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에 홀려 오키나와

2018-03-06     김선주
시사(Shisa)에 홀려 오키나와를 누볐다. 
사자를 닮은 오키나와의 수호신! 어디에나 있지만 어느 것 하나 똑같지 않다. 
시사를 쫓는 오키나와 여행이야기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시사가 나쁜 기운과 액운에서 보호해 준다고 믿는다. 오키나와 어디를 가든 각양각색의 시사 토기를 만날 수 있다
 

오키나와 수호신을 쫓는 모험

시사를 만나려면 날렵해야 한다. 워낙 많고 변화무쌍한 녀석이니까. 시간도 넉넉하지 않다. 그런데 이게 뭐람. 카메라 가방에 배낭에 캐리어까지 주렁주렁…. 거추장스럽다. 이 두툼하고 굼뜬 겨울 코트는 또 어쩔 것인가. 서울과 오키나와의 급격한 온도차에 미처 대비하지 못해 못내 아쉽다. 서울보다 무려 34도나 높다니….

공항에 짐을 맡기고 홀가분하게 시사를 쫓을까? 더블K의 제안은 언뜻 그럴싸하지만 결국 엉터리다. 그럼 짐을 찾으러 다시 공항에 와야 하잖아, 얼마나 허술한 제안인지 정곡을 찔렀다고 우쭐할 찰나, 우리 호텔까지 짐을 옮겨 주니까 걱정 마, 쐐기를 박는다. 더블K는 시사를 쫓는 여행을 위해 사전 준비를 제대로 한 모양이다. 동행하길 잘했다 안도한다.

여행 주도권을 쥔 더블K는 거침없다. 머뭇거림 없이 공항을 성큼성큼, 믿거니 꽁무니를 따를 수밖에…. 국내선 청사 한쪽에 자리 잡은 ‘핸즈프리관광(Hands-Free Sightseeing)’ 접수처는 의외로 수수한 외관을 하고 있다. 과연 가능할까 의심이 솟구치려 할 때 ‘짐을 맡겠습니다’ 한국어 안내문이 또박또박 안심시킨다. 여기에 짐을 맡길 수도 있고, 호텔까지 짐을 배송해 주는 핸즈프리관광(일본어로는 ‘테부라맨손 관광’)을 이용할 수도 있다. 하나씩 이용하기로 결정! 핸즈프리관광으로 여행 캐리어는 털어 내고, 겨울코트는 벗겨 낸다. 이제야 홀가분하니 날렵해졌군, 그제야 여행욕이 솟구친다.

내친김에 기동력도 확보한다. 국제운전면허증이 없을 뿐더러 있다손 쳐도 한국과 역방향인 도로에서 렌터카를 운전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는 않다. 사고도 많이 난다니까 맘 편히 대중교통을 이용하자, 군말 없이 공항관광안내소에서 ‘오키나와 노선버스 주유패스’ 3일 티켓을 구매한다. 노선버스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교통패스다. 공항과 오키나와 나하 시내를 잇는 모노레일 유이레일(Yui Rail)도 포함시킬 수 있다. 오키나와의 유레일패스 격이군. 패스에 이용날짜를 기입하며 중얼거린다.
 
모노레일과 노선버스를 이용해 오키나와를 여행할 수 있다 
면을 소스에 찍어 먹는 ‘츠케멘’
 

그러고 보니 출출하다. 라멘 어때? 점심 역시 더블K의 여행 예습을 따른다. 오키나와의 유명 라멘 가게 열 곳 중 한 곳을 골라 그곳의 스페셜 라멘을 먹을 수 있는 음식쿠폰이다. 토핑을 한껏 얹어 양도 푸짐하고 가게마다 맛도 독특하다고 해, 맛깔난 설명을 들으며 고른 라멘은 ‘츠케멘’. 걸쭉하고 진한 맛의 소스에 면을 찍어 먹는 ‘찍먹 라면’이랄까, 큼직한 돼지고기 수육도 덩이째 여러 점 얹혀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포만감이 느껴진다. 찍어 먹고 남은 소스에 국물을 부어 마시는 것으로 츠케멘 한 그릇을 쓱싹 해치우니 절로 터진다. 오이시이!            
 
