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자카르타 - 시공간을 넘나드는 신비체험 여행

2006-02-20     트래비


ⓒ 트래비


보로부두르 사원
천 년의 미소 앞에 나를 돌아보다

세월의 더뎅이가 쌓인 모든 역사적 건축물은 처연하다. 흘러왔고 또 그렇게 흘러갈 억겁의 시간이, 살아왔고 또 무진장 살아갈 부단한 삶에 대한 애틋함이 그렇게 묻어 있기 때문이리라. 그렇기에 목 떨어진 돌부처가, 까맣게 검버섯 피어 오른 돌덩이가 더 가슴을 후벼 대는지도 모른다. 세속의 시야에서 간데없이 사라졌다 어느 순간 난데없이 나타난 천 년 사원, 보로부두르. 그 수수께끼 같은 신비감이 오늘을 허덕이며 살아가는 여행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 트래비

1. 새벽 보도부두르 사원. 일출을 기다리는 연인의 뒷모습이 애틋하다. 이곳에서 맞는 해돋이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감과 경건함이 뒤섞여 일생의 한 번 뿐인 추억으로 남게된다. 
2. 하루 첫 해를 맞은 보로부두르 사원의 실루엣이 아득하다. 
3. 일출 뒤 측면에서 바라본 보로부두르 사원. 거대한 규모와 정교한 건축기법이 감탄을 자아낸다. 
4. 보로부두르 사원 기단 부조는 치밀한 표현과 남방예술 특유의 육감적인 매력이 곁들여져 있어 흥미를 돋운다.


보로부두르 사원(Borobudur Temple)이 다시 세상에 등장한 것은 1814년. 당시 인도네시아 자바 섬을 지배했던 영국의 래플스(T.S. Raffles) 총독의 지시로 탐사 및 발굴 작업이 시작된 덕이다. 8~9세기에 걸쳐 건립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근 메라피 화산(Merapi Mountain)의 폭발로 홀연히 자취를 감췄을 것이라는 추정이 옳다면 보로부두르 사원은 천 년의 은둔 끝에 다시 세속에 나온 셈이다. 천 년의 은둔이라지만 복원된 보로부두르 사원이 내뿜는 처연함은 여전히 경외의 대상이다. 누구는 보로부두르 사원을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고 한다. 어떤 이는 세상의 중심에 있다는 상상 속의 산 ‘수미산’이 지상으로 내려온 것이라고도 한다. 

아예 불교의 세계관에 따라 건립된 소우주로 보기도 한다. 유네스코(UNESCO)는 1973년부터 10년 동안 보로부두르 복원 자금을 적극 지원했고 지난 1991년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열 중 아홉이 이슬람을 믿고 있지만 이 불교 유적에 대한 현지인들의 애틋함은 결코 작지 않다. 보로부두르가 세계적인 불교 유적으로 평가 받는 데는 역사적, 건축학적, 종교적 가치는 물론 첨단 과학의 시각으로도 선뜻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신비함도 한 몫 거들고 있다. 보로부두르의 뜻을 ‘언덕 위의 승방’으로 해석하는 설이 있지만 명확하지 않다. 누가, 왜, 언제부터 언제까지, 무엇 때문에 축조했는지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추정이 있을 뿐이다. 어째서 천 년 동안 홀연히 자취를 감췄는가 하는 것 또한 아리송한 수수께끼다. 

족자카르타의 불교 왕조였던 샤일렌드라 왕조가 8세기경에 축조하기 시작했다는 설이 유력한 보로부두르 사원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미얀마의 파간과 함께 3대 불교유적으로 꼽힌다. 1만2,000km2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에 약 100만개의 돌덩이를 이용해 쌓아 올린 9층 사원으로 단일 불교 건축물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이며, 축조 연대에서도 앙코르와트를 앞선다.

속물의 조급함을 탓하네!

