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보글 술 익는 소리를 따라

충청북도편-단양, 옥천, 진천

2018-07-06     오윤희

부쩍 더워진 날씨도, 이동거리도 개의치 않았다.
숨 쉬는 항아리 안에서 우리 술이 보글보글 익어 가고 있었다.

 

●진천
만화 속 배경을 찾아 덕산양조장

딸_ 만화 <식객>에 나온 그곳을 실제로 오게 되다니! 신기해요, 아빠.
아빠_ 진천이 볼 거리 놀 거리 많은 동네인 건 알았다만, 이제 마실 거리도 추가해야겠구나. 한 잔, 두 잔 연거푸 마시게 되네.

 

덕산양조장은 1930년 지어졌다. 백두산에서 자생하는 삼나무와 전나무를 사용해 지붕을 만들었고, 양조장 앞에는 벌레를 쫓는 데 특효가 있는 측백나무와 향나무를 심었다. 서쪽을 향하고 있는 양조장은 자연적으로 온도를 유지해 발효에 적합한 구조다. 곳곳에서 조상의 지혜가 느껴진다. 덕산양조장을 처음 알게 된 건 허영만의 만화 <식객>을 통해서였다. 100화 ‘할아버지의 금고’ 편에서 덕산양조장은 빚을 지고 폐업 위기에 처한다. 사채업자가 양조장을 인수하려 하나 주민들이 반대에 나서고, 평범한 회사원이던 양조장 주인 손자는 고민에 빠진다. 마침 손자는 할아버지의 금고에서 나온 딱지(술 뚜껑)을 발견하게 되고, 유년시절 할아버지와의 따뜻한 추억을 떠올린다. 손자는 결국 양조장을 물려받는다. 


실제 덕산양조장의 사연은 만화와 같은 듯 다르다. 이방희 대표는 사채업자도, 양조장 주인의 손자도 아니지만 양조장을 인수했다. 전통주 제조 설비 업무를 하던 그는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던 덕산양조장 손자의 요청으로 전문 경영인으로 합류했단다. 기존에 있던 직원들은 그대로 유지하며 양조장을 운영해 오고 있다. 실제로 만화 속에도 등장한 손자의 아내는 양조장 안내 및 판매를 담당하고 있다. 


덕산양조장의 주종은 단연 동동주. 천년주, 가시오피아주, 덕산막걸리, 덕산약주 등을 주조하는데 그중 덕산막걸리가 대표 메뉴다. 살짝 톡 쏘는 맛이 이내 사라지고 달달함이 퍼지다가, 쓴맛과 신맛이 어우러지는 다채로운 술이다. 반면 로즈앙은 여리하다. 식용 장미, 무농약 흑미, 백미, 비트를 주원료로 한 라이스 와인으로 달고 은은한 향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쌀과 장미가 이리도 환상적인 짝일 줄은 몰랐다.  

 

주소: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 초금로 712  
오픈: 월~금요일 08:00~17:00, 토~일요일 08:00~16:00(연중무휴)  
전화: 043 535 3567 
홈페이지: www.sulbom.kr

 

●단양
항아리를 꿰매 술을 빚다 대강양조장

아빠_  항아리를 꿰맨다는 건 난생 처음 알았구나. 그나저나 대통령이 좋아하는 막걸리라 그런지 참 달고 맛있어.
딸_  아빠는 씁쓸한 맛이 나는 신선주, 저는 새콤한 복분자막걸리가 딱이네요!  

 

학창시절 바느질 과제는 늘 아빠 몫이었다. 엄마보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손재주가 없는 나를 도와 척척 바느질을 해 주시곤 했다. 그래서일까? 아빠의 시선이 유난히 술 항아리에 고정됐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굵직하게 꿰맨 흔적이 있다. “이 자국들은 뭐다냐?” 의아한 표정의 우리에게 4대째 가업을 이어 받았다는 조재구 대표가 말했다. “옛날에는 워낙 항아리가 귀해서 꿰매 썼어요. 항아리를 꿰매는 기술자도 있었죠.” 숨 쉬는 옹기항아리 안에는 소백산 지하 암반 지하수로 빚었다는 술이 보글보글 익고 있다. 100년 가까이 내 온 소리다. 


