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 자전거 여행] 황토 마을과 체리 나무 사이로

2017-08-01     고서령
●DAY 3
 
Les Ocres a velo
레 오크르 코스 
37km
 
오크르(Ocre), 즉 ‘황토’를 테마로 한 코스를 달리는 날이다. 황토 하면 찜질방부터 생각났던 터라 프로방스에 황토 자전거 코스가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3일차가 되자 프로방스의 도로에 완전히 적응한 우리. 여유로운 마음으로 라이딩을 시작했다. 그러나 황토 테마 코스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압트에서 출발해 1시간이 넘게 달리도록 다른 코스와 별다른 점을 느끼지 못했다. 변화를 느낀 건 루시용(Roussillon)에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타났을 때부터다. 나무와 풀 사이로 드문드문 노란색 흙이 눈에 띄기 시작하더니 눈을 두는 곳마다 말 그대로 황토 천지였다. 이곳에서 황토는 돌멩이나 잡초만큼 흔해 보였다.
 
황토집으로 가득한 마을, 루시용

자전거 코스 위에 있는 ‘오크라 콩세르바투아르 데 오크르(Okhra Conservatoire des Ocres)’는 1920년대 황토 공장 자리에 세워진 아트센터다. 황토를 사용하는 다양한 아트 클래스를 운영하고 작품 전시회도 꾸준히 열고 있다. 1921년부터 1963년까지 운영되었던 황토 공장을 보존해 두고 박물관처럼 투어도 제공한다. 이곳에 들러 황토에 대해 조금이나마 공부해 보기로 했다.

과거 이 공장에서는 흙에 물을 섞어 황토를 추출해 내고, 그 황토를 사람이 직접 빻아서 가루로 만들었다고 한다. 본래 황토는 마치 카레에 들어가는 강황 가루와도 같은 노란색인데, 높은 온도에서 구워 내면 붉은 벽돌색을 띠게 된다고. 이제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공장에는 과거 노동자들이 황토를 빻는 데 사용했던 도구와 빻다가 만 황토 덩어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황토를 굽는 데 썼던 오븐, 그들이 입었던 옷까지도. 그 당시 황토 가루를 너무 많이 들이마셔서 폐 질환으로 사망한 노동자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는 안타까웠다. 
 
멋진 황토 절벽이 있는 루시용의 풍경
오크라 콩세르바투아르 데 오크르에서는 1920년대 황토 공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루시용의 황토 골목을 자전거로 달리는 커플
 

다시 페달을 밟은 지 10분 정도 되었을까. 노란 황토 집으로 가득한 마을, 루시용이 눈앞에 보였다. 뤼베롱 지역 자연공원 안에는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5곳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여기다. 과연, 유명한 마을답게 루시용은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우리가 자전거를 타면서 동양인 자전거 여행자를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듯, 이 마을을 찾은 관광객들도 사이클 복장을 하고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는 우리가 신기했나 보다. 쏠리는 시선을 받는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젤라토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먹으며 멋진 황토 절벽을 감상하고, 온통 노란 골목길을 거닐며 추억을 또 하나 만들었다.

루시용을 지나자 꽤 긴 다운힐이 이어졌다.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달려 내려갔다. 첫날엔 다운힐을 만나면 뭣도 모르고 좋아했는데, 셋째 날이 되니 다운힐 구간이 길면 업힐도 이만큼 길겠구나 싶어 걱정이 앞섰다. 아무리 프로방스의 풍경이 아름다워도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긴 업힐을 오르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런 나와 다르게 숙련된 라이더인 용성과 민경은 업힐을 꽤 즐기는 듯했다.
 
“업힐은 자전거만 느낄 수 있는 묘미예요. 보기만 해도 끔찍한 업힐을 다 올라가서 뒤를 돌아봤을 때의 성취감과 쾌감이 있거든요!” 이렇게 말하는 용성이 변태처럼 보이는 걸 보니, 아직 나는 제대로 된 자전거 라이더가 되려면 먼 것 같았다.