보로부두르 사원이 풍기는 원거리의 웅장함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세밀함으로 탈바꿈한다. 특히 기단 벽면에 돋을새김으로 붓다의 행적과 일대기를 표현한 1,500여 개의 부조는 그 하나하나가 한 폭의 그림이다. 생동감이 넘치고 남방 특유의 예술적 특징이 가미돼 육감적이기까지 하다. 마치 손잡이 달린 커다란 종을 뒤집어 놓은 듯한 모습으로 보로부두르 사원을 장식하고 하고 있는 수많은 스투파(Stupa)와 그 안에 모셔진 불상들의 표정은 또 얼마나 자비롭고 아늑한가. 불교의 우주관과 교리가 이 건축물에 고스란히 표현돼 있다는 점도 감탄을 자아낸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정방형의 6층 기단과 3층의 원형 기단이 위로 올라갈수록 작아지는 형태로 구성돼 있는데, 아래에서부터 기단 한 층 한 층을 돌아 끝내 사원 꼭대기 층에 오르면 비로소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다고 한다. 한마디로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욕망과 악이 판치는 중생의 사바세계에서 한 단계 한 단계 벗어나 깨달음의 경지로 상승하는 것이다. 

정상에 서면 눈 아래로 남국의 열대 평야가 까마득히 펼쳐지고, 멀리로는 메라피 화산 등 해발고도 3,000m가 넘는 고봉들이 사원을 에두르고 있다. 왜 보로부두르 사원을 세상의 중심인 수미산이라 했는지 이해할 만하다. 주위의 산들은 수미산을 감싸고 있다는 8개의 산일 터이다. 

천년 세월 넘게 늘 그 미소로 세상을 응시해 왔을 불상. 그 시선에 시선을 맞춘다. 아옹다옹 눈 아래 나의 세상은 아직 새벽녘의 설핏한 기운에 잠겨 있다. 늘 그렇게 떠올랐을 아침 해가 일순 새벽 안개를 뚫고 세상을 비춘다. 첫 태양, 첫 빛을 받은 돌부처가 순간 화사한 미소를 건넨다. 그 미소와 맞닥뜨리는 순간, 원형의 수행길을 밟지 않고 수직의 계단길로 줄달음쳐 올라왔던 속물의 조급함을 탓한다. 사바세계의 속도와 효율이란 그저 공허한 허울이다. 어쩔 수 없는 한낱 미물일 뿐이지 싶다.

+++++ TIP+++++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 위치한 족자카르타(Yogjakarta)는 우리네 경주와도 같은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고대 도시로 전통적인 자바 문화가 잘 보존된 지역이다. 과거에는 ‘욕야카르타’가 공식적인 발음이었지만 점차 현지인들이 부르는 ‘족자카르타’ 혹은 줄여서 부르는 ‘족자’라는 발음이 일반화되고 있다.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1시간 정도면 닿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고도(古都)인 만큼 족자카르타에는 고풍스런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 중 세계적인 불교사원인 보로부두르 사원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힌두사원이라는 평가를 받는 프람바난 사원이 대표적이다. 

두 사원 모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으며 불교와 힌두를 대표하는 사원이 한 지역에 있다는 점에서도 관심이 높다. 족자카르타 시내에서 자동차로 1시간 가량이면 닿을 수 있다. 특히 보로부두르 사원은 일출 감상지로도 유명하다. 신비스런 사원 정상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현지 여행사나 호텔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해도 되고, 아예 ‘마노하라 호텔(Manohara)’과 같은 보로부두르 사원 인근에 위치한 호텔에서 숙박하는 것도 방법이다. 고풍스런 사원들과 함께 족자카르타 시내의 중심거리인 마리오보로 거리도 여행객들이 빼놓지 않는 관광명소다.

프람바난 사원 
악마의 마력은 세월을 거스르네!

