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의 맛, 섬의 재미, 전남 영광군 송이도

2018-09-03     천소현

동쪽엔 새하얀 몽돌 해변이 집 앞까지 넘실거리고, 서쪽엔 7km에 이르는 광활한 모래등이 모세의 기적처럼 드러났다. 생각할수록 아름다운 섬이다.

●영광 어디까지 가 봤니?


애초부터 님도 보고, 맛난 것도 먹을 계획이었다. 목적지는 전남 영광군 낙월면 송이도. 영광에서 멈춰서 점심으로 보리굴비정식을 영접하는 일은 이번 섬 캠핑 여행에서 아주 중요한 일정이었다. 오랜만에 먹는 보리굴비와 조기에 집는 반찬마다 황홀경이라, 새벽부터 눈꺼풀 겨우 떼어 내고 배낭님 모시고 나선 보상을 이미 받은 기분이었다. 가능한 배에 꾹꾹 눌러 담느라 지체를 했더니 버스가 급히 손짓을 한다. 향화항에서 출발하는 오후 배를 놓치면 모든 영광은 물거품. 섬은 느긋하나, 배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뱃길로 한시간 반. 되는대로 모로 누워 청하는 오수는 잠수처럼 깊어서 다시 부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기상 소리에 군기 든 졸병처럼 벌떡 일어난 이유는 각자 배낭을 잘 챙겨야 노숙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룻밤 살림살이를 이고 지고 설영지까지 걸어갈 각오는 되어 있었지만, 짐을 실어 주시겠다는 트럭의 도움을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바. 덕분에 송이도만의 특별한 풍광인 자갈 해수욕장을 따라 사뿐하게 걸을 수 있었다.

몽돌은 유난히 새하얗고 매끄러워 맨발로 걸어도 감촉이 좋다. 이 몽돌들이 넘쳐 집 앞까지 잠식하자 보행을 위해 데크를 깔아 놓은 것이 송이도의 특색이 되었다. 게다가 영광군 낙월면에 있는 11개 유인도 중에서 유일하게 해수욕장이 있는 섬이 송이도라 해변을 보러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름도 예쁜 ‘송이길’를 따라 10분쯤 걸었을까, 시즌이 애매해서인지 해수욕장 앞 캠핑장이 텅텅 비어 있었다. 텐트 서너 동은 넉넉히 들어갈 만한 팽나무 아래의 큰 데크는 공용 공간으로 남겨 두고, 각자 설영할 자리를 잡았다. 바로 옆에 송이도 흰몽돌송비치하우스란 긴 이름의 펜션이 있어서 편하게 잘 수도 있다. 에어매트에 바람을 넣느라 진을 빼는 사이 성미 급한 양반들은 이미 바닷물에 반신욕 중이었다. 구경하러 갔다가 떠밀려 들어간 초여름 바다 속은 하드를 베어 문 느낌이었다. 머리까지 푹 한 번 담그고 나서야 비로소 얼얼함이 무뎌졌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트럭 주변에서 사람들이 와글거리고 있었다. 알이 꽉 차오른 꽃게들이 상자 안에서 발버둥을 치는 사이 흥정이 후다닥 이루어졌다. 생산지에서 확보한 신선한 해산물은 섬 여행의 빼놓을 수 없는 특권이다. 송이도 앞 칠산바다에 조기가 넘쳐나 법성포로 나르기가 바빴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민어, 농어 등이 소소하게 잡힐 뿐이라 대부분 농사를 짓는다. 


저녁을 맛있게 먹기 위해 식전 산책을 하기로 했다. 섬 북쪽의 일몰 조망 장소까지는 40분은 족히 걸어가야 하는 거리였지만 가는 길은 펜션 사장님의 트럭 뒤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가는 길 어딘가에 이 섬의 유명한 왕소사나무 군락이 있었지만 볼 정신이 없었다. 요동치는 트럭에서 누구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인간 사슬을 엮어야 했으므로. 도착하니 해가 저 멀리 안마도 뒤로 내려앉고 있었다. 기대만큼 장관은 아니었지만 하늘의 여백을 채웠던 실루엣 놀이도, 온전한 어둠 속을 걸어 돌아오는 귀가 길도 유쾌했다. 그러려고 온 것이니까. 

펜션에서

송이도에는 식당이 없지만 숙소에서 섬밥상을 미리 주문할 수 있다. 신선한 해산물 배식이었다. 백합과 바지락, 생선전과 갓김치 등으로 배가 다 차기 전에 아까 구입한 꽃게가 쟁반 수북이 때깔 곱게 삶아져 나왔다. 손 많이 가는 음식일수록 이렇게나 맛이 있다. 

