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나올 수 없었던 오후의 풍경, 알바니아

2018-09-04     노중훈
베라트성에서

 

코소보 옆 나라 알바니아로 접어들었다. 코소보와 마찬가지로 알바니아에 대한 사전 정보와 지식의 두께가 습자지 한 장보다 얇았다. 게다가 코소보보다 여정이 더 짧아 겨우 하루 반나절의 야박한 시간이 주어졌다. 그러니 이 글은 가벼운 ‘인상비평’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데, 다행히 알바니아의 첫인상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티라나의

 

●선을 넘다


선을 넘었다. 코소보(Kosovo)에서 알바니아(Albania)로 넘어온 것이다. 차를 타고 육로로, 수월하게. 코소보-알바니아 접경지대에 설치된, 흡사 요금소 같은 검문소는 검박했다. 민족(알바니아계)과 언어(알바니아어)가 동일한 ‘형제 국가’라서 그럴까. 삼엄하다거나 위압적인 분위기는 감지되지 않았다. 그저 실용적인 목적 이외에 어떠한 의지도 드러내지 않는 건물의 표정은 무덤덤할 따름이었다. 여권 심사(가이드가 일괄 수거. 차에서 내릴 필요도 없었다)도 큰 인내심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발칸반도의 두 나라를 오가는 ‘통과의례’는 간소하고 간편했다. 알바니아관광청에서 마중 나온 이마가 훤한 중년 남자의 이름은 소콜(Sokol)이었다. 한곳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 가질 법한 능숙함과 여유가 흘러넘쳤다. 좌중에 기분 좋은 파문을 일으키는 유머 감각 또한 걸출했다. 전용 차량으로 국경에서 수도인 티라나(Tirana)까지 200km 정도를 달리는 동안 그가 들려준 알바니아 기본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알바니아를 여행하기 제일 좋은 시기는 4~5월과 9~10월. 전반적인 날씨는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고 습하지만 여름은 덥고, 건조하다. 하지만 티라나는 지형적인 영향 때문에 여름에도 습한 편이고, 겨울이 찾아와도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매우 드물단다. 음식은 코소보와 비슷한데, 이슬람 국가지만 기독교인이 상대적으로 많아(전체 인구의 30% 이상) 돼지고기 요리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돼지고기 섭취보다 더 뚜렷한, 두 나라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다의 존재 여부다. 내륙 국가인 코소보에는 바다가 없지만, 알바니아는 서쪽에 아드리아(Adria)해를 두르고 있다. 북쪽에는 해발 2,500m가 넘는 알바니안 알프스(North Albanian Alps)가 기세등등하게 버티고 있는데, 소콜씨는 “바다와 산 둘 다 간직한 알바니아가 스위스보다 낫다”며 좁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알바니아의

 

●Tirana티라나

광장을 메운 붉고 푸른 하늘


약 2시간 30분 정도를 차로 달려 인구 100만의 수도, 티라나에 닿았다. 몇 년 전 완공된 고속도로가 없었더라면 6시간 가까이 걸렸을 터이다. 초단기 취재 일정이었지만 경험 많은 소콜씨는 서두르지 않았다. 호텔에 짐을 풀고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게 해 주었다. 저녁 7시가 넘어 시작된 워킹 투어. 하늘은 이미 발그스레한 홍조를 띠기 시작했다.

국립역사박물관과 오페라극장 등이 모여 있는 도시의 중심, 스칸데르베그(Skanderbeg) 광장에 들어서자 푸름과 붉음이 섞인 하늘에 낮고 두꺼운 구름이 더해져 더욱 극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이날 투어의 주인공은 단연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하늘의 빛깔과 구름의 형상이었다. 광장에는 하늘을 떠받치듯 뾰족하게 솟아오른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1822년에 지어져 1971년까지 티라나에서 최장신 건물(그래 봤자 35m)로 통했던 시계탑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시계탑 바로 옆에 위치한 에템 베이 모스크(Ethem Bey Mosque)다. 규모가 웅장하거나 압도적이지는 않지만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 중 하나로 꼽힌다. 예전엔 시계탑 그림자가 모스크에 닿으면 광장 근처 시장이 문을 닫았다는 낭만적인 이야기도 내려온다.

국민
알바니아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기에르기 카스트리오티 스칸데르베그(Gjergj Kastrioti Skanderbeg) 동상이다. 그는 15세기 오스만제국에 맞서 싸운 알바니아의 군주이자 국민 영웅이다. 광장의 이름도 그에게서 비롯됐다. 동상 뒤로 펼쳐진 역동적인 저녁 하늘이 말 등에 올라앉은 그의 위엄을 한껏 북돋워 주는 듯했다. 19세기에 세워진 아담한 석교(石橋)를 끝으로 짧지만 알찬, 그래도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티라나 도보 여행이 막을 내렸다.

