들기를 마친 뒤 단체사진 

●DAY2
 
도움을 준다는 것

둘째 날은 이번 여행의 목적이라고도 볼 수 있는 봉사활동을 하는 날이다. 후와이 싸응아오 초등학교에 방문해 오전엔 건물 외벽에 페인트칠을, 오후엔 학생들과 장난감을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은 눈이 어찌나 맑은지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얼굴 가득 미소가 번졌다.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상처는 때로 더 큰 상처를 마주할 때 치료되기도 한다. 라오스의 열악한 환경은 생활관 아이들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어린애가 세상에서 가장 싫다던 사람도 어느새 웃음에 동화되어 함께 장난감을 만들었다.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는 데에 사심 없는 미소보다 나은 게 있을까.

학생들은 손수 만든 가면과 모자, 바람개비를 들고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너무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내가 더 감사했다. 도움은 극적일 필요가 없다. 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행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라오스어를 몰라 단어 하나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는데,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마음은 전해졌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표정과 말투, 몸짓에 집중했다. 영어 한 마디를 더 외는 것보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유대를 쌓는 데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들었던 ‘소통의 80%는 비언어적인 표현’이란 말을 제대로 실감했다.
 
3 5년 후의 자신에게 쓰는 편지 4 소망을 담은 풍등 날리기
 
나에게 보내는 편지

저녁 식사 후 연회장에 모여 5년 후의 자신에게 보낼 편지를 썼다. 처음엔 멋쩍어했지만 이내 진지해졌다. 몇몇 사람에게 적은 편지를 읽어 달라고 요청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고 한 아이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그 아이는 자리에 서서 한참을 망설였다. 자신의 꿈을 말하는 것은 다소 오글거리는 일이지만, 한국의 정규 교육 과정을 밟은 사람이라면 대부분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미래 계획을 발표한 기억이 있을 거다.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든 없든 말이다. 하지만 그 아이는 일종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남 앞에서 자신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게 처음인 것 같았다. 몇 번의 한숨과 정적이 반복됐고 우리는 마음으로 격려하며 지켜봤다.

마침내 떨리는 목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조그맣지만 단단한 어조로 스스로에게 쓴 편지를 읽었다. 장난기 가득했던 그의 소박하고 진심어린 표정을 보고 울컥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주어진 혜택을 당연한 듯 누려온 내가 몹시 부끄러웠다. 오랫동안 여운이 남을, 어쩌면 평생 잊지 못할 정도로 기억에 깊게 박혔다.

쓴 편지를 한 줄로 줄여 풍등에 날려 보냈다. 기원을 담아 하늘에 보낸다는 의미였다. 마치 염원에 실체가 생긴 것 같았다. 불을 붙이자 공기에 힘이 실렸고 풍등이 부풀어 올랐다. 날아갈 준비를 마친 풍등은 잡은 손을 놓자 거침없이 솟아올랐다. 보이지 않을 때까지 조용히 바라봤다. 적었던 문장을 속으로 한 번 더 내뱉었다. 마음이 강해진 기분이 들었다.
 
집집마다 있는 작은 제단. 소박한 라오스의 일상을 엿본 듯했다
로켓 축제로 떠나는 사람들. 잔뜩 치장한 모습이 즐거워 보인다
여행의 끝이 보일 무렵. 아쉬운 마음을 담은 점프 샷

●DAY3
 
하늘을 뚫는 사람들

로켓 축제에 가는 사람들을 마주쳤다. 여장을 하는 등의 요란한 복장으로 차에 올라타 노래를 부르는데, 정말이지 즐거워 보였다. 흡사 영화 <매드맥스>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5월 중순부터 반년 동안 지속될 우기에 맞춘 로켓 축제는 하늘에 구멍을 뚫어 비를 내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소똥에서 나오는 가스를 연료로 이용하기도 한다는데, 직접 보진 못했지만 상당히 높게 올라간다고 한다.

라오스의 우기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스콜성 기후다. 일종의 소나기인데, 말 그대로 억수같이 시원한 장대비가 내린다. 이런 비를 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다. 보고 있자면 마음마저 씻긴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내린다. 오래 지속되진 않고 30분 이내에 싹 그치고 다시 쨍쨍하게 해가 나는 변덕스러운 날씨다. 비가 이렇게 와도 크게 대수롭지 않은 듯 한 손에 우산을 든 채 오토바이를 모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가난한 국가에 속하는 라오스에도 선진국의 기술이 유입되고 있다. 다만 환경을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발전 속도를 늦춘다고 한다. 관광 산업 개발의 급물살을 탄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와는 사뭇 다른 태도다. 있는 그대로의 삶에 만족하며, 자연과 더불어 천천히 나아간다. 길이 잘 닦여 있지 않은 탓에 같은 거리를 한국에 비해 2~3배 시간을 들여서 가야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우리에겐 낯선 모습이다. 가이드 해주신 분의 “라오스에 반해 6년째 머물고 있다”는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우리가 너무나 거친 경쟁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크게 다가왔다.

‘돈으로 정말 살 수 없는 게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한 번에 날린 여행이었다. 한국에선 갖지 못할 여유와 평화로운 분위기를 마음속에 한껏 담아 보려 애썼다. 이 추억이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글을 쓰는 동안은 고스란히 추억이 살아나는 기분이다. 더 오래 추억하기 위해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담으며 여행기를 마친다.  

글 김진완 독자기자  사진 황덕주  에디터 고서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