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더 다가가는 DMZ여행

2018-09-05     이성균
한탄천이

어느덧 분단 73주년, 곳곳에 남아있는 아픔의 흔적들. 
이제는 여행지가 됐을 정도로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평화열차 DMZ트레인은 아픔의 시간을 보듬듯 달렸다.

바람개비와

 

●익숙하지 않지만 편안한


거리보다 심리적으로 멀게 느껴지는 DMZ(Demilitarized zone, 비무장지대). 사실 이 곳은 세계에서 가장 특별한 땅이다. 분단의 아픔이 서려 있지만 무장 해제된 평화의 땅이다. 그래서 자연도 오롯이 숨 쉴 수 있었다. 역사와 자연, 평화가 공존하는 DMZ로 향하는 여정은 심리적 분단을 극복하는 데서 시작한다. 출발은 어렵지 않다. 평화열차 DMZ-Train을 이용하면 서울에서 고작 1시간30분이다. DMZ 평화열차의 종착역 연천역, 그곳에서 DMZ 철원 안보투어가 시작된다. 


DMZ열차는 DMZ의 상징인 평화, 사랑, 화합을 콘셉트로 꾸며져 있다. 전쟁과 분단의 아픔이 서려있는 DMZ가 자칫 어렵고 무겁게 다가올 수 있는데, 바람개비와 풍선, 연꽃으로 꾸며진 발랄한 내부가 그 무게감을 희석한다. 그 사소한 배려는 여행객이 DMZ를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다. 세계의 다양한 언어로 벽면을 채운 평화, 사랑, 화합이라는 글자들과 옛 사진들도 인상적이다. DMZ열차는 KTX처럼 속도가 빠르지 않아 연천으로 가는 내내 바깥 풍경을 천천히, 그리고 오롯이 즐길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과거로의 접속은 그렇게 편안하게 진행된다.

백마고지

 

첫 목적지는 백마고지 전적비다. 백마고지는 한국전쟁 중 열흘 간 스물 네 번이나 주인이 바뀐 치열한 전투지역으로, 원래 철원 효성산 한 기슭의 이름 없는 작은 고지였다. 하지만 심한 포격으로 인해 산이 백마가 누워있는 형상처럼 변해 백마고지라는 이름이 붙었고, 현재는 남쪽 DMZ 내부에 있다.

백마고지 전시관 내 ‘회고의 장’에는 전사자를 추도하는 위령비와 분향소가 있고, ‘기념의 장’에는 통일의 염원과 전승을 기념하는 전적비와 함께 당시 백마부대장이었던 김종오 장군의 유품을 전시한 기념관이 있다. ‘다짐의 장’에는 백마고지 전망대와 함께 자유의 종각을 건립해 과거의 시간을 돌아볼 수 있도록 했다.

특히 당시 현장에 남아있는 탄피로 백마고지 전투를 형상화한 작품과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백마고지 풍경, 우리의 GP(Guard Post)는 뜻 깊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백마고지 전시관에 서려있는 과거를 돌아보고 있노라니, 우리의 오늘을 일군 수많은 희생에 숙연해졌다.

백마고지

 

●시대를 간직하다


대마리 마을에서는 대남 대북 확성기 방송이 어느 지역보다 생생하게 들려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다고 한다. 막상 방송이 끝나니 허전함이 느껴졌다는 문화해설사의 재미난 일화를 들으며 노동당사 앞에 도착했다. 울창하게 우거진 숲과 줄지어 길게 늘어진 가로수, 간간이 보이는 주택들이 자아내는 한가로운 분위기와는 전혀 딴판인 곳이다. 70년의 세월이 지난 노동당사 건물은 골조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철원읍 관전리에 있는 이곳은 옛 조선노동당의 당사 건물이다. 1946년 초 공산치하에서 철원이 북한 관할이었을 당시 조선노동당에서 시공해 그해 말에 완공한 지상 3층의 러시아식 건물이다. 특히 철근을 이용하지 않고 콘크리트로만 지은 게 특징적이다. 노동당사가 있을 당시 이 지역은 꽤나 다양한 시설이 밀집해 있고 규모도 상당했던 지역이지만 우리에게는 아픔이 서린 공간이다. 문화해설사는 8·15광복 후부터 6·25전쟁이 일어나기까지 반공 활동을 하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고문과 학살을 당했다는 사실을 덤덤하게 전했다. 

노동당사를

현재 1층은 각방 구조를 알 수 있을 정도로 형체가 남아 있지만 2~3층은 골조만 남아 있는 상태로 어떤 공간으로 사용됐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1층의 경우 아주 작은 방들 몇 개로 이뤄져 있었는데 취조실이라고 느껴질 만큼 협소하다. 또, 탱크가 노동당사 정문으로 올라오다 부서트린 계단과 곳곳에 남아있는 총탄, 포탄의 흔적이 그때의 참상을 전한다. 

인근에서

고통으로 물든 노동당사지만 긴 세월의 관리와 노력 덕분에 당사 뒤편은 보랏빛 흰빛 무궁화로 가득 채워졌고, 2002년에는 우리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이제 노동당사는 어린 아이들을 위한 교육 소재이기 하며, 주말에는 철원 농작물을 사고파는 DMZ 마켓이 열리는 장터가 되기도 한다. 매년 7월27일 휴전협정일에는 각종 행사도 열린다. 아픔을 딛고 긍정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노동당사 앞, 바닥에 새겨진 철원의 시인 정춘근 작가의 시 <6시와 12시>의 구절을 음미했다. 

