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로쿰으로 기억되는 도시, 아피온

Afyon

2018-07-10     최갑수
아피온

 

로쿰(Lokum) 하나를 집어 입에 넣는 순간, 뭐라고 해야 할까, 모든 일들이 행복함을 향하는 듯 느껴졌다. ‘여행하는 삶을 살기를 잘했다’, ‘이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은 인생이다’라고 느낄 때가 있는데, 바로 지금 같은 순간이다. 맛있는 음식에 내 눈이 저절로 스르륵 감기는 순간, 입가에 미소가 배시시 번지는 그런 순간. 

아피온은

 

아피온 시내에 자리한 ‘미림 울루(Mirim Oğlu)’는 1860년부터 로쿰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주인 알리가 시식해 보라며 집어 준 건 부드러운 치즈가 잔뜩 들어간 로쿰이었다. “카이막 로쿰이라고 하지. 이게 우리집에서 가장 맛있어.” 알리는 눈을 찡긋하며 가위로 로쿰을 썰어 주었다.

미림
4대째

 

사실 이 도시를 찾은 건 온천 취재 때문이었다. 아피온은 터키 최대의 온천도시다. 땅 속에서 미네랄 성분이 풍부한 온천수가 끝도 없이 솟아난다. 인구 20만 명 정도의 중소 도시이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온천 시설을 갖춘 특급호텔이 무려 11개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온천 치료(Thermal Therapy)를 자랑하는 코카테페대학병원(Kocatepe University Hospital)도 이곳에 있다.

2

 

이스탄불을 거쳐 아피온에 도착해 짐을 풀기가 무섭게 호텔들을 하나씩 돌아보기 시작했다. 5년 연속 아피온 온천호텔 중 1위를 기록한 NG호텔(NG Afyon Wellness & Convention)을 비롯해, 아크로네스호텔(Akrones Thermal Spa Convention), 익발호텔(Ikbal Thermal Resort & Spa), 산디클리(Sandikli Thermal Park Hotel), 마이호텔(May Thermal Resort & Spa) 등등 신발에 비닐을 씌우고 이들 호텔의 사우나 시설과 수영장, 마사지, 테라피 등 다양한 시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왜 이곳이 온천 치료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세월이 더 흘러 근육에 힘이 빠지고 관절이 거칠어지고 난 후, 그리고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이 거리를 쏘다니는 것보다 좋아질 때가 오면 분명 이곳 아피온이 머릿속에 떠오를 것 같았다. 이 호텔 저 호텔을 떠돌며 온천을 즐기는 일도 나쁘지 않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도시에 머물며 온천탕만 돌아보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호텔을 돌아보는 일정을 끝내고 남은 약간의 시간 동안 카메라를 들춰 메고 거리로 나섰다. 다리를 움직일 만큼의 기운은 남아 있었기에. 호텔 밖으로 나가야 할 이유는 분명했다. ‘여길 또 언제 와 보겠어?’


하니페(Hanife)가 기꺼이 아피온의 가이드를 자처했다. 스물 세 살의 그녀는 아피온 문화센터에서 한국어를 공부했다고 했다. “대장금을 아주 좋아해요.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는 그녀에게서 많은 감명을 받았어요. 여기서도 BTS가 아주 인기가 많아요.”


오후의 거리는 한적했다. 사람들은 골목에 놓인 자그마한 테이블에서 모두 홍차를 마시고 있었다. 동양인을 많이 접하지 못했던 그들은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친절하게 웃어주었다. “아 유 꼬레?” 하고 물을 때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다가와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가게 문 앞에 기대 있던 알리도 그랬다. “한국에서 왔어?” “응” “아피온은 처음이지?” “응” “들어와 봐, 내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로쿰을 먹게 해 줄게.” 


알리가 건넨 로쿰 한 조각을 먹자마자, 왜 이걸 ‘터키시 딜라이트’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었다. 달콤한 로쿰은 입 속에 들어가자마자 나를 기쁘게 해주었다. 지구 한 귀퉁이, 보석처럼 숨어 있는 이 가게가 축복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렇게 어느 날 터키의 구석진 거리에서 이유도 없이 로쿰과 나는 사랑에 빠졌다.

