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Table] 가이드를 위한 가이드

2016-10-05     트래비
 
자유여행이 아무리 대세라지만
그래도 가이드를 빼놓고는 여행을 논할 수 없다.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내일의 날씨처럼 복불복인 가이드에 대한 이야기들.

정리 <트래비> 취재부 

●시팅가이드, 이대로 괜찮은가?
 
예-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제주도에 시팅가이드Seating Guide 문제가 심각하다더라. 중국 국적의 무자격 가이드가 중국인 관광객들을 인솔하고, 가이드 자격증만 가진 한국인 시팅가이드는 말 그대로 버스 안에 ‘앉아만 있는’ 셈이다. 
김- 해외에 나가면 반대의 상황이 벌어진다. 태국에서 시팅가이드를 많이 봤다. 관광객을 상대하는 실질적인 업무는 한국인 가이드가 모두 담당하고 태국 현지 가이드는 그냥 자리만 차지하고 있더라.
손- 그런데 사실 언어 소통이 잘 안 되면 내용 전달에 한계가 있으니 외국인보다는 자국인 가이드의 설명이 듣는 사람 입장에선 훨씬 편하긴 하다. 작년 베트남 출장 때 한국말을 어눌하게 하는 현지 가이드가 사탕수수를 보고 옥수수라고 하더라. 그전에 했던 말들까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편- 인도네시아에 갔을 때 현지인 가이드가 직접 설명하는데 정말 못 알아듣겠더라. 버스에서 가이드가 ‘안녕하세요? 내 이름은 뭐야’ 하고 말한 뒤부터는 우리 모두 그저 창밖만 바라봤던 기억이. 
김- 일부러 반말하는 게 아닌가 하는 순간도 있다.
all- ㅋㅋㅋ
김- 정부에서는 공식적으로 시팅가이드를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경우는 있다. 우리나라 가이드 자격증은 총 12개 언어로 응시할 수 있는데, 그 외의 언어권은 자격증을 발행할 수가 없으니 인정하는 경우다. 복수 언어를 쓰는 국가 역시 대체 언어 자격증으로 활동이 가능하다.
편- 해외에서 시팅가이드를 따로 두는 이유는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패키지여행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쇼핑이나 옵션과도 관련이 있다. 말이 서툰 외국인보다는 말 잘하는 자국인이 마이크를 잡고 본격적으로 팔아야 수익이 나지 않겠나.
천- 문제는 검증되지 않은 가이드들이 우리 역사나 문화에 대해 무슨 말을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는 거다.
고- 이전에 한 태국인 가이드가 우리나라 한복에 대해 설명했던 게 보도된 적이 있다. 일본 식민지 지배하에 있을 당시 성폭행을 막기 위해 치마를 이렇게 펑퍼짐하게 만든 거라고 설명한 게 논란이 됐다. 이런 심각한 역사왜곡에 대해서는 엄하게 다뤄야 한다. 
김- 사실 가이드들에게 역사 선생님과 같은 역할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 수 있다. 차라리 각 문화재 앞에 공식 안내판 비치를 확대하는 등 가이드 의존도를 낮추는 방법을 고려하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고궁전담 해설사 제도도 같은 맥락이다. 고궁에서는 아무 가이드나 마이크를 잡을 수 없고, 지정된 해설사만이 설명을 할 수 있도록 해, 역사 왜곡을 최소화한다는 취지다.
천- 물론 가이드가 교사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직업적 소명의식이나 책임감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에 있어서 여러 나라간 다른 시선이 있을 수 있는데, 가이드는 두 입장 모두를 파악하고 균형 있게 말해 줄 필요가 있다. 지식도 지식이지만 소양이 더 중요한 덕목인 것 같다.
고- 해외에서는 역사 설명에 대해 엄격히 관리한다. 예를 들어 캐나다 퀘벡에서는 무자격 가이드가 아예 여행자들을 데리고 다닐 수조차 없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크로아티아의 경우에는 도시별로 자격증이 따로 있다. 자그레브 자격증은 있는데 두브로브니크 자격증이 없으면 두브로브니크에서는 가이드 활동이 불가능하다. 그만큼 가이드는 전문성을 요하는 직업인 것이다.