저녁식사 도중 역시 소콜씨로부터 들은 이야기지만 알바니아에는 무려 70만개를 웃도는 벙커가 있다고 한다. 40년 넘게 철권통치를 이어 나간 엔베르 호자(Enver Hoxha)가 외적의 침략에 맞선다며 만들어 놓은 것이다. 알바니아 전체 인구가 약 300만명이니 그 숫자가 참으로 어마어마하다.

1985년 호자가 사망한 뒤 알바니아 공산주의 정권은 급속하게 무너졌다. 1991년 2월20일,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은 마침내 호자의 거대한 동상을 밧줄로 당겨 쓰러뜨렸다. 독재자는 가고 없지만, 그가 남긴 어처구니없는 유산은 골칫덩어리였다. 수가 너무 많아 일일이 부수기도 힘들었다. 요즘은 식당이나 바(bar) 등으로 벙커를 재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19세기에

 

●Durres 두러스

시선을 동여맨 아드리아해


알바니아에서 처음으로 맞은 아침이자 실질적인 취재 마지막 날 오전, 티라나를 떠나 두러스(Durres)로 향했다. 티라나에서 서쪽으로 약 40km 떨어진 두러스는 거의 3,000년의 역사를 지닌 고도(古都)이자 알바니아에서 가장 몸집이 큰 항구도시다.

두러스의

수심이 얕은 아드리아해에 면해 있어 가족 단위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는 전언. 때가 아직 일렀던 탓일까. 5월26일 토요일 오전 10시경의 두러스 해변은 한적했다. 바람은 잠잠했고, 파도도 말이 없었다. 흰색 중절모를 쓰고 삼각 수영복을 입은 할아버지 한 분이 백사장에 홀로 서서 바다를 응시했다. 벤치에 나란히 앉은 두 명의 어르신 역시 별다른 대화 없이 자신들의 시선을 바다에 동여맸다.

팔짱을 끼고 해변 뒤쪽의 보도를 느릿하게 걷는 노부부의 모습도 보였다. 남편의 왼팔은 아내 오른팔의 도움을, 남편의 오른팔은 지팡이의 부축을 받았다. 도움과 부축 없이 걸었을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아주 잠깐 떠올렸다.

두러스

오래된 도시로서의 면모는 발칸반도에서 두 번째로 큰 로마 시대 원형극장에서 드러났다. 풍상에 허물어진 부분이 많고 관리 상태가 썩 좋지 않아 1만5,000명을 수용했다는 극장의 위용이 살갗으로 전해지지는 않았지만 두러스에 온 이상 한 번쯤 들러 볼 만한 장소임에는 분명했다. 다음 도시로 이동하기에 앞서 우리나라 돈으로 약 500원 하는 멜론 맛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7살 아이들이 그렸다는 벽화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소소한 추억을 추가했다.

발칸반도에서

 

●Berat 베라트

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1,000개의 눈’


두러스에서 차로 1시간 40분가량 길을 죄어 도착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도시 베라트(Berat). 티라나를 기준으로 하면 남쪽으로 약 100km(두러스를 거치면 약 120km) 지점에 자리한다. 도시의 기원은 2,400여 년 전 축조된 베라트성(‘칼라’로 불린다)에서 출발한다. 성 안에는 지금도 10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는데, 주거 공간을 비롯한 대부분의 건물은 13세기에 건립됐다.

베라트도 예외 없이 오스만제국, 그러니까 이슬람제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그리스정교회의 전통을 압살하지 않아 점령 이전의 생활양식과 전통이 보존돼 있다. 하이라이트는 비잔틴 양식의 세인트 마리 성당으로 베라트에 잔존한 가톨릭 유물을 보듬고 있다. 성당 내부 박물관의 명패는 16세기 알바니아의 유명 화가 오누프리(Onufri)에서 가져왔다. 그는 당시 잘 볼 수 없었던 화려한 색상을 과감하게 사용해서 큰 주목을 받았다.

베라트성에는

 

베라트성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마을 태생으로 성 안쪽에 살림집을 두고 있는 61살의 경비원 치치(Cici)씨가 담뱃불을 붙이고 있었다. 머리는 하얗게 셌고, 배는 불뚝했다. 가이드의 도움이 없었다면 머리카락 한 올만큼의 소통도 불가했겠지만 어쨌든 그의 유순한 인상이 오누프리의 강렬한 그림보다 더 귀중했다. 6년째 성당과 박물관을 지키고 있는, 수십 미터에 불과한 집과 직장 사이를 매일같이 오가는, 때로는 나른하고 때로는 적막하고 때로는 분주할 그의 일상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혹여 베라트에 다시 오게 되면 치치 할아버지의 집에서 하룻밤 묵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집주인도 모르는 ‘김칫국 상상’마저 슬쩍 해 보았다.