대강양조장은 청와대 만찬주를 빚는 곳으로 유명하다. 생막걸리, 검은콩막걸리, 복분자막걸리, 오곡진상주, 소백산신선주, 청동동주를 빚는데 그중 오곡진상주가 청와대에 납품된 술이라고. 쌀, 밀, 옥수수, 보리, 조, 다섯 가지 곡물이 들어가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신선주는 이름처럼 신선들이 마시는 술이라는 뜻으로, 아홉 가지 약재(신선초, 당귀, 고본, 구기자, 천궁, 솔잎, 인삼, 대추, 음양곽)가 들어간 그야말로 ‘약주’다. 씁쓸한 맛에 향이 짙은 신선주와 청동동주는 중년들이 좋아한다고. 대추를 넣은 청동동주는 2주 정도 숙성하는 보통 막걸리의 2배, 즉 한 달 이상 숙성을 거쳐 정성스레 만들어진다. 색만큼이나 맛도 새콤한 복분자막걸리는 여성들에게 인기다. 
 

 

주소: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대강로 60  
오픈: 10:00~22:00(연중무휴)
전화: 043 422 0077  
홈페이지: www.krwine.com  

 

●옥천
우리 곡물로만 만든 막걸리 이원양조장

아빠_  소풍 길 따라 오던 옥천에 다시 오니 감회가 새롭구나. 우물가 옆 펌프도 오랜만이고. 
딸_  옥천에서만 마실 수 있는 막걸리를 아빠랑 함께 마셔서 뜻 깊어요.  

 

솔직히 말해 옥천을 잘 몰랐다. 시인 정지용의 고향이라는 사실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 겨우 알게 된 정보다. 반면 아빠는 옥천을 알고 있었다. 중학생 시절, 옥천으로 소풍을 간 적이 있으시다나. 양조장으로 향하는 길, 어린아이처럼 들뜬 모습의 아빠 옆에서 나는 정지용의 ‘향수’를 되뇌고 있었다. 


옥천을 잘 모르니 옥천에 있는 양조장을 알았을 리가. 더군다나 이원양조장에서 만든 술은 오직 ‘옥천에서만’ 유통하는 탓에 잘 알려지지 않았기도 했다. 그러나 숨겨진 보석은 어떻게든 빛이 나는 법. 2017년 6월, 이원양조장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농림축산식품부가 선정한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됐다. 


이곳의 술은 총 세 가지. 금강의 맑은 물과 100년간 대대손손 이어 온 비법으로 만든 ‘아이원생막걸리’, 정지용 시인을 떠올리게 하는 ‘시인의 마을’, 우리밀로 만든 막걸리 ‘향수’. 이원양조장의 막걸리는 100% 국내산 밀과 쌀을 사용한다는 데 특별함이 있다. 이원양조장의 자랑거리 하나 더, 우물이다. 대개 우물터를 유지하는 양조장이 있긴 하지만, 이곳에서는 정말 우물에서 물을 길어 사용한다. 술항아리처럼 생긴 우물 입구도 다른 데 없는 이원양조장만의 볼거리다. 

 

주소: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묘목로 113  
오픈: 월~금요일 09:00~18:00(주말 문의)  
전화: 043 732 2177  
홈페이지: www.iwonwine.com

*찾아가는 양조장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우리 농산물 소비와 전통문화 계승을 목표로 양조장 체험 프로그램과 제품 개발, 홍보 및 마케팅 등을 지원하는 사업. 현재 전국 30여 개의 양조장이 선정됐다.

*트래비스트 오윤희는 전국 방방곡곡 우리 술 양조장을 탐하기 시작했다. 수제맥주 취재에도 종종 함께하곤 했던 ‘볼빨간’ 동행, 그녀의 아버지를 벗 삼아. 인스타그램 sool_and_journey
*트래비스트 김정흠은 일상처럼 여행하고, 여행하듯 일상을 살아간다. 아빠와 딸이 전통주를 찾아 전국을 누빈다기에 염치없이 술잔 하나 얹었다. 사진을 핑계로. 인스타그램 traveller.noeul
 

글 Traviest 오윤희  사진 Traviest 김정흠  에디터 김예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