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에서 업고 전주에서 놀자

2018-09-05     김선주
광한루와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절로 흥얼거리고 흥에 겨워 장단을 맞춘다.
<사랑가> 가락과 함께 남원과 전주에서 업고 논 이야기다.      

광한루와

 

●은하수 흐르는 사랑의 공간


광한루원에 들어서니 저 앞에서 성춘향과 이몽룡이 알록달록 예쁜 한복을 입고 반긴다. 다소 조악한 인형이긴 한데 그래서 시작부터 즐겁다. “방자야, 넌 왜 여기에 없니? 하하하” 커플 여행객들은 대개 이 지점부터 춘향전 역할극에 빠져든다. 졸지에 방자가 된 남자도 질세라 “향단아, 어서 길을 안내하지 않고 뭘 꾸물대느냐” 여자를 채근하며 맞받아친다. 그렇게 광한루원 여행은 흥을 키운다. 

삼신산

광한루원의 중심은 단연 광한루다. 광한루를 중심으로 광한루원 정원이 꾸며졌다. 광한루는 황희정승이 1419년 광통루라는 이름으로 세우고 정인지가 1444년 광한루로 개칭한 누각이다.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4대 누각으로 꼽힌다. 그런 멀고 딱딱한 설명보다는 춘향과 몽룡의 사랑이 깃든 춘향전의 배경이라는 설명이 훨씬 친근하다. 으레 광한루라 하면 그 짝꿍격인 오작교도 함께 일컫는다고 봐야한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도록 음력 칠월칠석에 까마귀와 까치들이 자신들의 몸을 잇대어 은하수에 만든다는 다리다. 그 견우직녀 설화 속 상상의 다리가 이곳에서는 튼튼한 석조다리로 뚜렷하니 이곳이 바로 별들의 섬 은하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살펴보면 정말 그렇다. 광한루의 ‘광한’은 선녀들이 산다는 달나라 궁전(월궁)이라는 뜻으로 우주를 상징하고, 그 앞의 호수는 은하수를 상징한다고 한다. 아, 그래서 절구질하는 토끼 조형물이 있었구나. 달나라 궁전 앞으로 은하수가 흐르고 그 위로 오작교가 놓인 풍경이라니…. 그게 전부가 아니다. 중국 전설 속 신선이 산다는 세 개의 산, 그러니까 봉래산·방장산·영주산 삼신산도 은하수에 솟아 있다. 호수 위에는 나룻배 한척이 매여 있는데 ‘은하수에 오르는 뗏목’이라는 뜻의 ‘상한사’다. 뱃사공 견우의 나룻배를 상징한단다. 직녀의 베틀이 흔들리지 않도록 괴는데 쓰였다는 돌 ‘지기석’도 호수 바닥에 있다는데 보이지는 않는다. 이 얼마나 우주적이고 환상적인 공간이란 말인가! 춘향과 몽룡은 이곳에서 몽환의 사랑을 나눈 거였구나.

춘향관에서는

 

●사랑가 애틋한 오작교에서


광한루를 향하다보면 자연스레 삼신산에 먼저 발길이 닿는다. 은하수 같은 호수 위에 솟은 세 개의 작은 섬. 중국 전설 속 삼신산의 이름을 그대로 따다 붙였고, 섬마다 작은 정자를 앉히고 대나무와 백일홍을 심어 운치를 더했다. 섬과 섬을 잇는 작은 나무다리 위에 서면, 광한루가 정면으로 반기고 호면 위에서 단아하게 흔들거리니 참 좋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가만 보니, 광한루와 호수와 삼신산, 그리고 오작교가 어디에서든 서로 어우러지니 아름답지 않을 수 없다. 압권은 오작교 위다. 이곳이야말로 광한루원의 우주적 상상이 가장 강렬하게 결합한 지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서적 감흥의 밀도가 높다. 부부든 연인이든 오작교를 건너면 사이가 더할 나위 없이 좋아진다는 말도 있겠다,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마치 사랑의 의식이라도 치르듯 경건한 마음마저 드는데, 때마침 광한루원 스피커에서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구성진 춘향가 판소리 가락이 울리며 분위기를 돋운다. 오작교 위에서는 사랑이 퐁퐁 솟는다. 향단이 춘향 되고 방자가 몽룡 되는 마법도 일어난다. 모두들 애틋한 마음으로 자신의 몽룡과 춘향을 사진으로 담는 데 열심이다.      

춘향전

월매집에도 들어가 본다. 춘향의 어머니 월매의 이름을 따서 조성한 이곳에는 춘향과 몽룡이 백년가약을 맺은 부용당과 월매집이 초가집으로 앉아있다. 방 안에서 몽룡은 춘향의 치마에 변치 않는 사랑의 글귀를 적고 있고, 부엌에서 방자와 향단은 뭣이 그리 재밌는지 낄낄댄다. 월매집 옆의 그네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그 옛날 춘향이 타고 몽룡이 밀어줬을 법한 그네다. 꽤나 높고 길지만 여자들 모두 춘향이 되고 싶은 것인지 겁 없이 성큼 오르고 남자들은 잽싸게 밀어주고는 멀찍이 떨어져 사진에 담는다. 그렇게들 업고 논다.  