매끈한

새로운 판이 만들어진 것은 각자의 캠핑 의자가 늙은 팽나무 아래 정렬된 이후였다. 버너 위에서 뚝딱 만들어지는 안주와 각자 좋아하는 주류가 배낭에서 나왔고, 철 이른 캠핑장을 독점한 덕에 기타 라이브까지 누렸다. 거기서 몇 걸음만 벗어나도 하늘은 별천지. 통행이 없는 도로 한복판에 누우니 바닥이 따듯하다. 까무룩 잠이 들 것 같았다. 그러나 애써 이고 지고 온 텐트가 있으니 노숙할 수야 없지. 모닥불이 풀썩 무너질 즈음 에어매트 위에 몸을 펼쳤다. 반 평이라도 내 집이 최고다. 몽돌과 파도가 연주하는 자장가는 조곤조곤했다. 

선착장부터

 

●송이도에 맛들인 시간들 


아침에 더워서 깼다. 말로만 들었던, 여름 캠핑의 초자연적(?) 이른 기상 현상이었다. 그래 봤자 해님보다는 늦은 것이지만, 몇 대 안 되는 자전거를 선점할 기회를 잡았다. 동네 한 바퀴로 시작한 모닝 라이딩이 힘겨워진 것은 누군가 돌 수집을 결정한 이후였다. 도로를 내느라 훼손된 해식 절리의 파편들이 고기구이용 석판으로 딱이었던 것이다. 유일하게 장바구니가 달린 자전거를 타고 있다는 이유로 운송책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핸들이 유난히 뻑뻑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석기시대로 빙의하여 모닝 삼겹살을 먹는 이유는 식재료를 남기지 않겠다는 집념이고, 모닝 맥주는 오로지 고기의 부르심이다. 

물이

모든 것의 양면을 봐야 한다는 뜻인지, 펜션 사장님은 서쪽의 갯벌을 적극 추천했다. 송이도는 소나무가 많고, 섬의 모양이 귀를 닮아서 송이도松耳島라 불리는데, 말하자면 뒷등 쪽에 몽돌해안선이, 귓불 아래쪽에 모래등이 있는 셈이다. 모래등은 송이도와 각이도 사이에 물이 빠지면 7km나 펼쳐지는데, 보통은 몰라서들 못 가는 장소다. 백하새우와 참새우의 산란장이자 백합도 많지만 특히 맛조개가 풍부해 ‘맛등’이라고도 불린다고.

해가 뜨자마자 지열이 무섭게 상승했지만 갯벌에 발을 담그고 있으니 견딜 만했다. 신기루처럼 버티고 있는 소각이도가 신기한 것은 잠시, 모두들 바지를 동동 걷고, 모자챙을 당겨 쓰고 채집에 나섰다. 한 번 맛조개 캐기에 맛을 들이고 나면 노다지의 꿈에 부풀어 호미질을 멈출 수가 없다. 그래서 벌겋게 익은 팔뚝과 목덜미를 오래도록 ‘영광’의 상처로 간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잡혀 온 맛조개는 아까 그 고기불판 옆에 냉큼 올려졌다. 


두 번째 섬밥상을 물리치고 나서 부지런한 이들은 다시 해수에 몸을 식혔고, 느긋한 이들은 나무늘보처럼 그늘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설영을 해체하는 시간을 최대한 늦추고 싶었던 마음이 모두 비슷했을까. 결국 모든 짐을 꾸려 트럭에 싣고 다시 자갈길을 돌아 나가 항구로 가는 길에는 제대로 기념사진 하나 찍을 여유가 없었다. 서두르는 발길을 자꾸 잡아당기는 자갈의 찰진 감촉만이 발끝에 남아 있다. 멀어져 가는 배에서 내려다보니 선착장 앞마을 표지석엔 ‘아름다운 섬 송이도’라는 글귀가 이 여행의 결론처럼 새겨져 있었다.

몽돌

 

찾아가기
영광군 향화도-송이도 사이에 칠산훼리호가 하루 2회 왕복 운항한다. 향화도에서 오전 8시와 오후 2시30분(동절기 오후 2시)에 출발하며 소요시간은 1시간 30분. 
문의: (주)유진해운  061 279 4222

숙소
흰몽돌송비치하우스

간단한 취사가 가능한 숙소다. 사전에 주문하면 섬에서 나는 해산물로 맛깔스런 식사도 준비해 준다. 
가격: 1박 10만~12만원  
전화: 061 352 1935, 010 2804 1914

 

글 천소현 기자  사진 김민수(아볼타), 천소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