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와인의 심장, 바로사 Barossa

South Australia Australia’s Wine Capital  그토록 와인에 빠져 

2018-06-05     김선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그토록 와인에 바짝 다가간 적 없었고 그렇게 빠져든 적도 없었다. 
‘호주의 와인 수도’다운 면모였다.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와이너리 투어 이야기다.

1966년식

●포도밭의 클래식 자동차


클래식 자동차를 타고 와이너리 투어를 한다고 해서 살짝 호기심을 품기는 했지만, 세상에 1966년식 머스탱 컨버터블(Mustang convertible)이라니…. 아날로그 감성 넘치는 내부 인테리어에는 격조가 흐르고 군더더기 없는 직선적인 외부 디자인에는 자신감이 넘친다. 물론 엔진 미션 할 것 없이 내부 부품은 당시의 것이 아니겠지만, 50여 년을 뛰어넘어 2018년을 달리는 1966년식 자동차에게 그런 시시콜콜한 것까지 따져 물을 필요가 뭐 있겠냐며 관둔다. 게다가 이곳은 1966년식 머스탱의 세월쯤이야 대수롭지 않은 호주 와인의 본고장 아닌가!


50년 시간을 머금은 머스탱 컨버터블의 무대는 180년 와인 역사를 지닌 바로사(Barossa)다. 바로사 밸리(Barossa Valley)와 에덴 밸리(Eden Valley)로 이뤄지는데, 최대 2억년의 역사를 지닌 토양과 지형, 기후 조건이 와인 재배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포도밭 규모만 130km²에 달한다. 서울 면적이 605km²이니 서울의 5분의 1 정도 크기인 셈이다. 바로사가 속한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South Australia)주는 호주 전체 와인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 ‘호주 와인의 수도’라고 불리는데, 바로사는 바로 그 와인 수도의 수도라고 하면 딱 맞다. 한마디로 호주 와인의 심장부다.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의 주도 애들레이드(Adelaide)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달리면 만나게 된다.  1840년대 유럽 정착민들이 프랑스와 스페인의 포도나무 가지를 잘라 와 심은 게 바로사 와인 역사의 씨앗이 됐다. 식민도시로서 애들레이드 개발이 본격화한 게 1836년이니, 바로사 와인은 유럽인들의 애들레이드 정착역사와 궤가 같다. 180년 전의 씨앗은 이제 드넓은 포도밭과 150개 이상의 와이너리로 자랐다. 많은 와이너리들이 셀라 도어(Cellar Door)나 테이스팅 룸(Tasting Room) 같은 시음시설을 갖추고 일반인들에게 와인 시음 및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과연 잘 달릴 수 있을까 걱정도 잠시, 머스탱 컨버터블은 시속 100km를 넘나드는 속도로 바로사를 질주한다. 왠지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속도인 것도 같지만 포도밭은 넓고 와이너리는 많으니 짧은 여정의 여행자를 위한 배려인 것 같기도 하다. 포도밭이 계속 이어진다. 바다처럼 드넓게 펼쳐지다가 언덕을 넘고 길을 건넌다. 일렬로 줄 선 포도나무들이 길 양옆으로 도열해 호주 와인의 심장부 입성을 환영한다. 초가을, 올해의 마지막 포도 수확을 마친 듯, 수레에 포도를 가득 실은 농부도 푸근한 미소로 거든다. 쉬라즈(Shiraz),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그르나슈(Grenache), 세미용(Semillon), 리즐링(Riesling), 마타로(Mataro), 베르멘티노(Vermentino) 등 다양한 품종을 재배한다는데 어느 게 어느 것인지 와인 문외한에게는 구분할 길이 없다. 그저 와인 맛과 향에 앞서 포도밭 풍경에 기분 좋게 취할 따름이다. 

●풍경에 반하고 와인에 취하고


바로사 와이너리 투어의 첫 기착지는 머레이 스트리트 빈야드(Murray Street Vineyards). 68만8,000m² 규모의 그리녹 이스테이트 포도밭(The Greenock Estate Vineyard) 등 2개의 포도밭을 운영하는데, 그리녹 이스테이트 테이스팅 시설은 포도밭 전경이 한눈에 들어와 조망감이 훌륭하고 붉고 푸른 벽돌 건물은 이색적이다. 현지 재료로 만든 음식과 함께 맛보는 와인은 그래서 향과 맛이 더 진하고 강렬한지도 모른다. 핀다리 와인(Pindarie Wines)도 규모와 명성에서 뒤처지지 않는다. 바로사 서쪽 산등성이에 자리 잡은 포도밭은 40만5,000m²에 달해 호쾌한 경치를 선사하고, 셀라 도어에서는 블랙 힌지 리저브 템프라니요(Black Hinge Reserve Tempranillo) 등 호주 국내외 와인쇼에서 수상한 와인들을 시음할 수 있다. 