역시나, 얼마 가지 않아 고통스러운 업힐을 마주했다. 울퉁불퉁한 노면과 맞바람까지 견디며 업힐을 다 올라가고 나서야 주변 풍경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이 코스는 과일농장이나 다름없었다.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체리나무, 작고 귀여운 포도나무, 우아한 자태의 올리브 나무가 길 양옆으로 계속해서 이어졌다.
 
점심을 먹으러 뤼스트렐로 가는 길, 이곳까지 올라오기 위해 죽음의 업힐을 견뎌야 했다
체리나무가 가득한 길 끝에서 라이딩을 마쳤다
석양이 질 무렵, 뮈르에서 산책을 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프로방스는 계절마다 다른 색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우리가 갔던 5월의 색은 빨강이었다. 곳곳마다 빨간 양귀비   꽃이 피어나 있었고, 체리나무의 체리도 새빨갛게 익어 있었다. 체리나무에 꽃이 피어나는 4월은 온통 하얀색으로, 라벤더 꽃이 피어나는 6월과 7월은 온통 보라색으로 넘실댄다고.

본래 이날의 코스는 출발 지점이었던 압트까지 돌아가는 것이었지만, 업힐을 오르며 맞바람을 너무 많이 맞은 탓에 체력이 달렸다. 빌라르(Villars)에서 조금 일찍 마무리하고 호텔까지는 차로 이동하기로 했다. 어느덧 프로방스에서의 네 번째 밤이었다. 뮈르(Murs)에 있는 ‘르 크리용 호텔(Hotel Restaurant Le Crillon)’에 체크인을 했다. 객실이 8개뿐인 아주 작은 호텔이어서 마치 프로방스의 어느 가정집에 손님으로 놀러 간 듯했다. 내 방에는 이 호텔의 첫 주인이었으리라 추정되는 사람들의 가족사진까지 걸려 있어 더더욱 그랬다. 영화 <나니아 연대기>에서 현실세계와 나니아 왕국을 연결하는 통로를 떠올리게 하는 오래된 옷장도 있었고, 테라스에서는 낯선 나를 보고 왈왈 짖는 옆집 강아지들이 내려다 보였다. 땀이 밴 옷을 조물조물 빨아 널어 두고 마을 산책을 했다. 잠시나마 프로방스의 시골 마을에 살아 보는 기분이었다. 그날 밤 잠이 특히 달았다.
 

▶오크라 콩세르바투아르 데 오크르(Okhra Conservatoire des Ocres)
주소: Usine Mathieu - 558, Route d’Apt - 84220 Roussillon 
전화: +33 4 90 05 66 69
홈페이지: www.okhra.com
요금: 황토 공장 가이드 투어 1인당 5EUR(15인 기준, 사전예약 필수), 자전거 렌트 1일 22EUR
 

▶Hotel & Restaurant for Dinner
르 크리용 호텔 & 레스토랑(Hotel Restaurant Le Crillon)
르 크리용 호텔은 작은 레스토랑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빨간 체크무늬 천이 곱게 깔린 식탁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손님들도 모두 이 호텔 투숙객인 듯했다. 그리고 그들도 우리처럼 자전거로 여행 중인 듯했다. 파리 여자 같은 외모에 시골 여자 같은 상냥함을 가진 호텔 주인이 직접 주문을 받고 서빙을 했다. 호박죽과 스테이크도 몹시 맛있었지만, 그날 아침 동네 체리나무에서 딴 체리로 만들었다는 파이는 엄지를 치켜들 수밖에 없는 맛이었다. 이번 여행 멤버들이 모두 가장 맛있었던 곳으로 꼽은 레스토랑이기도 하다.
주소: Rue du Brave Crillon-84220 Murs, France
전화:  +33 4 90 72 60 31  
홈페이지: www.provence-hotel-gordes.com  
이메일: contact@lecrillon-luberon.com 
 
 
기획·글=고서령 기자, 사진=고아라, 영상=이용일, 모델=김민경·조용성, 취재협조=프랑스관광청·터키항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