기와지붕이

 

●한 해 천만명 유혹하는 매력


광한루원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이면 전주한옥마을에 닿으니 계속 업고 놀 장소로 손색이 없다. 전주한옥마을도 광한루원 못지않은 사랑의 공간이다. 쌍으로 한복을 차려 입은 연인들이 한옥마을 곳곳을 누비며 생기를 불어넣는다. 한복 차림으로 괴상한 모양의 오토바이를 타는 젊은 연인이 새삼 부럽지만 따라할 용기는 없다. 대신 전주한옥마을역사관에 들러 전주한옥마을 전반에 대해서 미리 배우기로 한다. 전주한옥마을역사관에 도착하니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 11시와 오후 2시에만 하는 정기해설 서비스가 막 시작된다. 운이 좋다. 전문 해설사가 전주와 전주한옥마을의 역사와 현황,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니 여행의 출발지로 삼으면 좋다. 빛바랜 옛날 사진과 기록물들도 더욱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은 물론이다. 

전주한옥마을에서는

전주한옥마을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일본인 상인들의 확장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국인들이 지금의 한옥마을 자리인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을 짓기 시작하면서 형성됐다고 한다. 지금이야 한 해 1,0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전주의 대표적인 명소로 거듭났지만 질곡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옥마을은 부촌이었다는데 산업화와 함께 기업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고 양옥과 아파트에 밀리면서 위기가 시작된다. 설상가상으로 1977년에는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돼 개발행위가 제한되고 주민들의 불편도 커진다. 자연스레 한옥마을을 떠나는 이들이 늘고 급기야 ‘도둑 많고 쥐 많고 지붕 새는 게 한옥마을 3대 자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쇠락하고 만다.

다행히 1987년 규제가 다소 풀린 데 이어 1997년에는 한옥보존지구에서도 해제돼 몰락의 위기에서 전환점을 찾는다. 특히 2002년 한일월드컵 개최도시 중 하나로 전주가 선정되면서 전주의 대표 아이콘으로서 전주한옥마을을 육성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그 결과 한벽문화관·전주공예품전시관·한옥생활체험관·술박물관 등 전주의 전통을 상징하는 시설들이 주르륵 들어선다.

“전주한옥마을은 2010년 이후 전성시대를 열었어요. 보기 좋은 한옥들과 다양한 체험시설이 늘면서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됐지요. 2016년 12월 기준으로 한옥 625동과 비한옥 174동이 있고요.” 해설사의 자랑이 귀에 쏙쏙 찬다. 1900년대 초 전동성당의 모습부터 1930년의 풍남문과 1960년대 남부시장 등 전주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한복

 

●어슬렁어슬렁 한옥마을 탐험


경기전을 들를지 아니면 그냥 편안하게 어슬렁거릴지 잠깐 고민하다가 시간부족을 탓하며 경기전을 포기한다. 이는 경기전 앞의 전동성당도 다음으로 미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경기전과 전동성당은 후르륵 겉핥기 하기에는 역사적 무게감이 크다. 경기전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 그러니까 어진을 봉안한 곳이다. 유일한 태조 어진을 봉안한 궁인 것은 물론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전주사고와 예종의 태실, 어진박물관 등도 있으니 어설프게 스칠 곳이 아니다. 전동성당 역시 천주교도의 순교터에 세운 성당이라는 점에서 경건하기는 마찬가지다. 전동성당은 순교자를 기리기 위해 프랑스 신부 보드네가 1908년 건립에 착수해 1914년 완공했다고 한다. 어쩌랴, 전주한옥마을역사관에서 본 옛 사진으로 일단 마음속에 담아 두는 수밖에….

정갈한

대신 한옥마을 골목골목 곳곳을 탐방한다. 지나치게 상업화된 것 같은데…. 당초 기대한 고즈넉한 한옥마을의 정취보다는 유명 관광지다운 번잡함이 압도적이어서 살짝 당황스럽다. 어쩔 수 없다. 그 번잡함과 상업성도 한옥마을의 한 부분이니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오히려 그 덕에 한옥마을 곳곳의 각종 문화관·공예관·박물관이 오아시스처럼 반가운지도 모른다. 전주소리문화관에서는 얼쑤 전라도 판소리 장단에 얼근하게 취하면 딱 좋다. 과했는지 전통악기 체험시설에서 징을 너무 세게 내리치는 바람에 다들 쳐다봐 민망하다. 김치문화관에서는 정작 김치보다 뜰이며 장독대며 소쿠리며 갈퀴며 짚신이며, 옛 것에 더 빠져든다. 동학혁명기념관에도 들러 100여년 전 역사도 되새긴다. 그러기를 반복하니 지칠 수밖에. 자연스레 한옥 한식당을 찾는다. 색동치마처럼 알록달록 예쁜 비빔밥을 슥삭슥삭 비벼먹으니 다시 힘이 솟는다. 반주로 마신 전주 모주의 힘일지도…. 

전주비빔밥과

 

동학혁명기념관

기와지붕이 잇달아 펼쳐지는 풍경이 보고 싶어져 다시 힘을 낸다. 건물 최고층에 자리 잡은 전망 좋은 카페에 오르니 전주한옥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미처 들르지 못한 경기전과 전동성당도 저 멀리 살짝 비친다. 와 멋지다! 스스럼도 없이 낯선 이에게 우리 사진 좀 찍어주세요 부탁할 정도다. 마치 다른 계절에 꼭 다시 오자는 다짐과도 같다. 그럴만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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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김선주 기자 sage@trave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