 ‘1마일의 기적’으로 불리는 국제거리는 각종 가게와 레스토랑, 쇼핑센터가 몰려 있고, 밤 늦은 시간에도 사람들로 북적이는 오키나와의 최대 번화가다 
아메리칸 빌리지에서는 일본 속 미국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어디에도 있고 무엇과도 같지 않은 

날렵함에 기동력을 갖추고 식욕도 달랬으니 본격적으로 시사 탐험에 나선다. 사자를 닮았지만 사자는 아닌 상상 속의 동물이다. 사자는 일본어로 ‘시시’다. 아마 세월이 흐르면서 발음이 변해 현재의 시사가 됐을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시사가 나쁜 기운과 위험에서 보호해 준다고 믿는다. 흙으로 빚고 돌로 조각하고 천으로 꿰매 시사를 가까이 두는 이유일 테다. 건물, 기둥, 지붕, 도로 없는 곳이 없고 크기와 생김새도 가지각색이다. 웃고 익살 떨다가 매섭게 노려보고는 다시 앙증맞게 귀엽고…. 오키나와 여행에서 이만큼 매력적인 탐험대상이 또 있을까!   

핸즈프리관광 덕분에 첫날 오후를 오롯이 시사 탐험에 투자한다. 우선 나하 시내를 공략한다. 어디에 시사가 가장 많을까? 당연히 국제거리고쿠사이도오리다. 오키나와 최대 번화가 아닌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공급으로 폐허가 됐지만 이제는 1.6km1마일에 이르는 도로 양옆으로 화려한 가게와 레스토랑, 쇼핑센터들이 몰려 있고, 늦은 밤까지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래서 ‘기적의 1마일’로 불린다. 그래서일까, 국제도로 초입, 도로 양옆을 지키고 있는 커다란 시사 돌조각상도 왠지 당차 보인다. 시사도 암수 구분이 있는데, 입을 벌린 게 수컷이고 암팡지게 다문 것은 암컷이다. 수컷은 복을 담기 위해 입을 벌리고 암컷은 그 복을 지키기 위해 입을 다무는 거라고. 그러고 보니 국제거리 초입의 시사 두 마리도 암수 한 쌍이다. 시사가 없었으면 이 많은 토산품 가게와 쇼핑센터들은 도대체 무엇을 팔았을까 싶을 정도로 국제거리는 시사 천지다. 여행객이 몰려드는 거리이니 당연하다.
 
아메리칸 빌리지의 상징인 대관람차는 일본 영화 <눈물이 주룩주룩>에 나와 유명해졌다
슈리성 성문 양옆을 지키고 있는 시사 암수 한 쌍
아메리칸 빌리지 내 디폿 아일랜드는 아기자기한 숍들이 즐비하다
슈리성으로 들어가는 입구 슈레이몬 앞은 기념사진 촬영스폿으로 인기가 높다
 

액운을 막는 수호신 본연의 역할보다는 여행객 유혹에 더 열성이기는 아메리칸 빌리지(American Village)의 시사들도 마찬가지다. 1981년 미군 비행장 부지를 반환받고 그 자리에 세운 거대한 도시형 리조트다. 일본 영화 <눈물이 주룩주룩>에 등장한 대관람차가 이곳의 상징이라지만 그것 말고도 눈부신 주인공들은 많다. 이국적인 색채로 채색된 아름다운 건물과 거기에 톤을 맞춘 야자나무, 아기자기한 카페와 숍, 레스토랑, 극장, 놀이시설…. 재잘재잘 여행객을 유혹하는 곳곳의 시사도 아메리칸 빌리지의 주인공이다. 최근 새롭게 들어선 디폿 아일랜드(Depot Island)도 일본과 미국의 매력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매력으로 존재감을 풍긴다.