마력을 지닌 한 왕자가 적국의 공주를 사랑해 청혼했다. 공주는 아버지를 죽인 그 왕자와 결혼하기 싫었지만 그가 지닌 마력이 두려웠다. 그래서 불가능한 조건을 내걸었다. 하룻밤 만에 1,000개의 신전을 쌓으면 결혼하겠노라고. 왕자는 그의 마력을 이용해 악마들을 불러 1,000개의 신전을 쌓아 올렸다. 불안해진 공주는 마을 사람들을 시켜 날이 밝으면 신전 하나를 무너뜨리라고 했다. 이에 화가 난 왕자는 공주를 석상으로 만들었고 1,000번째 신전으로 삼았다. 이렇게 해서 세워진 사원이 바로 프람바난 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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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힌두사원으로 평가받는 프람비난 사원은 해가 진 뒤에도 그 자태를 잃지 않는다. 
2.3 프람바난 사원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위로, 옆으로 급격히 팽창한다. 중앙 신전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는 외곽으로 한참 나가야 하지만 그 수고스러움이 싫지 않다. 

비록 전설에서처럼 1,000개에는 이르지는 못하지만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의 프람바난 사원(Prambanan Temple)은 우선 예상을 뒤엎는 거대한 규모로 이방인들의 기대에 부응한다. 규모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힌두 사원으로 꼽히고 있으니 보로부두르 사원과 쌍벽을 이루는 족자카르타의 명물이라는 데 동의하기 어렵지 않다. 프람바난 사원은 보로부두르 사원과 비슷한 시기인 9세기경에 이곳을 지배하던 힌두 왕조에 의해 건립됐다. 지금이야 보로부두르 사원은 불교 사원으로, 프람바난 사원은 힌두 사원으로 확실한 선을 그어 구분하지만 건립 당시에는 불교를 힌두교의 한 종파로 보는 경향이 강해 지금과 같은 의식적 구분은 약했다고 한다. 

실제로 프람바난 사원의 중앙 신전인 시바 신전에 있는 시바상은 불교와 연관이 높은 연꽃을 타고 있어 두 종교간의 연관성을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 전설 속에서는 1,000개의 신전이 프람바난 사원을 형성하고 있다지만 실제로는 240개의 크고 작은 신전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마저도 지금은 대부분 무너진 채로 복원되지 않아 사원 중앙을 제외하면 세월의 물결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 잔해들뿐이다. 현대에 들어 복원된 신전들이 프람바난 사원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유추하는 단초가 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힌두 사원

프람바난 사원은 멀리에서 바라보면 마치 활활 타오르고 있는 횃불의 불꽃 같기도 하고, 덜 여물은 솔방울을 세워 놓은 것 같기도 하다. 다가갈수록 고개를 급격히 치켜들어야 할 정도로, 웬만한 카메라 렌즈로는 한 번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프람바난은 위로, 옆으로 급격히 치솟고 부푼다. 현재 복원된 신전은 힌두교의 최고신인 시바(Siva), 시바신과 양립하는 하늘의 신 비슈누(Visnu), 창조의 신인 브라흐마(Brahma) 신을 섬기고 있는 3개 신전과 각 신들이 타고 다녔던 동물들이 봉안된 3개 신전, 그리고 이들 6개 신전에 각각 2개씩 딸려 있는 작은 신전 12개로 총 18개이다. 이 중 프람바난 사원의 고갱이는 역시 정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시바 신전이다. 

