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터 밥장과 함께 그린 싱가포르 여행

우리가 싱가포르를 그리는 방식

2018-07-12     김예지

물 뿜는 사자와 삐죽빼죽 고층건물들은
싱가포르를 만남에 있어 그저 밑그림에 불과하다.

머라이언은

 


일러스트레이터 밥장과 함께 싱가포르를 여행했습니다. 밥장은 그림을, <트래비> 두 기자는 사진과 글감을 모으면서요. 사진에서 보던 머라이언(Merlion)과 마리나 베이 샌즈(Marina Bay Sand)만이 다가 아니더군요. 이슬람 모스크와 중국식 사원, 사리(Sari)를 두른 인도 여인. 싱가포르의 색깔은 상상했던 것보다 다양했습니다. 또 푸르렀습니다. 곳곳에 나무와 숲이,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바다와 습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애초에 그리던(draw) 싱가포르와는 달라졌지만, 그것이 곧 우리가 싱가포르를 그리는(miss) 방식입니다.  

차이나

 

●여행 첫날과 싱가포르
속도의 반비례 관계


싱가포르의 에스컬레이터는 쾌속이었다. 가장 가까운 곳부터 가는 게 어떻겠냐는 안건이 단 3초 만에 ‘삼’장일치로 시원하게 통과된 후였다. 우선은 지하철(MRT)을 타고 봐야 했다. 30도가 훌쩍 넘는 날씨에 스멀스멀 땀이 올라오고 있었으니까. 다행히 MRT역의 에스컬레이터는 거침이 없었고, ‘서울 속도 못지않다’고 했던 싱가포르 친구 D의 말이 문득 스쳤다. 그마저도 답답한 사람들이 오른쪽 줄을 따라 내려가고, 덩달아 온도도 성큼성큼 떨어졌다. 아. 이제 좀 살겠다. 

 

서울 지하철 못지않게 노선이 복잡해 보였지만, 환승이 필요 없었다. 숙소가 위치한 부기스(Bugis)역에서 세 정거장만 가니 리틀 인디아(Little India)다. 그 ‘직관적인’ 이름은 쿡, 후각부터 찔러 왔다. 어디선가 맡아 본 것 같은 향신료 향이 강렬하게 난다. 싱가포르는 1819년부터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당시 영국의 또 다른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건너온 노동자들이 모여 살며 만들어진 거리가 리틀 인디아다. 커리 식당과 힌두식 사원, 인도 스타일의 옷 가게들, 골목골목 피어 나오는 향까지. 인도에 가 본 적이 없지만 정말로 인도에 온 것 같았다. 사리Sari를 두른 채 한 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있던 여인과 딱, 눈이 마주쳤을 때마침.


해가 조금 가실 무렵이다. 이제 걸어 보는 게 어떠냐는 안건이 가까스로 통과됐고, 20~30분쯤 됐으려나. 책으로 본다면 다른 장(chapter)이다. 캄퐁 글램(Kampong Glam)은 애초에 말레이 왕족들이 살던 곳이었다. 싱가포르가 영국의 식민지가 된 후 1822년 영국은 민족별로 구역을 지정*했고, 이때 술탄 후세인(Sultan Hussain Shah of Johor)은 영국과의 협상을 통해 캄퐁 글램을 술탄의 거주지로 ‘공식 배정’ 받았단다. 상징적인 건물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2년 뒤인 1824년, 2년에 걸쳐 사원을 지었다. 캄퐁 글램의 랜드마크로 통하는 술탄 모스크(Sultan Mosque)다. 술탄의 황금 깃발 정도로 이해하면 되려나. ‘원래 우리 동네였으니까’, 얼마나 쩌렁쩌렁하게 영역을 표하고 싶었을까.


상대적으로 여행의 첫날은 느리다. 반나절을 비행에 쏟았는데도 이렇게나 많은 것을 하다니. 더구나 5월 말 싱가포르의 낮은 길었다. 그렇지만 빠르게도 졌다. 싱가포르의 속도로.    