산을

베라트성곽 안을 구석구석 탐험했다. 박석이 깔린 좁다란 골목길, 야트막한 담장 위에서 낮잠을 즐기는 고양이, 긴 세월 비바람에 쓸린 담벼락, 화초에 관한 한 까막눈이어서 통성명하기가 불가능한 들꽃, 붉은 기와를 이고 있는 성당, 지형을 살피며 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강, 강 주변에 빼곡하게 들어찬 집들까지. 눈으로 어루만진 모든 풍경이 순화로웠고 마음에 감겨들었다. 더 이상의 운행은 무리인 듯한 낡은 자동차는 보닛과 앞 좌석 두 개의 문을 모두 열어놓은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관광객의 호출을 기다리는 하얀 리넨 제품들은 담장에 몸을 밀착한 채 조속조속 졸고 있었으며, 고운 빛깔 과일들을 늘어놓은 젊은 행상은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 있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세 여인은 결혼 화보를 촬영 중인 것으로 보였다. 여인들의 자태도, 자연의 맵시도 모두 눈부셨다.

베라트성은

베라트성 인근의 타베르나(자그마한 음식점) 라자로(Lazaro)에서 점심을 먹었다. 알바니아 스타일의 슈니첼, 포도 잎으로 감싸서 찐 밥, 잘게 부순 페퍼민트 빵과 함께 나온 양고기 등을 음미했다. 알바니아 맥주와 와인을 곁들였고, 대미는 늘 그렇듯 잘 여문 체리가 장식했다. 부른 배를 움켜쥐고 성 아랫마을로 내려와 다리를 건너 빼어난 전망을 보유한 바 겸 레스토랑으로 갔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강 건너편을 바라보니 ‘1,000개의 창을 가진 도시’라는 별칭이 실감 났다. 산을 등진 채 층층이 들어선 하얀 벽의 집들이 강을 향해 수많은 사각의 창을 낸 것이다.

대학생 가이드 베이치(Veizi)씨는 “창문을 모두 합치면 1,001개”라고 말했다. 하나하나 세어 볼 수도 없으니 그냥 믿기로 했다. 전망 좋은 테라스, 달달한 커피, 티끌 하나 없는 하늘,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봄볕, 인위와 자연이 결합해 탄생한 탁월한 풍광, 권태의 쾌감, 무위의 일락…. 인제 그만 자리를 떠야 하는데 모든 것이 완벽한 오후의 정경으로부터 도무지 발을 뺄 수가 없었다. 결국 다음 일정을 취소하고 좀 더 머물기로 했다. 왠지 강 저편의 ‘1,000개의 눈’이 싱긋 웃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베라트

 

▶travel  info

ALBANIA
알바니아는 발칸반도 서부에 위치한 공화국이다. 북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몬테네그로, 코소보, 마케도니아, 그리스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서쪽에는 아드리아해가 펼쳐진다. 국민의 대부분은 알바니아계. 주로 이슬람교를 믿는다. 화폐 단위는 레크(Lek).


AIRLINE
한국과 알바니아를 바로 연결하는 직항편은 없다. 우선 터키항공을 타고 이스탄불로 간다. 터키항공은 인천-이스탄불 구간의 비행편을 주 11회 운영한다. 비행시간 약 11시간 10분. 이스탄불에서 알바니아의 수도인 티라나까지는 주 14회 직항편을 운영 중이다. 비행시간 약 1시간 20분.


RESTAURANT
티라나의 뮬리지우는 알바니아 전통 음식을 낸다. 8가지 요리로 구성되는 코스 메뉴의 가격은 약 2만원. 상당히 저렴하다. 베라트성 입구에서 가까운 라자로는 캐주얼한 분위기로 수프, 샐러드, 감자, 양고기, 꼬치구이 등을 맛볼 수 있다.
www.mullixhiu.al

알바니아

HOTEL
마크 알바니아 호텔은 티라나 중심가에서 아주 살짝 벗어난 덕분에 조용한 환경이 돋보인다. 5성급으로 도시에서 가장 좋은 시설을 갖춘 호텔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총 151개 객실 중 딜럭스 룸 95개, 스위트 55개, 프레지덴셜 스위트 1개.
www.makalbania.com

 

글·사진 노중훈  에디터 강화송 기자
취재협조 터키항공 1800 8490 www.turkishairlines.com, 알바니아대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