높이 47m에 이르는 시바 신전이 내뿜는 위용은 양 옆의 비슈누, 브라흐마 신전의 호위 속에 더욱 커진다. 고대 신화를 형상화한 신전 외벽과 신전 계단 난간 등에 새겨진 부조물들은 그 치밀함과 종교적 경건함으로 시선을 한참이나 붙든다.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등장하는 신들도 수억 명에 이르는 힌두교의 신비감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시바 신전의 내부에 들어가면 시바신을 중심으로 시바신의 아내 중 하나인 ‘두르가’, 코끼리 머리를 가진 시바의 아들 ‘가네샤’ 등의 상이 동서남북 각 측실에 새겨져 있다. 이곳 사람들은 시바 신전을 ‘라라 종그랑’ 사원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전설 속의 악마가 1,000번째 신전으로 삼은 공주의 이름이며, 시바 신전 북측 석실에 있는 두르가 상이 바로 전설 속의 라라 종그랑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두르가 상은 이곳저곳 까맣게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 있는데 두르가 상을 만지면 예뻐진다는 믿음이 있어서 현지인이건 여행객이건 할 것 없이 너도나도 만졌기 때문이란다. 시바, 비슈누, 브라흐마 3개 신전 주위에는 각각 이들이 타고 다녔던 동물들의 신전도 마련돼 있어 흥미롭다. 시바는 황소 ‘난디’를 타고 다녔고 비슈누 신은 독수리 형상을 한 전설 속의 새 ‘가루다’를, 브라흐마 신은 백조 ‘앙사’를 타고 다녔다.

세월의 잔해는 스산함을 던지고

복원된 이들 신전은 많은 볼거리와 호기심을 부풀리는 이런저런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어 제대로 느끼려면 하루를 다 바쳐도 부족한 감이 있다. 그런데도 샛길로 빠져 사원 변방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 이유는 복원되지 않은 수많은 역사의 편린들 때문이었다. 사원 중심을 빙 에두르며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수많은 돌조각들. 원래는 제각기 프람바난 사원의 웅장함에 마지막 점을 찍는 요소였을 터다. 이제는 검게 그을린 세월의 이끼만이 허허로이 지나가 버린 영화와 위용을 반추하고 있을 뿐이다. 그 무수한 돌무더기들은 분명 존재했지만 현재는 부존의 그늘에서 덤덤히 천년 세월을 증명하고 있다. 저 멀리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신전들과 확연한 대조를 이루며 그예 마음 속에 스산함을 안겨 준다. 악마의 마력이 다시 작용해 어느 순간 무너졌던 신전들이 세월의 흐름을 뚫고 쑥쑥 일어날 것만 같기도 하다. 

+++++TIP 족자카르타의 유적 탐방+++++

인도네시아의 고대도시인 만큼 족자카르타에는 보로부두르 사원과 프람바난 사원 이외에도 역사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유적지가 많이 있다. 보로부두르 사원 인근에 있는 믄듯 사원(Mendut Temple)도 여행객들이 보로부두르 사원 방문시 빼놓지 않는 불교 유적이다. 순례자들의 경우 보로부두르 사원을 오르기 전에 먼저 들르는 곳이다. 믄듯 사원은 직사각형 기단을 바탕으로 세워져 있으며 14개의 계단을 오르면 내부에 불상이 기다리고 있다. 

불상뿐만 아니라 사원의 4개 벽면마다 돋을새김의 불교 미술로 표현된 부조도 이 사원의 가치를 더하는 요소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하루 코스로 디엔(Dieng) 고원을 방문하는 것도 좋다. 해발고도 2,000m의 고원지대에 8~9세기경의 힌두 유적군이 남아 있다. ‘디엔’이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신들의 자리’라는 뜻을 지녔다니 이곳이 종교적으로 어느 정도의 성스러움을 지녔는지 이해할 수 있다.


족자카르타의 오늘, 마리오보로
베차는 순수를 실어 나르네!

길은 길에서 말미암고 길로 향한다. 길에서 비롯됐으되 거기에 연연하지 않으며, 길로 향하되 그곳을 지향하지 않는다. 쌓인 무게만큼 드러나고 가벼움만큼 숨는다. 한갓진 길이건 북새 놓인 길이건 언제나 삶이 있고 문화가 있다.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셀 수 없는 교차와 합일을 거듭한 끝에 숙명처럼 강을 이룬다. 소위 중심가요, 메인 스트리트다. 삶도 문화도 함께 섞이고 버무려진다. 미답견문의 황망한 여로에서도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그런 삶의 교차점, 문화의 집적지가 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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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틀이나 말벗이 되어준 58세의 베차 몰이꾼 누르만. 그의 하얀 미소는 족자카르타의 표정이다. 
2. 마리오보로 시장골목의 과일 노점상들.
3. 마리오보로 거리를 달리는 수많은 베차는 족자카르타의 오늘의 생기를 싣고 달린다.