좀 더 묵직한 시사를 찾아 나선다. 모노레일 마지막 역에 내려 조금 걸으면 슈리성(Shuri Castle)이다. 14~19세기 약 450년 동안 오키나와를 다스렸던 류큐 왕국의 왕궁이다. 태평양 전쟁 때 파괴된 것을 1992년 복원한 것이지만 역사적 무게감이 가볍지는 않다. 왜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겠는가. 그래서인지 각 성문을 통과할 때 만나는 시사 조각상의 기품도 예사롭지 않다. 시사 조각상이 처음 세워진 곳이 바로 슈리성이라고 추정하는 이들도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성벽을 따라 걷고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나하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내를 향한 시사의 시선은 스러진 옛 류큐 왕조를 추억하기라도 하는 듯 아련하다.
 
길이가 8m에 이르는 츄라우미 수족관의 고래상어는 오키나와의 명물로 인기가 높다
만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넓다는 뜻을 지닌 만자모. 코끼리 모양 바위도 인상적이다 
 
우주를 유영하는 고래상어

오늘은 꽤 먼 곳까지 탐험한다. 노선버스를 타고 오키나와 북부까지 치고 오를 작정이다. 들르고 싶은 곳은 많지만 긴 여정이니 욕심은 버린다. 최종 목적지는 츄라우미 수족관(Churaumi Aquarium), 더 정확히는 그곳에 있는 대형 고래상어(Whale Shark)다. 고래 같은 상어로 몸 길이가 8m에 이른다. 점박이 무늬를 한 대형 고래상어가 유영하는 모습은 누구라도 버킷리스트에 담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상징으로도 시사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으니 하루를 꼬박 투자한들 아까울 리 없다.  

나하 시내 중심지 겐쵸마에현청앞 정류장에서 120번 버스에 오른다. 120번 버스는 만자모(Manzamo)를 거쳐 부세나 해중공원(Busena Marine Park)을 들르고, 나고시 버스터미널에서 멈춘다. 그곳에서 65번이나 66번, 70번 버스로 갈아타면 점박이 고래상어를 만날 수 있다. 물론 가는 길목마다 시사가 반겨줄 테니 무료하지 않을 테다. 

만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넓다더니 바다를 향한 만자모의 품은 정말 너르다. 버스정류장에서 15분 정도 야트막한 오르막길을 걸어야 하니 다소 고생일 수도 있다. 그 노고에 대한 위로는 탁 트인 경치와 시원한 바람이다. 하이라이트는 코끼리 바위다. 영락없이 코끼리 모습이니 코끼리 바위라고 부르는 게 당연한데 정작 일본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않는단다. 만자모를 한 바퀴 산책하는 내내 바닷가 기암괴석과 아찔한 절벽이 동행하더니 결국에는 시사에게 바통을 넘긴다. 기념품점을 가득 채운 시사 토기들이 익숙한 듯 천의 표정으로 시선을 붙든다.
 
부세나 해중공원에서 유리바닥보트를 이용해 오키나와의 바다 속을 탐험할 수 있다
오키나와는 일본에서 벚꽃이 가장 먼저 개화한다. 1월 말이면 오키나와 북쪽부터 붉은 벚꽃이 만개한다 
 

버스가 부세나 리조트 정류장에 가까워지니 빠듯한 시간이 살짝 고민스럽다. 자연 상태의 오키나와 바다 속을 볼 수 있는 기회라며 다독인다. 부세나 해중공원은 두 가지 방식으로 오키나와의 바다 속살을 안내한다. 해중 전망대와 유리바닥보트다. 시간상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겠는데 어쩌나, 때마침 점박이 고래상어 모습을 한 유리바닥보트가 항해를 마치고 들어온다. 고래상어다! 선택의 고통도 말끔히 가신다. 유리로 된 보트 바닥에는 에메랄드 빛 오키나와 바다 속 세상이 일렁인다. 마치 고래상어 뱃속에 들어온 듯 신나고, 바다 속 산호초와 열대어도 생동감 넘친다.