*1822년 ‘Plan of the Town of Singapore’이라는 이름 아래 영국은 싱가포르의 도시 개발을 진행했다. 이때 래플스경(Sir Stamford Raffles)은 정부 소유, 공공 이용 지역, 유러피안 지역 등 목적 및 민족별로 구역을 나눴다. 캄퐁 글램을 중심으로 한 부기스, 아랍 스트리트 일대가 술탄 및 말레이인들의 거주지로 배정됐다. 

리틀

 

●“This is ROJAK, lah.”


‘로작Rojak’이란 단어를 알려 준 것도 D였다. 채소와 과일, 때로는 해산물 등을 넣고 칠리 등 각종 소스를 섞어 만든 싱가포르 현지 음식이란다. 그런데 우리는 음식에 관한 대화를 하던 중이 아니었다. 중국, 말레이, 인도 등 다양한 인종과 종교가 한데 뒤섞인 싱가포르 자체가 로작이라 그는 말했다. 리틀 인디아, 캄퐁글램, 차이나타운까지, 그렇다면 우린 로작(싱가포르)의 속 재료들을 하나씩 맛보고 있다 하니 D는 새로운 맛을 제안했다. 페라나칸(Peranakan). 로작 오브 로작(Rojak of Rojak)이라나.

그림이라면

 

인도와 유럽 계열 등 종류가 갈리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페라나칸은 중국인과 말레이인의 혼혈 후손들을 의미한다. 15세기부터 싱가포르로 이주해 온 중국인들이 토착 말레이인들과 결혼하기 시작하며 오늘날의 페라나칸 문화를 낳았다. 그러나 중국도 말레이도, 유럽도 아니었다. 페라나칸 하우스들이 늘어선 주치앗 로드(Joo Chiat Road)*는 무어라 하나로 치우쳐 정의하기가 어려웠다. 기둥에 새겨진 꽃무늬는 중국인 것 같기도 하고 창문은 유럽 어딘가에서 본 것도 같은데. 저 파스텔 톤 색상은 또 어디서 온 걸까. 특정 이름 말고는 다른 어떤 단어로도 부르기가 힘들어질 때 그 이름은 고유명사가 된다. 페라나칸은 페라나칸이다.


고유명사와는 다르게, 별 뜻은 없지만 의미 있는 말도 있다. 이를 테면 ‘라(lah)’. 고맙다, 미안하다, 그냥 나가 놀자, 내 말이 그 말이야 등등 문장 끝에 붙이는 ‘싱글리시Singlish(싱가포르 식으로 변형된 영어)’의 일종이라 D는 설명했었다. 맞는 뉘앙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This is Rojak, lah!”

도자기

 

*주치앗 로드 | 주치앗(Joo Chiat, 如切)은 1900년대 초 이 지역 대부분을 소유했던 중국계 페라나칸 후손의 이름이다. 당시 유럽의 수요가 상당했던 향신료, 육두구 등을 재배하던 그는 한때 모든 소유지를 코코넛 농장으로 운영하기도 했다. 이후 1960~1970년대 싱가포르 인구가 급증하며 사람들은 도심을 벗어나 살기 시작했고, 주치앗 로드에 집, 학교, 극장, 쇼핑센터 등이 생겨났다.

 

*밥장은 여행하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2006년 <비정규 아티스트의 홀로그램>을 시작으로 <그림, 그려보아요>, <나는 일러스트레이터다>, <떠나는 이유>, <호주 40일> 등 그림과 여행에 관련된 책을 여럿 펴냈다. 여행 중엔 언제나 몰스킨 다이어리를 가지고 다닌다. 현지에서 바로 그리는 맛은 확실히 남다르므로. 
페이스북 jbob79  인스타그램 realbobchang

 

글 김예지 기자  사진 강화송 기자  그림 밥장
취재협조 싱가포르관광청 www.visitsingapo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