족자카르타의 과거를 알고 싶다면 보로부두르 사원과 프람바난 사원을 들를 일이다. 하지만 만약 현재가 궁금하다면 주저 없이 마리오보로(Malioboro) 거리로 향하라. 이른바 족자카르타의 중심가요 메인 스트리트다. 족자카르타의 삶이 모이고 문화가 응축된 거리다. 길가에 늘어선 장터에는 우리네 시골 장날 분위기가 흥건하고, 거리 위 사람들은 거리낌 없는 해맑은 미소를 던진다. 한없이 수더분하지만 비굴하지 않고 나름대로 휘황찬란하지만 저속하지 않은 족자카르타의 따스함이 배어 있다. 

1km 가웃일까. 마리오보로는 길지도 짧지도 않다. 행정구역상으로는 투구 기차역(Tugu Station)에서 시작돼 술탄 왕궁(Sultan Palace)으로 일직선으로 내달리지만 여행객의 정서상으로는 한 블록 이전 거리부터 시작돼야 옳지 싶다. 끝내 이름을 알아내지 못한 사거리 교차로의 상징탑에서부터 술탄 왕궁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그 거리를 모두 마리오보로 거리로 보고 싶은 게다. 그곳에서부터 마리오보로가 품고 있는 족자카르타의 순수한 미소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베차는 추억을 부른다

그 거리에서 한 사내를 만났다. 머리 굵어지고부터 줄곧 베차(Becha) 페달을 밟았다는 58살의 누르만이다. 그의 끈덕진 호객 행위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까맣게 그을린 피부 탓에 한층 도드라졌던 하얀 미소가 오금을 박았다. 마침 한낮 땡볕이 부담스러웠던 터라 잘됐다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한여름 넌출처럼 땡볕에 풀 죽은 손님이 안쓰러웠던지 자신의 모자를 선뜻 건네주던 그 수수함이 결국 다음날에도 또 그의 베차에 오르게 했다.

베차는 자전거를 개조해 만든 족자카르타의 전통 교통수단이다. 베트남의 씨클로와 같다. 마리오보로 거리를 여행하는 데는 두 다리보다는 베차가 맞춤이다. 우리 돈 2,000원 정도면 두세 시간도 너끈하다. 현지인들도 이용하지만 외지 여행객들에게 더 유용하고 쓸모 있다. 베차 몰이꾼이 가이드 역할까지 도맡으니 말이다. 족자카르타 하면 베차가 자연스레 연상되는 이유다. 

베차는 마리오보로의 후미진 골목 구석구석까지 누비며 족자카르타의 얼굴을 가감 없이 보여 준다. 관광지도보다 더 많은 길들을 알고 있고 문자보다 더 생동하는 이야깃거리들을 싣고 있다. 술탄이 거주하고 있는 술탄 왕궁을 비롯해 바틱 공장, 미술품 전시판매장, 새 시장, 물의 궁전, 재래시장, 기념품점 등 족자카르타 시내의 기본 여행코스를 쉬이 섭렵할 수 있다. 맥도널드에 들러 함께 ‘빅맥’을 먹는 부대 서비스도 기꺼이 베푼다. 서로 엇나가기 일쑤지만 덜컹덜컹 베차에 앉아 베차 몰이꾼과 떠듬떠듬 나누는 대화는 쏠쏠한 덤이다. 이쯤 되면 베차의 기능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 이동을 뛰어넘는다. 족자카르타에 뿌리내린 사람들과 그네들의 삶, 문화와 소통하는 터널이요, 이정표가 된다. 