최종 목적지 츄라우미 수족관은 인파로 북새통이다. 커다란 고래상어 조형물 아래 수학여행 온 여학생들이 까르르 추억을 남기는 동안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여행객들은 서로 경쟁하듯 입구로 발길을 재촉한다. 다들 고래상어 볼 생각에 잔뜩 설렌 눈치다. 고래상어가 유영하는 가로 22.5m 세로 8.2m의 수조는 그 자체로 바다나 다름없다. 언젠가 수족관에서 하룻밤 묵을 수 있는 추첨 이벤트를 벌인 적이 있다는데, 경쟁률이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굳이 그런 행운이 아니더라도 감격은 심해처럼 깊고 넓다. 고래상어의 몸짓은 마치 우주를 비행하듯 유유하고 중후하다. 멍하니 빨려들 수밖에 없는 광경이다. 오는 길에 한창 절정으로 치닫던 1월의 붉은 벚꽃을 보았더랬지. 고래상어 몸 위로 점점이 붉은 벚꽃이 터지고, 시사 한 쌍이 하늘하늘 그 뒤를 따르는 몽환에 휩싸인다. 
 
▶TRAVEL INFO OKINAWA
 

PROGRAM
핸즈프리관광 프로그램
Hands-Free Sightseeing

짐에 대한 부담 없이 오키나와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고안됐다. 일본어로는 ‘테부라(맨손) 관광’이라고 부른다. 도착일 오키나와공항에서 짐을 맡기면 투숙 호텔까지 배송해 주므로, 짐을 들고 여행을 하거나 호텔 체크인을 먼저 하는 번거로움을 덜 수 있다. 그만큼 여행에 더 집중할 수 있다. 배송 신청은 오후 1시까지 할 수 있다. 반대로 출국하는 날에는 호텔에서 공항까지 짐을 배송시킬 수도 있다. 오키나와공항에 오전에 도착하는 경우, 저녁 시간대에 떠나는 경우 이용하면 효율적이다. 이용료는 짐 한 개당 편도 기준으로 800엔(8,000원). 같은 요금으로 당일 오후 7시까지 짐을 보관해 주는 프로그램도 이용할 수 있다. 접수처는 나하공항 국내선 청사 1층 도착 로비에 있다. 
홈페이지: jtb-okinawa.co.jp/topics-list/tourism-2122/
 

PASS
오키나와 노선버스 
주유 패스(Okinawa Pass)

운전을 하지 못하거나 일본에서 렌터카 운전에 부담을 느끼는 자유여행객들을 위한 대중교통패스다. 오키나와 내 거의 모든 노선버스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경비 측면에서도 효율적이다. 111번, 117번, 공항리무진버스, 정기관광버스를 제외한 모든 노선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1일권과 3일권으로 운영되며, 오키나와 모노레일인 ‘유이레일’ 1일 무제한 이용을 추가한 ‘플러스’ 패스도 있다. 성인 기준 1일권과 3일권 요금은 각각  2,500엔(2만5,000원), 5,000엔(5만원)이며, 플러스 패스는 여기에 각각 500엔씩 추가된다. 12세 미만 어린이 요금은 성인요금의 절반이다. 나하공항 국내선 및 국제선 청사 관광안내센터, JTB투어리스트센터 등에서 구입할 수 있다. 
홈페이지: www.okinawapass.com
 

COUPON 
오키나와클립 구어메 티켓(Okinawa Clip Gourmet Ticket)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오키나와 라멘 쿠폰이다. 오키나와 국제거리·니시마치·슈리·아자·마카비 등 나하 지역의 인기 가게 10곳이 자랑하는 대표 라멘을 맛볼 수 있다. 가게 10곳 중 한 곳을 골라 이용하면 된다. 각 가게별로 라면 종류와 먹는 방식이 다양한데, 스페셜 메뉴로 구성하기 때문에 보통 메뉴보다 푸짐하다. 요금은 1,200엔. 
홈페이지: okinawaclip.com    
 
글·사진 김선주 기자
취재협조 JTB오키나와 jtb-okinawa.co.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