●여행의 기억을 결정하는 자
 
편- 가이드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는 어떤가?
양- 가이드에 대해 특별히 안 좋은 이미지가 있진 않다. 기본적으로 가이드는 나보다 그 지역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여행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니까.
예- 가이드라는 직업 자체에 대한 나쁜 인식은 없지만 가이드 개개인에 따라 여행의 기억이 달라지는 건 분명하다. 어떤 지역에 갔는데 가이드가 정말 성의 없으면 그 지역도 별로라는 생각이 드는 반면, 가이드가 매순간 성심성의껏 안내하면 그 지역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양- 언젠가 엄마가 가이드와 함께하는 국내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근데 다녀와서 제일 먼저 한 말씀이 ‘완전 공주가 된 것 같았다’였다. 젊은 남자 가이드가 손 하나 까딱 안하게 공주처럼 해줬다고. 차 탈 때 손수 문도 열어 주고, 더울 때는 물도 챙겨 주고. 여행지뿐만 아니라 그 사람으로 인해 더 좋은 기억을 만들고 왔다고 했다.
손- ‘가이드는 여행의 꽃’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양- 그 꽃의 기준이 의외로 작은 정성에서 온다. 모 여행사의 사이판 우수 가이드로 선정된 가이드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 숨겨진 리조트 시설이나 무료이용권을 따로 정리해서 알려주면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더라. 아이들과 동행하는 가족들에게는 아이의 이름을 꼭 불러 주는 것도 자신만의 비법이라고.
김- 아이 공략은 쇼핑으로 이어진다. 캄보디아 갔을 때, 그래서 상황버섯을 30만원어치 샀다.
천- 인지상정으로 쇼핑을 권하고 사 주는 마인드가 서로 잘 맞으면 좋은데, 그렇지 않으면 쇼핑이 손님과 가이드 간의 갈등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가이드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진 건 쇼핑 때문인 것 같다.
예- 몇년 전 엄마랑 베트남 여행을 갔는데 쇼핑 때문에 난감한 경험을 했다. 초반에 차, 나무주걱, 건강식품 같은 걸 안 샀을 땐 엄청 눈치를 주더니 엄마가 마지막 코스에서 고가 라텍스를 질렀더니 그때부터 대접이 180도로 달라지더라.
편- 쇼핑이 가이드 수익의 큰 부분을 차지하니 그런 일이 생긴다. 
손- 일반적으로 가이드의 급여는 아주 낮거나 간혹 없는 경우도 있다.
고- 상품가격 경쟁 때문에 비롯된 현상이다. 가격을 낮추면 그만큼 가이드에게 줄 돈이 없고, 그러니 가이드 입장에선 쇼핑을 통해 수익을 내지 않으면 아예 수입이 없는 거다. 값싼 가격만큼 쇼핑 일정이 그만큼 늘어나니 소비자들의 불만이 생기는 거고.
손- 그래서 제대로 된 여행경비를 지불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노옵션, 노팁 상품도 있다. 한때 가이드에게 팁을 주지 말라는 상품들이 경쟁처럼 등장하면서 현지 가이드들이 파업하기도 했다.
김- 가이드들이 가장 싫어하는 상품이 노팁, 노옵션 상품이다. 안정적으로 수익이 생기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관광청에서 주는 일만 한다는 가이드도 있다. 가이드 고용비를 제대로 정산해 주니 부대수입을 무리하게 내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고- 반대로 오히려 쇼핑을 노리는 가이드들도 있다. 영업을 잘 하는 가이드들은 쇼핑을 통해 많은 돈을 벌기도 한다. 그래서 가이드도 유형별로 나뉜다. 쇼핑 영업은 잘하는데 설명을 못하는 가이드와 설명은 잘하는데 쇼핑 수입이 부진한 가이드. 안타까운 건 후자의 가이드 유형을 무능력하다고 여기는 현실이다.