갈래갈래 뻗은 삶의 가지가지

마리오보로 거리에는 베차뿐만 아니라 관광객용 마차도 달리고 오토바이도 달리고 택시도 달린다. 그 틈바구니 속 노점상들과 기념품 가게에는 넉살좋은 흥정이 이어지고, 해거름 무렵부터 야시장이 시끌벅적 어둠을 재촉한다. 펼쳐진 물건들이야 죄다 허섭스레기로 보이지만 운 좋으면 값있는 골동품과 기념품 따위를 값싸게 얻을 수도 있다. 아무려면 어떤가, 그곳에 깃들여진 생기만으로도 체증이 가시는 느낌인 걸. 

마리오보로 거리에서 갈래갈래 가지 친 골목마다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삶들이 꿈틀대고 있었던가. 달콤한 오수에 빠진 늙수그레한 장사꾼은 이방인의 카메라 셔터소리에 잠을 앗긴 것을 탓하지 않으며 학교를 파한 조무래기들은 외려 사진 찍어 달라 보챈다. 경계심이라곤 없다. 샛길 후미진 시장 바닥에서 맛보는 노점 음식은 외지 음식에 비위 약한 이들이라도 입맛을 다실 만하다. 

여러모로 마리오보로에는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고도다운 순수가 풀풀 너풀대고, 오래도록 아리아리하게 떠오를 정겨운 풍경이 아롱거린다. 그 거리에서 한 페달 한 페달 삶의 바퀴를 굴려 온 누르만, 햇발 튕겨 내던 그의 하얀 미소가 아직도 가슴 속에 아련하듯이. 

+++++TIP 베차 타고 만끽하는 족자의 명소+++++

★술탄 왕궁(Sultan Palace)
        현지에서는 크라톤(Kraton)이라 부르는 왕궁은 이 지역 지도자인 술탄이 거주하는 곳이다. 관광객들은 정문이 아닌 별도로 마련된 입구를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입장료는 2,000원 정도. 카메라나 비디오 휴대시에는 700원 정도를 추가로 내야 한다. 술탄의 권위를 상징하듯 내부는 예상보다 매우 크며, 전통복장을 한 이들이 무료로 안내를 해주기도 하고 사진촬영에도 호의적이다. 궁전의 크고 작은 건축물들과 역대 술탄의 생활상 등을 전시하는 박물관 등은 물론, 전통 그림자 연극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물의 궁전(Water Castle)        술탄 왕궁 뒤편에 있으며, 왕궁에서 일하던 여자들의 목욕하는 모습을 왕이 감상하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은 놀이터 분위기가 강하지만 당시 왕이 목욕하는 여자들을 지켜보던 방과 옷 갈아입는 방 등이 남아 있다.

★새 시장(Bird Market)        술탄 왕궁에서 나와 물의 궁전에 조금 못 미친 곳에 자리잡고 있다. 각종 새들의 울음소리만 따라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식료품점 등 각종 가게들이 즐비하고 이런저런 새들을 팔고 있다. 인근에는 다채로운 새 소리를 내는 대나무 피리를 파는 장사꾼들이 북적댄다. 1,500원 정도면 5개들이 대나무 피리 세트를 구입할 수 있다. 흥정은 기본.

★소노부도요 박물관        인도네시아의 전통 의상인 바틱과 전통악기의 제조 공정 등을 사진으로 전시하고 있으며 인형이나 가면 등 전통 자바 문화의 색채를 느낄 수 있는 전시품들을 만날 수 있다.

★각종 기념품 가게        굳이 요청하지 않더라도 베차 기사들이 이런저런 기념품 가게를 안내한다. 판매에 따라 별도의 수수료를 받는 듯. 바틱 제조기법으로 그린 회화작품을 파는 가게나 티셔츠 가게 등이다. 사지 않더라도 구경삼아 들르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

★마리오보로 재래시장        마리오보로 거리 안쪽에 형성된 재래시장으로 현지 서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구경만 하는 게 뭣하면 노천 식당 등지에서 인도네시아 향료 냄새가 강한 현지음식을 시도해 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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