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냄새 진득한 천년 고도, 하노이

2018-02-07     정태겸
새벽 시간,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발을 디뎠다. 입국 수속을 막 끝내고 길가에 우두커니 서서 음악을 틀었다. 헤드폰에서 콜드플레이의 ‘Fix you’가 흘러나왔다. 일주일간 바람처럼 베트남의 하노이에서 호찌민으로 흘러가는 내내 그 멜로디가 머릿속을 따라다녔다. 베트남은 ‘Fix you’가 어울리는 곳이었다. 
 
하노이 문묘에 남은 유교의 흔적
도로를 메운 오토바이와 인력거의 행렬
하노이 시장의 내부는 어둑해도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시장 입구는 물건을 기다리는 오토바이들로 매우 혼잡하다
 
Ha Noi
사람냄새 진득한 천년 고도 하노이 
 
베트남어로 하노이는 ‘강의 안쪽’이다. 가이드가 베트남어에 대한 기초지식을 알려줄 때마다 여섯 개의 성조가 만들어 내는 베트남어의 문장이 독특한 멜로디로 귓가에 꽂힌다. 뜻을 알고 나면 많은 것들을 이해하게 된다. 홍강을 가로지른 다리를 건너면서 곧장 북적이는 도심이 복잡하게 얽혀 들었다. 차의 흐름이 느려지고 눈으로 보는 것이 많아진다. 차창 밖으로는 오토바이 부대가 강물이 협곡을 빠져나가듯 차 사이로 흘러 다녔다. ‘강의 안쪽에 세워진 도시’는 그랬다. 

하노이는 베트남의 수도답게 살아 움직이며 스스로를 키워 가는 중이다. 진화의 단면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만큼 베트남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수도인 하노이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해 가는 중이다. 15년 전 중국 동부의 도시들이 하노이에 겹쳐 보였다. 그때 그 도시들은 수시로 헌 껍데기를 벗어던졌다. 새로운 고치를 잉태하길 반복했다. 다행히 하노이에는 사람냄새가 진득했다. 미소가 사라진 도시는 퍽퍽하다. 다행히도 아직 하노이의 사람들은 미소를 머금을 줄 알았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눈길이 마주칠 때마다 오토바이에 앉은 사람들은 미소를 지었다.
 
하노이 문묘는 중국의 것들과 다르게 베트남 특유의 색채가 덧씌워져 있었다
베트남에서도 붉은색은 길한 기운을 상징하는지 문묘의 내부는 온통 붉은 색이다
 
하노이의 중심은 호안 끼엠 호수다. 경계의 안과 밖에 물이 있다는 건 사람이 살기 참 좋은 조건이 된다. 1010년 리(李) 왕조는 이곳을 수도로 삼았다. 그 후로 천년 가까이 하노이 지역은 이름만 바뀌어 왔을 뿐 베트남이라는 이 길쭉한 땅의 중심지 역할을 해 왔다. 천년 고도의 흔적은 곳곳에 남았다. 하노이의 문묘는 그 흔적 중 하나다.
 
본디 문묘는 유교의 이념을 교육하는 학문의 현장이자 공자의 사당이다. 지리적으로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었던 베트남에도 공자의 흔적이 이렇게 남아 있다. 물론 베트남에 들어온 공자의 사당은 오롯이 그들만의 미감으로 채색됐다. 우리의 과거제도와 같은 시험이 수시로 이 자리에서 열렸다는 건 오래전 베트남을 움직이는 중심 이념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수백년의 역사를 가로질러 이곳은 수많은 학자와 정치가들을 양성해 내는 전당이었다. 

프랑스가 제국주의를 바탕으로 식민지 확보에 혈안이 됐던 시절, 하노이는 프랑스에 점령당하는 불운을 겪는다. 문묘의 역사는 그 시점에서 끊어져 버렸다. 하지만 그 어떤 정치적 폭압도 민중들의 관습을 철저히 끊어 내지는 못했다. 그 뒤로 문묘는 학문의 전당으로서의 기능은 상실했지만, 공부로 성공하기를 원하는 이들이 기도하는 기도처로 변모했다. 지금도 이곳은 대학 입학을 앞둔 학부모며 학생들이 북적거린다.
 
탕롱 황궁의 계단에 조성된 용의 조각
한국의 경복궁에 비견되는 탕롱 왕궁의 외관
아오자이를 입은 여인은 하노이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탕롱 왕궁은 이 자리에서 찬란했던 천년의 시간이 흘렀음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유적이다. 왕궁의 이름인 ‘탕롱(昇龍)’은 ‘승천하는 용’을 의미한다. 베트남은 한자 문화권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게 베트남어를 조금이나마 쉽게 이해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는 건 그만한 시간의 흐름을 견뎌 냈다는 의미로도 해석되리라.
 
‘베트남의 경복궁’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과거 빛나던 궁전은 규모가 작은 편이다. 탕롱 왕궁은 옛날 규모의 절반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크기로 복원되어 있다. 공개된 지역의 외곽에서는 아직도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 대신 왕궁은 호찌민 시절 외세에 대항했던 투쟁의 기록들까지 끌어안고 있다.
 
프랑스, 일본, 미국으로 이어지는 지독히도 잦았던 침략들. 지긋지긋한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베트남 사람들은 포기를 몰랐다. 그들이 견뎌야만 했던 시간만 백년이 넘는다. 한국인들이 그 배경을 바탕에 두고 이 기록들을 맞이한다면, 분명 남의 일 같지 않은 복잡한 감정을 맞닥뜨리게 될 테다. 하물며 우리 역시 얼마나 잔혹하게 그들을 대했던가.  
 
글·사진 정태겸  에디터 천소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