러시아식

남한의 모든 총과 대포는 12시 방향에 맞추어져 있고 북한은 6시로 고정되어 있다. 
다시 생각하면 우리의 분단 시차는 한나절 6시간.
그 짧은 시간 사이로 정지된 시계를 수갑처럼 찬 몇 세대가 지나갔다. 

우리를 옥죄었던 시간이 평화의 미래로 흐르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노동당사의

 

●눈과 마음으로 담는 감동

철원 안보여행의 백미는 멸공OP(Observation Post)다. 2014년 8월 민간인에게 처음으로 개방됐지만 여전히 민간인만으로는 이곳에 들어갈 수는 없다. 엄격한 관리와 통제 아래 군인들과 동행한 채로 이동한다. 약간의 긴장감과 함께 철원의 평야가 한 눈에 다 담길 정도로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멸공OP를 만날 수 있다. 멸공OP 주변은 군 시설로 지정돼 있어 제한된 시설만 사진을 찍을 수 있으며 제법 삼엄한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다. 멸공OP에서는 눈과 마음으로만 DMZ를 담아야 한다.

멸공OP 투어는 한편의 연극처럼 스토리가 짜여 있는데 우선 멸공OP를 지키고 있는 제3보병사단, 일명 백골부대 소개영상으로 시작된다. 백골부대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 후방에 침투해 전투를 벌인 한국최초의 유격부대로 여러 성과를 올렸다. 멸공OP의 멸공 또한 공산주의를 멸하고 북진통일을 완수하겠다는 백골장병의 의지를 담아 지어진 이름이다. 특히 멸공OP가 있는 지역은 평강을 정점으로 철원과 김화를 잇는 중부전선의 심장부, 철의 삼각지대다. 백골부대는 삼각지대의 정중앙에서 여전히 북의 동태를 살피고 있다. 

DMZ에서
강원도

영상이 끝나면 스크린이 올라가고 장병들이 커튼을 걷어낸다. 이윽고 한탄강의 물줄기와 울창하게 우거진 숲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흡사 쥬라기 공원의 원시처럼 태고의 자연을 만나게 된다. 연극의 클라이맥스를 맞이하듯 자연스레 탄성이 나온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의 공간, 한탄천과 민들레 벌판이 펼쳐지는 비무장지대의 풍경이다. 눈으로만 담기 아쉬울 정도로 광활하고 아름다운 비무장지대는 오성산, 저격능선, 남한과 북한의 GP와 북한 마을까지 담고 있다. 순수한 자연과 멸공OP의 위대함을 간직하고 여정을 이어간다.

일제

멸공OP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금강산 전기철도교량은 일제 강점기 철원 동부지역과 김화 지역 학생들의 발이 돼주었다. 특히 철원 토박이 어른들은 이 기찻길을 보면 새벽 2~3시에 전교생이 모여 금강산으로 수학여행을 떠나 일출을 봤다는 로맨틱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고. 철도길이 복원돼 다시 금강산으로 향할 수 있으면 그 감동을 또 느낄 수 있겠지…. 교량 위에서 보는 한탄천의 느긋한 물길은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하는데, 마치 밝은 미래로 향하는 길처럼 보이기도 한다.  

등록문화재로

 

간이역에 머물며


월정리역은 철원 안보관광의 마지막 코스다. 경유지라는 짤막한 설명과 함께 도착하지만 이 조그마한 간이역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제법 풍성하다. 서울에서 원산으로 달리던 경원선의 철마가 잠시 쉬었다 가는 곳으로 현재 남방한계선과 근접한 최북단 종착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이 역에서 마지막 기적을 울렸던 객차 잔해 일부분과 유엔군의 폭격으로 부서진 인민군의 화물열차의 앙상한 골격이 누워있다. 현재의 역사 건물은 철원안보관광개발사업의 일환으로 1988년 복원된 것이다. 

철원안보관광개발사업의

 

철원이 담긴 기념품

휴전 이후 인적이 끊긴 DMZ는 깨끗한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청정한 물, 해발 50m 고지대의 선선한 바람, 기름진 토양이 재배하는 다양한 농산물도 있다. 그 중에서도 철원 오대쌀이 유명하며 이를 활용한 상품도 많다. 철원 오대쌀을 활용한 막걸리는 단맛에 치우친 요즘 막걸리와 달리 신맛과 구수함을 품고 있어 인기가 많다. 야생에서 자라는 약초인 삼지구엽초와 토마토, 느타리버섯, 오이 등도 유명하다. 

철원의 또 다른 이색적인 면은 제주도를 제외하고 전국에서 유일한 현무암 지대라는 것이다. 제주도 현무암과 달리 무겁고 단단해 맷돌 등 공예품으로 활용된다. 현재 관상용과 식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도구로 제작되고 있다. 

 

기자가 체험한 우수여행상품
코레일관광개발[평화열차 DMZ 철원안보투어]


글·사진=이성균 기자 sage@trave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