●이런 가이드, 저런 가이드
 
정- 얼마 전 마카오 출장을 갔는데, 가이드 설명 덕분에 성 바울 성당 유적이 담고 있는 성서 이야기에 대해 더 잘 알게 됐다. 
손- 반나절이나 데이투어를 주로 이용하는 편인데, 최근에 괌에 가서도 데이투어를 예약했다. 그런데 가 보니 우리만 한국인인 데다가 가이드는 그냥 손님들을 목적지에 데려다 주기만 했다. 그러고 나서 1번부터 8번 장소까지 표시된 지도를 준 게 다였다. 5만원 가까이 하는 비용을 내고 제대로 된 설명을 하나도 못 들어서 솔직히 돈이 좀 아까웠다.
천- 가이드의 역할을 어디까지 봐야 할지는 명확하지 않다. 친구가 라스베이거스 나이트투어 갔는데 그냥 시내 야경을 보여 주고 50달러를 받았다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혼자서는 절대 그 야심한 시간에 그 장소에는 못 갔을 거다. 어쨌든 가이드가 사람들을 그곳까지 데려간 거고, 그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사기라고 할 순 없다. 목적지까지 인솔하는 것과 그 장소에 대해 설명하는 것, 과연 가이드의 임무가 어디까지인지는 사실 모호하다.
고- 설명은 열심히 하지만 그 설명이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2007년에 캐나다 토론토에서 출발해 뉴욕까지 다녀오는 미국 동부 투어를 갔었는데, 그때 가이드가 한 말이 진실인지 아직도 궁금하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창밖에 보이는 산에 나무들이 다 쓰러져 있었다. 그걸 보면서 가이드가 미국은 땅이 너무 비옥해서 나무들이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해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나무들이 쓰러진다고 했다. 그때는 진짜라고 믿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아무래도 속은 것 같다.
편- 왜 그런 말도 있지 않나. 태국에서는 뱀이 못 타고 올라오도록 전봇대를 네모로 만든다는 둥. 가이드들이 회사 소속으로 일을 시작할 때 선배들에게 배우면서 위에서부터 족보처럼 내려오는 ‘썰’들을 이어간다. 우리나라 가이드들은 매너팁이라며 무조건 어디 가서도 침대에 1달러씩 놓으라고 하지 않나. 따지고 보면 나라마다 물가가 다른데 무조건 왜 1달러만 놓으라고 하는지 궁금하다. 
천- 처음부터 가이드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연히 가이드가 된 사람들도 있다. 팔라우에 갔을 때 건장한 체대 학생 가이드들이 있었다.  해외취업이라는 말에 혹해서 왔더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여행객들 상대로 바다에서 일하는 거다. 과장이겠지만 계약기간 동안 섬에 ‘갇혀 있다’나.
편- 캐나다나 미주 쪽에 태권도 사범으로 갔다가 가이드로 자리를 잡은 사람들도 많다.
정- 그런데 공항에서 처음 손님을 맞이할 때 가이드 입장에서는 이번엔 어떤 손님일까, 괜한 기대가 싹트지 않을까?
김- 가이드 노리는 꽃뱀도 많단다. 야심한 시간에 한잔 하자며.
손- 태국에 여행 갔을 때 버스에서 이동시간에 졸 때마다 유독 내 이름을 자꾸 부르며 깨우던 가이드가 있었다. 한국 돌아와서도 자꾸 연락을 해와서 어이가 없었다. 마흔 넘은 아저씨였는데.
김- 마흔 넘으면 사람도 아니냐! (발끈)
all- ㅋㅋㅋㅋㅋ

●내가 만약 가이드라면
 
천- 꼭 직업으로서의 가이드가 아니더라도 외국 손님이 우리나라에 오면 우리도 언제든 가이드 입장이 될 수 있다. 
예- 모 여행 스타트업에서는 일반인 가이드를 콘셉트로 잡아 상업화하기도 했다. 주로 현지 유학생이나 교민들이 파리 근교 카페 투어, 바르셀로나 맛집 투어처럼 자기가 직접 코스를 기획해 올리면 개인여행자들이 맘에 드는 코스를 골라서 신청하는 방식이다. 나도 서울 빵 맛집 투어 정도는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천- 앞으로 가이드 트렌드도 많이 바뀔 것 같다. 요즘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훨씬 해외 경험도 많고 언어역량도 뛰어나니 말이다. 1920년대 당시 의상을 입고 리드하는 코스프레 코스라든가, 스토리텔링 민속촌 투어라든가. 다양한 형태의 투어가 생겨날 수 있다.
고- 가이드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한 번은 크로아티아인 두 명에게 서울을 보여 줄 기회가 있었는데 막상 어딜 데려가야 할 지 막막하더라. 삼겹살집에 가려고 우선 종로로 갔더니 거리가 너무 지저분해서 부끄럽기도 했다. 
손- 이탈리아 친구가 서울에 놀러 왔을 때 가이드 역할을 3일 정도 했는데, 첫날 가장 현지다운 장소에 데려가고 싶어 명동 칼국수 집에 데려갔다. 사람도 많고 복잡해서인지 표정이 썩 좋지 않더라. 그래서 둘째 날 남산에 들렀다가 분위기 좋은 돈가스 정식집에 갔더니 의외로 너무 좋아하는 게 아닌가. 동대문이나 명동에 대한 반응은 그냥 그런 반면 이태원은 엄청 좋아하고. 예상과는 다른 반응이라 당황스러웠다.
고- 외국인들이 을지로에 있는 노가리 맥주 집을 그렇게 좋아한다던데.
천- 조용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시끄러운 장소에 데려가면 좋아하더라.
편- 왜, 우리나라 사람들도 외국 나가면 야시장 가서 양꼬치 먹고 그런 걸 즐기지 않나.
천- 그러고 보면 손님들의 리액션도 꽤 중요하다. 스페인 갔을 때 가이드가 설명하는데 열심히 잘 안 들어서 가이드가 버럭 화를 냈었다.
정- 가이드라는 건 단순한 인솔자의 역할을 넘어 그 도시에 대한 자부심으로 하는 일이라서가 아닐까.    
 
참가자: 김기남 편집장, 김선주, 천소현, 고서령, 양이슬, 손고은, 김예지, 정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