 

수많은 와이너리 중 겨우 두 곳을 들렀을 뿐인데 벌써 기분 좋게 얼근하다. 한 잔당 양은 두어 모금에 불과하지만 화이트와인부터 레드와인까지, 품종별로, 생산연도별로 여러 잔의 와인을 맛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얼근해진 김에 머스탱과 이별을 결심한다. 다른 일행이 탄 트라이크(Trike)라는 이름의 삼륜 바이크의 유혹이 커서다. 고배기량 바이크를 삼륜으로 개조해 뒷자리에 두 명이 탑승할 수 있도록 했는데, 엔진소리와 바이크 진동은 물론 바람도 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 머스탱과는 또 다른 감흥이다. 시속 100km를 넘나드는 머스탱을 놓치지 않고 뒤따라갈 정도이니 속도감도 짜릿하다. 

▶바로사 유니크 투어스(Barossa Unique Tours) 
1966년식 포드 머스탱 컨버터블과 삼륜오토바이 트라이크(Trike)를 이용해 바로사를 안내한다. 
홈페이지: www.barossauniquetours.com.au  

야룸바의

●나 태어난 해의 빨간 맛


트라이크가 시동을 끈다. 가족이 소유한 와이너리로는 호주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야룸바(Yalumba)다. 1849년 설립된 이래 지금까지 여섯 세대 170년에 걸쳐 운영되고 있다. 와인 테이스팅 룸은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과 1906년경 만들어진 시계탑 덕분에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주중에 오면 와인 오크통을 제작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저장고에 가득 쌓인 와인 병들을 보는 재미도 색다른 경험이다. 

세그웨이를

와이너리 아티잔스 오브 바로사(Artisans of Barossa)는 바로사의 와인 장인들이 뭉쳐 결성한 일종의 와인협동조합이다. 6개의 와이너리를 갖춘 와인 장인들이 힘을 합쳤다. 바로사의 소규모 와인 생산 전통을 보호하고 육성하자는 공동의 목표 아래였다. 6개 와이너리가 뭉쳤으니 그만큼 와인 양조 스타일도 다양하고 풍부하다. 그래서일까, 취해서일까, 와인 테이스팅 테이블에 올라온 와인 수와 요리가 훨씬 다채롭다.


탈것을 다시 바꾼다. 이번에는 세그웨이다. 세그웨이를 타고 세펠츠필드(Seppeltsfield) 포도밭 오솔길로 파고든다. 자동차로는 갈 수 없는 포도밭 깊은 곳이다. 잠깐의 세그웨이 훈련은 필수다. 언덕까지 오르니 포도밭이 광활하게 펼쳐지고 마치 패치워크처럼 아름다운 하모니를 자랑한다. 과연 소믈리에가 이 풍경을 와인 묘사하듯 묘사하면 어떨지 궁금하다.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하지만 격랑 같은 변화무쌍함을 잃지 않은 풍경이라고 하면 될까? 

세펠츠필드

 

세그웨이에서 내리면 세펠츠필드 와이너리의 하이라이트가 기다린다. ‘탄생년도 와인 시음 투어(Taste Your Birth Year Tour)’다. 자기가 태어난 해에 만들어진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기회다. 인간의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최소 100년 치는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잠깐 의심하듯 걱정하지만 저장 창고(Centennial Cellar)에 가득 줄지어 쌓인 와인 오크통이 말없이 걱정 말라 안심시킨다. 오크통마다 생산된 해가 적혀 있는데 첫 빈티지는 1878년이다. 1878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그 해의 와인을 저장해 왔다. 그만큼 세펠츠필드 와이너리의 역사는 깊다. 유럽 정착민들이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에 정착한 지 15년 후인 1850년 설립됐고 1878년부터는 100년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1978년 세계 최초로 100년 숙성된 와인을 탄생시킨 곳도 바로 이곳이다. 과연 내가 태어난 해는 어떤 맛일까, 탄생년도 오크통 앞에 서니 본의 아니게 일행들의 나이서열이 드러나 잠시 소동이 인다. 이를 정리하듯 그중 가장 오래된 1975년산 와인을 홀짝인다. 슈팅스타 속 팝핑캔디 같은 맛이 과묵함 위로 터진다.

▶세그웨이 센세이션 SA(Segway Sensation SA)
바로사 밸리의 대표적인 와이너리 중 한 곳인 세펠츠필드 포도밭을 세그웨이를 타고 둘러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좀 더 색다르면서도 깊게 바로사 밸리를 만날 수 있다. 
홈페이지: www.segwaysensationsa.com.au 

글·사진 김선주 기자
취재협조 호주관광청 www.austral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