아피온의

 

터키의 달콤한 유혹 


터키 사람들도 대단히 호감이 갔다. 그들은 낙천적이고 쾌활하고 친절하다. 로쿰 하나를 집어 먹으며 하니페에게 말했다. “터키 사람들은 때로 지나치게 달콤한 로쿰처럼, 지나치게 자상할 때도 있지만 거부감이 들 정도는 아니에요.” 그녀는 웃으며 응수했다. “터키를 여행하다 보면 그 자상함에 은근 중독될 걸요, 로쿰처럼요.” 그리고 대답을 더 얹었다. “아피온은 한밤중에 혼자 돌아다녀도 될 만큼 안전해요. 길모퉁이마다 커피와 홍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있고 테이블에는 찬란한 햇살이 쏟아지죠.”

따스한

 

고작 로쿰 한 조각에 너무 감동한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게 우리를 여행으로 이끄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매일을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운 채 힘겹게 언덕길을 올라가는 중고 트럭처럼 살 순 없지 않은가. 여행이란 지루한 일상에 내리는 소나기 같은 것일 테고, 우리는 그 소나기를 흠뻑 맞으며 즐기면 되는 것이다.  


아피온은 슬렁슬렁 걸어 다녀도 두 시간이면 충분히 여행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도시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가 대부분 그러하듯 아피온 역시 소박하고 단출한 풍경을 보여준다. 현대식 건물은 눈을 씻고 둘러봐도 찾기 힘들다. 오스만 제국 시대에 지어진 목조주택들만이 길 양옆으로 늘어서 있을 뿐이다. 이스탄불 남쪽으로 약 280km 떨어진 이 도시의 정식 이름은 ‘아피온 카라히사르’. 기원전 4세기부터 유래를 찾을 수 있는데, 시내 어디에서든 보이는 ‘검은 요새(Kara Hisar)’라는 바위산 꼭대기의 성에서 도시 이름이 비롯됐다. 이 성이 만들어진 것은 BC 1800년경. 힛타이트가 BC 1530년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키고 만들었다.  

아피온

 

아피온에서 유명한 또 한 가지는 양귀비다. 퀴타히야 자페르 공항(Kutahya Zafer Airport)에서 아피온 시내까지 약 60km를 달려오는 동안 창밖으로 내내 양귀비 밭이 펼쳐졌다. 푸른 들판에 보이는 하얀 꽃밭이 전부 양귀비 밭이었다. 아피온이라는 지명은 아편에서 나왔다. 그 어원은 그리스어 오피움(Opium). 물론 이 양귀비는 철저하게 국가가 관리한다. 재배된 양귀비는 공장으로 보내지고 ‘모르핀’으로 다시 만들어진다. 터키는 전 세계 모르핀의 70%를 생산한다.


아참, 이 도시는 신비주의자 수피들로도 유명하다. 동그란 모자를 쓰고 빙글빙글 도는 춤으로 유명한 수도사들 말이다. 그 동상이 시내 한가운데에 서 있다. 그들은 평생 숟가락 하나와 그릇 하나로 검소하게 살아간다고 한다. 헌데 그들은 이토록 달콤한 로쿰의 유혹을 어떻게 견뎌 냈을까. 선물용 로쿰 한 박스를 앞에 두고 ‘박스를 뜯어 하나만 먹을까?’ 매일 밤 고민했다. 그들은 정녕 이 치명적인 유혹을 이겨 냈단 말인가.

아피온

 

*이스탄불 남쪽으로 약 280km 떨어진 아피온의 정식 이름은 ‘아피온 카라히사르’다. 바위산 기슭에 위치한 터키 최대의 온천도시로 호텔들이 모여 있다. 아피온에서 차를 타고 3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으스파르타는 장미의 도시다. 전 세계 장미수와 장미오일의 60%를 이곳에서 생산한다. 기독교 유적이 많아 성지순례객들도 많이 찾는다. 

 

글·사진 최갑수  에디터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터키항공 www.turkishairlin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